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마존의 ‘무한확장’ 그 끝은?
아마존의 ‘무한확장’ 그 끝은?
창립자 제프 베조스는 서적 유통업체를 우주항공사, 신문사 인수, 그리고 콘텐트까지 제작하는 ‘팔방기업’으로 키웠다. 하지만 아직도 그의 사업과 전략은 베일에 가렸다. 과연 무엇일까 ”아마존을 둘러싼 암운이 짙어진다.” 2001년 2월 21일 워싱턴포스트(WP)에 실린 데이비드 스트레이트펠드 기고문의 첫 문장이다. 2000년부터 주식 투자자들은 IT 기업도 세속적인 호황-불황 주기에서 자유로울 수 없음을 새삼 깨달았다. 미국 시애틀에 본사를 둔 서적 유통업체 아마존은 1990년대 말 괜한 위세를 부리다 사라져버린 펫츠닷컴(Pets.com)의 악명 높은 사례를 뒤따를 것처럼 보였다. 스트레이트펠드는 “인터넷 소매업체 아마존은 올 하반기에 운영비가 바닥날 것”이라는 내부자 폭로에 주목했다.
그런데 아마존의 돈은 바닥나지도 월마트 같은 몸집 큰 경쟁업체에 먹히지도 않았다. 그래도 흑자 전환은 2003년에야 이뤄졌다. 월스트리트저널은 아마존을 두고 “IT 기업 중 가장 강력한 생존자 중 하나”라고 표현했다.
요즘 상황을 보면 아마존의 생존은 더 이상 관심의 초점이 아니다. 우리가 아마존 없이 생존할 수 있느냐가 문제다. 미국 국민에게 아마존은 연방정부기구보다 더 필요한 신적 존재가 됐다. 직원 대우와 탈세, 독점 등 아마존을 싫어할 이유는 충분해도 아마존을 피해갈 수는 없다.
WP가 아마존의 불운을 예고하고 12년이 지난 후, 창업자 제프 베조스(52)는 그레이엄 가문에게 2억5000만 달러를 주고 WP를 인수했다. 머서 아일랜드에 궁전 같은 대저택 대신 신문사를 인수하다니, IT 재벌에게서 보기 드문 행보다. 600억 달러를 손에 쥔 사람이 돈을 쓸 때는 웬만하면 ‘과감하다’고 표현하기 힘들다. 그러나 WP를 인수하면서 베조스는 분명 새 영역을 개책했다. 신문이 아무리 예전 같지 않아도 우리는 여전히 신문의 가치를 존중하고, 민주주의를 보장하려면 언론의 자유가 필요하다는 걸 막연하게나마 알고 있다.
실리콘밸리 취재로 인정 받는 리코드의 공동 창업자 카라 스위셔 기자는 처음부터 베조스를 눈여겨보고 있었다. “베조스는 더 나은 사람이 되기 위해 노력한다”며 “자신에게 ‘힘이 있다’는 걸 안다”고 말했다. 아마존의 일부 행태는 비판하지만, 언론의 자유와 저널리즘을 수호하려는 최근 움직임은 높이 산다는 입장이다. “그는 세상의 이목을 즐긴다.”
이목이 집중되면 뻔한 칭찬 말고 무엇이 더 나올지 모르는 일이다. 최근 수년간 아마존은 온라인 쇼핑몰을 탈피하는 성장을 했다. 아마존 웹 서비스는 CIA에 클라우드 컴퓨팅 서비스를 제공하고, 베조스가 설립한 민간 우주항공사 블루 오리진은 NASA와 우주비행 프로젝트를 진행한다. 아마존은 영화 및 TV 콘텐트 제작업체로도 변신 중이다. 유니버설 스튜디오도 머지 않아 아마존에 밀려날지 모른다.
베조스는 부자를 숭배하는 동시에 경멸하는 미국에서 부자로 살아간다. 그는 과연 어떤 사람인가? 전면에 나서는 걸 좋아하지 않는 그는 빌 게이츠류의 자선사업가는 아니다. 하지만 세계 최대 유통업체를 넘어서는 유산을 남기고픈 열망이 있는지도 모른다.
베조스를 대표하는 특징 중 하나가 바로 웃음이다. 눈을 크게 뜨고 몸을 살짝 굽힌 채 웃는다. “하-하-하”로 들리는 흔치 않은 웃음 중 하나다. 웃음소리를 글자로 써놓고 기계가 정확하게 읽어낸 소리 같다.
와이어드 창립 편집진 중 한 명인 케빈 켈리는 웃음소리가 베조스에 대해 생각보다 많은 사실을 보여준다고 말했다. “단순히 웃음소리가 특이한 게 아니라 그가 그만큼 많이 웃는다는 걸 알 수 있다”고 켈리는 말했다. 한곳에 집중하지만 옆도 못 볼만큼 편협하지 않고, 장난스러움을 잃지 않을 정도로 객관적 시각을 유지한다는 해석이다. “그는 자신도 웃음의 대상으로 삼을 수 있다”고 켈리는 말했다. “자신을 객관화할 수 있다.”
스위셔 기자는 동의하지 않는다. 명랑하고 재미있는 사람으로 보이려는 눈가림일 뿐, 실제는 그렇지 않다는 해석이다. “IT 쪽에서는 호감을 얻기 위해 진심으로 노력하는 사람이 많다”고 그녀는 말했다. “베조스는 아니다.”
