[M&A로 바뀌는 세계 경제지도 | 2016년 중국 ‘M&A 굴기’는 어디로] 구조조정+신성장의 ‘투 트랙 M&A’
[M&A로 바뀌는 세계 경제지도 | 2016년 중국 ‘M&A 굴기’는 어디로] 구조조정+신성장의 ‘투 트랙 M&A’
중국 기업의 해외 인수·합병(M&A)은 지난해에도 거침이 없었다. 제조업의 부침이 심화되고 주식시장 거품 붕괴로 금융 혼란을 겪는 와중이지만 그들 나름의 셈법으로 포트폴리오를 채워나가는 중이다. 제조→소비로의 경제 체질 전환에 따라 그들의 M&A 기호도 변해갈 것이다. 중국 내수시장을 노리는 한국 기업도 M&A, 조인트 벤처 설립, 지분 투자 등의 다양한 방법으로 중국 기업을 노릴 필요가 있다. 저부가 제조업을 떼내고 고부가 서비스업으로 체질을 바꾼 미국 기업의 사례도 타산지석으로 삼을 만하다. 중국 기업은 지난해에도 해외 인수·합병(M&A)에 거침이 없었다. 제조업의 부침이 심화되고 주식시장 거품 붕괴로 금융 혼란을 겪는 와중에도 그들의 식탐은 끝이 없었다. ‘폭식 끝에 체한다’고 제대로 관리가 될까 싶지만 중국은 그들 나름의 셈법으로 포트폴리오를 채워나가는 중이다. 정초부터 중국 경제의 불안감이 커지고 있어 예년 속도대로 M&A 굴기를 계속 해 나갈 수 있을지는 미지수지만 부족한 곳을 메우려는 저들의 행보는 계속될 것 같다. 주목할 것은 앞으로 2~3년 본토와 해외에서 양방향 M&A, 즉 투 트랙(Two Track) M&A가 한층 두드러질 것이라는 점이다. 경제 체질 전환에 따라 그들의 M&A 기호도 변해갈 것임은 자명하다.
시간을 사다: 덩샤오핑의 개혁개방 이후 중국의 산업화는 미국을 비롯한 선진국의 제조업 설비를 넘겨받는 과정이었다. 기술 장벽이 낮은 노동집약형 산업이 주를 이뤘다. 우리가 걸어왔던 길과 별반 다를 게 없다. 해외의 유수 기업을 사들인다는 것은 상상도 못하던 시절이다. 진보의 목마름을 해외 기업 유치와 기술 제휴로 달래기엔 역부족이었다. 종갓집의 장맛은 며느리도 모른다 하지 않던가. 글로벌 기업들에게 중국은 하청기지였을 +뿐 핵심 기술을 넘겨줄 대상이 아니었다. 그래서 당이 주도적으로 벌인 사업이 ‘조국으로 돌아오라’였다. 파격적인 대우를 약속하며 미국 등 해외에서 활동하는 화교 엔지니어들과 석학들을 불러들였다. 거상(巨商)들에게도 애국의 기회가 주어졌음은 당연하다.
그러다 2000년대 초반으로 넘어오면 저들의 해갈(解渴) 방식이 급변하기 시작한다. 돈이 생겼기 때문이다. 개방 이후 수출 제조업으로 축적한 국부(國富)는 중국을 M&A의 세계로 인도했다. 인민은행 외환보유액과 중국개발은행 정책자금이 무한정으로 제공한 ‘실탄(인수금융)’은 중국의 해외 M&A 불패신화를 만들어 냈다. M&A란 쉽게 말해 돈으로 시간을 사는 일이다. 한 기업이 긴 시간을 들여 축적한 기술 노하우와 그들이 일군 소비시장, 그리고 소비자들의 뇌리에 새겨진 브랜드를 화폐로 교환하는 작업이다. 큰 비용을 치러야 하지만, 단기간 내 빛을 보려면 이보다 나은 경영전략도 없다. 합병 후 통합작업만 순조롭게 진행되면 금상첨화다.
