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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린 거북이의 승리

느린 거북이의 승리

스코틀랜드 출신 테니스 선수 앤디 머리, 11년 만에 세계 정상에 올라
머리는 지난 11월 20일 영국 런던에서 열린 남자프로테니스(ATP) 바클레이스 월드 투어 파이널스 대회 단식 결승에서 우승했다.
‘당신은 높은 길로, 난 낮은 길로.’ 이런 가사가 나오는 스코틀랜드 민요 ‘Loch Lomond’는 유명한 스코틀랜드의 상징이다. 스코틀랜드 던블레인에서 자라난 테니스 선수 앤디 머리는 지금까지 이 노래를 수천 번 들었을 것이다. 테니스 선수로서 그의 경력을 이 노래에 빗대 표현한다면 ‘난 느린 길로’ 정도가 되지 않을까?

그랜드 슬램 결승에 4번 도전할 때까지 실패를 거듭하던 머리는 2012년 미국 뉴욕에서 세르비아의 노박 조코비치를 누르고 처음 우승했다. 그는 지난 11월 20일 영국 런던에서 열린 남자프로테니스(ATP) 바클레이스 월드 투어 파이널스 대회 단식 결승에서 조코비치를 제압하고 우승을 차지해 올해를 세계랭킹 1위로 마무리했다. 세계 랭킹 1위에 오르기까지 11년이 걸렸다. 머리는 현재 29세로 대다수 운동선수들이 내리막길에 접어드는 시기를 맞았다.

하지만 머리는 실패를 승리의 원동력으로 이용한다. 그의 승리는 고통과 좌절에서 피어난 쓰디쓴 열매다. 최악의 모습을 보인 후에야 최상의 결과를 이끌어내는 유형이라고 할까? 머리의 랠리는 스트로크 30회를 넘기는 경우가 많으며 경기 도중 욕설도 자주 내뱉는다. 그는 리턴에 뛰어나고 세컨드 서브에는 약하다.

머리는 수비를 차츰 공격으로 전환시켜 나가는 게릴라 스타일의 선수다. 상대방이 지칠 때까지 몇 시간이라도 기다릴 수 있다. 122주일 연속 정상의 자리를 지켜오던 조코비치를 상대로는 몇 년을 기다린 셈이다.

머리는 복식 전문 테니스 선수 제이미 머리의 동생이다. 따라서 누군가를 따라잡는 것이 그에겐 자연스러운 일이다. 또 어머니가 테니스 코치여서 언제든 기술적인 문제에 관한 조언을 구할 수 있었다. 그는 테니스라는 매우 잉글랜드적인 스포츠에 뛰어든 스코틀랜드인으로서 이방인 같은 느낌을 떨쳐내지 못했다. 10대 시절 영국이 아니라 스페인에서 훈련 받은 것도 그 때문이다. 성인이 된 후엔 남자 테니스 스타 중 최초로 여자 코치를 채용했다.

머리가 최고의 자리에 오른 건 이반 렌들 코치를 만나고 나서다. 칭찬보다 쓴 소리로 선수를 채찍질하는 렌들의 코칭 스타일이 머리에게 잘 맞았다. 조코비치는 4년 동안 세계 랭킹 3위에 머무르다가 글루텐 섭취를 끊은 뒤 로저 페더러와 라파엘 나달을 뛰어넘어 1위 자리에 올랐다. 당시 세계 랭킹 4위에서 벗어나지 못하던 머리도 조코비치의 본을 받아 글루텐 섭취를 끊었다. 조코비치는 머리와 동갑이지만 그보다 더 빨리 성공했으니 그런 의미에선 형으로 볼 수 있다. 머리는 형을 흉내 내 결국 뛰어넘는 동생 같은 역할을 했다.

머리는 이솝의 ‘토끼와 거북이’에서 거북이 같은 길을 걸어왔다. 그랜드 슬램과는 거리가 멀었을 때부터 ‘그랜드 슬로그(고투)’에 일가견이 있었다. 조코비치의 뛰어난 재능과 투지를 생각할 때 머리는 1인자 자리에 오래 머무르지 못할 지도 모른다. 하지만 머리는 결코 만만한 상대가 아니다.

- 팀 드 리슬 뉴스위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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