스위셔 기자는 베조스가 과거에는 언론에 자주 나왔지만 최근에는 좀 줄어들었다고 말했다. 가족과 좀 더 많은 시간을 보내기 위해서다. 베조스는 소설가 아내 맥켄지, 자녀 4명과 함께 시애틀의 부유한 교외 메디나에 산다. 요즘에는 인터뷰도 거의 하지 않는다. 그가 알려준 유일한 이메일 주소(jeff@amazon.com)로 뉴스위크가 질문을 보냈지만 답장은 받지 못했다(아마존 고객이 소비자 의견을 보낼 경우 답변을 하거나 민원을 해당 부서로 보내주는 일은 한다). 베조스의 전기를 쓴다면 그가 이전에 했던 모든 일이 결국 아마존을 세우기 위한 것이었다는 결과로 깔끔하게 귀결된다. 휴스턴에서의 어린 시절, 프린스턴대학을 졸업해 뉴욕 헤지펀드 생활을 거쳐 시애틀로 건너가 1990년대 초기 매년 2300%라는 어마어마한 속도로 성장하던 인터넷에 ‘꽂히게 됐다’는 이야기는 아마 그가 원하는 흐름일 것이다.
베조스 전기에서 가장 많은 걸 알려주는 정보는 그가 처음 회사 이름을 ‘릴렌트리스(Relentless: 가차 없는, 꾸준한)’로 짓길 원했다는 사실이다. 결국 지구상에서 제일 긴 강 이름을 사명으로 선택했지만, 주소창에 릴렌트리스닷컴(Relentless.com)을 치면 아마존 홈페이지로 연결된다. 사명을 지을 때는 대부분 주력 판매상품 혹은 판매자 이름을 가져온다. ‘릴렌트리스’는 판매를 어떤 식으로 할 지 짐작하게 만드는 단어다. 아마존이 첫 아이템으로 선택한 책은 아마존 강의 엄청난 물결 위에 띄워 하류까지 잘 내려가는지 살펴보기 위한 테스트 상품이었다.
초기 실수가 좀 있긴 했지만, 아마존이 띄워 보낸 첫 보트는 무사히 살아남았다. 장난감, 음악, 정원용 가구 등 이후 시도한 다른 상품도 마찬가지다. 아마존은 월마트보다 32년 늦게 시작했지만 기업가치는 1200억 달러 더 높다(물론 판매상품 수만 보면 월마트가 더 많다). 지난 7월 아마존의 기업가치는 3500억 달러에 달한다. 홍콩 국내 총생산(GDP)보다 높은 수치다.
뉴욕타임스 기술 칼럼니스트 파라드 만주는 아마존을 “가장 비밀스런 IT 기업”이라 표현하며 베조스의 결정에 놀란 적이 많다고 말했다. 스탈린 시절 공산본부만큼 비밀스러워서 회사에 관한 아주 기본적 질문조차 답해주지 않기 때문이다. 하루에 배송하는 상품은 몇 개인가? 킨들 전자책 매출은 어느 정도일까? 전 세계 소포 박스 중 아마존 로고가 박힌 건 몇 %인가?
아마존에서 가장 수익성 높은 사업부는 가장 알려진 게 없는 아마존 웹 서비스(AWS)다. 2006년부터 CIA와 넷플릭스 등 중요한 모든 곳에 클라우드 컴퓨팅을 제공한다. 클라우드 컴퓨팅 시장의 1/3을 손에 넣었을 정도다. 독립기업이었다면 기업가치는 1600억 달러이고, 시가총액은 IBM을 능가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들은 AWS가 존재한다는 사실뿐만 아니라 인터넷 근간을 이루는 많은 부분이 베조스의 소유라는 걸 알지 못한다.그래도 최근 아마존의 미션에 중대한 변화가 있었다. 상품을 유통·배송하는 기업에 만족하지 않고 콘텐트 제작 사업을 적극 추진하는 중이다.
베조스 전략의 중심에는 아마존 프라임(Amazon Prime)이 있다. 연회비 99달러를 내면 무료 2일 배송 서비스를 제공하는 회원제 서비스다. 회원은 프라임 뮤직과 프라임 비디오에 있는 콘텐트를 무료로 즐길 수 있어 자연스레 아마존에 무게를 실어준다고 베조스는 말했다. “골든글로브라도 받으면 신발 매출이 올라갈 것이다. 그렇게 직접적 영향력을 줄 수 있다.” 프라임 회원 수는 5400만 명이다. 이 중 극히 일부라도 넷플릭스나 스포티파이 대신 아마존 프라임을 사용한다면 경쟁업체에 실질적 타격을 줄 수 있다.
지난해, 아마존은 자체 제작 드라마 ‘트랜스페어런트(Transparent)’로 첫 골든글로브를 수상했다. 그 결과로 신발 매출이 얼마나 늘었는지는 알 수 없다. 트랜스페어런트는 지난해 첫 에미상을 수상했다. 덕분에 아마존은 에미상을 수상하고 또 판매도 하는 전 세계 유일한 기업이 됐다. 디나 쇼어가 1959년 수상한 에미상 트로피가 아마존에서 1만4995달러에 판매 중이기 때문이다. 특허 원클릭(1-Click) 기술을 통해 편하게 구매할 수 있다.
“아마존은 세상을 지배하려 하는가?” 아마존이 파이어(Fire) TV 기술로 스트리밍 시장 진출을 발표했을 때 블룸버그 TV가 한 말이다. 당시 프로그램에 출연한 전문가 중에는 미디어모프의 샤히드 칸도 있었다. 그는 아마존의 목표가 실제로 “세계 정복”에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 말을 마친 칸은 “거실을 지배할 수 없다면 세상도 지배할 수 없다”는 신중한 경고를 잊지 않았다.