동서를 불문하고 자본주의의 심화 과정은 경쟁과 적자생존을 통한 시장지배력 강화며, 결국 규모의 경제를 구축하는 일이었다. 중국에게 M&A는 그 중간단계를 뛰어넘는 작업이었다. 이는 2000년대 들어 저들의 성장속도와 시장지배력이 비약적으로 확대된 배경 중 하나이기도 하다. 중국은 여건이 허락하는 한 앞으로도 이 전력을 지속할 생각인 것 같다. 지도부는 당과 행정의 간섭을 최소화하겠다고 강조하지만 아직은 재화가 중앙으로 집중되고, 중앙이 계획하고 설계하는 정치 시스템을 유지하고 있어 그러하다. 당 지도부가 계속 시간을 사고 싶어하는 한 기업들도 거기에 맞게 움직여야 한다.
시간은 곧 돈이다. 먼저 알면 벌고 나중에 알면 헛물을 켠다. 기술도 마찬가지다. 앞선 기술로는 돈을 벌지만 낙후된 기술로는 할 수 있는 게 별로 없다. 선진국 입장에선, 돈으로 자신들과 시간 격차를 좁혀 오는 중국이 부담일 수밖에 없다. 그래서 늘 그렇듯 앞서 나간 자는 방벽을 친다. 각종 투자규제와 환경규제, 기후변화협약, (글로벌 제약사의 살인적인) 지적재산권 등이 여기에 해당한다. 지고지순한 선의에서 출발했을지 모르나 몇몇이 만들어 낸 스탠더드는 그들의 이해관계와 맞닿아 있게 마련이다. 의도했든 의도하지 않았든 후발자의 발목을 잡는 기제가 된다.
최근 4~5년 중국이 이를 우회하거나 돌파하는 과정은 흥미롭다. 거기엔 늘 14억 명에 이르는 거대 내수시장이 자리했다. 중국에서 팔리지 않으면 글로벌 기업이 되지 못하며, 중국 내 매출이 줄면 전체 수익도 쪼그라드는 세상이 됐다. 앞으로 중국이 전개할 M&A 역시 거대 내수시장에 기반해 진행될 것임은 분명하다. 아직까지 14억 중국을 대체할 시장이 없는 상황에서 이 게임은 이전과는 다른 양상을 만들어 낼 것이다. 이 이야기는 차차하도록 하자.
굴곡의 M&A 역사: 써놓고 보니 중국은 무엇이든 다 할 수 있을 것 같은 나라가 돼 버렸다. 실상은 그렇지도 않다. 중복 투자에 따른 비효율은 중국의 M&A 역사에도 굴곡을 남겼다. 원자재 수퍼사이클에 편승했던 중국의 해외 원자재 폭식이 대표적이다. 현재 스코어 2007~2012년 시절의 에너지 및 원자재 관련 M&A는 참패다. 2013년 말부터 시작된 원자재 가격의 기조적 하락세는 중국 내 국유기업과 국부펀드에 적지 않은 자산 평가 손실을 남긴 걸로 추정된다. 그리고 당시 투입됐던 자금의 상당수는 외환보유액에서 나왔다. 최근 위안화 약세에 따른 자본 유출로 인해 외환보유액이 줄어들었다. 중국의 외환보유액 속에 실제 가용할 수 있는 돈이 과연 얼마나 될까라는 의혹이 일고 있는 배경에도 과거 급격히 진행됐던 원자재 분야 M&A가 자리한다. 해외 논객들은 “적지 않은 외환보유액이 당장 회수하기 힘든, 그리고 손실을 내고 있을 것으로 추정되는 에너지와 원자재 부문에 투입됐다”고 주장한다.
물론 인민은행이 국제통화기금(IMF) 기준에 따라 언제든 가용할 수 있는 외화자산만을 그때 그때 외환보유액으로 설정하고 있다면 이런 주장은 의미가 없어진다. 다만, 지난 2013년 중국 싱크탱크인 사회과학원조차 ‘국부를 갖고 편식해서는 안 된다’고 정책 제언을 할 만큼 중국의 해외 M&A가 원자재 부문에 편중돼 왔음은 부인할 수 없다. 그래도 당국자들은 느긋하다. 때를 잘못 만나 욕을 먹고는 있지만 자원 안보의 관점에서 보자면 타당한 투자였다는 것이다. 14억 인구를 안정적으로 유지하려면 여건이 허락될 때 자원을 확보해 둬야 한다. 더구나 원자재 가격이라는 것도 싸이클을 갖게 마련이다. 대폭락 후 신규 설비투자가 상당기간 멈춰버리면 언젠가 수급이 역전되는 상황이 찾아 들고 그러면 언제 그랬냐는 듯 급등하기를 반복하는 게 원자재 시장이다. 그래서 ‘길게 보면 중국 경제에 보탬이 될 것’이라는 논리도 일견 옳다. 다만 현 시점에서 보자면 에너지 집약형 경제와 굴뚝 경제에서 탈피하려는 중국 지도부의 정책방향과 상충되고 있는 것 또한 사실이다.
