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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동성 커진 일본 금융시장] 구로다의 ‘바주카포' 불발탄 되나

[변동성 커진 일본 금융시장] 구로다의 ‘바주카포' 불발탄 되나

구로다 하루히코 일본은행 총재.
닛케이 지수가 1년 4개월 만에 1만5000엔 선 아래로 떨어지나 싶더니, 2월 15일처럼 하루에 1000엔 이상 상승하는 날도 있다. 외환시장도 엔·달러 환율이 하루에 1~2엔씩 오르락내리락 하는 경우가 빈번하다. 올해 들어 유난히 가격의 변동폭이 크다. 금융시장 전체가 난기류에 휩싸인 것 같은 전개가 이어지고 있다.

그 배경에는 중국 경제 둔화와 유가 하락 등 세계 경제의 앞날에 대한 우려가 있다. 국제통화기금(IMF)의 최근 전망에 따르면 2016년 세계 경제성장률은 ‘순항속도’라 여겨지는 4%를 밑돈다. 3.4%다. 두 자릿수 성장을 자랑하며 세계 경제를 이끌던 고성장국 중국은 과거의 모습을 서서히 잃어가고 있다. 중국의 2016년 예상 성장률은 6.3%다. 신흥국의 대표격인 인도가 7.5% 성장할 전망이고, 러시아와 브라질은 마이너스 성장이 예상된다.

원유 가격은 배럴당 30달러 부근에서 정체 중이다. 지난 2월 16일 사우디아라비아와 러시아, 베네수엘라 등 원유 생산국이 ‘감산에 합의했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뉴욕 선물시장 원유 가격이 한 때 2달러 가까이 상승했다. 그러나 곧바로 하락했다. 기다렸던 호재마저도 막연한 불안감을 해소하지 못한 것이다.

근본 원인은 따로 있다. 그중 하나는 주요국의 금융정책이 불투명한데다 미국은 긴축, 일본과 유럽은 완화 등 방향마저 제각각인 점이다. 미국 연방준비제도는 지난해 12월 약 10년 만에 금리 인상을 단행했다. 연준은 올해 4번의 금리 인상을 계획하고 있는데, 대부분의 시장 관계자는 고작해야 올해 한 번의 인상으로 끝날 거라고 예상한다. 자칫하면 금리를 다시 낮춰야 할 상황이 올지 모른다는 지적도 있다. 올해 들어 세계 각국의 주식시장이 크게 요동치고 있는 건 기축통화인 달러를 제공하는 미국의 금리 인상과 관계가 깊다. 하지만 옐런 연준 의장 입장에선 지금 금리 인하로 돌아선다면 금리 인상을 결정한 판단이 실수라는걸 인정하는 꼴이 된다.
 마이너스 금리, 현재까진 큰 효과 없어
일본과 미국, 유럽의 중앙은행은 3월 중순 주요 금융정책을 결정하는 회의를 잇따라 개최한다. 여기서 옐런 의장이 어떤 형태로든 방향을 밝힐 가능성이 크다. 일본은행의 추가 완화 발표 가능성도 없지 않다. 1월 29일 사람들의 허를 찌르는 ‘구로다 바주카포 제3탄’이 발사됐다. 바로 마이너스 금리 도입이다. 그러나 이 또한 엔화 상승과 주가 하락 흐름을 바꿀 정도는 아니었다. 마이너스 금리가 시작된 2월 16일 중의원 예산위원회에서 구로다 하루히코 일본은행 총재는 “은행의 주택대출, 그 외 대출금리도 큰 폭으로 내려가고 있다”며 “이러한 효과가 실물 경제나 물가에 곧 반영될 것”이라며 효과를 강조했다. 그러나 물가나 환율이 요동치며 시장의 변동성만 커졌다. 마이너스 금리가 영향을 미치는 경로나 부작용을 판단할 수 없어 사람들의 불안심리가 짙어진 탓이다.