그래도 베조스에게는 불필요한 충고였다. 지난해 그는 아마존 에코를 출시했다. 소비자용 인공지능(AI) 시장에 가장 과감한 방식으로 진출한 ‘스마트’ 스피커다. 기술 칼럼니스트 만주는 뉴욕타임스 기고문에서 에코가 “집이라는 가장 사적인 공간을 장악할 힘을 갖춘 기기”라며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지난 4월 추산에 따르면 약 300만 가구가 알렉사(에코를 시작하기 위해 부르는 이름)를 거실로 맞아들였다. 알렉사는 농담을 주고받을 수 있고, 베조스가 소유한 WP 기사를 읽어줄 수도 있다. 참깨 크래커를 다 먹었다고? 그럼 알렉사가 주문해준다.
“언론의 자유는 언론을 가진 자에게만 보장된다”고 잡지 더 뉴요커의 A J 리블링은 쓴 적이 있다. 버지니아 주 스프링필드에 위치한 WP의 주인은 2013년 도서 유통업계의 정복자가 됐다.
그레이엄 가문은 1933년부터 포스트를 소유했다. 워터게이트 사건을 겪었고, 미국에서 2번째로 많은 퓰리처 상을 받은 신문으로 WP를 키워냈다. 그러나 2000년대는 광고·판매에서 잔혹한 시기였고, 그 결과 전국 곳곳에서 신문사가 문을 닫았다. 비용 감축을 위해 WP는 워싱턴 취재에만 집중했다. 2009년 전국 단위 취재국, 2011년 교외 취재국을 닫았다. 사람들은 취재가 가능하긴 한지 궁금해 했다.
WP를 인수한 베조스는 “확실히 기록에 남을 신문”으로 만들기 위해 노력한다. 아마존을 세계 최대 온라인 쇼핑몰로 만들었던 ‘빨리 몸집 키우기’ 정신을 적용해 직원 100명을 보도국에 충원했다. 가브리엘 셔만은 뉴욕 잡지에 게재된 WP 프로필에서 직원 수가 뉴욕타임스 절반 밖에 되지 않지만 매일 웹사이트에 게재되는 기사의 양은 뉴욕타임스 2배라는 점을 강조했다.
베조스가 아마존을 흑자전환하는 데 거의 10년이 걸렸다. 직원 연금을 비롯해 넘겨 받은 유산비용이 엄청난 WP는 100년이 걸릴 수도 있다. 셔만은 2012년 수치를 기준으로 WP 총 매출을 연 3억5000만 달러로 추산하고, 연간 예산은 5억 달러로 책정했다.
WP 편집진 마틴 배런은 베조스의 도움으로 WP가 저널리즘의 신항로를 개척할 수 있다는 믿음을 갖고 있다. 광고 판매나 구독으로 영업매출을 올리는 구태의연한 방식에서 탈피하면서도 저속한 낚시기사로 클릭을 유도하도록 내몰리지 않는 새로운 웹 기반 모델을 모색한다는 뜻이다. “뭔가 될 것 같다”고 그는 말했다.닷컴 거품이 붕괴했을 때 아마존 기사를 썼던 스트레이트펠드 기자는 2001년 포스트를 떠나 뉴욕타임스에 둥지를 틀었고, 그곳에서 문화와 기술산업 취재를 담당한다. 지난해 그는 아마존을 “틈만 나면 전투를 벌여야 하는 멍든 일터”로 묘사한 장문의 기사를 동료 기자 조디 캔터와 함께 기고했다. 지나치게 긴 근무시간, 매정한 관리자, ‘아마존 방식(Amazon Way)’이라는 부적절한 관행 속에 다 큰 어른도 울음을 터뜨리는 환경에서 베조스는 주변을 둘러보지 않고 환하게 웃으며 데이터를 기준으로 결정을 내리는 황제처럼 묘사됐다.
버락 오바마 대통령의 전 대변인을 고용한 기업에 걸맞게 아마존은 격렬한 반박에 나섰다. (스탈린 정권과 유사한 수준으로 동료끼리 서로를 고발하는 제도 등) 특정 관행에 대해서는 장점을 주장할 수 있었지만, 타임스 기사는 어떤 공식 성명서로도 완벽히 빠져나갈 수 없는 의심의 그물망을 던졌다.
베조스의 인정사정 없음을 보여주는 사례는 많다. 유럽 물류사업 부사장이 되면 베조스와의 불쾌한 언쟁을 업무로 받아들여야 한다. 그런데 이보다 더 심각한 수모를 겪는 사람도 있다. 아마존 유통센터 직원들이다. 파견업체 직원인 이들은 매일 아마존에서 도난방지 수색을 받아야 한다. 그런데 2014년 아마존은 수색 때문에 하게 된 초과근무에 대해 수당을 지불할 필요가 없다는 대법원 재판에서 승소했다. 가십 전문 사이트 ‘고커’는 꽤 오랜 기간에 걸쳐 유통센터 직원의 이야기를 1인칭 시점에서 다루며 아마존 반대 캠페인을 이끌었다. 펜실베이니아 칼라일에 위치한 아마존 창고 직원의 에피소드도 있었는데, 그는 “베조스 님”을 위해 일했던 경험이 전반적으로 “썩은 샌드위치를 먹는 기분”이었다고 말했다.
