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의 창조경제혁신센터는 지금] 최순실 유탄에 지역 흉물로 전락할 우려
[전국의 창조경제혁신센터는 지금] 최순실 유탄에 지역 흉물로 전락할 우려
경기·대전·대구·강원·제주 등 빼곤 유명무실... 내년 예산 삭감 도미노 #1. 11월 14일 경남 창원시 의창구의 경남창조경제혁신센터. 한 건물의 4개 층을 차지한 2247㎡ 규모의 사무실은 썰렁했다. 사무실 전체에 센터 직원을 제외한 외부인은 단 세 명뿐이었다. 16곳이라는 입주 기업 중 한 곳만 직원이 오갈 뿐, 나머지 회사들은 ‘개점휴업’ 상태였다.
#2. 11월 21일 전남 나주시 빛가람혁신도시. 전남창조경제혁신센터 제2센터가 입주하려던 한국전력 맞은편의 2층 사무실은 텅 비어있었다. 원래 지난 11월 4일부터 업무를 시작하려 했지만 대통령이 참석하지 못한다는 이유로 개소식이 무기한 연기됐다. 현 정부 역점 사업인 창조경제혁신센터가 최순실 사태로 휘청이고 있다. 전국 17곳에 위치한 창조경제혁신센터는 박근혜 정부의 ‘창조경제’를 실현하는 전진 기지로 꼽혀왔다. 대기업 후원을 받아 지역의 창업 지망생과 중소기업을 후원하는 공간이다. 17곳의 대기업이 투자한 돈은 융자와 보증 등을 합치면 1조원이 넘는다는 게 미래창조과학부의 설명. 하지만 정권이 힘을 잃고 최순실 등 비선실세가 창조경제 사업에도 깊숙이 관여한 흔적이 드러나면서 센터도 타격을 받았다. 서울 센터의 내년 지방 예산은 전액(20억원) 삭감됐고, 경기 센터는 15억원 지방 예산이 절반으로, 전북센터는 23억원에서 10억원으로 줄었다.
전국 17곳의 센터를 모두 방문해 운영 상황을 점검한 결과 전반적인 분위기는 무거웠다. 일부 운영이 활성화된 센터에선 “센터가 없어지는 거냐”며 발을 동동 구르는 창업자들이 많았다. 운영이 잘 되는 걸로 꼽히는 센터는 경기·대전·대구·강원·제주 등 이른바 ‘5대 센터’다. 경기센터는 설립 19개월 만에 세계 80개국과 네트워크를 구축해 입주 기업의 해외 진출을 돕고 있다. 대전 센터는 KAIST의 우수 인력을 프리미엄으로 안고 출발했다. 서울은 창업 예비자들의 네트워킹이 활발하지만 서울시와 미래부의 갈등으로 잡음이 끊이지 않는 곳이다.
이와 달리 수도권에서 멀어질수록 센터는 눈에 띄게 활력을 잃었다. 영·호남권의 센터는 예비 창업자를 만나기 힘든 곳도 많았다. 11월 14일 방문한 전북 전주시 효자동의 전북센터가 그랬다. 센터를 들어서자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원스톱 서비스 창구’는 텅 비어있었다. 예비 창업자들에게 경영·금융·법무 등의 전문 상담을 해주는 곳이지만 상담을 하러 온 이가 한 명도 없었다. 김진수 전북센터장은 “도청이 센터 관련 예산을 23억원에서 10억원을 삭감에 도의회에 제출했다”며 “내년 사업이 크게 위축될 것 같아 걱정”이라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지역의 창업 수요를 고려하지 않고 시·도마다 하나씩 혁신센터를 세운 것 자체가 정치적인 발상이라고 지적한다. 제조업 중심의 과거 창업과 달리 정보통신기술(ICT) 중심의 요즘 창업은 수도권을 벗어나기가 힘들다는 게 전문가들의 설명이다. 창업에 가장 중요한 자원으로 꼽히는 소프트웨어 개발자가 지역에 많지 않기 때문이다. ICT 업계 관계자는 “개발자들은 네트워크와 개발 환경을 중시하기 때문에 지역에서 일하려고 하지 않는다”며 “지역 센터의 지원을 받으려고 목포에 본사 주소를 두고 일은 서울에서 한다는 얘기도 들었다”고 말했다.
미국 같이 땅덩어리가 큰 나라도 실리콘밸리·보스턴 등 몇몇 도시에서만 창업 생태계가 조성되는 것도 같은 이유라는 게 전문가들의 설명이다. 창업자와 이들에 투자하는 금융사, 컨설팅 및 인재 공급을 지원하는 조력 부대가 한데 모여들어야 규모의 경제가 형성된다는 얘기다. 이병태 KAIST 경영대 교수는 “이런 논리를 모른 채 지역별로 센터를 하나씩 지었으니 수도권 인근 센터를 빼면 제대로 돌아가지 않는 것”이라고 말했다.
