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동호의 반퇴의 정석 (16)] 여행도 100세 시대의 필수품
[김동호의 반퇴의 정석 (16)] 여행도 100세 시대의 필수품
부부 모두 70세를 넘긴 A씨네는 1년에 최소한 한 차례 해외 여행길에 오른다. 최근 방문지는 비행기로 2시간 25분 거리의 대만이었다. A씨네는 환갑을 넘기면서 지인들과의 모임을 통해 자주 외유를 즐기고 있다. 그만큼 노후가 즐겁고 활력이 넘친다. 이와 달리 이들과 같은 패키지 여행에 참여한 70대 중반 B씨네는 첫 외유라 몸에 안 맞는 옷을 입은 것처럼 불편을 겪었다. 처음엔 함께 온 딸들에게 계속 불평을 늘어놓기도 했다. 딸들의 성화에 못 이겨 아들·며느리·사위·손자와 함께 왔는데 너무 걷는 게 많아 이럴 줄 알았으면 안 왔을 것이라는 불만이었다. 하지만 B씨네도 3박4일 일정을 보내면서 차츰 재미를 내기 시작해 여행 후반부로 가자 한결 표정이 펴지고 웃음꽃도 자주 피웠다. 노후가 길어지면서 여행이 필수품이 되고 있다. 과거에는 지방에서 서울이나 제주도나 한 번 방문하면 큰 여행이었지만 이제 은퇴자에게 해외 여행시대가 일반화되고 있다. 한국보다 20년 가량 고령화가 먼저 진행된 일본의 판박이다. 일본에서는 현업을 마친 퇴직자의 큰 즐거움 가운데 하나가 해외 여행이다. 올해 72세 다나카는 1년에 한 차례 해외에 나간다. 도쿄에서 부동산관리 회사에 다닌 그는 58세에 명예퇴직해 환갑 이후 매년 해외에 나갔으니 올해로 12년째가 됐다. 65세를 넘긴 뒤로는 열흘에 50만엔짜리 럭셔리 상품을 주로 선택해왔다. 웬만한 곳은 두루 다녀봤기 때문이다.
다나카는 은퇴 초기에는 해외 여행에 관심이 없었다. 하지만 환갑을 지나면서 힘이 남아 있을 때 나가야 한다는 주변의 권유에 따라 해외 여행에 본격적으로 눈을 돌리게 됐다. 이런 수요가 많아 일본에선 여행사가 실버 고객을 위한 상품을 다양하게 준비해놓고 있다. 10만엔부터 50만엔까지 상품 종류는 다양하다. 주로 유럽을 샅샅이 돌아보는 코스가 은퇴자들에게 인기다. 다나카는 최근 동유럽을 지긋하게 돌아보는 스페셜 패키지를 다녀왔다. 노후준비가 잘 돼 있어 최고급 상품을 이용했다. 그는 “앞으로도 무릎이 괜찮을 때까지는 1년에 한 번은 해외에 나가는 시간을 가질 예정”이라고 말했다.
긴 노후를 보내려면 여행이 필요하다. 자녀들이 모두 출가하고 부부만 덩그러니 살고 있노라면 가끔 바람을 쐬고 싶은 게 인지상정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노년에 여행을 하려면 사전에 계획적으로 준비하면 좋다. 경제력은 기본 전제다. 경제적으로 준비가 안 돼 노후 빈곤에 시달리는 처지라면 여행은 남의 나라 이야기다. 하지만 어느 정도 노후 준비가 잘 돼 있는 경우 환갑 후 30년 가운데 중반부까지는 여행을 통해 황혼기 인생을 풍요롭게 만들 수 있다. 여행 업계 관계자는 “가이드로 만난 고객 가운데 92세 노인을 모셔본 적도 있다”고 말했다. “너무 정정해서 30대 가이드가 헉헉거리면서 따라다니는 형국이 됐다”는 경험담을 털어놓기도 했다.
경제적으로 준비가 돼 있어도 끝나는 게 아니다. 체계적인 여행 계획이 수립이 필요하다. 가장 피해야 할 것은 자식들이 나선 ‘묻지마 효도관광’이다. 2014년 수도권의 한 마을에서 있었던 일이다. 평생 일하고 키워주신 은혜에 보답하겠다고 뜻을 모은 같은 동네 주민들이 자신들의 70대 부모를 동유럽 15박 16일 코스로 패키지 여행을 보내줬다. 40~50대 자녀는 물론 여행을 떠나는 70대 부모도 너무 행복한 프로그램이었다. 그러나 막상 여행길에 오른 70대 관광객은 출발 하루 만에 어려움에 봉착했다.
유럽 여행은 국가 간에는 비행기나 고속철도로 이동하지만 같은 나라에서는 버스 투어를 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기본적으로 체력이 왕성하지 않으면 극도의 피로에 시달리기 쉽다. 더구나 아침 일찍 밥을 먹이고 밤 늦게까지 코스를 돌아다니는 패키지 여행은 70대 고령자에게는 고역이 아닐 수 없다. 더구나 70대에게 빵과 치즈 위주의 유럽식 음식이 입에 맞을 리 없다.