법률적으로 우려되는 점도 있다. WP를 아마존 홍보 에이전시로 활용하려 한다는 공화당 대선후보 도널드 트럼프는 아마존 납세에 관해 제법 타당한 의문을 제기했다. 사이먼 막스 기자는 뉴스위크에 아마존이 글로벌 본사를 “작은 내륙국 룩셈부르크로 이전하면서 유리한 재정적 입지”를 얻었다고 썼다. 룩셈부르크를 실질적 조세 피난처로 이용한다는 설득력 있는 주장이다.
아마존은 이런 비난을 모두 부인할 것이다. 미사일처럼 날카로운 반론을 쏘아대는 유능한 홍보전문가들을 거느린 다국적 대기업이 아닌가. 그러나 아마존을 설립한 남자는 피라냐 역할 밖에 할 수 없다는 대중의 시각은 변하기 힘들 것이다.
지난봄 베조스는 리코드의 월트 모스버그와 인터뷰를 했다. 1시간 이상 계속된 인터뷰는 AI부터 우주선, 지난해 시애틀에 문을 연 아마존 최초의 오프라인 서점에 이르기까지 광범위한 주제를 넘나들었다. 아마존 물류유통에 대한 설명도 곁들였는데 듣다 보면 그가 물류에 매료된 지극히 드문 사람 중 한 명임을 확실히 알 수 있었다.WP를 언급할 때는 고전적 방식으로 애정을 표현해 듣는 이를 무장해제시켰다. “우리가 선거로 뽑은 지도자, 그리고 정부 기관에서 일하는 모든 사람을 점검할 필요가 있다. (WP는) 이 역할을 수행하는 위대한 신문이다.” WP가 안고 있는 문제도 많지만 그에게 WP는 그 모든 문제를 넘어선 특별한 의미를 지닌다는 점도 분명히 했다. “간식을 파는 회사가 재정난에 처했다면 절대 인수하지 않았을 거다.”
페이팔 공동 창업자이자 페이스북 초기 투자자인 피터 티엘이 고커를 상대로 한 법정 싸움에 자금을 대고 있었다는 사실이 최근 공개돼 파장이 일었다. 고커 자회사 중 하나인 온라인 매체 ‘밸리와그’가 근 10년 전 티엘의 사생활을 파헤친 기사를 실었기 때문이다. 사생활을 보장받고 싶은 억만장자의 욕구와 잊을 만하면 아마존을 도살장으로 표현하는 고커를 보며 누구보다 공감했을 베조스에게 모스버그가 의견을 물었다. 티엘의 분노를 값비싼 자만심으로 해석한 베조스는 그와 같은 공인이라면 “낯짝이 두꺼워야 한다…. 훌륭한 언론은 보호할 필요가 없다. 못난 언론이니까 보호해야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베조스가 IT 업계의 오만한 반항아가 아니라 헌법 변호사로 보인 순간이었다.
IT 거물과 얘기할 때 별다른 감흥을 받은 적이 없는 리코드의 창업자 스위셔도 이 말에 감명을 받았다. 스위셔는 “그가 무대 위에서 한 말은 믿기 힘들 정도로 용감했다”며 “실리콘밸리 사람 대다수는 티엘 사건의 의미를 감도 못 잡는다”고 덧붙였다. “낚시기사나 올리는 기자는 큰 코 다쳐야 한다”고 트위터에 글을 올린 썬 마이크로시스템즈 공동 창업자 비노드 코슬라를 지칭한 말일 것이다. 트럼프는 그런 의미에서 WP에 대해 다른 매체보다 더 악감정을 품은 걸로 보인다. 자신의 선거운동을 취재한 WP 기사를 보고 기분 상했을 트럼프는 WP를 베조스의 “장난감”이라 칭하면서 아마존의 사업 방식에 비난을 쏟아냈다. 트럼프의 발언답게 약 3% 정확한 비난이었다. 베조스는 모스버그와 인터뷰를 하면서 트럼프를 향해 엄숙한 설교를 늘어놓는 기쁨도 누렸다. “우리는 대단한 언론의 자유를 갖춘 대단한 민주국가에 살고 있다. 대선 후보라면 그 사실을 받아들여야 한다.” 며칠 뒤, 트럼프는 자신의 선거운동 행사에서 WP 기자 출입을 아예 금지시켰다.
허를 찌르는 행보는 베조스가 선호하는 작전으로 보인다. 기사 작성이 끝나가던 주에 아마존 ‘인스파이어’에 관한 소식을 들었다. 뉴욕타임스는 이를 두고 “초등 및 중등 교육 기술 시장을 향한 파급력 있는 진입”이라 보도했다. 그리고 이틀 뒤, 아마존은 PBS 키즈에 올라오는 거의 모든 콘텐트 스트리밍 서비스를 독점 제공하는 계약을 체결했다. 아마존 물류창고는 아마 곧 100% 로봇으로 교체될지도 모른다. 비뚤어지긴 했지만 근로자 불만 해결에는 아주 효과적인 해결책이다.
생후 30년을 맞은 아마존은 열광적이고 야심만만한 에너지로 넘친다. 시애틀 도심에 아마존 캠퍼스를 세우는 프로젝트에 40억 달러를 지출하고서도 최근에는 트래블로지 호텔을 인수해 노숙자 임시 쉼터로 만들겠다는 계획을 세웠다.