창업 활성화를 민간에 맡겨두어도 될 텐데 정부가 생색을 내려 대기업을 등 떠밀어 전시 행정용 공간을 만들었다는 비판도 나왔다. 1년에 두 차례 있는 창조경제 관련 정부 행사나 지역센터의 각종 부대 행사에 입주 기업이 동원되는 등 전시 행정도 도마에 올랐다. 한 민간 창업지원센터 관계자는 “8월에 열린 창조경제 페스티벌을 앞두고 ‘대통령이 오니 센터별로 무조건 100명씩 동원하라’는 지시가 내려왔다고 들었다”며 “한 입주 기업은 ‘발표회며 전시회에 쫓아다니느라 내 사업 키울 시간이 없다’며 제 발로 센터에서 나오기도 했다”고 전했다. 파행 운영도 문제다. 처음부터 ‘다음 정권에선 없어질 가능성이 크다’는 우려 때문에 직원을 대부분 계약직으로 뽑은 센터도 많다. 인천센터의 경우 35명의 직원 중 정규직은 3명뿐이다. 최근 센터장을 공모한 부산·경북센터는 지원자가 없어 재공모에 들어가기도 했다.
센터 관계자들의 우려는 벌써 예산과 힘을 잃은 혁신센터가 다음 정권에선 천덕꾸러기나 지역의 흉물로 변해버리지 않을까 하는 것이다. 창업 시장에선 “17곳 센터 중 옥석을 가려 선택적으로 투자할 수밖에 없다”는 얘기가 벌써 나온다. 황병선 빅뱅 엔젤스(벤처투자기업) 대표는 “현실적으로 17곳의 센터를 다 끌고 갈 수는 없는 만큼 역량 있는 곳을 골라 내 선택과 집중 전략으로 키워야 한다”고 말했다.
정부 주도로 시작한 사업이지만 민간에 주도권을 넘겨야 한다는 조언도 나왔다. 청년창업재단의 창업지원센터인 디캠프 김광현 센터장은 “정부 역할은 창업 토양이 전혀 없는 곳에 뿌리는 ‘마중물’에 그쳐야 한다”며 “센터는 창업 걸림돌을 없애주면서 점차 민간 주도로 가도록 길을 터야 한다”고 말했다. 다만 ‘성과 조급증’ 때문에 자라고 있는 스타트업의 싹을 잘라선 안 된다는 주장도 나왔다. 3D 스캐너 검사장비를 개발하는 씨메스의 이성호 대표는 “‘데스밸리(Death Valley, 죽음의 계곡)’를 넘지 못하고 주저앉는 스타트업이 많은데 창업 1년도 지나기 전에 센터 지원이 끊겨 아쉬웠다”며 “스타트업의 성과를 평가하려면 최소 5년은 지나야 한다”고 강조했다.
특별취재팀 - 최경호·황선윤·위성욱·최은경·김준희·김호·최충일 기자(이상 중앙일보 내셔널부), 임미진·최영진·박수련·김경미·김기환·유부혁 기자(이상 산업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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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11월 21일 전남 나주시 빛가람혁신도시. 전남창조경제혁신센터 제2센터가 입주하려던 한국전력 맞은편의 2층 사무실은 텅 비어있었다. 원래 지난 11월 4일부터 업무를 시작하려 했지만 대통령이 참석하지 못한다는 이유로 개소식이 무기한 연기됐다.
창업 수요 무시하고 지역마다 세운 정치적 발상
전국 17곳의 센터를 모두 방문해 운영 상황을 점검한 결과 전반적인 분위기는 무거웠다. 일부 운영이 활성화된 센터에선 “센터가 없어지는 거냐”며 발을 동동 구르는 창업자들이 많았다. 운영이 잘 되는 걸로 꼽히는 센터는 경기·대전·대구·강원·제주 등 이른바 ‘5대 센터’다. 경기센터는 설립 19개월 만에 세계 80개국과 네트워크를 구축해 입주 기업의 해외 진출을 돕고 있다. 대전 센터는 KAIST의 우수 인력을 프리미엄으로 안고 출발했다. 서울은 창업 예비자들의 네트워킹이 활발하지만 서울시와 미래부의 갈등으로 잡음이 끊이지 않는 곳이다.
