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int

우승 트로피는 아버지에게

우승 트로피는 아버지에게

조코비치가 2015 ATP 월드 투어 결승전이 끝난 뒤 우승컵을 들고 환하게 웃고 있다.
남자 프로 테니스 세계 랭킹 1위인 세르비아의 노바크 조코비치(28)가 최근 눈병으로 경기에서 패했다. 그의 라이벌인 앤디 머리(영국)나 로저 페더러(스위스)에게는 희망을 주는 소식일지 모른다. 그랜드 슬램 토너먼트에서 그들 중 누구라도 노바크를 누른 게 2년이 넘었으니 말이다(2013년 윔블던 결승전에서 머리가 우승했다).

하지만 노바크의 아버지 스르잔은 걱정할 이유가 없다고 생각한다. 그는 세르비아의 수도 베오그라드에서 자신이 운영하는 레스토랑에 앉아서 패배의 원인을 아들의 복식 경기 파트너에게 돌렸다. 그는 “지몬지크의 컨티션이 좋지 않았다”고 말했다. 데이비스컵 세르비아 대 카자흐스탄 복식 경기에서 노바크의 파트너였던 네나드 지몬지크를 두고 한 말이다.

스르잔은 자신의 세 아들 중 장남인 노바크가 좀처럼 패배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잘 안다. 노바크는 올해 초 호주 오픈 대회에서 우승해 지난 5번의 그랜드 슬램 대회 중 4번째 우승을 차지했다. 그가 아직 우승하지 못한 그랜드 슬램 대회는 오는 5월 열리는 프렌치 오픈 대회뿐이다(노바크의 그랜드 슬램 타이틀은 모두 11개로 이 부문의 기록 보유자인 페더러보다 6개가 적다). 다시 말해 스르잔의 생각으로는 노바크가 실수나 (눈)병으로 경기에 진 것이 아니기 때문에 머리와 페더러가 그를 이길 가능성은 희박하다.

노바크가 물리친 라이벌들의 면면을 보면 그가 남자 테니스계의 경쟁이 매우 치열한 요즘 세계 랭킹 1위를 차지했다는 사실이 새삼 놀랍다. 스페인의 라파엘 나달은 최고 수준의 선수지만(그랜드 슬램 대회에서 14번 우승했고 현재 세계 랭킹 5위다) 부상으로 최근 성적이 부진하다. 페더러는 사상 최고의 선수로 꼽히지만 2012년 이후 그랜드 슬램 대회에서 한번도 우승하지 못해 현재 세계 랭킹 3위다. 영국의 머리는 세계 랭킹 2위지만 1위인 노바크와의 차이가 매우 크다. 두 사람이 맞붙은 31번의 경기 중 노바크가 22번 승리했다.

노바크의 성공 비결은 타고난 재능이다. 하지만 그가 정상에 오르기까지 가족의 헌신적인 뒷받침이 큰 역할을 했다. 그 중심에 스르잔이 있다. 그는 세 아들 중 노바크를 드러내놓고 편애한다. 스르잔은 노바크에게 특별한 재능이 있다는 사실을 발견한 이후로 모든 일에서 그를 최우선으로 생각했다고 말했다. “노바크만큼 중요한 사람은 없었다. 가족과 코치를 포함해 나머지 사람들은 중요하지 않았다. 노바크를 지금처럼 훌륭한 선수로 만들기 위해 필요한 일은 다 했다. 사소한 것이라도 계획대로 되지 않는다 싶을 땐 새 코치를 찾아가 다른 방법을 모색했다.”

자녀를 강압적으로 몰아붙이는 극성 부모는 오랫동안 현대 테니스계에 어두운 그림자를 드리웠다. 하지만 스르잔은 아들에게 위대한 운동선수가 될 것을 강요한 적이 없다고 주장한다. 다만 아들의 뛰어난 재능을 키워줄 의무가 있다고 느꼈을 뿐이라고 했다. “부모는 자식의 진로와 꿈에 대해 비현실적인 환상을 품는다. 재능이 있으면 아이가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밀어붙인다. 자녀가 성장해 세상 이치를 알게 되면 혼란스러워지고 가족 전체가 붕괴된다. 난 테니스 선수가 아니기 때문에 노바크의 재능을 판단한 적이 없다. 다른 사람들의 조언을 경청했다.”젊은 시절에 프로 스키 선수였던 스르잔은 스키 강사로 일했다. 그 후엔 세르비아 산악지대에서 레스토랑과 장비 회사를 운영했다. 1987년 5월 스르잔의 부인 디야나가 노바크를 낳았다. 부부는 아들이 어렸을 때 미니 라켓과 말랑말랑한 공을 장난감으로 줬다. “그것들은 노바크가 일생 동안 가장 사랑한 장난감이 됐다”고 스르잔은 말했다.

