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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철 동원그룹 회장

김재철 동원그룹 회장

포브스코리아는 한국경영사학회(회장 차동옥 성균관대 교수)와 공동으로 4월호부터 ‘한국의 기업가정신을 찾아서’ 시리즈를 시작한다. 한국 대표 기업들의 창업 주역들을 연구해온 교수와 학자들이 기업의 창업주와 대표들을 직접 만나 도전과 혁신으로 기업을 일궈낸 기업가정신을 재조명해 어려움에 빠진 경제공동체의 회생에 기여하고자 하는 목적이다. 그 첫 번째는 도전정신으로 대양을 개척해 제조업·금융업·서비스업을 아우르는 글로벌 기업을 일궈낸 김재철 동원그룹 회장이다.
서울 서초구 마방로 68, 양재천이 흐르는 도로변에 세워진 동원산업빌딩 18층에 동원그룹 회장실이 있다. 한국 최고층 빌딩인 롯데월드타워가 창밖으로 바라보이는 그곳으로 김재철 회장(81)이 날마다 출근한다. 김 회장은 중견그룹인 동원그룹과 한국투자금융지주의 창업자다. 그리고 여전히 ‘현역’이다. 지난 2월 16일에는 부산 다대항에서 가진 2207톤급 참치 선망선 ‘한아라호’ 출항식에 참석해 임직원과 승조원들을 격려했다.

김재철 회장은 한국의 내로라하는 경영자와 경영학자들이 한국에서 가장 성실하고 정직한 기업 활동을 영위해온 경제인으로 꼽는 기업가다. 23세이던 1958년 한국 최초의 원양어선 지남호의 실습 항해사로 참치잡이를 시작해 1969년 동원산업을 창업한 이후 수산업·금융·식품·포장재 등 30개 계열사를 거느린 동원그룹과 한국투자금융지주를 키워왔다. 4월 16일은 동원그룹 창사 47년을 맞는다.

3월 9일 오후, 박영렬 연세대 경영학과 교수가 동원그룹 회장실을 찾았다. 박 교수는 지난 2003년 『동원그룹 김재철 회장 연구』를 펴낸 기업사 전문 연구자다. 2014~2015년 한국경영사학회 회장을 지낸 박 교수는 동원그룹 김재철 회장을 인터뷰하는 포브스코리아의 이번 기획과 관련해 김재철 회장의 기업가정신 대담에 흔쾌히 응했다.

김재철 회장과 김 회장의 기업가정신을 연구한 박영렬 연세대 교수가 동원그룹 회장실에서 김 회장의 경영철학에 대해 대담을 나누고 있다.


박영렬: 회장님께서는 일찍이 바다를 향한 꿈을 펼치셨습니다. 어떻게 바다와 인연을 맺게 되셨는지요?




김재철:
흔히 ‘우리는 바다로 나가야 한다. 바다를 활용해야 한다’고 말하는데, 그 정도론 안 돼요. 우리는 바다를 이용하는 것을 넘어서 숙명적으로 바다와 더불어 살아야 합니다. 우리나라는 지리적 조건이 유라시아 대륙의 부두 형상이에요. (김 회장이 회장실 벽면에 거꾸로 그려져 있는 유라시아 대륙 지도를 가리켰다. 김 회장은 『지도를 거꾸로 보면 한국인의 미래가 보인다』(2000년 발간)를 발간할 정도로 해양 개척에 대한 소신을 일찍부터 밝혀왔다. 세계 지도를 거꾸로 놓고 보면 한반도는 대륙 끝에 매달린 작은 반도가 아니라 태평양으로 향하는 천혜의 부두이자 동북아의 전략적 관문에 해당하는 요충지라는 게 그의 지론이다.)