미흡했던 사례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IBM의 PC 사업부를 인수하며 기술력을 확보하고 해외 판로를 열었던 레노보의 M&A는 성공작이었다. 최근 실적이 주춤해지긴 했지만 레노보는 중국 내 PC시장과 이머징의 파이가 커지던 시절 회사를 성공적으로 키워냈다. 중국 내 소비 트랜드와 구매력 증가 추세를 잘 따라 간 사례다.
급변하는 글로벌 거시환경: 사실 우리 입장에서 저들의 과거 M&A 사례의 잘잘못을 따지는 것은 별 의미가 없다. 중국의 M&A 굴기가 어떤 형태로 진행될 것이냐가 더 중요하다. 여기에 앞서 불길한 그래프부터 하나 보고 가자. 딜로직의 전 세계 M&A 추이에다, 미국 S&P500 지수를 비교해 놓은 것이다. 글로벌 M&A 사이클은 2000년과 20007년에 이어 지난해 또 한번의 정점을 형성한 듯하다. 1996년 이래 S&P500 지수의 흐름을 보면 글로벌 M&A가 꼭지에 도달한 바로 그 다음 해 주식시장은 폭락을 경험하곤 했다. 2000년 M&A 절정 이후 증시는 47%, 2007년 절정 이후 증시는 56.8%의 하락을 경험했다. 물론 과거의 경험이 이번에도 되풀이 될 거라는 보장은 없다. 다만 불안한 것은 사실이다.
실물에서 경영진들의 사업 확장 욕구와 주식시장 내 투자자들의 탐욕은 글로벌 유동성의 팽창과 수축 주기와 맞물린다. 지난해 말 미 연준의 금리 인상 이후 글로벌 유동성 환경이 큰 변화를 맞고 있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이를 감안하면 M&A 시장과 글로벌 자산시장, 글로벌 경제가 머지 않아 전환점에 들 가능성을 배제할 수는 없다. 물론 사후적으로 확인될 뿐 예단할 성질은 아니다. 올 한해 중국의 해외 M&A가 거칠어진 글로벌 거시환경을 거스를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미 연준의 통화정책 변경으로 높아진 달러 조달비용, 지난해 말부터 재개된 위안화 약세는 중국 기업의 해외 인수금융 비용을 높여 놓았다. 더구나 내부적으로는 설비 과잉으로 기업의 이윤율이 계속 저하되고 있으며 급팽창했던 부채에서 부실이 확대되고 있다. 당 지도부가 ‘좀비기업’ 척결과 설비 과잉 해소를 올 한해 주요 과제로 설정한 이유이기도 하다.
올해 중국의 구조조정이 본격화한다면 그 여파는 주변 신흥시장으로 번질 수밖에 없다. 주변국들로선 중국의 산업구조 조정에 맞춰 변모해야 살아 남는다. 이는 신흥시장 내 기존 설비들도 일정 부분 조정에 들어가야 함을 의미한다. 따라서 신흥시장의 관점에서는 전략적 투자자(SI)에 의한 M&A보다 사모펀드와 같은 재무적 투자자(FI)에 의한 부실 기업 인수가 활기를 띠기 쉬운 환경을 맞고 있다.
제조강국을 향한 의지: 이처럼 녹록하지 않은 거시환경이지만 제조기지에서 제조강국으로 발돋움하려는 중국 당 지도부의 의지는 여전히 강고하다. 첨단기술을 접목시켜 고부가가치 산업으로 나아가려는 정책방향도 선명하다. 올 한해 중국 기업의 해외 M&A도 여기에 맞춰 진행될 가능성이 크다. 동시에 구조조정의 관점에서 본토 내 M&A도 빈번해질 수밖에 없다. 이는 국내와 해외에서 동시에 진행되는 ‘투 트랙 M&A’ 가 될 것임을 의미한다. 그리고 이는 궁극적으로 소비 중심, 서비스 주도 경제에 맞는 산업구조로 재편되는 과정이기도 하다.
