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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으로 새긴 ‘동물의 세계’

은으로 새긴 ‘동물의 세계’

짐바브웨 조각가 패트릭 매브로스, 장신구와 조각품에 아프리카 야생동물을 모티프로 한 스토리 담아
짐바브웨 자택에 있는 패트릭 매브로스의 작업대. 코끼리·물소·기린·악어 등이 매브로스의 손을 거쳐 새롭게 태어난다.
만약 모험소설 작가 H 라이더 해가드나 윌버 스미스가 미국 뉴욕의 유명 보석상 티파니를 아프리카에 세웠다면 어땠을까? 아마도 패트릭 매브로스 같은 분위기가 아니었을까?

아프리카의 명품 귀금속 브랜드 패트릭 매브로스는 그만큼 특별하다. 영국 런던의 첼시와 사우스 켄징턴 경계 지역에 있는 패트릭 매브로스의 세련된 전시장은 본드 거리의 최고 상점들과 견줘도 손색 없다. 명품 브랜드의 본점이 런던 중심부에 있는 건 특이할 게 없다. 하지만 패트릭 매브로스는 런던·파리·밀라노·뉴욕 등 4대 도시가 아닌 런던과 모리셔스 공화국, 짐바브웨의 하라레, 케냐의 나이로비에서 매장을 운영한다.

이 브랜드를 설립한 짐바브웨 태생의 패트릭 매브로스는 패션 감각부터 남다르다. 영화 ‘크로커다일 던디’ 스타일의 모자부터 물소 가죽 부츠까지 아프리카 초원을 연상시키는 그의 옷차림을 보고 있노라면 저절로 허리춤에 벌채용 칼이라도 차지 않았나 살펴보게 된다. 하지만 그의 허리춤에선 칼 대신 악어 두 마리가 서로 몸을 꼬고 있는 은제 벨트 버클이 눈에 띈다. 예술적 감수성이 흘러넘치는 작품이라 매브로스를 잘 모르는 사람들은 ‘어떻게 저렇게 남자다운 사람이 이토록 섬세한 작품을 만들었을까’ 의아한 생각이 든다.

그게 매브로스의 매력이다. 그는 예술가의 영혼에 특수부대원의 몸을 가졌다. 짐바브웨가 로디지아였던 시절 매브로스는 특수부대 ‘셀루스 정찰대’의 일원이었다. 그는 짐바브웨 아프리카민족회의(JAPU) 지도자 조슈아 은코모의 암살 임무를 맡은 특공대에 소속됐었다. 그 특공대는 임무를 완수하지 못했고 매브로스와 은코모는 나중에 한 여객기에서 우연히 만나 화해의 뜻으로 포옹했다.

매브로스는 군 복무 시절 상아 조각을 시작했다. 그가 당시 약혼녀였던 지금의 아내에게 만들어준 아름다운 상아 귀걸이를 보고 많은 사람이 그에게 작품을 의뢰했다. 그때는 상아 거래가 금지되기 훨씬 전이었지만 매브로스는 재료를 상아에서 은으로 바꿔 작품을 만들기 시작했다. ‘패트릭 매브로스’라는 브랜드가 생겨난 배경이다.

그의 작품은 강인함과 예민한 감수성이 어우러져 놀라운 감동을 준다. 아프리카 야생동물의 사진으로 유명한 미국 사진가 피터 비어드의 작품을 3차원으로 옮겨놓은 듯한 느낌이다. 코끼리·물소·기린·악어 등 우리에게 친숙한 동물들이 매브로스의 손을 거쳐 새롭게 태어난다. 이 작품들은 단지 귀금속으로 동식물을 묘사하는 데 그치지 않고 나름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매브로스는 훌륭한 이야기꾼이다.

그의 상점에 있는 모든 작품에 이야기가 들어 있다. 양쪽 상아가 십자가처럼 교차한 은제 코끼리 조각은 1970~80년대 케냐 마라 강에서 살던 유명한 코끼리에서 영감을 얻었다. 사자 등 위에 올라 탄 원숭이와 뒤집힌 거북이 껍질을 등에 지고 가는 코끼리를 묘사한 호화로운 재떨이도 있다.바오밥 나무 주변에 산족(부시맨) 2명이 있는 은 조각품은 꽤 유명하다. 속이 빈 나무 안에서는 또 다른 남자가 모닥불(멕시코 파이어 오팔로 표현했다)을 쬐고 있는 모습이 보인다. 매브로스의 설명을 듣고 나면 작품의 세부사항 하나하나가 더 의미 있게 다가온다. 나무의 빈 공간에 빗물이 고이면 야생동물들이 그 물을 마시러 들어오고 기다리던 사냥꾼들이 그들을 쏴 죽인다. 나무 한 그루를 묘사한 이 은 조각품 안에 아름다움, 자연, 그리고 죽음이 뒤엉켜 있다.

바오밥 나무를 묘사한 은 조각품은 아름다움과 자연, 그리고 죽음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이 바오밥 나무 조각은 보통 테이블 중앙에 놓는 장식품으로 이용된다. 런던 매장에서는 노간주나무로 만든 멋진 식탁 위를 장식하고 있다. 그 식탁의 상판은 터키석과 화석화된 모잠비크 장미산호, 마다가스카르에서 가져온 암모나이트, 시베리아 매머드의 상아로 무늬가 새겨져 있다. 매장 지하실에는 장롱 크기의 시가 저장상자가 있다. 시가 애호가인 매브로스와 그의 장남 알렉산더를 위한 것이다.

매브로스의 사업은 가족과 함께 성장해 왔고 지금은 네 아들이 모두 합류했다. 매브로스는 주로 짐바브웨의 가족 농장에 머무르며 여행을 많이 한다. 30대 후반인 장남 알렉산더는 런던 매장을 책임지고 차남 포브스는 모리셔스에서 보석 세공을 관리한다. 패트릭 매브로스의 ‘엘리펀트 헤어 팔찌’는 까르띠에의 ‘러브 팔찌’처럼 브랜드 대표 상품이다.

은으로 된 대형 작품은 모두 짐바브웨에서 제작된다. 알렉산더에 따르면 이 회사는 지금까지 만들었던 중 가장 야심 찬 작품을 제작하고 있다. 완성되면 어떤 요트의 식탁을 장식하게 될 쥐가오리떼 조각작품이다. 이 작품에 등장하는 쥐가오리가 25마리나 된다니 꽤 큰 요트인 듯하다. 매장 안에 있는 테이블 위에 쥐가오리 몇 마리가 놓여 있다. 다양한 높이의 가느다란 은 스탠드 위에 얹혀 마치 바닷속을 헤엄치는 듯 보인다. 처음엔 그 쥐가리오리들 아래쪽에 앉은 여자를 못 봤다. 그녀는 서류 더미를 앞에 놓고 서명을 하고 있었다.

재능 있는 도예가이자 디자이너인 알렉산더의 이모 페할스테드-버닝이다. 패트릭 매브로스의 작품 디자인에도 참여하는 그녀가 서명하던 서류는 에르메스 관련 문서였다. 그녀가 디자인한 문양이 에르메스의 스카프에 이용됐고 앞으로 찻잔부터 티셔츠까지 에르메스의 여러 제품에 그녀의 디자인이 쓰일 예정이다. 매브로스의 아프리카 스타일이 갈수록 인기가 높아지는 것 같다.

- 니컬러스 포크스 뉴스위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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