보세요! 일본은 대양의 파도를 막아주는 방파제 역할이고, 중국은 대륙을 폭풍을 막아주는 언덕이잖아요. 우리는 유라시아의 부두이고, 동서양의 항구 역할을 하는 숙명을 안고 있어요. 그러니 세계의 물자, 돈, 사람, 정보가 모여드는 매력 있는 나라, 동북아시아 물류중심으로 발전시켜야 합니다.
 지도를 거꾸로 보면 우리의 운명이 보인다
동원 31호가 인도양 어장을 향해 떠나기 전 출어식에서 포즈를 취한 김 회장. 1969년 그의 나이 35세 때다.
김 회장의 목소리가 물비늘처럼 반짝거렸다. 바다는 기업인 김재철의 스승이다. 바람이 미당(서정주) 인생의 8할을 키웠다면 바다는 김재철 인생의 9할을 키웠다고 해도 과장이 아니다. 소설가 김훈 식 어법을 빌리자면 김 회장은 나이 들었지만 젊다. 늙음은 낡음이 아니다. 그룹 내에서 그보다 진취적이고 젊은 생각을 가진 이를 찾기 쉽지 않을 정도로 창의적이다. 세계지도를 거꾸로 놓고 보면서 야망과 비전을 키운다는 것은 역발상의 사고다. 창의적이지 않으면 도달하기 힘든 경지다. 이어령 전문화부장관은 이런 김 회장을 두고 “상상력과 창조력으로 미래의 비전을 그물질하는 생명현장인 바다에서 시를 썼고 그 배 위에서 어떤 연기자도 흉내 내지 못하는 드라마의 주연이 되었다”고 했다.



회장님의 경영철학이 다 바다에서 나웠다는 얘기를 들었습니다.


바다에서 배운 것들을 제가 경영에 활용했지요. 제게 있어 경영이란 항해의 연장이었어요. 대양을 항해하는 선장이 가장 정확히 알아야 할 것이 뭔지 아세요? ‘지금 내 배가 어디에 있는가?’배의 위치를 아는 것입니다. 그래야만 목적지를 향한 정확한 코스를 결정할 수 있어요. 기업이라는 큰 배를 이끄는 경영자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현재 위치에 대한 정확한 판단’입니다. 그리고 바다에서는 살아남을 수 있는 실력이 있어야 살 수 있어요. 사업도 마찬가지입니다. 자신과 가족과 기업을 구할 실력이 없다면 한 순간에 사라질 수 있다는 것을 알아야합니다.

전남 강진 태생으로 부산수산대학교 어로학과를 졸업한 김 회장은 남태평양과 인도양에서 직접 선장과 선단장으로 활동하며 ‘캡틴 김(Captain Kim)’으로 이름을 날렸다. 김 회장에게 바다는 자신의 사업장을 넘어 당시 약소국이던 한국에게 기회의 장이었고, 수출을 통해 조국이 가난에서 벗어날 것이라는 신념으로 보냈던 삶의 터전이었다. 참치 선단을 이끌며 종횡무진 바다를 누비던 김재철 선장은 35세가 되던 1969년 육지에 정착, 자본금 1000만원으로 동원산업을 창업했다. 젊은 시절 바다에서 배운 경험을 바탕으로 본격적인 기업 경영에 나선 것이다.



동원그룹은 1차산업인 수산업으로 시작해 2차산업인 제조업, 3차 금융서비스산업까지 성공적으로 사업을 확장해 왔습니다. 기업사 연구자로서 저는 김 회장님이 이와 같은 지속성장 기회를 어떻게 포착해 사업 확장과 연결시킬 수 있었는지 매우 궁금했습니다.


사업을 하면서 1차, 2차, 3차 산업 하나씩만이라도 ‘제대로 해봐야지’ 하는 꿈이 있었어요. 1, 2차 산업을 하면서는 크게 어려운 것은 없었는데, 3차 산업은 시간이 좀 걸렸어요. 3차 산업을 해야겠다고 생각한 직접적인 계기는 내가 하버드대학에 갔다가 이런 저런 세계 경영의 흐름을 보고나서 금융을 해야 된다는 생각을 하게 돼서 시작했어요. ‘1, 2, 3차를 합쳐서 6차 산업을 해보자’ 그렇게 생각을 했지요.(웃음) 이제 생각해보면 그 꿈을 어느 정도는 이뤘어요. 지금도 참치잡이는 동원산업이 세계에서 제일 커요. 2차 산업도 통조림과 식품 가공업에서는 으뜸이지요. 3차 산업인 금융은 아직은 좀 부족한 게 사실이고요. 아직 내 꿈을 완성하지는 못한 상황이지요. (1969년에 설립된 동원그룹은 2002년 생활산업군 기업 집단인 동원그룹과 금융업군 기업집단인 한국투자금융 그룹으로 분리되었다).



제가 동원그룹을 연구하면서 놀란 것이, 동원은 시작부터 참 글로벌했습니다. 치열한 글로벌 경쟁을 해왔어요.


