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도 중소도시의 새로운 기회가 올까 [김현아의 시티라이브]
반드시 규모가 커야 좋은 도시는 아니다
비경제적 요인의 중소도시 매력, 로컬리즘
[김현아 가천대 사회정책대학원 초빙교수] 이론 물리학자인 제프리 웨스트(Geoffrey West)는 그의 저서 ‘스케일(Scale)’에서 도시를 대표적인 ‘규모의 경제’ 사례라고 이야기했다. 그는 도시는 규모가 커질수록 경제적 생산성(GDP‧특허 수)과 혁신이 비례 이상으로 증가하는 초선형 스케일링(Superliner Scaling) 법칙이 나타난다고 했다.
생물체는 몸집이 커질수록 단위당 에너지 소비가 비례 이하로 증가하는 것과 달리 기업과 도시는 일정 규모 이상이 되면 단위당 자원 사용이 효율적이 돼 기반 비용과 에너지 소비가 오히려 줄어드는 반면, 상호작용과 혁신의 기회는 많이 증가한다는 것이다. 실제로 글로벌 대도시들은 이런 성장패턴을 이어가고 있다. 그러나 그는 도시의 규모가 너무 비대해질 경우 생물체와 같이 한계에 도달할 수 있다고 경고하고 있다. 즉 도시가 지나치게 커지면 ▲인프라 유지비용 폭증 ▲경제활동의 효율성 저하 ▲환경파괴와 자원 고갈 ▲혁신의 둔화가 일어나면서 스케일의 법칙이 반대로 일어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는 도시를 인간과 환경이 함께 상호작용하면서 변화하는 유기체(Organic Structure)로 본 많은 철학자와 도시학자들의 주장과도 일치한다. 그리고 팬데믹 이후 전 세계의 대도시 중 일부는 유기체로 자정작용을 자의 반 타의 반 경험하고 있다.
고물가 고금리가 고착되고 있는 대도시의 삶, 가성비를 고민하다
요즘 모두가 불경기라고 한다. 특히 백화점과 대형 쇼핑몰이 매출 부진으로 속앓이하고 있다고 한다. 환율이 급등하면서 명품소비도 주춤하는 모양새다. 그런데 딱 한 곳(적어도 내가 경험한 바에 의하면) 늘 사람이 붐비는 곳이 있다. 바로 ‘다이소’ 매장이다. 경기 침체로 소비자들이 가격에 민감해지고 가격 대비 성능(가성비)을 중시하면서 나타나는 현상이다.
비단 생필품 가격만의 문제가 아니다. 고물가‧고금리가 이어지면서 대도시의 주거비도 부담스럽기는 매한가지이다. 비록 우리나라 서울은 팬데믹 기간 집값이 더 많이 올랐지만, 서울을 떠나 좀 더 저렴한 주거비를 지불할 수 있는 도시로 이동하는 수요가 늘었다. 팬데믹 기간(2020년 1월~2021년 10월) 동안 서울에서는 총 15만 1310명의 인구가 순유출됐다. 반면 같은 기간 경기도는 30만 1281명의 인구가 순유입됐다. 글로벌 대도시에서는 이런 현상이 더욱 두드러진다. 특히 미국에서는 팬데믹을 겪으면서 ▲원격 근무의 확산 ▲대도시의 높은 생활비 ▲더 나은 삶의 질 추구 등의 경향이 복합적으로 작용하면서 많은 사람들이 중소도시로 이동했다. 물론 이 역시도 완전한 ‘도시 탈출’ 현상이라기보다는 대도시 주변의 중소도시나 교외 지역으로의 이동이 주를 이루었다.
이뿐만이 아니다. 대도시의 화려한 상징으로 여겨졌던 명품 브랜드들이 중소도시에서 매장을 열고 있다. 아직은 팝업스토어나 리조트 안의 매장으로 소비계층을 확대하려는 마케팅전략의 일부분이지만 MICE 산업도 중소도시로 개최 장소를 이전하는 등 중소도시를 향한 시장과 산업의 관심은 점차 확대되고 있는 분위기다. MICE란 기업 회의(Meeting)‧인센티브관광(Incentive tour)‧국제회의(Convention)‧전시(Exhibition))를 의미하는 영어 단어의 첫머리를 딴 것을 말한다.
UN은 2015년부터 지속가능한발전 목표 실행을 위해 중소도시에 관심을 두기 시작했다. 기술 발전으로 거리 극복과 이동에 큰 혁신이 일어난 것도 영향을 준다. 제조업 중심에서 지식 및 기술 기반 산업으로 산업구조가 변화하면서 세계 각국의 중소도시들은 이런 기업들의 유치에 열을 올리고 있다. 여기에 특별한 경험을 찾아 이동하는 MZ세대들의 부상과 로컬리즘의 부활이 중소도시의 매력을 알리는데 크게 기여하고 있다.
얼마 전 나는 서점에서 주요 국가의 중소도시 여행에 대한 서적을 꽤 여러 권 발견했다. 대도시 위주의 여행도 좋지만 잘 알려지지 않은 중소도시를 찾아 여행하려는 수요가 많아진 것이다. 전 세계적으로 고물가인 것도 한몫하는 것 같다. 호텔비, 식음료비 등이 상대적으로 비싼 대도시보다는 물가가 저렴한 중소도시에서 경비가 더 저렴한 이유도 있다. 그런데 꼭 비용만이 문제는 아니다. 대도시가 주는 첨단과 편리함도 좋지만 ‘색다른 경험’을 찾는 이들도 많기 때문이다. MICE 산업도 마찬가지이다.
중소도시로 향하는 MICE 행사, 새로운 기회 될까
중소도시에 대한 MICE 산업의 관심은 코로나 19이전부터 시작됐다. 각종 국제 행사의 유치경쟁이 치열해지자 좀 더 적은 예산으로 더 큰 경험의 가치를 누리게 하는 가성비 전략이 필요했다. 통상 뉴욕‧런던‧홍콩과 같은 일선 도시(1 tier cities)를 선호하던 대규모 행사들이 미국 내 이선‧삼선 도시들을 찾아 이동하기 시작했는데 가장 직접적인 이유는 바로 ‘비용 절감’이었다.
일선 도시에서의 대규모 행사 비용에 비해 중소도시에서 개최할 경우 30~40% 정도 경비가 절감된다고 하니 행사 주체들이 관심을 두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그렇지만 중소도시로의 대규모 행사가 이동하는 데는 비경제적 이유도 많아졌다. 세계화가 진전되면서 세계의 대도시 모습들은 대동소이하다. 마천루는 형태만 다를 뿐 이제 더 이상 신기하지 않다. 도시가 주는 첨단 문화와 서비스는 기술과 통신의 발달로 그 혜택이 평평해졌다. 대도시라고 더 특별하지 않다. 대신 중소도시는 여전히 지역 색이 남아 있고 지역만의 독특한 문화‧음식 등 컨텐츠가 새로운 경험을 만들어 내고 있다.
우리나라 도시들은 모두가 서울과 경쟁한다. 서울이 그만큼 사람과 자본을 끌어모으는 자석(Magnet)이기는 하지만 모두가 서울이 될 수는 없다. 그런데도 주요 대도시의 도시 전략이나 경제정책을 보면 서울과 대동소이하다. ‘따라 하기’로는 상대를 이길 수 없다. ‘모방’이 아닌 ‘차별화’가 필요한데 앞으로 소개할 세계 주요국의 중소도시의 부상 사례와 전략이 단서와 자극이 되기를 바란다. (다음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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