앞으로 중국이 전개할 M&A도 이전보다 내수시장에 뿌리를 두고 진행될 수밖에 없다. 이유는 단순하다. 중국은 도시화의 진전으로 키워 놓은 중산층의 구매력과 확대되는 내수시장을 해외 기업에 고스란히 갖다 바칠 마음이 없기 때문이다. 소비 중심의 경제로 전환한다고 하니 흔히들 중국의 구매력이 향상돼 해외 물품을 더 많이 사줄 것이라 생각한다. 그러나 중국 산업의 관점에서 소비 중심 경제로의 전환은 (해외에서 철광석 광산이나 알루미늄 업체, 가스전만 대거 사들이던) 본토 기업이 자국민에게 양질의 재화를 제공할 수 있는 소비재 업체로 변신해 나가는 것을 의미한다.
당국은 14억 내수시장에 먹힐 수 있는 본토 기업의 제품과 기술이 있다면 이는 저절로 글로벌 표준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서두르지 않아도 14억 인구의 선택이 그렇게 만들어줄 것이라고 믿고 있다. 거대 소비시장의 힘이다(미국이 글로벌 표준을 선도할 수 있었던 것도 달러라는 무기와 기술혁신 못지 않게 거대 내수시장이 뒷받침됐기에 가능했다). 따라서 과거 중국의 M&A가 글로벌 시장 내 점유율 확대에 초점을 맞췄다면 미래 중국의 M&A는 글로벌 경쟁력 강화는 물론이고 커져가는 내수시장에서 지배력을 확보하는 데 무게를 둘 것이다. 이는 해외 제품에 빼앗겼던 본토 내수시장을 야금야금 되찾아 오는 과정이다. 중국에 물건을 팔아 먹고 살았던 주변국 기업들로선 만만하게 볼 환경이 아니다. 올 한해 중국 기업의 해외 M&A 못지 않게 본토 내 국유기업과 민간기업의 M&A를 주목해야 하는 이유다.
이미 큰 방향은 섰다. 지난 2013년 중국은 9대 산업 구조조정 방안을 통해 주요 업종마다 (M&A를 통해) 힘을 지닌 공룡 기업을 만들기로 계획을 세웠다. 현재 115개인 중앙 국유기업은 40개 정도로 합쳐질 것이다. 그 과정에서 새로운 사업모델을 택하는 곳도 등장할 것이다.
선택과 집중: 마지막으로 중국의 해외 부문 M&A가 집중될 섹터를 간략히 살펴보자. 지난해 중국의 해외 M&A에서 최대 비중을 차지한 것은 IT를 포함한 테크놀러지 섹터였다. 188억 달러어치 해외 M&A가 이 분야에서 성사돼 전년 대비 87%의 증가율을 보였다. 특히 ‘BAT 트리오’라고 불리는 바이두와 알리바바, 텅쉰의 경우 지난해 역내와 역외에서 총 96건의 M&A를 마무리했다. 금액만 349억 달러에 달한다. 모바일과 인터넷 상거래 부문에서 폭발적인 성장이 이뤄지고 있음을 엿볼 수 있다. 올해도 이 추세는 크게 바뀌지 않을 것이다. 반도체산업 육성도 빼놓을 수 없다. 지난해 칭화 유니그룹의 휴렛팩커드 인수나 웨스턴 디지털에 대한 투자는 맛보기에 불과하다. 반도체 기업에 대한 M&A 시도는 앞으로도 빈번해질 것이며, 그 과정에서 타이완 기업들과 보조를 맞추는 전략도 가동될 수 있다.