메가뱅크나 지방은행에선 예금금리와 함께 주택대출금리가 떨어지기 시작했다. 마이너스 금리는 자산운용사의 MMF(일반적으로 머니마켓펀드를 말하지만 일본에선 Money Mana gement Fund의 약자)에 미치는 영향이 크다. 아무래도 마이너스 금리에서는 안전한 운용이 쉽지 않다. 상황이 변하자 신규 청약을 받지 않거나 앞당겨 상환하는 운용사가 속출하고 있다. 이것이 MRF(예수금펀드)로 불똥이 튀면 개인투자자들에게 커다란 영향을 미칠 것이다. MRF는 결제기능을 가진 투자 신탁으로 이것이 제 기능을 못하게 되면 주식이나 투자신탁 매매에 영향이 생길 우려가 있다. 지난 20년 간 일본의 슬로건은 ‘저축에서 투자로’였다. 그러나 이에 역행하는 정책을 중앙은행이 몸소 나서서 시행하고 있는 셈이다.
 20년 슬로건 ‘저축에서 투자로’에 역행
일본은행은 1월 금융정책 결정회의에서 어떤 논의를 주고 받은 것일까? 2월 8일 공표한 일본은행의 자료에 따르면 ‘이율 곡선의 기점을 내려 대규모 장기 국채 매입 확대와 실질금리를 한층 끌어내리는 효과를 발휘할 것’이라고 마이너스 금리 정책에 긍정적인 의견을 나타냈다. 물론 ‘실물경제에 미칠 효과에 비해 시장 기능이나 금융 시스템에 미칠 부작용이 크다’와 같은 회의적인 의견도 눈에 띄었다. 정책위원회는 5대 4로 마이너스 금리 정책을 가결했으나, 상당한 반대 의견이 있었음을 엿볼 수 있다. 결국 2월 16일부터 마이너스 금리가 개시됐고, 그러자 국채 금리는 제로 이하로 떨어지기 시작했다. 일본 국채 금리는 8년물까지 완전히 마이너스로 돌아서 10년 금리가 사상 최초로 -0.02%까지 내려갔다.

마이너스 금리정책의 본가인 유럽에서는 마이너스 금리폭을 한층 확대하고 있다. 스웨덴의 중앙은행 리스크뱅크는 2월 11일 마이너스 금리폭을 -0.35%에서 -0.5%로 확대했다. 3월 10일 유럽중앙은행(ECB) 이사회에서도 현재 -0.3%인 정책 금리를 한 단계 더 끌어내릴 것으로 예상된다. 하지만 스가노 야스오 다이와종합연구소 런던리서치센터 수석 이코노미스트는 “마이너스 금리를 실시한 지 이미 1년 이상 경과한 유럽에선 중앙은행의 의도대로 정책 효과가 나타나지 않고 있다”고 지적한다.

마리오 드라기 ECB 총재는 2월 15일 브뤼셀 유럽회의에서 “저성장이나 저금리 환경, 거기에 금융위기 이후 도입된 국제적 규제강화 체제에 은행의 비즈니스 모델이 견디지 못하는 것 같다”며 “은행 주식은 이러한 견해 때문에 더욱 하락하고 있다”고 말했다. 은행 규제강화가 투자자의 불안감을 더욱 심화시키고 있다는 지적이다. 실제로 드라기 총재의 우려를 뒷받침하듯 도이체방크 등 유럽의 대형 금융회사의 신용불안이 급속하게 커지고 있다. 일본은행의 마이너스 금리정책 결정 전날인 1월 28일 유럽 최대 은행인 도이체방크는 최악의 실적을 발표했다. 지난해 4분기에만 21억 유로(약 2조 7700억원)의 순손실을 기록했다. 연간 기준으로 68억 유로(약 8조9800억원)의 손실이었다. 발표 직후 유럽 주요 은행 주가와 채권가격은 급락했다.

