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동관 한화큐셀 전무
김동관 한화큐셀 전무
김동관 한화큐셀 전무는 한국의 태양광 산업을 주도하고 있는 한화그룹의 김승연 회장의 장남이면서, ‘태양광 전도사’라 불릴 정도로 그룹의 태양광 사업을 사실상 주도해 오고 있다. “18세기에 산업혁명이 있었다면, 현재의 우리는 에너지 혁명을 경험하는 첫 번째 세대가 될 것입니다.” 지난 9월 7일 오후 제주도 서귀포시 중문의 제주국제컨벤션센터(ICC). 2016년 글로벌녹색성장 주간(GGGW 2016)의 아시아 장관급 회의가 진행 중인 행사장 연단에 노타이에 짙은 감색 정장 차림의 젊은이가 기조 연설자로 나와 에너지 혁명을 역설했다. 한화큐셀 김동관(33) 전무였다.
아직 30대 초반에 불과한 김 전무가 어떻게 장관급 국제행사의 기조 연설자로 나올 수 있었을까. 김 전무는 한국의 태양광 산업을 주도하고 있는 한화그룹의 김승연 회장의 장남이면서, ‘태양광 전도사’라 불릴 정도로 그룹의 태양광 사업을 사실상 주도해 오고 있는 ‘엄친아’다. 미국 하버드대(정치학과)를 졸업하고 공군 장교로 군 복무까지 마친 그는 2010년 1월 한화그룹 차장으로 입사했다. 이후 2년 만에 태양광 모듈 생산업체인 한화솔라원의 기획실장을 맡는 것을 시작으로, 한화큐셀 전략마케팅실장-한화솔라원 영업담당실장-한화큐셀 상무 등을 거치면서 한화그룹 태양광 산업의 핵심 분야를 이끌어 오고 있다.
한화그룹이 태양광 산업에 힘을 쏟는 시점도 김 전무의 경력과 일치한다. 한화는 2010년 8월 나스닥에 상장돼 있던 세계 4위의 중국 태양광 모듈업체 솔라펀파워홀딩스를 인수, 한화솔라원으로 사명을 바꾸고 본격적으로 태양광 사업을 시작했다. 한화는 그해 초 새로운 경영비전으로 ‘퀄리티 그로스(질적 성장ㆍQuality Growth) 2020’을 내세우고, 태양광과 바이오산업 등 신성장동력 분야를 집중 육성해 2020년까지 그룹 매출 140조원, 영업이익 12조원을 달성하겠다는 목표를 세운바 있다.
2012년에는 당시 글로벌 1등 태양광 기업으로 불리던 독일 큐셀이 유럽 금융위기 끝에 파산신청을 하자, 이를 인수해 ‘한화큐셀’이라는 이름으로 재출범시켰다. 당시 한화솔라원 기획실장이던 김 전무가 큐셀 인수를 주도했다. 김 전무는 큐셀을 살리기 위해 적(籍)을 한화솔라원에서 큐셀로 바꾸고, 거처를 아예 독일로 옮기기까지 했다. 태양광 시장 업황이 악화하고 폴리실리콘 가격이 바닥을 모른 채 추락하던 때였지만, 국제유가가 다시 100달러 이상 지속되던 시점이라, 신성장동력으로 태양광을 선택한 한화의 결정은 아직 설득력이 있었다.
하지만, 세계경제는 한화의 뜻대로 흘러가지 않았다. 2014년 가을부터 국제원유가가 다시 100달러 아래로 급락하기 시작했다. 태양광으로 만드는 전기 값이 화석연료로 만드는 전기 값과 같아지는 시점을 말하는 ‘그리드 패러티’(grid parity)는 멀어져만 갔다. 자연스레 태양광의 수익성은 점점 더 떨어졌다.