이들은 중간에 여행을 포기하고 싶다는 호소를 하기도 했지만 비행기를 비롯해 예약 관계 때문에 그럴 수도 없었다. 결국 나이에 걸맞지 않은 여행 프로그램 때문에 이들은 엄청난 고생을 했다. 물론 이국적인 풍경을 보고 새로운 문화를 접하면서 소소한 재미도 있었다고 한다. 그럼에도 해외 여행 경험이 많지 않은 70대 고령자에게 효도관광이라면서 장기간에 걸친 여행이 즐겁기만 했을 리는 없다. 따라서 은퇴 후 해외 여행은 상대적으로 젊을 때 멀리 가고, 나이가 들어가면서 가까운 곳으로 거리를 좁힐 필요가 있다. 여행의 성격도 많이 걷는 코스는 조금이라도 젊을 때, 나이가 들어갈수록 휴양형 여행을 떠나는 것이 좋다.
국내 여행도 좋다.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는 말처럼 과거에 가봤던 곳도 새롭게 업그레이드 된 곳이 적지 않다. 과거에는 없던 둘레길이 전국 곳곳에 들어서고 지방자치단체마다 경쟁적으로 관광객 유치에 나서면서 과거에 없던 볼거리와 체험거리가 새로 등장한 곳도 적지 않다. 국내 관광은 사시사철 언제든 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지만 이 역시 나이가 들수록 멀리 가거나 장기 여행은 어렵다는 점에서 조금이라도 젊을 때 멀리 오래 다니고 나중에는 거리와 기간을 줄이는 식으로 바꿔나갈 필요가 있다. 개인차는 있겠지만 70대 중반을 넘어서면 직접 운전이 어렵다는 점도 노후 여행의 주의점이다. 나이가 들어선 가고 싶어도 못 가니 조금이라도 젊을 때 여행을 떠나라는 얘기다.
이런 점에서 여행 5계명을 숙지해둘 필요가 있다. ①젊어서 많이 다녀라. 100세 시대에는 환갑을 기점으로 대다수가 1차 퇴직을 하게 되면서 노후 30년을 보내야 한다. 이 때 무료하거나 우울한 노후를 보내지 않으려면 여행을 잘 하는 법을 젊어서부터 익혀둘 필요가 있다. ②먼 곳부터 다녀라. 나이가 들수록 멀리 가기 어려워진다. 비행시간 10시간 넘는 곳부터 다니고 동남아는 나중에 가도 늦지 않다. 조금이라도 젊어선 탐사형으로 나중엔 휴양형으로 옮겨가도 좋다. ③여행 갈 때 돈을 넉넉히 가져가라. 여행은 즐거움을 돈으로 사는 과정이라고 할 수 있다. 맛있는 것 많이 사먹고, 갖고 싶은 것 있으면 자제하지 말고 사야 한다. 물론 불필요한 물건을 사지 않고 낭비를 줄이는 눈을 갖는 것도 중요하다. ④휴가를 아껴두지 마라. 부장급 이상 되는 1960년대 출생자는 연차가 25일에 달하는 기업이 많다. 그러나 여름에 고작 5일 정도 쓰고 나머지는 버린다. 젊어서 여행을 다녀보지 못하면 나이가 들어서는 여행이 더욱 어려워진다. ⑤패키지와 자유여행을 상황에 맞춰 선택하라. 장단점이 있으므로 선택적으로 활용한다. 패키지는 틀이 짜여 있지만 체계적으로 볼 수 있다. 자유여행은 여유가 있지만 효율이 떨어질 수 있다.
필자는 중앙일보 논설위원이다(dongh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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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 여행은 일본 퇴직자의 큰 즐거움
다나카는 은퇴 초기에는 해외 여행에 관심이 없었다. 하지만 환갑을 지나면서 힘이 남아 있을 때 나가야 한다는 주변의 권유에 따라 해외 여행에 본격적으로 눈을 돌리게 됐다. 이런 수요가 많아 일본에선 여행사가 실버 고객을 위한 상품을 다양하게 준비해놓고 있다. 10만엔부터 50만엔까지 상품 종류는 다양하다. 주로 유럽을 샅샅이 돌아보는 코스가 은퇴자들에게 인기다. 다나카는 최근 동유럽을 지긋하게 돌아보는 스페셜 패키지를 다녀왔다. 노후준비가 잘 돼 있어 최고급 상품을 이용했다. 그는 “앞으로도 무릎이 괜찮을 때까지는 1년에 한 번은 해외에 나가는 시간을 가질 예정”이라고 말했다.
