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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션 모델은 왜 웃지 않을까

패션 모델은 왜 웃지 않을까

지난 1월 27일 프랑스 파리에서 열린 빅토르 앤 롤프의 2016 봄·여름 패션쇼.
패션 위크 시즌이 시작됐다. 런던과 뉴욕, 파리에서 각종 행사가 줄줄이 열린다. 그런 패션쇼는 현장에 직접 가보지 않아도 예측할 수 있는 한 가지 특징이 있다. 모델들이 미소를 짓지 않는다는 것이다.

일각에서는 이제 모델들도 행복한 표정을 지어야 할 때가 됐다고 말하지만 무표정한 얼굴은 그 직업에 요구되는 변치 않는 특성이다.

패션업계를 좋지 않게 보는 사람들은 모델의 무표정한 얼굴에 불만을 표하는 경우가 많다. ‘쥬랜더’’(2001) 같은 영화에서는 화난 듯 뿌루퉁하게 입술을 내민 표정을 선호하는 패션업계의 관행을 비난했다. 패션쇼 무대는 미소를 찾아볼 수 없는 곳이다. 모델들은 쇼가 끝날 무렵 디자이너가 꽃다발 세례를 받으며 무대 위에 등장할 때는 웃을 수 있지만 쇼가 진행되는 도중에는 웃어선 안 된다. 패션 잡지에서도 미소는 금물이다. 마치 모델의 식탁 위에 스테이크와 감자 칩이 놓이는 일처럼 희귀한 경우라고 할까?

미소가 없는 패션쇼 무대가 마음에 안 드는 또 다른 이유는 너무도 뻔하게 예측 가능하다는 점이다. 버스나 맛있는 커피를 기다릴 때는 예측이 가능한 게 좋다. 하지만 패션의 본질은 미학의 한계에 도전하고 변화를 위한 변화를 꾀하는 것 아닌가?

그런데 왜 우리는 매년 매 시즌 모든 패션쇼에서 똑같이 불행한 표정의 모델들을 봐야 할까? 정말 어리석은 일 아닌가?

어쩌면 그렇지 않을지도 모른다. 패션 모델의 무표정한 얼굴은 많은 것을 말해준다. 우리는 거기서 과거 역사와의 흥미로운 연관성을 발견할 수도 있다. 오늘날의 프로필 사진이나 19세기 명함판 사진의 전신이라고 할 수 있는 옛날 왕가의 초상화에서 드러나는 귀족들의 경멸 섞인 표정이 그것이다.

패션 사진은 오래 전부터 오만한 표정을 이용해 왔다 (20세기 초반부터 중반까지 활동한 패션 사진가 호스트 P 호스트의 사진을 생각해 보라). 신분 이동이 비교적 자유로운 사회에서는 옷을 제대로 입는 것이 신분 상승에 도움이 될 수 있다는 암시다. 이 표정은 기본적으로 “난 당신보다 낫다”라고 말한다. 사람들이 누군가와 교류하고 싶을 때 그 사람의 관심을 끌기 위해 짓는 활짝 웃는 표정과는 딴판이다.

이 오만한 표정은 또 유럽 상류층의 자기절제와 의연함, 냉담함을 나타낸다. 과거 근로계층 사람들에게서 찾아보기 어려웠던 세련된 특성이다. 감정의 절제는 세속적인 관심사를 뛰어넘어 좀 더 높은 경지의 지식 추구를 의미하며 현대 사회에서는 확고부동한 의지를 나타내기도 한다. 이런 표정은 이론가 어빙 고프먼이 말한 ‘운명적인 상황’(자신과 자신의 존엄성이 큰 위기에 처한 상황)에서는 한층 더 인상적이다.

 첨단 패션엔 위험 부담 따라
우리가 침착한 표정의 전투기 조종사나 냉혹한 악당[영화 ‘다이하드’(1988)에서 무표정한 악당 한스 그루버 역을 맡았던 알란 릭맨을 생각해 보라]에게 끌리는 이유다. 실제로 고프먼은 감정의 자제보다 신체의 통제에 더 관심이 많았다. 신체의 통제를 통한 차분한 움직임과 고요한 분위기는 매력적인 특성으로 여겨진다.

패션쇼 무대의 모델들은 ‘운명적인 상황’에 놓인 것처럼 보이진 않지만 사실상 유행의 첨단을 걷는 것은 위험 부담이 매우 높은 일이다.

어느 날 출근할 때 완전히 새로운 스타일의 옷을 입기로 마음먹었다고 상상해 보라. 예를 들면 황금색 점프수트(바지와 상의가 하나로 붙어 있는 여성복) 같은 파격적인 의상 말이다. 매우 불안한 생각이 들지 않겠는가? 사람들은 유행에 신경 쓴다. 유행은 어떤 옷을 입는 것이 적절한지 아닌지를 말해주는 잣대가 되기 때문이다. 내 새로운 정체성은 이 ‘새로운’ 스타일이 요즘 유행과 어떤 상관관계가 있는지에 따라 결정된다.

그 스타일이 당시의 ‘기준’ 범위에서 벗어날수록 1)고상하다 2)개성 있다 3)분별 있다 등의 평과는 거리가 멀어진다. 옷 입는 스타일은 존경을 불러일으키기도 하지만 조롱을 자아낼 수도 있다.

 개인적 성격 드러내선 안돼
패션 모델은 무대에서 입을 옷을 스스로 선택하지 않는다. 어떻게 보면 그들의 덤덤한 표정은 디자이너의 입장을 대변한다. 감정의 동요가 없고 확신이 있어 보여야 하며 몸을 차분하게 움직이고 두 손과 얼굴 근육을 잘 통제할 수 있어야 한다. 그들은 디자이너를 대신해 일종의 사기극을 펼쳐야 하기 때문이다.

그들은 개인적인 성격을 드러내서는 안 된다. 옷 이외의 요소로 주의를 분산시키는 것은 부적절하다. 사실상 옷을 통해 디자이너의 성격이 조명되기 때문이다. 그들은 결국 ‘모델’일 뿐이다. 그들은 또 사람들로부터 인정받고 싶어하는 듯 보여서도 안 된다. 디자이너가 ‘바람직하다’고 제시하는 스타일에 확신이 없음을 암시하기 때문이다.

모델이 스스로 우스꽝스럽게 느껴지는 의상을 입고 패션쇼 무대 위를 걸어야 할 때는 개인의 존엄성이 위험에 처한다. 하지만 그런 경우 심판대에 오르는 건 디자이너다. 기이한 옷을 입은 모델이 미소를 짓는다면 디자이너의 실수에 당황하거나 재미있어 하는 것으로 비칠 수 있다. 컬렉션이 실패할 경우엔 디자이너와 패션하우스의 체면뿐 아니라 엄청난 돈을 잃게 된다.

따라서 모델은 미소를 지어선 안 된다. 머리 속에선 어떤 생각이 오가든 오만하고 자신감 넘치는 표정을 유지해야 한다. 무대에서 발이 걸려 넘어지지 않기를 바라면서 말이다.

- 버네사 브라운



[ 필자 버네사 브라운은 영국 노팅햄 트렌트 대학의 디자인, 시각문화학과 부교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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