창업하고 나서 10년 이상을 국내에서는 안 팔았으니까 동원은 처음부터 글로벌기업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죠. 제가 (원양어선을 많이 타고 다녀서) 국내는 사실 낯설었어요. 처음부터 국내보다는 국제화를 추구했고, 그래서 외국 바다로 나갔지요. 고기를 잡기도 많이 잡았지만 우리 바다에서는 하나도 안 잡아요.(웃음) 동원그룹은 출발부터 글로벌이 전체적인 바탕이 됐지요. 우리나라는 기본적으로 자원이 부족해요. 물, 식량, 에너지가 다 부족하잖아요. 그러니 과거 역사 때처럼 문 닫고 있으면 안됩니다. 해외로 나가야 합니다.



동원의 성장사를 보면, 2008년 스타키스트 인수가 동원그룹의 분수령이었다고 봐요. 제가 생각해봐도 M&A의 놀랄만한 성공사례인데요?


스타키스트(StarKist) 인수하고 나서 1년 동안은 상당히 힘들었어요. 다행히 2~3년안에 정상화가 됐지요. M&A를 하려면 국제적으로 해야 해요. 세계 시장에서 M&A를 잘해야지만 우리 기업이 성장할 수 있다고 봅니다.

동원그룹의 47년은 창업기(1969~1979), 성장기(1980~1989), 성숙기(1990~1999), 글로벌 도약기(2000~현재)로 나뉜다. 이 중 글로벌 도약기인 2000년대에 지주사인 동원엔터프라이즈 설립(2001년), 미국 최대 참치캔 회사인 스타키스트 인수(2008년), 아프리카 최대 수산캔 업체인 세네갈의 SNCDS 인수(2011년), 국내 최대 포장업체 테크팩솔루션 인수(2014년) 등을 거치며 동원그룹은 글로벌기업으로 도약한다.
 원양어선 선장이자 수출 역군의 기업인
2월 16일, 부산 다대항에서 가진 2207톤급 참치 선망선 ‘한아라호’ 출항식에 참석해 임직원과 승조원들을 격려한 김재철 회장(사진가운데).


47년간 동원을 경영하면서 경영자로서 가장 힘든 점은 무엇이었나요?


앞서 얘기했지만 기업이 성장하기 위해서는 앞으로 M&A가 중요해요. 우리나라는 자원과 실력이 한정되어 있으니까요. 그런데 인재를 구하려고 하면 일 잘하는 사람이 그렇게 많지 않아요. 영어 잘하고 유학한 사람은 많은데 막상 제조업에 대해 알고 경영을 해본 사람은 거의 없어요. 그래서 시행착오를 많이 겪게 돼요.



회장님의 경영철학과 기업가정신을 요약하면, 정도경영과 도전정신이라고 할 수 있는데요.


정도(正道)경영은 어렵지 않습니다. 제가 기업하면서 직원들에게 늘 정직하라고 강조했어요. 지금도 그렇고요. 저한테는 대내외적으로 약속을 지킨다는 ‘신용’이 정도경영이었습니다. 바다에서 태풍을 만났을 때 (그는 원양어선을 타고 바다를 누볐을 때의 경험을 예를 들어 설명했다) 파도를 피해서 쉽게 가려고 하려다가는 결국에는 태풍의 중심에 끌려들어가고 말아요. 파도가 치면 파도를 정면에 받으면서 돌파해 가야하는 것이지 뒷바람으로 가다 보면 오히려 태풍의 중심에 빨려 들어가 위험에 빠지게 됩니다. 동원의 성장사를 연구해보셔서 알겠지만 우리는 늘 정면도전을 피하지 않았어요. IMF위기, 금융위기 때에도 정면 도전을 했어요. 스타키스트 인수도 금융위기 때 한 것이거든요. 정도경영으로 해야 한다는 것은 사람들이 다 알아요. 힘이 있다고 정도경영을 잘하는 것도, 힘이 없다고 못하는 것도 아닙니다. 약속을 지켜야 하기 때문에 어려운 거예요. 정도경영은 신용을 바탕으로 합니다. 신용은 눈에 안 보이는 돈이죠.