“지나치게 복잡한 존재라는 게 베조스의 단점 중 하나”라고 스위셔는 말했다. 당연히 그의 장점이기도 하다. 그는 자선사업가로 부드럽게 변신하는 중일까? 아님 미디어 거물이 되려는 걸까? 아마존 세금은 다 납부할까? 물류창고의 노동 관행을 개선할까? 우리 사회에 유산을 남겨줄까, 아님 엄청난 부자만 화성으로 보내줄 우주선을 만드는 데 그칠까?
‘아직은’ 알렉사도 답하지 못하는 질문이다.
- 알렉산더 나자리안 뉴스위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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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아마존의 돈은 바닥나지도 월마트 같은 몸집 큰 경쟁업체에 먹히지도 않았다. 그래도 흑자 전환은 2003년에야 이뤄졌다. 월스트리트저널은 아마존을 두고 “IT 기업 중 가장 강력한 생존자 중 하나”라고 표현했다.
요즘 상황을 보면 아마존의 생존은 더 이상 관심의 초점이 아니다. 우리가 아마존 없이 생존할 수 있느냐가 문제다. 미국 국민에게 아마존은 연방정부기구보다 더 필요한 신적 존재가 됐다. 직원 대우와 탈세, 독점 등 아마존을 싫어할 이유는 충분해도 아마존을 피해갈 수는 없다.
WP가 아마존의 불운을 예고하고 12년이 지난 후, 창업자 제프 베조스(52)는 그레이엄 가문에게 2억5000만 달러를 주고 WP를 인수했다. 머서 아일랜드에 궁전 같은 대저택 대신 신문사를 인수하다니, IT 재벌에게서 보기 드문 행보다. 600억 달러를 손에 쥔 사람이 돈을 쓸 때는 웬만하면 ‘과감하다’고 표현하기 힘들다. 그러나 WP를 인수하면서 베조스는 분명 새 영역을 개책했다. 신문이 아무리 예전 같지 않아도 우리는 여전히 신문의 가치를 존중하고, 민주주의를 보장하려면 언론의 자유가 필요하다는 걸 막연하게나마 알고 있다.
실리콘밸리 취재로 인정 받는 리코드의 공동 창업자 카라 스위셔 기자는 처음부터 베조스를 눈여겨보고 있었다. “베조스는 더 나은 사람이 되기 위해 노력한다”며 “자신에게 ‘힘이 있다’는 걸 안다”고 말했다. 아마존의 일부 행태는 비판하지만, 언론의 자유와 저널리즘을 수호하려는 최근 움직임은 높이 산다는 입장이다. “그는 세상의 이목을 즐긴다.”
이목이 집중되면 뻔한 칭찬 말고 무엇이 더 나올지 모르는 일이다. 최근 수년간 아마존은 온라인 쇼핑몰을 탈피하는 성장을 했다. 아마존 웹 서비스는 CIA에 클라우드 컴퓨팅 서비스를 제공하고, 베조스가 설립한 민간 우주항공사 블루 오리진은 NASA와 우주비행 프로젝트를 진행한다. 아마존은 영화 및 TV 콘텐트 제작업체로도 변신 중이다. 유니버설 스튜디오도 머지 않아 아마존에 밀려날지 모른다.
베조스는 부자를 숭배하는 동시에 경멸하는 미국에서 부자로 살아간다. 그는 과연 어떤 사람인가? 전면에 나서는 걸 좋아하지 않는 그는 빌 게이츠류의 자선사업가는 아니다. 하지만 세계 최대 유통업체를 넘어서는 유산을 남기고픈 열망이 있는지도 모른다.
베조스를 대표하는 특징 중 하나가 바로 웃음이다. 눈을 크게 뜨고 몸을 살짝 굽힌 채 웃는다. “하-하-하”로 들리는 흔치 않은 웃음 중 하나다. 웃음소리를 글자로 써놓고 기계가 정확하게 읽어낸 소리 같다.
와이어드 창립 편집진 중 한 명인 케빈 켈리는 웃음소리가 베조스에 대해 생각보다 많은 사실을 보여준다고 말했다. “단순히 웃음소리가 특이한 게 아니라 그가 그만큼 많이 웃는다는 걸 알 수 있다”고 켈리는 말했다. 한곳에 집중하지만 옆도 못 볼만큼 편협하지 않고, 장난스러움을 잃지 않을 정도로 객관적 시각을 유지한다는 해석이다. “그는 자신도 웃음의 대상으로 삼을 수 있다”고 켈리는 말했다. “자신을 객관화할 수 있다.”
스위셔 기자는 동의하지 않는다. 명랑하고 재미있는 사람으로 보이려는 눈가림일 뿐, 실제는 그렇지 않다는 해석이다. “IT 쪽에서는 호감을 얻기 위해 진심으로 노력하는 사람이 많다”고 그녀는 말했다. “베조스는 아니다.”
스위셔 기자는 베조스가 과거에는 언론에 자주 나왔지만 최근에는 좀 줄어들었다고 말했다. 가족과 좀 더 많은 시간을 보내기 위해서다. 베조스는 소설가 아내 맥켄지, 자녀 4명과 함께 시애틀의 부유한 교외 메디나에 산다. 요즘에는 인터뷰도 거의 하지 않는다. 그가 알려준 유일한 이메일 주소(jeff@amazon.com)로 뉴스위크가 질문을 보냈지만 답장은 받지 못했다(아마존 고객이 소비자 의견을 보낼 경우 답변을 하거나 민원을 해당 부서로 보내주는 일은 한다). 베조스의 전기를 쓴다면 그가 이전에 했던 모든 일이 결국 아마존을 세우기 위한 것이었다는 결과로 깔끔하게 귀결된다. 휴스턴에서의 어린 시절, 프린스턴대학을 졸업해 뉴욕 헤지펀드 생활을 거쳐 시애틀로 건너가 1990년대 초기 매년 2300%라는 어마어마한 속도로 성장하던 인터넷에 ‘꽂히게 됐다’는 이야기는 아마 그가 원하는 흐름일 것이다.