물론 원자재 쪽의 M&A는 시들해질 수밖에 없다. 이미 지난 2014년 중국의 호주 기업 인수가 절반으로 줄어든 것에서 이를 감지할 수 있다. 대신 지역별로는 유럽 기업에 대한 M&A가 늘고 있다. 2015년 중국의 해외 M&A 가운데 3분의 1은 유럽 기업을 대상으로 이뤄졌다. 유로화가 약해져 매물의 가격이 내려간 것도 도움이 됐지만 유럽에는 중국이 보기에 매력적인, 즉 기술력을 축적한 소비재 업체와 여행 전문 업체가 많다. 기본 의식주를 해결한 중국인들은 더 나은 먹거리와 볼거리, 놀거리에 지갑을 열 준비가 돼 있다. 해외 헬스케어 업체와 낙농 육가공 업체, 저비용 항공사 등으로 눈길을 돌리는 중국 기업도 더 늘어날 가능성이 크다. 최근 중국 보험사들과 중국계 사모펀드가 해외 호텔과 해외 리조트 인수에 나서고 있는 것도 외국인 관광객을 붙잡기 위한 게 아니라 중국인 관광객이 주로 찾는 곳, 혹은 찾게 될 곳을 겨냥한 투자다. 해외 M&A지만 실상은 내국인용 투자다.
올 한해 ‘차이나 머니’의 공습은 안팎의 사정으로 약해질 수도 있다. 다만, 기존 산업의 구조적 결함이 커질수록 해외 M&A를 통해 돌파구를 찾으려는 중국 당국의 노력도 강화되기 쉽다.
- 오상용 글로벌모니터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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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을 사다: 덩샤오핑의 개혁개방 이후 중국의 산업화는 미국을 비롯한 선진국의 제조업 설비를 넘겨받는 과정이었다. 기술 장벽이 낮은 노동집약형 산업이 주를 이뤘다. 우리가 걸어왔던 길과 별반 다를 게 없다. 해외의 유수 기업을 사들인다는 것은 상상도 못하던 시절이다. 진보의 목마름을 해외 기업 유치와 기술 제휴로 달래기엔 역부족이었다. 종갓집의 장맛은 며느리도 모른다 하지 않던가. 글로벌 기업들에게 중국은 하청기지였을 +뿐 핵심 기술을 넘겨줄 대상이 아니었다. 그래서 당이 주도적으로 벌인 사업이 ‘조국으로 돌아오라’였다. 파격적인 대우를 약속하며 미국 등 해외에서 활동하는 화교 엔지니어들과 석학들을 불러들였다. 거상(巨商)들에게도 애국의 기회가 주어졌음은 당연하다.
그러다 2000년대 초반으로 넘어오면 저들의 해갈(解渴) 방식이 급변하기 시작한다. 돈이 생겼기 때문이다. 개방 이후 수출 제조업으로 축적한 국부(國富)는 중국을 M&A의 세계로 인도했다. 인민은행 외환보유액과 중국개발은행 정책자금이 무한정으로 제공한 ‘실탄(인수금융)’은 중국의 해외 M&A 불패신화를 만들어 냈다. M&A란 쉽게 말해 돈으로 시간을 사는 일이다. 한 기업이 긴 시간을 들여 축적한 기술 노하우와 그들이 일군 소비시장, 그리고 소비자들의 뇌리에 새겨진 브랜드를 화폐로 교환하는 작업이다. 큰 비용을 치러야 하지만, 단기간 내 빛을 보려면 이보다 나은 경영전략도 없다. 합병 후 통합작업만 순조롭게 진행되면 금상첨화다.
동서를 불문하고 자본주의의 심화 과정은 경쟁과 적자생존을 통한 시장지배력 강화며, 결국 규모의 경제를 구축하는 일이었다. 중국에게 M&A는 그 중간단계를 뛰어넘는 작업이었다. 이는 2000년대 들어 저들의 성장속도와 시장지배력이 비약적으로 확대된 배경 중 하나이기도 하다. 중국은 여건이 허락하는 한 앞으로도 이 전력을 지속할 생각인 것 같다. 지도부는 당과 행정의 간섭을 최소화하겠다고 강조하지만 아직은 재화가 중앙으로 집중되고, 중앙이 계획하고 설계하는 정치 시스템을 유지하고 있어 그러하다. 당 지도부가 계속 시간을 사고 싶어하는 한 기업들도 거기에 맞게 움직여야 한다.
시간은 곧 돈이다. 먼저 알면 벌고 나중에 알면 헛물을 켠다. 기술도 마찬가지다. 앞선 기술로는 돈을 벌지만 낙후된 기술로는 할 수 있는 게 별로 없다. 선진국 입장에선, 돈으로 자신들과 시간 격차를 좁혀 오는 중국이 부담일 수밖에 없다. 그래서 늘 그렇듯 앞서 나간 자는 방벽을 친다. 각종 투자규제와 환경규제, 기후변화협약, (글로벌 제약사의 살인적인) 지적재산권 등이 여기에 해당한다. 지고지순한 선의에서 출발했을지 모르나 몇몇이 만들어 낸 스탠더드는 그들의 이해관계와 맞닿아 있게 마련이다. 의도했든 의도하지 않았든 후발자의 발목을 잡는 기제가 된다.