신용을 바탕으로 한 김 회장의 정도경영은 유명하다. 창업 초기, 국내외 원양 업계에 성실하고 능력 있는 선장으로 인정을 받고 있던 그는 일본의 여러 상사로부터 독자적인 회사를 운영해보라는 권유를 받고 1969년 4월 동원산업을 창업했다. 창업 3년만인 1972년에는 11척의 선단을 보유한 원양 업계의 스타로 떠오른다. 신용 하나로 성공한 대표적 사례다. 당시 김재철 사장은 정부와 금융 기관의 지불보증 없이 미쓰비시상사와 쌓아온 신용 하나로, 4,500톤급 대형트롤 공모선 건조에 대한 6년 분할 연불계약을 체결하는데 성공했다. 그의 이같은 신용, 정도경영의 뿌리는 어디에서 왔을까? 김 회장의 말이다. “바다라는 것은 말이죠, 변명을 들어주지 않아요. 오직 실력이죠. 살려면 파도를 이길 수 있는 방법을 갖추어야지 변명이 통하지 않아요. 경영도 그래요. 약속을 지키려면 결국은 실력을 갖추어야 해요.”
 창업은, 필요성을 느끼고 절박하게 해야 성공
바다 경영과 해양 개척의 선구자인 김 회장은 해상왕 장보고 기념사업회장 등으로 10년에 걸쳐 장보고 연구와 알리기에 앞장섰다.


요즘 창업을 준비하는 젊은이들이 많습니다. 어떤 자세가 필요할까요?


결국은 원칙과 실력입니다. 우리는 벤처나 창업을 마치 정부가 지원해줘야 하는 것으로 보는데, 그것은 잘못된 생각입니다. 빌 게이츠나 마크 주커버그를 정부에서 지원해줘서 성공했나요? 창업은, 창업하는 젊은이들이 정말 필요성을 느끼고 절박하게 해야 성공합니다. 제가 바다에서 배운 게 있어요. 큰바람 앞뒤에는 큰 고기떼가 있어요. 위험을 피하기 위해 잔잔한 바다만 찾아다니는 소극적인 방식으로는 큰 고기떼를 만나기 힘들죠. 그것이 자연의 법칙입니다. 도전하고 이겨내야죠. 그리고 창업을 하더라도 체계적으로 하고, 역사의 흐름을 바꿀만한 것을 해야지, 무조건 많이 한다고 좋은 게 아닙니다. 청년실업 문제도 마찬가지입니다. 청년들도 허황된 도전보다 자기 눈높이에 맞추려는 마음가짐이 있어야 하고, 정부도 청년실업을 돕겠다면서 지킬 수 없는 허황된 약속을 해서는 안 됩니다.



한국경영사학회는 김 회장님의 경영철학을 연구해 ‘무대(舞臺)경영’으로 개념화한 적이 있습니다. 경영자, 종업원, 고객이 하나되는 삼위일체의 경영철학이라고 정리할 수 있는데요.


무대경영이란 게 쉽게 말해 자신이 잘 연기하려면 각자의 역할에 충실하자는 겁니다. 각자 맡은 배역에 대해 연습도 많이 하고, 준비도 열심히 해야죠. 기업도 마찬가지입니다. 연출은 경영자, 연기는 종업원이죠. 하루를 연습하지 않으면 자기가 알고, 이틀을 연습하지 않으면 동료가 알고, 사흘을 연습하지 않으면 청중이 알지요. 그러니 청중(고객)을 최우선으로 해야 하지 않겠어요! 그래서 우리도 직원들에게 ‘연습’을 많이 시키고 있어요. 직원들을 선발해서 1년 간 해외 연수와 MBA 교육을 보내고 독서교육도 많이 하고 있고요. 사업도 사람이 하는 것이니까 사람을 양성하는 데 투자를 많이 해야 합니다. (한국경영사학회에 따르면 그의 인재철학은 “한 사람의 천재보다 조기의 목표 달성을 위해 서로 협조하고 조화를 이루어 성과 창출에 기여할 수 있는 범재가 필요하다”는 범재(凡才)론이다. 동원산업은 성실과 창의를 두루 갖춘 사람을 범재로 규정하고 있다)



회장님께서 젊어서 해외로 배타고 나가서 외국 사람들과 경쟁할 때 뒤떨어진다는 걸 느껴서 책을 많이 읽었다고 알고 있습니다만.