베조스 전기에서 가장 많은 걸 알려주는 정보는 그가 처음 회사 이름을 ‘릴렌트리스(Relentless: 가차 없는, 꾸준한)’로 짓길 원했다는 사실이다. 결국 지구상에서 제일 긴 강 이름을 사명으로 선택했지만, 주소창에 릴렌트리스닷컴(Relentless.com)을 치면 아마존 홈페이지로 연결된다. 사명을 지을 때는 대부분 주력 판매상품 혹은 판매자 이름을 가져온다. ‘릴렌트리스’는 판매를 어떤 식으로 할 지 짐작하게 만드는 단어다. 아마존이 첫 아이템으로 선택한 책은 아마존 강의 엄청난 물결 위에 띄워 하류까지 잘 내려가는지 살펴보기 위한 테스트 상품이었다.
초기 실수가 좀 있긴 했지만, 아마존이 띄워 보낸 첫 보트는 무사히 살아남았다. 장난감, 음악, 정원용 가구 등 이후 시도한 다른 상품도 마찬가지다. 아마존은 월마트보다 32년 늦게 시작했지만 기업가치는 1200억 달러 더 높다(물론 판매상품 수만 보면 월마트가 더 많다). 지난 7월 아마존의 기업가치는 3500억 달러에 달한다. 홍콩 국내 총생산(GDP)보다 높은 수치다.
뉴욕타임스 기술 칼럼니스트 파라드 만주는 아마존을 “가장 비밀스런 IT 기업”이라 표현하며 베조스의 결정에 놀란 적이 많다고 말했다. 스탈린 시절 공산본부만큼 비밀스러워서 회사에 관한 아주 기본적 질문조차 답해주지 않기 때문이다. 하루에 배송하는 상품은 몇 개인가? 킨들 전자책 매출은 어느 정도일까? 전 세계 소포 박스 중 아마존 로고가 박힌 건 몇 %인가?
아마존에서 가장 수익성 높은 사업부는 가장 알려진 게 없는 아마존 웹 서비스(AWS)다. 2006년부터 CIA와 넷플릭스 등 중요한 모든 곳에 클라우드 컴퓨팅을 제공한다. 클라우드 컴퓨팅 시장의 1/3을 손에 넣었을 정도다. 독립기업이었다면 기업가치는 1600억 달러이고, 시가총액은 IBM을 능가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들은 AWS가 존재한다는 사실뿐만 아니라 인터넷 근간을 이루는 많은 부분이 베조스의 소유라는 걸 알지 못한다.그래도 최근 아마존의 미션에 중대한 변화가 있었다. 상품을 유통·배송하는 기업에 만족하지 않고 콘텐트 제작 사업을 적극 추진하는 중이다.
베조스 전략의 중심에는 아마존 프라임(Amazon Prime)이 있다. 연회비 99달러를 내면 무료 2일 배송 서비스를 제공하는 회원제 서비스다. 회원은 프라임 뮤직과 프라임 비디오에 있는 콘텐트를 무료로 즐길 수 있어 자연스레 아마존에 무게를 실어준다고 베조스는 말했다. “골든글로브라도 받으면 신발 매출이 올라갈 것이다. 그렇게 직접적 영향력을 줄 수 있다.” 프라임 회원 수는 5400만 명이다. 이 중 극히 일부라도 넷플릭스나 스포티파이 대신 아마존 프라임을 사용한다면 경쟁업체에 실질적 타격을 줄 수 있다.
지난해, 아마존은 자체 제작 드라마 ‘트랜스페어런트(Transparent)’로 첫 골든글로브를 수상했다. 그 결과로 신발 매출이 얼마나 늘었는지는 알 수 없다. 트랜스페어런트는 지난해 첫 에미상을 수상했다. 덕분에 아마존은 에미상을 수상하고 또 판매도 하는 전 세계 유일한 기업이 됐다. 디나 쇼어가 1959년 수상한 에미상 트로피가 아마존에서 1만4995달러에 판매 중이기 때문이다. 특허 원클릭(1-Click) 기술을 통해 편하게 구매할 수 있다.
“아마존은 세상을 지배하려 하는가?” 아마존이 파이어(Fire) TV 기술로 스트리밍 시장 진출을 발표했을 때 블룸버그 TV가 한 말이다. 당시 프로그램에 출연한 전문가 중에는 미디어모프의 샤히드 칸도 있었다. 그는 아마존의 목표가 실제로 “세계 정복”에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 말을 마친 칸은 “거실을 지배할 수 없다면 세상도 지배할 수 없다”는 신중한 경고를 잊지 않았다.