하지만 김 전무는 흔들리지 않았다. 부친 김승연 회장의 신뢰도 힘이 됐다. 2014년 1월 스위스 다보스포럼에 참석한 김동관 당시 한화솔라원 영업담당실장은 현지 인터뷰에서 “한화그룹은 태양광 사업의 성장가능성에 대한 믿음을 갖고 있다. 태양광 등 에너지 사업에 지속적으로 투자할 것이고, 단순한 태양광 관련 셀이나 모듈 제조뿐 아니라 태양광 발전소까지 운영하고 투자하면 시장규모가 지속적으로 커질 것이다”라며 자신했다.
김 전무는 지난해 1월에도 다포스 포럼에 참석해 미국 폭스뉴스와 인터뷰에서 태양광 시장의 전망을 확신했다. 그는 “전력 생산용으로 사용되는 석유 비중이 매우 낮기 때문에 유가하락이 태양광 시장에 나쁜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며 “오히려 전 세계 전력생산의 주원료인 천연가스의 경우 지난 수년간 매우 낮은 수준을 유지함에도 불구하고, 태양광 수요는 끊임없이 빠른 성장을 유지하고 있다”고 자신감을 보였다. 한화는 규모의 경제로 글로벌 시장 지배력을 한층 강화하는 쪽으로 강수(强手)를 두었다. 지난해 2월 그룹 태양광 사업의 양대 축이 된 한화솔라원과 한화큐셀을 ‘한화큐셀’로 통합했다. 이를 통해 셀 생산규모 기준, 세계 1위의 태양광 회사로 거듭났다. 양사 합병에는 김 전무가 주도적 역할을 했다. 통합된 한화큐셀은 지난해 4월 미국에서 두번째로 큰 전력회사인 넥스트에라(NextEra Energy)에 1.5GW 규모의 모듈 공급계약을 체결하는 실적을 거뒀다. 이 물량은 태양광 업계 단일 공급계약으로는 사상 최대 규모였다.
그의 뚝심이 통한 것일까. 지난해 1분기까지 연속 적자를 내던 한화큐셀은 2분기에 처음으로 흑자전환에 성공했다. 독일기업인 큐셀을 인수한 후 처음으로 낸 흑자였다. 한화큐셀은 올해 2분기에 매출 6억 3800만 달러, 영업이익 8450만 달러를 기록했다. 영업이익은 전분기 대비 50% 가량, 지난해 같은 기간과 비교하면 8350%나 급등했다. 한화큐셀은 올 1분기 기준으로 총 5.2GW의 셀 생산량을 보유하게 돼 세계 1위의 태양광 회사로서 입지를 더욱 굳히게 됐다. 또 한국에서도 1.4GW의 셀 공장과 1.5GW의 모듈 공장을 가동, 국내 태양광 산업 육성에도 앞장서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한화큐셀의 성장은 그룹의 성장이기도 했다. 한화그룹은 태양광 사업의 호조세에 힘입어 올해 포브스 글로벌 2000 기업 순위에서 897위에 올랐다. 지주회사 역할을 하는 ㈜한화는 지난 7월 미국 포춘이 선정하는 ‘포춘 글로벌 500(세계 500대 기업)’ 리스트에서 277위를 기록했다. 지난해(329위)보다 52단계나 뛰어오른 기록으로 상승세로 보면 국내 기업 중 단연 최고 수준이다.
한화큐셀의 성과에 힘입어 그룹내 김 전무의 입지는 한층 굳어지고 있다. 김 전무는 2014년 11월, 한화그룹과 삼성그룹의 방산ㆍ화학 계열사를 인수하는 IMF 이후 민간분야에서의 최대로 꼽히는 ‘빅딜’ 과정에서도 큰 역할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과 하버드 동문인 점이 당시 거래 성사에 영향을 미쳤을 것이라는 것이 세간의 평이다.
