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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U-터키의 어설픈 ‘난민 빅딜’

EU-터키의 어설픈 ‘난민 빅딜’

그리스 레스보스섬 해안의 벤치 뒤쪽에 ‘안전한 항해’라고 적혀 있다. EU-터키 합의 후에도 난민은 그리스로 계속 밀려든다.
다섯 자녀를 둔 미망인 아일라 아지트(43)는 지난 3월 20일의 유럽연합(EU)-터키 난민송환 합의를 보고 꿈에 부풀었다. 지난해 10월 전투를 피해 고향에서 탈출한 아지트는 “마침내 독일에서 새로운 삶을 살 수 있다”며 기뻐했다. 그렇다면 아지트는 시리아 난민일까? 아니다. 그녀는 터키 국민이다. 터키 시르낙 주에 있는 그녀의 고향 지즈레에서 지난해 쿠르드족 무장단체와 터키군 사이의 치열한 시가전이 벌어져 약 200명이 희생됐다. 이제 아지트를 포함해 고향을 등진 쿠르드족 터키인 수천 명은 유럽으로 탈출하는 난민 행렬에 합류할 생각이다.

EU-터키 합의의 조건에 따르면 터키 국민은 유럽 내 국경 이동의 자유를 허용한 솅겐 조약 서명국 26개국에 무비자로 여행할 수 있다(취업은 불가능하다). 그 대가로 터키는 지난 3월 20일 이후 비정상적인 방법으로 그리스에 도착한 이주민 중 난민 신청이 받아들여지지 않은 모든 이들을 받아들이기로 동의했다. EU는 터키가 받아들이는 이주자 1명 당 터키 동남부의 수용소에서 시리아인 망명 신청자 1명을 받아들이기로 약속했다(연간 한도 7만2000명). 또 EU는 터키가 현재 영토 안에 있는 시리안 난민 약 270만 명을 수용하도록 돕기 위해 65억 유로를 제공하기로 했다.

그러나 지난해 여름 이래 위태로운 작은 보트에 끼어 타고 그리스에 도착한 시리아인·아프간인·이라크인에겐 그 합의가 실망스럽거나 적어도 법적으로 불확실한 상태를 의미한다. 반면 터키 동남부에서 쿠르드족 분리주의자들과 보안군 사이의 전투를 피해 고향을 탈출한 터키인 수십만 명에겐 유럽에서 새 삶을 꾸릴 수 있는 기회다. 아지트는 “이전엔 독일 비자를 받을 가망이 없었다”고 말했다. 그녀는 그동안 이스탄불의 빈민가 바이람파사에 살며 짝퉁 명품구두 공장에서 청소부로 일했다. “비자를 받으려면 독일 영사관에 은행 계좌 잔고로 소득을 증명해야 한다.”

이제 아지트는 비자가 필요 없다. 생체인증 터키 여권과 비행기 표만 있으면 된다. 정치 박해를 받거나 귀향하면 목숨이 위태롭다는 것을 입증할 수 있는 그녀를 비롯한 쿠르드족 터키인은 EU 땅에 도착하면 정치 망명을 신청할 수 있다. 아지트는 망명이 허용될 가능성이 크다. 오빠가 불법단체 회원으로 교도소에 있고 경찰이 그녀 집을 여러 차례 급습했기 때문이다. 또 앙카라와 이스탄불의 잇따른 폭탄테러로 관광업계가 활력을 잃으면서 터키 항공사가 가격을 대폭 인하해 유럽행 편도 요금이 55달러까지 내려갔다.

물론 완전히 확정된 합의는 아니다. 아메트 다부토글루 터키 총리는 터키-EU 정상회의를 마치고 귀국하며 기자들에게 “카이세리 흥정에 성공했다”고 자랑했다. ‘교활한 합의’를 이끌어냈다는 터키식 표현이다. 그러나 비자 면제 합의가 전면 시행되려면 터키는 EU 법에 부합하도록 법안 36개를 통과시켜야 한다. 터키 정부가 1974년부터 분쟁 중인 키프로스 정부를 인정해야 하는 정치적으로 무리한 문제도 포함된다.