그래도 베조스에게는 불필요한 충고였다. 지난해 그는 아마존 에코를 출시했다. 소비자용 인공지능(AI) 시장에 가장 과감한 방식으로 진출한 ‘스마트’ 스피커다. 기술 칼럼니스트 만주는 뉴욕타임스 기고문에서 에코가 “집이라는 가장 사적인 공간을 장악할 힘을 갖춘 기기”라며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지난 4월 추산에 따르면 약 300만 가구가 알렉사(에코를 시작하기 위해 부르는 이름)를 거실로 맞아들였다. 알렉사는 농담을 주고받을 수 있고, 베조스가 소유한 WP 기사를 읽어줄 수도 있다. 참깨 크래커를 다 먹었다고? 그럼 알렉사가 주문해준다.
“언론의 자유는 언론을 가진 자에게만 보장된다”고 잡지 더 뉴요커의 A J 리블링은 쓴 적이 있다. 버지니아 주 스프링필드에 위치한 WP의 주인은 2013년 도서 유통업계의 정복자가 됐다.
그레이엄 가문은 1933년부터 포스트를 소유했다. 워터게이트 사건을 겪었고, 미국에서 2번째로 많은 퓰리처 상을 받은 신문으로 WP를 키워냈다. 그러나 2000년대는 광고·판매에서 잔혹한 시기였고, 그 결과 전국 곳곳에서 신문사가 문을 닫았다. 비용 감축을 위해 WP는 워싱턴 취재에만 집중했다. 2009년 전국 단위 취재국, 2011년 교외 취재국을 닫았다. 사람들은 취재가 가능하긴 한지 궁금해 했다.
WP를 인수한 베조스는 “확실히 기록에 남을 신문”으로 만들기 위해 노력한다. 아마존을 세계 최대 온라인 쇼핑몰로 만들었던 ‘빨리 몸집 키우기’ 정신을 적용해 직원 100명을 보도국에 충원했다. 가브리엘 셔만은 뉴욕 잡지에 게재된 WP 프로필에서 직원 수가 뉴욕타임스 절반 밖에 되지 않지만 매일 웹사이트에 게재되는 기사의 양은 뉴욕타임스 2배라는 점을 강조했다.
베조스가 아마존을 흑자전환하는 데 거의 10년이 걸렸다. 직원 연금을 비롯해 넘겨 받은 유산비용이 엄청난 WP는 100년이 걸릴 수도 있다. 셔만은 2012년 수치를 기준으로 WP 총 매출을 연 3억5000만 달러로 추산하고, 연간 예산은 5억 달러로 책정했다.
WP 편집진 마틴 배런은 베조스의 도움으로 WP가 저널리즘의 신항로를 개척할 수 있다는 믿음을 갖고 있다. 광고 판매나 구독으로 영업매출을 올리는 구태의연한 방식에서 탈피하면서도 저속한 낚시기사로 클릭을 유도하도록 내몰리지 않는 새로운 웹 기반 모델을 모색한다는 뜻이다. “뭔가 될 것 같다”고 그는 말했다.닷컴 거품이 붕괴했을 때 아마존 기사를 썼던 스트레이트펠드 기자는 2001년 포스트를 떠나 뉴욕타임스에 둥지를 틀었고, 그곳에서 문화와 기술산업 취재를 담당한다. 지난해 그는 아마존을 “틈만 나면 전투를 벌여야 하는 멍든 일터”로 묘사한 장문의 기사를 동료 기자 조디 캔터와 함께 기고했다. 지나치게 긴 근무시간, 매정한 관리자, ‘아마존 방식(Amazon Way)’이라는 부적절한 관행 속에 다 큰 어른도 울음을 터뜨리는 환경에서 베조스는 주변을 둘러보지 않고 환하게 웃으며 데이터를 기준으로 결정을 내리는 황제처럼 묘사됐다.
버락 오바마 대통령의 전 대변인을 고용한 기업에 걸맞게 아마존은 격렬한 반박에 나섰다. (스탈린 정권과 유사한 수준으로 동료끼리 서로를 고발하는 제도 등) 특정 관행에 대해서는 장점을 주장할 수 있었지만, 타임스 기사는 어떤 공식 성명서로도 완벽히 빠져나갈 수 없는 의심의 그물망을 던졌다.
베조스의 인정사정 없음을 보여주는 사례는 많다. 유럽 물류사업 부사장이 되면 베조스와의 불쾌한 언쟁을 업무로 받아들여야 한다. 그런데 이보다 더 심각한 수모를 겪는 사람도 있다. 아마존 유통센터 직원들이다. 파견업체 직원인 이들은 매일 아마존에서 도난방지 수색을 받아야 한다. 그런데 2014년 아마존은 수색 때문에 하게 된 초과근무에 대해 수당을 지불할 필요가 없다는 대법원 재판에서 승소했다. 가십 전문 사이트 ‘고커’는 꽤 오랜 기간에 걸쳐 유통센터 직원의 이야기를 1인칭 시점에서 다루며 아마존 반대 캠페인을 이끌었다. 펜실베이니아 칼라일에 위치한 아마존 창고 직원의 에피소드도 있었는데, 그는 “베조스 님”을 위해 일했던 경험이 전반적으로 “썩은 샌드위치를 먹는 기분”이었다고 말했다.
법률적으로 우려되는 점도 있다. WP를 아마존 홍보 에이전시로 활용하려 한다는 공화당 대선후보 도널드 트럼프는 아마존 납세에 관해 제법 타당한 의문을 제기했다. 사이먼 막스 기자는 뉴스위크에 아마존이 글로벌 본사를 “작은 내륙국 룩셈부르크로 이전하면서 유리한 재정적 입지”를 얻었다고 썼다. 룩셈부르크를 실질적 조세 피난처로 이용한다는 설득력 있는 주장이다.