한화그룹 관계자는 “김 전무는 협상 당시 프랑스 탈레스와 토탈을 방문해 삼성그룹과 빅딜 취지를 설명하고 파트너로서 이해를 구하는 등 빅딜에 주도적으로 개입했다”며 “미국 명문대를 졸업해 글로벌 감각이 뛰어나고 해외 네트워크가 활발한 게 김 전무의 장점”이라고 말했다.
- 최준호 기자 joonho@joongang.co.kr
ⓒ이코노미스트(https://economist.co.kr) '내일을 위한 경제뉴스 이코노미스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아직 30대 초반에 불과한 김 전무가 어떻게 장관급 국제행사의 기조 연설자로 나올 수 있었을까. 김 전무는 한국의 태양광 산업을 주도하고 있는 한화그룹의 김승연 회장의 장남이면서, ‘태양광 전도사’라 불릴 정도로 그룹의 태양광 사업을 사실상 주도해 오고 있는 ‘엄친아’다. 미국 하버드대(정치학과)를 졸업하고 공군 장교로 군 복무까지 마친 그는 2010년 1월 한화그룹 차장으로 입사했다. 이후 2년 만에 태양광 모듈 생산업체인 한화솔라원의 기획실장을 맡는 것을 시작으로, 한화큐셀 전략마케팅실장-한화솔라원 영업담당실장-한화큐셀 상무 등을 거치면서 한화그룹 태양광 산업의 핵심 분야를 이끌어 오고 있다.
한화그룹이 태양광 산업에 힘을 쏟는 시점도 김 전무의 경력과 일치한다. 한화는 2010년 8월 나스닥에 상장돼 있던 세계 4위의 중국 태양광 모듈업체 솔라펀파워홀딩스를 인수, 한화솔라원으로 사명을 바꾸고 본격적으로 태양광 사업을 시작했다. 한화는 그해 초 새로운 경영비전으로 ‘퀄리티 그로스(질적 성장ㆍQuality Growth) 2020’을 내세우고, 태양광과 바이오산업 등 신성장동력 분야를 집중 육성해 2020년까지 그룹 매출 140조원, 영업이익 12조원을 달성하겠다는 목표를 세운바 있다.
2012년에는 당시 글로벌 1등 태양광 기업으로 불리던 독일 큐셀이 유럽 금융위기 끝에 파산신청을 하자, 이를 인수해 ‘한화큐셀’이라는 이름으로 재출범시켰다. 당시 한화솔라원 기획실장이던 김 전무가 큐셀 인수를 주도했다. 김 전무는 큐셀을 살리기 위해 적(籍)을 한화솔라원에서 큐셀로 바꾸고, 거처를 아예 독일로 옮기기까지 했다. 태양광 시장 업황이 악화하고 폴리실리콘 가격이 바닥을 모른 채 추락하던 때였지만, 국제유가가 다시 100달러 이상 지속되던 시점이라, 신성장동력으로 태양광을 선택한 한화의 결정은 아직 설득력이 있었다.
하지만, 세계경제는 한화의 뜻대로 흘러가지 않았다. 2014년 가을부터 국제원유가가 다시 100달러 아래로 급락하기 시작했다. 태양광으로 만드는 전기 값이 화석연료로 만드는 전기 값과 같아지는 시점을 말하는 ‘그리드 패러티’(grid parity)는 멀어져만 갔다. 자연스레 태양광의 수익성은 점점 더 떨어졌다.
하지만 김 전무는 흔들리지 않았다. 부친 김승연 회장의 신뢰도 힘이 됐다. 2014년 1월 스위스 다보스포럼에 참석한 김동관 당시 한화솔라원 영업담당실장은 현지 인터뷰에서 “한화그룹은 태양광 사업의 성장가능성에 대한 믿음을 갖고 있다. 태양광 등 에너지 사업에 지속적으로 투자할 것이고, 단순한 태양광 관련 셀이나 모듈 제조뿐 아니라 태양광 발전소까지 운영하고 투자하면 시장규모가 지속적으로 커질 것이다”라며 자신했다.