EU 내부의 반대도 있다. 프랑스·그리스·오스트리아는 새로운 이주자와 난민을 돌려보내면 EU의 고유한 가치를 저버리게 된다고 경고했다. 국제 인권단체 휴먼 라이츠 워치의 케네스 로스 사무총장은 이번 합의가 “유럽인권협약에서 금하는 집단추방에 해당한다”고 비난하며 내전이 치열한 터키가 이주민과 난민에게 안전한 장소가 될 수 없다고 지적했다. 그는 EU 지도부에 보낸 서한에서 “터키는 피난처라기보다 죽음의 덫이 될 가능성이 더 크다”고 주장했다.

이번 합의의 큰 결함이 벌써 드러났다. 터키 법은 아프가니스탄·이라크 국민을 난민으로 인정하지 않는다. 따라서 EU는 그들을 합법적으로 터키에 보낼 수 없다. 그리스 정부 통계에 따르면 올해 초 이래 그리스 섬에 도착한 이주민·난민 12만5000명 중 아프가니스탄·이라크 출신이 41%를 차지한다.

정치인들이 논쟁을 벌이는 동안 터키의 밀입국 알선업자들은 새로운 현실에 신속히 적응했다. 터키 국민의 무비자 유럽 여행이 계획대로 6월 실시된다면 터키 여권은 암시장에서 유럽 여권만큼 가치가 올라가는 반면 구입하기는 훨씬 더 쉬워질 것이다.

이스탄불 아크사라이 구역의 인터넷 카페 주인 메메트(성은 밝히지 않았다)는 고객이 자주 방문하는 여권 판매 광고 사이트를 보여줬다. 한 사이트는 진짜라고 주장하는 불가리아 여권을 약 8950달러에 내놓았지만 터키 여권은 2795달러면 구입할 수 있었다. 중동인이 터키 여권을 사용하면 신분을 위조해도 적발될 위험이 작다. 메메트는 “이라크 모술의 아메드가 터키 디야르바키르의 아메드로 변신하긴 너무도 쉽다”고 농담했다.

아크사라이에선 환전소와 송금업소가 제3의 계좌에 송금하는 서비스를 제공한다. 밀입국 알선업자는 고객이 그리스에 안전하게 도착하면 그 돈을 받는다.

EU-터키 합의는 터키에서 그리스의 섬으로 건너가는 바닷길 수요를 떨어뜨렸다. 온라인에 오른 밀입국 알선 요금은 EU-터키 합의 전 725달러에서 지금은 약 390달러로 낮아졌다. 터키 당국의 강압적인 단속도 수요 하락에 한몫했다. 지난 3월 20일 난민 보호 운동가들이 그리스 레스보스섬 부근에서 촬영한 영상은 터키의 해안경비정이 20명이 탄 작은 배 주위를 돌며 파도로 배를 뒤덮으려 하는 장면을 보여줬다(그러나 그 배는 안전하게 섬에 도착했다). 또 터키 해안경비대는 이번 합의 발표 직후 작은 그리스 섬에 이주민과 난민을 내려놓으려는 밀입국 알선업자들에게 발포했다.

이라크 키르쿠크 출신의 토목기사 아부 말리크는 “터키는 유럽한테서 원하는 것을 얻은 뒤 이젠 난민 보트를 향해 총을 쏜다”고 말했다. 그는 2014년 11월 가족을 데리고 터키로 탈출한 뒤 지난 6개월 동안 이스탄불에서 서류 배달원으로 일했다. “이제 그리스 노선은 바보들이나 이용한다. 우리는 다른 방법을 찾겠다.” 일부 이주자와 난민은 알바니아나 리비아에서 이탈리아로 가는 위험한 바닷길로 눈을 돌릴 것이다. 국제이주기구(IOM)에 따르면 지난해 그 노선의 사망률은 거의 20명 중 1명이었다. 반면 터키-그리스 노선의 경우 1000명 중 1명도 채 안 됐다.

시리아 카미슐리 출신 학생으로 지난 2월 가지안테프 부근의 난민촌에서 일자리를 구하러 이스탄불에 온 압둘라만에 따르면 난민 합의에 따라 유럽에 갈 수 있는 자격을 거래하는 암시장이 열렸다. 적십자사와 EU 등 난민촌 당국이 난민교환 대상목록을 관리하지만 전문 브로커들이 한 가족의 자리를 사들여 그들의 신분증과 함께 최고 입찰자에게 판매한다. 압둘라만은 어쩔 수 없다는 듯 “필사적이 되면 수단과 방법을 가릴 수 없다”고 말했다.

- 오웬 매튜스 뉴스위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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