아마존은 이런 비난을 모두 부인할 것이다. 미사일처럼 날카로운 반론을 쏘아대는 유능한 홍보전문가들을 거느린 다국적 대기업이 아닌가. 그러나 아마존을 설립한 남자는 피라냐 역할 밖에 할 수 없다는 대중의 시각은 변하기 힘들 것이다.
지난봄 베조스는 리코드의 월트 모스버그와 인터뷰를 했다. 1시간 이상 계속된 인터뷰는 AI부터 우주선, 지난해 시애틀에 문을 연 아마존 최초의 오프라인 서점에 이르기까지 광범위한 주제를 넘나들었다. 아마존 물류유통에 대한 설명도 곁들였는데 듣다 보면 그가 물류에 매료된 지극히 드문 사람 중 한 명임을 확실히 알 수 있었다.WP를 언급할 때는 고전적 방식으로 애정을 표현해 듣는 이를 무장해제시켰다. “우리가 선거로 뽑은 지도자, 그리고 정부 기관에서 일하는 모든 사람을 점검할 필요가 있다. (WP는) 이 역할을 수행하는 위대한 신문이다.” WP가 안고 있는 문제도 많지만 그에게 WP는 그 모든 문제를 넘어선 특별한 의미를 지닌다는 점도 분명히 했다. “간식을 파는 회사가 재정난에 처했다면 절대 인수하지 않았을 거다.”
페이팔 공동 창업자이자 페이스북 초기 투자자인 피터 티엘이 고커를 상대로 한 법정 싸움에 자금을 대고 있었다는 사실이 최근 공개돼 파장이 일었다. 고커 자회사 중 하나인 온라인 매체 ‘밸리와그’가 근 10년 전 티엘의 사생활을 파헤친 기사를 실었기 때문이다. 사생활을 보장받고 싶은 억만장자의 욕구와 잊을 만하면 아마존을 도살장으로 표현하는 고커를 보며 누구보다 공감했을 베조스에게 모스버그가 의견을 물었다. 티엘의 분노를 값비싼 자만심으로 해석한 베조스는 그와 같은 공인이라면 “낯짝이 두꺼워야 한다…. 훌륭한 언론은 보호할 필요가 없다. 못난 언론이니까 보호해야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베조스가 IT 업계의 오만한 반항아가 아니라 헌법 변호사로 보인 순간이었다.
IT 거물과 얘기할 때 별다른 감흥을 받은 적이 없는 리코드의 창업자 스위셔도 이 말에 감명을 받았다. 스위셔는 “그가 무대 위에서 한 말은 믿기 힘들 정도로 용감했다”며 “실리콘밸리 사람 대다수는 티엘 사건의 의미를 감도 못 잡는다”고 덧붙였다. “낚시기사나 올리는 기자는 큰 코 다쳐야 한다”고 트위터에 글을 올린 썬 마이크로시스템즈 공동 창업자 비노드 코슬라를 지칭한 말일 것이다. 트럼프는 그런 의미에서 WP에 대해 다른 매체보다 더 악감정을 품은 걸로 보인다. 자신의 선거운동을 취재한 WP 기사를 보고 기분 상했을 트럼프는 WP를 베조스의 “장난감”이라 칭하면서 아마존의 사업 방식에 비난을 쏟아냈다. 트럼프의 발언답게 약 3% 정확한 비난이었다. 베조스는 모스버그와 인터뷰를 하면서 트럼프를 향해 엄숙한 설교를 늘어놓는 기쁨도 누렸다. “우리는 대단한 언론의 자유를 갖춘 대단한 민주국가에 살고 있다. 대선 후보라면 그 사실을 받아들여야 한다.” 며칠 뒤, 트럼프는 자신의 선거운동 행사에서 WP 기자 출입을 아예 금지시켰다.
허를 찌르는 행보는 베조스가 선호하는 작전으로 보인다. 기사 작성이 끝나가던 주에 아마존 ‘인스파이어’에 관한 소식을 들었다. 뉴욕타임스는 이를 두고 “초등 및 중등 교육 기술 시장을 향한 파급력 있는 진입”이라 보도했다. 그리고 이틀 뒤, 아마존은 PBS 키즈에 올라오는 거의 모든 콘텐트 스트리밍 서비스를 독점 제공하는 계약을 체결했다. 아마존 물류창고는 아마 곧 100% 로봇으로 교체될지도 모른다. 비뚤어지긴 했지만 근로자 불만 해결에는 아주 효과적인 해결책이다.
생후 30년을 맞은 아마존은 열광적이고 야심만만한 에너지로 넘친다. 시애틀 도심에 아마존 캠퍼스를 세우는 프로젝트에 40억 달러를 지출하고서도 최근에는 트래블로지 호텔을 인수해 노숙자 임시 쉼터로 만들겠다는 계획을 세웠다.
“지나치게 복잡한 존재라는 게 베조스의 단점 중 하나”라고 스위셔는 말했다. 당연히 그의 장점이기도 하다. 그는 자선사업가로 부드럽게 변신하는 중일까? 아님 미디어 거물이 되려는 걸까? 아마존 세금은 다 납부할까? 물류창고의 노동 관행을 개선할까? 우리 사회에 유산을 남겨줄까, 아님 엄청난 부자만 화성으로 보내줄 우주선을 만드는 데 그칠까?
‘아직은’ 알렉사도 답하지 못하는 질문이다.
- 알렉산더 나자리안 뉴스위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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