제가 책 좋아한다고 하니까 지금도 이렇게 나한테 책이 많이 배달돼 와요.(웃음) 지금도 임직원들에게 책을 많이 읽게 합니다. 책을 읽지 않고 인터넷으로, 모바일로 영상을 토픽 위주로 보는 것은 결국 패스트푸드입니다. 패스트푸드만 먹고 사람의 건강이 어디 온전할 수 있겠어요? 요즘 창조적 인간이 되라고 많이 말하는데, 창조적이기 위해서는 정말 노력해야 합니다. 나는 임직원들에게 ‘윗 사람은 직원들보다 더 알아야 하고, 더 노력해야 하고, 더 희생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윗사람(리더)은 이 세 가지를 다 실천해야 돼요. 자기 팀원들에게 같은 말을 반복하는 것보다 색다른 표현이나 방법을 알려줘야 창조적인 사람이지, 똑같은 말을 하면 젊은 직원들이 말을 잘 안 듣습니다(웃음).

제가 앞서 말한 ‘우리가 6차산업을 해야겠다’는 것도 창의력이 요구되는 창조산업을 말하는 것인데, 그게 그냥 되는 게 아니죠, 남들보다 더 많이 읽고 보고 배워야 할 수 있지요.김 회장이 인생을 통해 늘 구해온 핵심 가치는 향상심(向上心)이다. 위를 향하는 마음, 즉 지금보다 더 나아지기 위해 노력하는 자세가 자신과 동원그룹의 성장동력이다. 김 회장이 수산학(부산수산대), 경영학(고려대·한국외대), 문학(조선대) 3가지 분야에서 명예박사학위를 받은 것도 이같은 향상심과 끝없는 노력의 산물이다. 심도 깊은 두 사람의 대화는 이제 동원그룹에서 한국경제에 대한 이야기로 옮아갔다.



저성장시대를 맞아 세계경제가 침체돼있습니다. 중견·중소기업들이 경쟁력을 가져야 하는데 우리는 대기업 중심이고, 정부지원도 소극적입니다.


다들 그렇게 얘기하죠. 중소기업들 역시 정부가 도와줘야 한다고 주장하고요. 그런데 이런 점도 생각해봅시다. 전세계를 둘러봐도 우리나라처럼 정부기구와 단체가 많은 나라도 찾기 어려워요. 기업이 성장하려면 자생력이 중요하고, 형식적인 지원보다 실질적인 도움이 더 중요합니다. 정부나 경제단체가 기업에 대해 도와줘야할 것이 있고, 해줄 수 없는 것이 있어요. 대기업이 지나치게 시장을 잠식해오면 정부가 막아줘야 되는 게 맞지만 중소기업 스스로 성장하겠다는 확고한 의식으로 자생력을 키우는 것이 더 중요합니다.
 공동체 후원하고 인재 양성에 여생 바치고 싶어
공병호 박사가 집필한 『김재철 평전』
김 회장은 한국무역협회 회장시절 회사업무를 제쳐 두고 한국무역의 발전을 위해 혼신의 노력을 기울였던 기업인으로 유명하다. 그랬던 그가 이렇게 말하는 것은 정부지원보다 자생력을 갖추는 것이 지속가능한 경영의 정도라는 것을 사업하면서 터득했기 때문이기도 하다. 동원그룹은 현재도 정부 지원에 기대지 않고 스스로 투자하는 새바람을 일으키고 있다. 최근 국내 원양어업 산업의 현대화와 컨버전스 바람을 불러 일으키는 주인공이 바로 김 회장이다. 김 회장은 최근 2년 사이에 원양어선 건조에만 1000억원을 투입하고 있다. 40척의 최신 선단을 갖추고 지금도 태평양, 인도양, 대서양, 남빙양 등 세계를 두루 돌며 가다랑어, 황다랑어, 눈다랑어, 남방참다랑어 등을 어획하고 있다.



2019년이면 동원이 50주년이 됩니다. 반백년이 다가오는데, 맨 처음 창업할 때 생각했던 것을 다 이루셨는지요.


우리가 생명력(자원)이 부족한 나라에서 사니까 사회에 필요한 역할을 해야겠다고 생각했고, 그래서 처음에 성실한 기업을 하겠다고 수없이 말하고 다짐했지요. 말한 것을 실천하기 위해 열심히 했는데, 47년 전 그때 생각했던 것보다는 더 스케일이 커졌어요(.웃음) 그래도 늘 생각하는 것이, 우리 기업도 더 성장해야겠지만 국가와 사회에 어떻게 더 후원할 수 있을까 그것입니다. 당장의 기업 성장에 몰두하기보다는 공동체에 공헌할 수 있는 방도를 더 생각하고 있습니다. (김 회장은 해상왕 장보고 기념사업회장 등으로 10년에 걸쳐 장보고 연구와 알리기에 앞장섰고, 무역협회장과 여수엑스포 유치위원장 등을 역임하며 해양보국을 심는데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팔순이 넘으셨는데, 어떤 계획을 갖고 계시는지요?