이와 달리 수도권에서 멀어질수록 센터는 눈에 띄게 활력을 잃었다. 영·호남권의 센터는 예비 창업자를 만나기 힘든 곳도 많았다. 11월 14일 방문한 전북 전주시 효자동의 전북센터가 그랬다. 센터를 들어서자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원스톱 서비스 창구’는 텅 비어있었다. 예비 창업자들에게 경영·금융·법무 등의 전문 상담을 해주는 곳이지만 상담을 하러 온 이가 한 명도 없었다. 김진수 전북센터장은 “도청이 센터 관련 예산을 23억원에서 10억원을 삭감에 도의회에 제출했다”며 “내년 사업이 크게 위축될 것 같아 걱정”이라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지역의 창업 수요를 고려하지 않고 시·도마다 하나씩 혁신센터를 세운 것 자체가 정치적인 발상이라고 지적한다. 제조업 중심의 과거 창업과 달리 정보통신기술(ICT) 중심의 요즘 창업은 수도권을 벗어나기가 힘들다는 게 전문가들의 설명이다. 창업에 가장 중요한 자원으로 꼽히는 소프트웨어 개발자가 지역에 많지 않기 때문이다. ICT 업계 관계자는 “개발자들은 네트워크와 개발 환경을 중시하기 때문에 지역에서 일하려고 하지 않는다”며 “지역 센터의 지원을 받으려고 목포에 본사 주소를 두고 일은 서울에서 한다는 얘기도 들었다”고 말했다.
미국 같이 땅덩어리가 큰 나라도 실리콘밸리·보스턴 등 몇몇 도시에서만 창업 생태계가 조성되는 것도 같은 이유라는 게 전문가들의 설명이다. 창업자와 이들에 투자하는 금융사, 컨설팅 및 인재 공급을 지원하는 조력 부대가 한데 모여들어야 규모의 경제가 형성된다는 얘기다. 이병태 KAIST 경영대 교수는 “이런 논리를 모른 채 지역별로 센터를 하나씩 지었으니 수도권 인근 센터를 빼면 제대로 돌아가지 않는 것”이라고 말했다.
창업 활성화를 민간에 맡겨두어도 될 텐데 정부가 생색을 내려 대기업을 등 떠밀어 전시 행정용 공간을 만들었다는 비판도 나왔다. 1년에 두 차례 있는 창조경제 관련 정부 행사나 지역센터의 각종 부대 행사에 입주 기업이 동원되는 등 전시 행정도 도마에 올랐다. 한 민간 창업지원센터 관계자는 “8월에 열린 창조경제 페스티벌을 앞두고 ‘대통령이 오니 센터별로 무조건 100명씩 동원하라’는 지시가 내려왔다고 들었다”며 “한 입주 기업은 ‘발표회며 전시회에 쫓아다니느라 내 사업 키울 시간이 없다’며 제 발로 센터에서 나오기도 했다”고 전했다.
역량 있는 곳만 키우거나 민간에 넘기거나
센터 관계자들의 우려는 벌써 예산과 힘을 잃은 혁신센터가 다음 정권에선 천덕꾸러기나 지역의 흉물로 변해버리지 않을까 하는 것이다. 창업 시장에선 “17곳 센터 중 옥석을 가려 선택적으로 투자할 수밖에 없다”는 얘기가 벌써 나온다. 황병선 빅뱅 엔젤스(벤처투자기업) 대표는 “현실적으로 17곳의 센터를 다 끌고 갈 수는 없는 만큼 역량 있는 곳을 골라 내 선택과 집중 전략으로 키워야 한다”고 말했다.
정부 주도로 시작한 사업이지만 민간에 주도권을 넘겨야 한다는 조언도 나왔다. 청년창업재단의 창업지원센터인 디캠프 김광현 센터장은 “정부 역할은 창업 토양이 전혀 없는 곳에 뿌리는 ‘마중물’에 그쳐야 한다”며 “센터는 창업 걸림돌을 없애주면서 점차 민간 주도로 가도록 길을 터야 한다”고 말했다. 다만 ‘성과 조급증’ 때문에 자라고 있는 스타트업의 싹을 잘라선 안 된다는 주장도 나왔다. 3D 스캐너 검사장비를 개발하는 씨메스의 이성호 대표는 “‘데스밸리(Death Valley, 죽음의 계곡)’를 넘지 못하고 주저앉는 스타트업이 많은데 창업 1년도 지나기 전에 센터 지원이 끊겨 아쉬웠다”며 “스타트업의 성과를 평가하려면 최소 5년은 지나야 한다”고 강조했다.
특별취재팀 - 최경호·황선윤·위성욱·최은경·김준희·김호·최충일 기자(이상 중앙일보 내셔널부), 임미진·최영진·박수련·김경미·김기환·유부혁 기자(이상 산업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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