긴 노후를 보내려면 여행이 필요하다. 자녀들이 모두 출가하고 부부만 덩그러니 살고 있노라면 가끔 바람을 쐬고 싶은 게 인지상정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노년에 여행을 하려면 사전에 계획적으로 준비하면 좋다. 경제력은 기본 전제다. 경제적으로 준비가 안 돼 노후 빈곤에 시달리는 처지라면 여행은 남의 나라 이야기다. 하지만 어느 정도 노후 준비가 잘 돼 있는 경우 환갑 후 30년 가운데 중반부까지는 여행을 통해 황혼기 인생을 풍요롭게 만들 수 있다. 여행 업계 관계자는 “가이드로 만난 고객 가운데 92세 노인을 모셔본 적도 있다”고 말했다. “너무 정정해서 30대 가이드가 헉헉거리면서 따라다니는 형국이 됐다”는 경험담을 털어놓기도 했다.
경제적으로 준비가 돼 있어도 끝나는 게 아니다. 체계적인 여행 계획이 수립이 필요하다. 가장 피해야 할 것은 자식들이 나선 ‘묻지마 효도관광’이다. 2014년 수도권의 한 마을에서 있었던 일이다. 평생 일하고 키워주신 은혜에 보답하겠다고 뜻을 모은 같은 동네 주민들이 자신들의 70대 부모를 동유럽 15박 16일 코스로 패키지 여행을 보내줬다. 40~50대 자녀는 물론 여행을 떠나는 70대 부모도 너무 행복한 프로그램이었다. 그러나 막상 여행길에 오른 70대 관광객은 출발 하루 만에 어려움에 봉착했다.
유럽 여행은 국가 간에는 비행기나 고속철도로 이동하지만 같은 나라에서는 버스 투어를 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기본적으로 체력이 왕성하지 않으면 극도의 피로에 시달리기 쉽다. 더구나 아침 일찍 밥을 먹이고 밤 늦게까지 코스를 돌아다니는 패키지 여행은 70대 고령자에게는 고역이 아닐 수 없다. 더구나 70대에게 빵과 치즈 위주의 유럽식 음식이 입에 맞을 리 없다.
이들은 중간에 여행을 포기하고 싶다는 호소를 하기도 했지만 비행기를 비롯해 예약 관계 때문에 그럴 수도 없었다. 결국 나이에 걸맞지 않은 여행 프로그램 때문에 이들은 엄청난 고생을 했다. 물론 이국적인 풍경을 보고 새로운 문화를 접하면서 소소한 재미도 있었다고 한다. 그럼에도 해외 여행 경험이 많지 않은 70대 고령자에게 효도관광이라면서 장기간에 걸친 여행이 즐겁기만 했을 리는 없다.
패키지 여행은 70대에겐 고역 될 수도
국내 여행도 좋다.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는 말처럼 과거에 가봤던 곳도 새롭게 업그레이드 된 곳이 적지 않다. 과거에는 없던 둘레길이 전국 곳곳에 들어서고 지방자치단체마다 경쟁적으로 관광객 유치에 나서면서 과거에 없던 볼거리와 체험거리가 새로 등장한 곳도 적지 않다. 국내 관광은 사시사철 언제든 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지만 이 역시 나이가 들수록 멀리 가거나 장기 여행은 어렵다는 점에서 조금이라도 젊을 때 멀리 오래 다니고 나중에는 거리와 기간을 줄이는 식으로 바꿔나갈 필요가 있다. 개인차는 있겠지만 70대 중반을 넘어서면 직접 운전이 어렵다는 점도 노후 여행의 주의점이다. 나이가 들어선 가고 싶어도 못 가니 조금이라도 젊을 때 여행을 떠나라는 얘기다.
이런 점에서 여행 5계명을 숙지해둘 필요가 있다. ①젊어서 많이 다녀라. 100세 시대에는 환갑을 기점으로 대다수가 1차 퇴직을 하게 되면서 노후 30년을 보내야 한다. 이 때 무료하거나 우울한 노후를 보내지 않으려면 여행을 잘 하는 법을 젊어서부터 익혀둘 필요가 있다. ②먼 곳부터 다녀라. 나이가 들수록 멀리 가기 어려워진다. 비행시간 10시간 넘는 곳부터 다니고 동남아는 나중에 가도 늦지 않다. 조금이라도 젊어선 탐사형으로 나중엔 휴양형으로 옮겨가도 좋다. ③여행 갈 때 돈을 넉넉히 가져가라. 여행은 즐거움을 돈으로 사는 과정이라고 할 수 있다. 맛있는 것 많이 사먹고, 갖고 싶은 것 있으면 자제하지 말고 사야 한다. 물론 불필요한 물건을 사지 않고 낭비를 줄이는 눈을 갖는 것도 중요하다. ④휴가를 아껴두지 마라. 부장급 이상 되는 1960년대 출생자는 연차가 25일에 달하는 기업이 많다. 그러나 여름에 고작 5일 정도 쓰고 나머지는 버린다. 젊어서 여행을 다녀보지 못하면 나이가 들어서는 여행이 더욱 어려워진다. ⑤패키지와 자유여행을 상황에 맞춰 선택하라. 장단점이 있으므로 선택적으로 활용한다. 패키지는 틀이 짜여 있지만 체계적으로 볼 수 있다. 자유여행은 여유가 있지만 효율이 떨어질 수 있다.
필자는 중앙일보 논설위원이다(dongh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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