향후 계획이라면 건강하게 사는 것이죠.(김 회장의 건강법은 정기적으로 산행을 하고, 골프를 치고, 정신적 건강을 위하여 독서를 하는 것이다). 또 하나, 매슬로우가 말한 인간 욕구의 5단계가 있잖아요. 마지막이 자아실현인데, 그 이상이 있다고 해요. 무엇이냐 하면, 6단계가 공동체에 대한 후원입니다. 제 사업도 그런 방향으로 가고 싶어요. 한마디로 인재양성이죠.

대담을 마무리하며 김 회장이 자신의 평전에 직접 서명해 박 교수에게 증정했다. 공병호 박사가 1년여간의 밀착 취재와 방대한 자료 분석, 심층 연구를 토대로 김 회장의 일대기와 기업가 정신, 생활 원칙 등을 분석해 집필한 『김재철 평전: 파도를 헤쳐온 삶과 사업 이야기』(21세기북스)는 기업인들과 젊은이들에게 좋은 교재로 사용되고 있다고 한다. 추천사를 쓴 이어령 전 문화부 장관은 “한 개인의 평전이 아니라 처음으로 바다를 발견하고 그 넓은 세계로 뛰어든 한국 현대 산업사에 바치는 오마주(경의)”라고 찬사를 보냈다.

- 대담 박영렬 연세대 교수·글 나권일 기자·사진 김현동 기자
 [박스기사] 김재철 회장의 기업가정신
김 회장은 강한 도전정신의 소유자다. 1975년 6월, 북태평양 어장에 출어한 동산호에서 김재철 회장. / 중앙포토


열성과 도전정신으로 국내 수산업의 활로를 개척해 동원그룹을 21세기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힘차게 열어가는 생활산업 그룹으로 도약시킨 김재철 회장의 기업가정신은 무엇일까? 박영렬 교수 등 한국경영사학회 연구진들은 지난 47년간 동원그룹을 이끈 김재철 회장이 경영 과정에서 보여준 도전정신을 다음과 같이 요약했다.




정도경영 정신


김재철 회장의 정도정신이란 일을 함에 있어서 항상 기본에 충실하고, 정당한 방법을 택하여, 공정하게 경쟁하는 정직한 자세를 의미한다. 정도의 실천을 위해서는 소신과 용기를 가지고 철저히 실천하는 성실한 자세가 뒷받침 되어야 한다. 동원은 정경유착이나 특혜로서 기업을 확장한 적이 한 번도 없다. 91년 3월, 김 회장은 자신이 보유하고 있던 주식을 아들에게 넘겨주면서 62억 원의 증여세를 국세청에 납부한 사실이 뒤늦게 언론에 보도됐다. 당시 수서사건, 뇌물외유, 입시부정 등으로 세상이 떠들썩할 때였다. 기업인이 결코 적지 않는 돈을 기꺼이 법에 따라 정직하게 납세했다는 사실은 당시 신선한 충격과 함께 감동을 주었다.



성실과 신용주의 정신


동원산업의 창업이념은 ‘성실한 기업 활동으로 사회정의의 실현’이다. 김 회장은 믿음과 약속을 바르게 지켰으며, 신용을 자산과 철칙으로 여기면서 사업을 성공으로 이끌었다. 김 회장은 직원들에게도 늘 “능력에 다소 차이가 있더라도 성실한 자세로 열성적으로 일하면 성공할 수 있다.”고 말했다.



창의와 혁신 정신


창의란 새로운 가치를 창출하기 위하여 항상 변화와 혁신을 추구하는 정신으로 무사 안일주의를 과감하게 타파하고 새로운 것에 과감하게 도전하여 더 나은 미래를 창출하는 것이다. 동원 그룹 사무실에는 ‘思務室’ 액자를 걸어두고 창의와 혁신을 실용화하고 있다. 사무실은 창의적인 생각과 발상의 전환을 통해서 부가가치를 만드는 곳이 되어야 한다는 의미다. 특히 김 회장이 노력해 이뤄진 해양수산부의 신설, 신바람 운동의 전개, 3S운동의 전개 등 경영혁신 운동은 창의와 혁신정신의 대표적 사례다.