김 전무는 지난해 1월에도 다포스 포럼에 참석해 미국 폭스뉴스와 인터뷰에서 태양광 시장의 전망을 확신했다. 그는 “전력 생산용으로 사용되는 석유 비중이 매우 낮기 때문에 유가하락이 태양광 시장에 나쁜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며 “오히려 전 세계 전력생산의 주원료인 천연가스의 경우 지난 수년간 매우 낮은 수준을 유지함에도 불구하고, 태양광 수요는 끊임없이 빠른 성장을 유지하고 있다”고 자신감을 보였다.
세계 1위의 태양광 회사로 우뚝 서
그의 뚝심이 통한 것일까. 지난해 1분기까지 연속 적자를 내던 한화큐셀은 2분기에 처음으로 흑자전환에 성공했다. 독일기업인 큐셀을 인수한 후 처음으로 낸 흑자였다. 한화큐셀은 올해 2분기에 매출 6억 3800만 달러, 영업이익 8450만 달러를 기록했다. 영업이익은 전분기 대비 50% 가량, 지난해 같은 기간과 비교하면 8350%나 급등했다. 한화큐셀은 올 1분기 기준으로 총 5.2GW의 셀 생산량을 보유하게 돼 세계 1위의 태양광 회사로서 입지를 더욱 굳히게 됐다. 또 한국에서도 1.4GW의 셀 공장과 1.5GW의 모듈 공장을 가동, 국내 태양광 산업 육성에도 앞장서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한화큐셀의 성장은 그룹의 성장이기도 했다. 한화그룹은 태양광 사업의 호조세에 힘입어 올해 포브스 글로벌 2000 기업 순위에서 897위에 올랐다. 지주회사 역할을 하는 ㈜한화는 지난 7월 미국 포춘이 선정하는 ‘포춘 글로벌 500(세계 500대 기업)’ 리스트에서 277위를 기록했다. 지난해(329위)보다 52단계나 뛰어오른 기록으로 상승세로 보면 국내 기업 중 단연 최고 수준이다.
한화큐셀의 성과에 힘입어 그룹내 김 전무의 입지는 한층 굳어지고 있다. 김 전무는 2014년 11월, 한화그룹과 삼성그룹의 방산ㆍ화학 계열사를 인수하는 IMF 이후 민간분야에서의 최대로 꼽히는 ‘빅딜’ 과정에서도 큰 역할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과 하버드 동문인 점이 당시 거래 성사에 영향을 미쳤을 것이라는 것이 세간의 평이다.
한화그룹 관계자는 “김 전무는 협상 당시 프랑스 탈레스와 토탈을 방문해 삼성그룹과 빅딜 취지를 설명하고 파트너로서 이해를 구하는 등 빅딜에 주도적으로 개입했다”며 “미국 명문대를 졸업해 글로벌 감각이 뛰어나고 해외 네트워크가 활발한 게 김 전무의 장점”이라고 말했다.
- 최준호 기자 joonho@joongang.co.kr
ⓒ이코노미스트(https://economist.co.kr) '내일을 위한 경제뉴스 이코노미스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많이 본 뉴스
1‘EV9’ 매력 모두 품은 ‘EV9 GT’...기아, 美서 최초 공개
2민희진, 빌리프랩 대표 등 무더기 고소...50억원 손배소도 제기
3中, ‘무비자 입국 기간’ 늘린다...韓 등 15일→30일 확대
4빙그레, 내년 5월 인적분할...지주사 체제 전환
5한화오션, HD현대重 고발 취소...“국익을 위한 일”
6北, '파병 대가'로 러시아서 '석유 100만 배럴' 이상 받았다
7지라시에 총 맞은 알테오젠 '급락'…김범수 처남은 저가 매수 나서
8 대통령실 "추경, 논의도 검토도 결정한 바도 없었다"
9"다 막혔는데 이거라도.." 금리 12% 저축은행 신용대출에 고신용자 몰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