최근 4~5년 중국이 이를 우회하거나 돌파하는 과정은 흥미롭다. 거기엔 늘 14억 명에 이르는 거대 내수시장이 자리했다. 중국에서 팔리지 않으면 글로벌 기업이 되지 못하며, 중국 내 매출이 줄면 전체 수익도 쪼그라드는 세상이 됐다. 앞으로 중국이 전개할 M&A 역시 거대 내수시장에 기반해 진행될 것임은 분명하다. 아직까지 14억 중국을 대체할 시장이 없는 상황에서 이 게임은 이전과는 다른 양상을 만들어 낼 것이다. 이 이야기는 차차하도록 하자.
굴곡의 M&A 역사: 써놓고 보니 중국은 무엇이든 다 할 수 있을 것 같은 나라가 돼 버렸다. 실상은 그렇지도 않다. 중복 투자에 따른 비효율은 중국의 M&A 역사에도 굴곡을 남겼다. 원자재 수퍼사이클에 편승했던 중국의 해외 원자재 폭식이 대표적이다. 현재 스코어 2007~2012년 시절의 에너지 및 원자재 관련 M&A는 참패다. 2013년 말부터 시작된 원자재 가격의 기조적 하락세는 중국 내 국유기업과 국부펀드에 적지 않은 자산 평가 손실을 남긴 걸로 추정된다. 그리고 당시 투입됐던 자금의 상당수는 외환보유액에서 나왔다. 최근 위안화 약세에 따른 자본 유출로 인해 외환보유액이 줄어들었다. 중국의 외환보유액 속에 실제 가용할 수 있는 돈이 과연 얼마나 될까라는 의혹이 일고 있는 배경에도 과거 급격히 진행됐던 원자재 분야 M&A가 자리한다. 해외 논객들은 “적지 않은 외환보유액이 당장 회수하기 힘든, 그리고 손실을 내고 있을 것으로 추정되는 에너지와 원자재 부문에 투입됐다”고 주장한다.
물론 인민은행이 국제통화기금(IMF) 기준에 따라 언제든 가용할 수 있는 외화자산만을 그때 그때 외환보유액으로 설정하고 있다면 이런 주장은 의미가 없어진다. 다만, 지난 2013년 중국 싱크탱크인 사회과학원조차 ‘국부를 갖고 편식해서는 안 된다’고 정책 제언을 할 만큼 중국의 해외 M&A가 원자재 부문에 편중돼 왔음은 부인할 수 없다. 그래도 당국자들은 느긋하다. 때를 잘못 만나 욕을 먹고는 있지만 자원 안보의 관점에서 보자면 타당한 투자였다는 것이다. 14억 인구를 안정적으로 유지하려면 여건이 허락될 때 자원을 확보해 둬야 한다. 더구나 원자재 가격이라는 것도 싸이클을 갖게 마련이다. 대폭락 후 신규 설비투자가 상당기간 멈춰버리면 언젠가 수급이 역전되는 상황이 찾아 들고 그러면 언제 그랬냐는 듯 급등하기를 반복하는 게 원자재 시장이다. 그래서 ‘길게 보면 중국 경제에 보탬이 될 것’이라는 논리도 일견 옳다. 다만 현 시점에서 보자면 에너지 집약형 경제와 굴뚝 경제에서 탈피하려는 중국 지도부의 정책방향과 상충되고 있는 것 또한 사실이다.
미흡했던 사례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IBM의 PC 사업부를 인수하며 기술력을 확보하고 해외 판로를 열었던 레노보의 M&A는 성공작이었다. 최근 실적이 주춤해지긴 했지만 레노보는 중국 내 PC시장과 이머징의 파이가 커지던 시절 회사를 성공적으로 키워냈다. 중국 내 소비 트랜드와 구매력 증가 추세를 잘 따라 간 사례다.