도전과 개척 정신


1970년대에 1, 2차의 석유파동을 겪으면서도 위기를 겁내지 않고 과감한 투자를 통한 정면 돌파로 ‘위기를 기회’로 발전시킨 힘은 바로 험한 대양의 파도와 싸우던 시절부터 몸에 익힌 도전과 개척정신이었다. 국내 최초의 탑재모선식 참치연승 어업개발 둘째, 대형공모선 동산호 도입과 북양진출, 국내 최초의 헬리콥터탑재식 참치선망 어업개발, 해외 합작회사의 설립, 국내 최초의 참치캔 개발 등 그의 동원그룹 47년의 생애는 언제나 남보다 앞서 새로운 것에 도전하고 개척하는 정신의 발현이었다.



무대경영주의 정신


무대경영주의 정신은 일명 예술주의 경영 정신이다. 하나의 제품을 생산하기 위해서 그 제품은 예술품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 생산제품에는 혼이 깃든 예술품이 되어야 고객이 감동하는 명품이 생산된다는 것이다. 관객인 고객을 감동시키는 생산품을 예술품이 되도록 만들도록 해야 한다는 기업정신의 발로이다.



사업보국 정신


김재철 회장이 47년간 매진해온 기업가정신이다. 성실한 기업 활동을 통해 이익창출과 납세의무를 준수하며, 수출제일주의 정신으로 수출 강국에 기여하는 일, 그리고 동원육영재단을 통해 교육지원사업을 확대하고, 복리후생의 증진과 복지시설의 기증 등 사회공헌을 실천하는 사례는 그의 사업보국주의 발현이다. 그는 평소 “인간사회의 최대의 미덕은 사회 봉사이며, 성실납세이고 일자리 창출을 위한 고용증대”라고 말해왔다. 매년 흑자경영을 유지해오다 1996~1997년 2년간 적자를 기록하자 일체의 외부활동을 중단하고 골프회원권과 개인차량을 매각하고 가족들에게는 대중교통을 이용하도록 권유했던 그의 일화는 유명하다.
 [박스기사] “인생에서 문사철 600권은 읽어야” - 동원그룹의 독특한 독서경영
동원그룹 임직원들의 신문읽기 교육 현장. / 동원그룹 홍보실 제공
독서를 중시하는 김재철 회장은 임직원들에게 “인생에서 문사철 600권(문학책 300권, 역사책 200권, 철학책 100권)을 읽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이를 위해 동원그룹은 매년 상반기, 하반기에 독서 교육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추천도서 1권을 포함해 주어진 독서포인트 내에서 원하는 책을 읽고 이에 대한 감상문을 제출한다.

또한 임직원들에게 종이신문 읽기를 강조해 정보 편식을 막고 글을 읽는 습관을 키우도록 하고 있다. 그 결과 지난해 사내 임직원을 대상으로 진행한 설문조사에서 전체 응답자의 42.4%인 877명이 종이 신문을 읽고 있다고 답했다. 직급별로는 임원 94%, 팀장급(차·부장) 76%, 팀원급 33% 순이다. 동원그룹이 이처럼 높은 신문 구독률을 기록할 수 있었던 배경에는 ‘동원 DNA’라는 가치를 담은 독특한 사내 프로그램 영향이 크다. DNA라는 단어는 그룹의 비전과 핵심 가치를 공유하는 D(Dongwon Way)와 종이 신문의 장점과 중요성을 상징하는 N(Newspapers), 그리고 모든 임직원의 재무회계 지식 함양을 강조하는 A(Accounting)로 이루어져 있다.



종합지와 경제지 읽도록 임직원에게 권유김재철 회장은 평소 임직원들을 대상으로 한 강연에서 “포털사이트에 자주 노출되는 기사만을 접하기 쉬운 인터넷 신문보다는 종이 신문을 통해 균형 잡힌 정보를 접하는 것이 좋다”며 종이 신문 구독을 권장한다. 또한 “과장급 이상의 임직원들은 종합지와 경제지를 각각 1부씩 읽는 습관을 들여야 한다”며 “이를 통해 보다 깊이 있는 정보와 지식을 습득해 업무에 활용할 줄 알아야 한다”고 강조한다.