노바크의 아버지 스르잔과 어머니 디야나. 노바크가 정상에 오르기까지 가족의 헌신적인 뒷받침이 있었다.
“어린 시절 우리는 카페트 중간에 장애물을 놓은 뒤 탁구채를 들고 무릎으로 기어 다니며 게임을 했다”고 노바크의 막내 동생 조르제(20)가 말했다. 역시 테니스 선수인 조르제는 부상으로 활동을 중단하고 경영학 공부를 한다. 노바크 첫째 동생 마르코(24)는 이렇게 회상했다. “우리 3형제는 집안 곳곳의 물건들을 부숴놓기 일쑤여서 어머니에게 꾸중을 들었지만 아버지는 ‘애들이 좋아하는 일이니 막지 말라’고 했다.” 마르코도 프로 테니스 선수 생활을 했지만 지금은 코치가 돼 아이들을 가르친다.

노바크는 네 살 때 베오그라드에서 자동차로 1시간 거리에 있는 노비사드에서 열린 테니스 캠프에 참가했다. “그때 그애는 지금과 똑같은 자세로 백핸드 드라이브를 구사했다”고 스르잔은 말했다. 노바크의 첫 번째 코치였던 옐레나 젠치치는 스르잔에게 “이 나이(당시 노바크는 7세였다)에 이렇게 뛰어난 재능을 보인 선수는 모니카 셀레스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셀레스는 그랜드 슬램 대회에서 9번 우승한 여자 프로 테니스 선수다. 젠치치의 평가에 고무된 스르잔은 노바크를 미국과 이탈리아, 독일로 데리고 다니며 훈련을 받도록 했다. “10년 동안 아들과 떨어져 본 적이 없었다”고 스르잔은 말했다. “우리는 언제나 함께였다. 어디를 가도 다른 사람들(물리치료사와 코치 등)은 자기네끼리 몰려다녔다. 우리만 외톨이였다.”

외국 여행과 훈련으로 경제 형편이 어려워지자 스르잔은 아들의 테니스 교육을 위해 고금리 대출을 받았다. 스르잔은 점차 아들의 훈련과 보호를 다른 사람들에게 맡기기 시작했다. 노바크는 13세가 되기 직전 세르비아를 떠나 독일 뮌헨 근처에 있는 니키 필리치 테니스 아카데미에 입학했다. 세계 랭킹 6위까지 올랐던 크로아티아 테니스 선수 출신의 니콜라 필리치가 운영하는 학교였다. 스르잔은 아들과 함께 그곳에 가 있을 만큼 경제적 여유가 없어서 노바크를 혼자 보냈다. 스르잔은 당시를 이렇게 돌이켰다. “하루는 노바크가 연습 시간보다 20분 일찍 훈련장에 나갔다. 필리치가 노바크에게 ‘어디 가느냐?’고 묻자 그 애는 ‘워밍업할 시간이 적어도 20분은 필요하다’고 대답했다.” 스르잔은 노바크에게 스스로를 엄격하게 단련하는 습관을 길러줬다. “건강이 가장 중요하다”고 그는 말했다. “그 애가 부상을 잘 입지 않는 이유다.”

노바크는 10대 시절 급속도로 실력이 향상돼 곧 세계 최고 수준의 선수가 됐다. 하지만 2011년까지는 나달과 페더러가 굳건히 지키고 있던 1·2위의 아성을 무너뜨리지 못했다. 노바크는 그해 호주 오픈과 윔블던, US 오픈에서 우승하고 6월에 프렌치 오픈 준결승에 오르기까지 무패 행진을 계속했다. 43경기에서 연속 승리하면서 처음으로 세계 랭킹 1위에 올랐다.

스르잔은 노바크의 라이벌을 이야기할 때마다 2006년 데이비스 컵에서 페더러와 관련된 일화를 빼놓지 않는다. “당시 노바크는 19세였는데 코에 문제가 생겨 숨을 제대로 쉬지 못했다. 페더러는 노바크의 호흡 곤란 문제를 대수롭지 않은 것으로 몰아붙이려고 온갖 수단을 다 썼다.” 노바크는 스타니슬라스 워링카와의 경기에서 승리했지만 수시로 트레이너를 코트로 불렀다. 나중에 페더러는 노바크의 호흡 곤란이 ‘꾀병’이었다고 말했다.

“당시 페더러는 세계 최고의 선수였지만 인격은 훌륭하지 못했다”고 스르잔은 말했다. “지금까지 노바크를 그렇게 대했던 사람은 아무도 없다. 페더러가 왜 아직도 테니스 선수 생활을 하는지 이해가 안 된다. 34세나 됐는데 말이다.”