급변하는 글로벌 거시환경: 사실 우리 입장에서 저들의 과거 M&A 사례의 잘잘못을 따지는 것은 별 의미가 없다. 중국의 M&A 굴기가 어떤 형태로 진행될 것이냐가 더 중요하다. 여기에 앞서 불길한 그래프부터 하나 보고 가자. 딜로직의 전 세계 M&A 추이에다, 미국 S&P500 지수를 비교해 놓은 것이다. 글로벌 M&A 사이클은 2000년과 20007년에 이어 지난해 또 한번의 정점을 형성한 듯하다. 1996년 이래 S&P500 지수의 흐름을 보면 글로벌 M&A가 꼭지에 도달한 바로 그 다음 해 주식시장은 폭락을 경험하곤 했다. 2000년 M&A 절정 이후 증시는 47%, 2007년 절정 이후 증시는 56.8%의 하락을 경험했다. 물론 과거의 경험이 이번에도 되풀이 될 거라는 보장은 없다. 다만 불안한 것은 사실이다.
실물에서 경영진들의 사업 확장 욕구와 주식시장 내 투자자들의 탐욕은 글로벌 유동성의 팽창과 수축 주기와 맞물린다. 지난해 말 미 연준의 금리 인상 이후 글로벌 유동성 환경이 큰 변화를 맞고 있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이를 감안하면 M&A 시장과 글로벌 자산시장, 글로벌 경제가 머지 않아 전환점에 들 가능성을 배제할 수는 없다. 물론 사후적으로 확인될 뿐 예단할 성질은 아니다. 올 한해 중국의 해외 M&A가 거칠어진 글로벌 거시환경을 거스를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미 연준의 통화정책 변경으로 높아진 달러 조달비용, 지난해 말부터 재개된 위안화 약세는 중국 기업의 해외 인수금융 비용을 높여 놓았다. 더구나 내부적으로는 설비 과잉으로 기업의 이윤율이 계속 저하되고 있으며 급팽창했던 부채에서 부실이 확대되고 있다. 당 지도부가 ‘좀비기업’ 척결과 설비 과잉 해소를 올 한해 주요 과제로 설정한 이유이기도 하다.
올해 중국의 구조조정이 본격화한다면 그 여파는 주변 신흥시장으로 번질 수밖에 없다. 주변국들로선 중국의 산업구조 조정에 맞춰 변모해야 살아 남는다. 이는 신흥시장 내 기존 설비들도 일정 부분 조정에 들어가야 함을 의미한다. 따라서 신흥시장의 관점에서는 전략적 투자자(SI)에 의한 M&A보다 사모펀드와 같은 재무적 투자자(FI)에 의한 부실 기업 인수가 활기를 띠기 쉬운 환경을 맞고 있다.
제조강국을 향한 의지: 이처럼 녹록하지 않은 거시환경이지만 제조기지에서 제조강국으로 발돋움하려는 중국 당 지도부의 의지는 여전히 강고하다. 첨단기술을 접목시켜 고부가가치 산업으로 나아가려는 정책방향도 선명하다. 올 한해 중국 기업의 해외 M&A도 여기에 맞춰 진행될 가능성이 크다. 동시에 구조조정의 관점에서 본토 내 M&A도 빈번해질 수밖에 없다. 이는 국내와 해외에서 동시에 진행되는 ‘투 트랙 M&A’ 가 될 것임을 의미한다. 그리고 이는 궁극적으로 소비 중심, 서비스 주도 경제에 맞는 산업구조로 재편되는 과정이기도 하다.
앞으로 중국이 전개할 M&A도 이전보다 내수시장에 뿌리를 두고 진행될 수밖에 없다. 이유는 단순하다. 중국은 도시화의 진전으로 키워 놓은 중산층의 구매력과 확대되는 내수시장을 해외 기업에 고스란히 갖다 바칠 마음이 없기 때문이다. 소비 중심의 경제로 전환한다고 하니 흔히들 중국의 구매력이 향상돼 해외 물품을 더 많이 사줄 것이라 생각한다. 그러나 중국 산업의 관점에서 소비 중심 경제로의 전환은 (해외에서 철광석 광산이나 알루미늄 업체, 가스전만 대거 사들이던) 본토 기업이 자국민에게 양질의 재화를 제공할 수 있는 소비재 업체로 변신해 나가는 것을 의미한다.