동원그룹 사내 직원들을 위한 교육 프로그램도 오랜 역사를 자랑한다. 특히 지난 1974년부터 현재까지 약 2,000회 가깝게 이어져오고 있는 ‘동원 목요 세미나’가 대표적인 교육 프로그램이다.
 [박스기사] 미래 인재 육성에 앞장서는 동원그룹 - 김재철 회장의 기업가정신과 함께 47년을 지속해온 동원그룹의 힘이 바로 인재 양성이다. 동원그룹은 어떻게 인재양성에 힘쓰고 있을까?
2012년 페루 마추픽추 탐험에 나선 동원글로벌익스플로러 탐험대. / 동원그룹 홍보실 제공
동원그룹의 비전은 ‘새로운 가치를 창조하는 사회필요기업’이다. 동원그룹 홍보실 서정동 상무는 이에 대해 “그룹의 지속적인 성장동력을 ‘새로운 가치를 창조’하는 것으로 규정하고 이를 바탕으로 ‘사회정의의 실현’을 구체적으로 실천하는 기업이 되겠다는 의지를 담고 있다”고 설명했다. 구체적으로는 지속적인 고용 창출과 납세의무를 성실하게 수행하고, 건전한 기업이윤을 창출하여 사회에 공헌하겠다는 다짐이다.

김재철 회장은 사회 공헌의 방법으로 특히 나라의 근간인 인재를 양성하는 데 심혈을 기울여왔다. 인재양성은 그가 이사장을 맡고 있는 동원육영재단이 수행하는데, 평소 창의적인 그의 태도처럼 프로그램이 실질적이면서 재미가 있다. 그 중 눈에 띄는 프로젝트 두 개만 소개한다. 우선 대학생 꿈지원 프로젝트 ‘동원글로벌익스플로러’ (Global Explorer)가 있다. 김재철 회장이 누차 강조해온 캐치프레이즈인 ‘지도를 거꾸로 보아라! 세계로 나아가라!’라는 플래카드를 내걸고 2012년부터 국내 소재 대학교 재학생을 대상으로 진행되고 있다. 홈페이지와 모바일을 통한 오픈 심사를 거쳐 50여명을 선발, 매년 7월 한달 중 2주 동안 미리 제출한 탐험계획서의 일정과 내용에 맞춰 배낭여행을 하는 프로그램이다. 동원육영재단은 이들 50명의 항공비, 체류비 등 소정의 탐험활동비를 지원한다. 탐험을 마친 후에는 제출한 보고서를 심사해 장보고팀(1위) 300만원 등 총 700여 만원의 장학금을 지급한다. 동원육영재단 최순옥 차장은 “젊은이들의 꿈을 펼칠 무대가 한국을 넘어설 수 있도록 작은 성공을 경험하도록 지원하는 것이 프로그램의 취지”라고 설명했다.



글로벌익스플로러, 책꾸러기 프로그램동원 책꾸러기 캠페인은 “어려서부터 아이들에게 책을 읽는 습관을 만들어줘야 우리도 선진국이 될 수 있다”고 강조해온 김재철 회장의 신념에서 시작되었다. 실제 김 회장 자신이 한 달에 10~20권의 책을 읽는 독서광이다. 각종 편지글, 기행문 등이 초 중 고교 국어 교과서에 실린 바 있을 정도로 글 솜씨도 좋다. 동원육영재단은 독서교육을 위해 2007년부터 만 6세 이하 어린이들에게 책을 무료로 나눠주고 엄마와 함께 책을 읽도록 권유하고 있다. 동원책꾸러기 사업에는 연간 약 10억원 씩 투자되는데, 지금까지 100만권이 넘는 그림책을 어린이들에게 나누어 주었다고 한다. 그림책을 받아서 아이에게 읽힌 부모가 그 활용법과 효과를 인터넷 게시판에 올리면 우수가정을 뽑아 그림책 100권과 책장을 선물한다.

동원육영재단은 1997년 설립 이후 현재까지 6000명이 넘는 초중고등학교 학생들에게 장학금을 지급했다. 1980년 서울대 사회과학연구소 연구비 지원을 시초로 고려대, 연세대, 전남대, 부경대, 조선대, 한국외대, 국립수산연구원, 국제사법연구원, 광주과학기술원 등 대학 및 연구기관도 후원해오고 있다. 이 밖에도 1996년 서울대 동원생활관 건축금 기부, 2005년 부경대 동원학술연구재단, 전남대 동원장학재단 설립, 2007년 한국외대 동원그룹 리더십장학재단 설립, 고려대 글로벌 리더십 센터건축금 기부 등 교육발전을 위한 지원에도 정성을 쏟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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