노바크는 코트에서 재미있는 몸짓으로 사람들을 웃기곤 하지만(그의 별명이 조커다) 페더러는 늘 그보다 더 눈길 끄는 행동으로 대중의 사랑을 독차지한다. 스르잔은 이렇게 말했다. “난 노바크에게 이런 말을 자주 한다. ‘넌 수많은 전쟁과 폭격으로 폐허가 됐던 작은 나라에서 태어났다. 앞으로 네 인생에도 힘든 일이 많이 있을 것이다.’ 노바크는 누군가에게 상처를 줄 만한 일을 한 적이 없다. 하지만 코트에서 듣는 야유는 그 애를 더 강하게 만든다.”
타고난 재능과 철저한 훈련, 굳건한 정신력으로 무장한 노바크 조코비치는 자타가 공인하는 세계 최고의 테니스 선수다.
스르잔은 2011년 US 오픈 준결승전에서 노바크가 페더러에게 승리했을 때 “관중 2만4000명 중 2만3000명이 페더러를 응원했다”고 돌이켰다. “노바크는 경기에 이긴 뒤 마이크를 잡고 ‘여러분은 세계 최고의 관중입니다’라고 말했다. 그 애의 강인한 정신력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스르잔은 아들의 가까운 친구이자 현재 가장 막강한 라이벌인 머리에게 부족한 점이 바로 이런 정신력이라고 생각한다. “머리는 사상 최고 수준의 재능을 지녔지만 많은 부분이 제대로 쓰이지 못하고 있다. 정신력이 따라주지 않기 때문이다. 그는 쉽게 좌절한다. 경기에 이길 때는 자신감이 넘치지만 지기 시작하면 당황해서 어쩔 줄 모른다. 코치석에 말을 걸기 시작하고 정신이 흐트러진다. 마음을 차분하게 가라앉히는 방법을 배운다면 지금보다 훨씬 더 훌륭한 성적을 낼 수 있을 것이다. 머리가 자신의 잠재력을 충분히 발휘하면 좋겠다.”

자제력을 중시하는 스르잔은 지난 몇 년 동안 아들의 진로에 거의 관여하지 않았다. 이제는 노바크가 경기할 때마다 가보지도 않고 코치진을 직접 선택하지도 않는다. “요즘은 아들이 경기하는 모습을 보면 신경이 너무 곤두선다”고 그는 말했다. “감정을 억누르기 힘들다. 그래서 두어 달에 한 번씩만 경기장에 간다.”

스르잔이 무조건 칭찬하는 단 한 사람은 2013년 12월부터 노바크의 코치를 맡고 있는 보리스 베커(왕년의 세계 랭킹 1위)다. “노바크가 앞으로 겪을 모든 일을 베커는 이미 경험했다”고 스르잔은 말했다. “베커는 노바크에게 큰 힘이 된다.”

모든 부모가 그렇듯이 노바크의 인생에 미치는 스르잔의 영향력은 갈수록 줄어든다. 하지만 일찍이 그가 아들에게 걸었던 큰 도박과 믿음은 결실을 얻었다. 내가 스르잔을 만난 다음날 노바크는 카자흐스탄의 미하일 쿠쿠시킨을 눌러 세르비아팀을 데이비스컵 우승 궤도에 올려놓았다. 모든 게 다시 정상으로 돌아왔다.

- 테디 커틀러 뉴스위크 기자

ⓒ이코노미스트(https://economist.co.kr) '내일을 위한 경제뉴스 이코노미스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많이 본 뉴스

1오는 31일부터 ‘퇴직연금 갈아타기’ 가능해진다

2‘삐약이’ 투혼에도 아쉬운 ‘동’...아시아선수권 2연속 메달

3“찝찝하다”…‘한강’ 저격한 정유라 “역사 왜곡 소설로 노벨상”

4100년 전 에베레스트 등반한 전설의 산악인...빙하 속 ‘한쪽 발’ 유해 발견

5조보아, 오늘 비연예인과 결혼…백종원 등 참석 예정

6 신원식, '무인기 침투' 北주장에 "일일이 대응 현명치 않아"

7신한투자증권서 ETF LP 운용 손실 발생…“1300억원 규모”

8다저스-샌디에이고 '끝장 승부' 5차전 승리의 여신은 누구 편?

9北, "韓 무인기 침투" 주장하며 풍선 20개 살포…10개 철원 낙하

실시간 뉴스

1오는 31일부터 ‘퇴직연금 갈아타기’ 가능해진다

2‘삐약이’ 투혼에도 아쉬운 ‘동’...아시아선수권 2연속 메달

3“찝찝하다”…‘한강’ 저격한 정유라 “역사 왜곡 소설로 노벨상”

4100년 전 에베레스트 등반한 전설의 산악인...빙하 속 ‘한쪽 발’ 유해 발견

5조보아, 오늘 비연예인과 결혼…백종원 등 참석 예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