당국은 14억 내수시장에 먹힐 수 있는 본토 기업의 제품과 기술이 있다면 이는 저절로 글로벌 표준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서두르지 않아도 14억 인구의 선택이 그렇게 만들어줄 것이라고 믿고 있다. 거대 소비시장의 힘이다(미국이 글로벌 표준을 선도할 수 있었던 것도 달러라는 무기와 기술혁신 못지 않게 거대 내수시장이 뒷받침됐기에 가능했다). 따라서 과거 중국의 M&A가 글로벌 시장 내 점유율 확대에 초점을 맞췄다면 미래 중국의 M&A는 글로벌 경쟁력 강화는 물론이고 커져가는 내수시장에서 지배력을 확보하는 데 무게를 둘 것이다. 이는 해외 제품에 빼앗겼던 본토 내수시장을 야금야금 되찾아 오는 과정이다. 중국에 물건을 팔아 먹고 살았던 주변국 기업들로선 만만하게 볼 환경이 아니다. 올 한해 중국 기업의 해외 M&A 못지 않게 본토 내 국유기업과 민간기업의 M&A를 주목해야 하는 이유다.
이미 큰 방향은 섰다. 지난 2013년 중국은 9대 산업 구조조정 방안을 통해 주요 업종마다 (M&A를 통해) 힘을 지닌 공룡 기업을 만들기로 계획을 세웠다. 현재 115개인 중앙 국유기업은 40개 정도로 합쳐질 것이다. 그 과정에서 새로운 사업모델을 택하는 곳도 등장할 것이다.
선택과 집중: 마지막으로 중국의 해외 부문 M&A가 집중될 섹터를 간략히 살펴보자. 지난해 중국의 해외 M&A에서 최대 비중을 차지한 것은 IT를 포함한 테크놀러지 섹터였다. 188억 달러어치 해외 M&A가 이 분야에서 성사돼 전년 대비 87%의 증가율을 보였다. 특히 ‘BAT 트리오’라고 불리는 바이두와 알리바바, 텅쉰의 경우 지난해 역내와 역외에서 총 96건의 M&A를 마무리했다. 금액만 349억 달러에 달한다. 모바일과 인터넷 상거래 부문에서 폭발적인 성장이 이뤄지고 있음을 엿볼 수 있다. 올해도 이 추세는 크게 바뀌지 않을 것이다. 반도체산업 육성도 빼놓을 수 없다. 지난해 칭화 유니그룹의 휴렛팩커드 인수나 웨스턴 디지털에 대한 투자는 맛보기에 불과하다. 반도체 기업에 대한 M&A 시도는 앞으로도 빈번해질 것이며, 그 과정에서 타이완 기업들과 보조를 맞추는 전략도 가동될 수 있다.
물론 원자재 쪽의 M&A는 시들해질 수밖에 없다. 이미 지난 2014년 중국의 호주 기업 인수가 절반으로 줄어든 것에서 이를 감지할 수 있다. 대신 지역별로는 유럽 기업에 대한 M&A가 늘고 있다. 2015년 중국의 해외 M&A 가운데 3분의 1은 유럽 기업을 대상으로 이뤄졌다. 유로화가 약해져 매물의 가격이 내려간 것도 도움이 됐지만 유럽에는 중국이 보기에 매력적인, 즉 기술력을 축적한 소비재 업체와 여행 전문 업체가 많다. 기본 의식주를 해결한 중국인들은 더 나은 먹거리와 볼거리, 놀거리에 지갑을 열 준비가 돼 있다. 해외 헬스케어 업체와 낙농 육가공 업체, 저비용 항공사 등으로 눈길을 돌리는 중국 기업도 더 늘어날 가능성이 크다. 최근 중국 보험사들과 중국계 사모펀드가 해외 호텔과 해외 리조트 인수에 나서고 있는 것도 외국인 관광객을 붙잡기 위한 게 아니라 중국인 관광객이 주로 찾는 곳, 혹은 찾게 될 곳을 겨냥한 투자다. 해외 M&A지만 실상은 내국인용 투자다.
올 한해 ‘차이나 머니’의 공습은 안팎의 사정으로 약해질 수도 있다. 다만, 기존 산업의 구조적 결함이 커질수록 해외 M&A를 통해 돌파구를 찾으려는 중국 당국의 노력도 강화되기 쉽다.
- 오상용 글로벌모니터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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