도이체방크는 금융위기 이후 자기자본 규제강화에 대응해 코코본드(Contingent convertible bond)를 발행하고 있다. 코코본드는 은행 경영이 악화하는 특정 사유가 발생하면 주식으로 강제 전환되거나 상각된다는 조건이 붙은 일종의 회사채를 말한다. 자본으로 인정받기 때문에 유상증자 등을 통한 자본조달이 어려운 은행들은 국제결제은행(BIS) 자기자본 비율 상승 규제를 충족하면서 자본을 늘릴 수 있다. 코코본드에 투자하면 일정한 수익을 안정적으로 주겠으니 우리 은행에 투자하라는 것인데 대규모 적자를 내자 얘기가 달라졌다. 이자 지불이 불가능해지는 것 아니냐는 투자자들의 의구심이 커졌기 때문이다. 은행의 신용불안이 커지자 투자자들은 2008년 전 세계를 강타한 금융위기를 떠올리기 시작했다.

과연 위기가 재차 찾아올 전조일까? 아라타케 히데시 미쓰비시UFJ 국제투자신탁 경제조사부장은 “도이체방크 문제는 시장이 너무 신경질적으로 반응한 것”이라며 “은행의 재무상황이 이전보다 상당히 건전하기 때문에 버블이 꺼지며 연쇄적으로 붕괴하는 상황은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확실히 예금을 취급하는 은행의 체력은 금융위기 이후 착실하게 회복됐다. 주요 은행의 주주자본비율은 2015년 11.8% 정도다. 상업용 부동산이나 일부 기업대상 융자 등에서 국소적인 버블 조짐이 있으나 일부에 지나지 않는다.

하지만 그림자은행을 통한 위기 파생 시나리오는 유의해야 한다. <동양경제> 의 추계에 따르면 투자신탁이나 헤지펀드 등을 포함해 넓은 의미에서의 그림자은행 규모는 68조 달러(약 8경 2654조)에 이른다. 이는 전 세계 명목 국내총생산(GDP)의 합계인 77조 달러에 육박하는 수준이다. 세계적인 저금리, 저성장 하에서 조금이라도 수익을 내려고 안달이다. 그림자은행을 거쳐 신흥국, 에너지 등 신용능력이나 유동성을 부족한 투자상품에 자금이 몰린다. 만일 자산가격이 하락해 그림자은행이 하나둘씩 궁지에 처하면 개인투자자에게 미칠 파급효과도 엄청나다.

 ‘8경 규모’ 그림자은행 버블 가능성은 여전
이시하라 노부테루 경제재정담당상은 2월 15일 지난 4분기 실질 GDP 성장률이 -1.4%를 기록한 것에 대해 “기업 실적이나 고용, 소득환경 개선 등 펀더멘털은 양호하며 당분간 이런 상황은 이어질 것”이라고 말했다. 그의 표현대로 아직까진 일본을 비롯한 선진국의 경기 상황이 그리 나쁘지 않다. 경기를 보여주는 제조업 PMI(구매담당자 경기지수)를 보면 중국을 제외하고 일본과 미국, 유럽권 모두 경기 확대를 의미하는 50을 웃돈다. 일본의 GDP도 마이너스 성장에 빠져 현재 개인소비 기조는 약하지만, 고용 환경이 계속 개선되면서 완만한 회복기조에 있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주식시장이나 환율시장에서 큰 변화가 계속된다면 이것이 실물경제에 영향을 미치고, 기업이나 가계에 부담을 줄 수밖에 없다. 미쓰비시종합연구소에 따르면 엔화가 10엔 상승하면 주가 하락과 더불어 일본경제의 실질 GDP 성장률은 0.2%포인트 정도 떨어진다. 이 연구소의 다케다 요코치프 이코노미스트는 “중국 경제의 감속과 미국의 금리 인상 등 해외발 경제 쇼크로 시장에 혼란이 발생하고 있다”며 “연착륙을 위해서는 국제적인 협조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아베노믹스의 속도조절 가능성도 커졌다. 아베 신조 총리는 2월 15일 국회에서 “엔화 상승과 주가 하락에 대해 일희일비해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대로 간다면 2017년 4월로 예정된 소비세 인상(8%→10%)을 미뤄야 할지도 모른다.

- 일본 경제 주간지 주간동양경제 특약, 번역=김다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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