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기충격기’ 통치의 함정
‘전기충격기’ 통치의 함정
트럼프 신임 정부의 보호무역주의 엄포는 역내 주도권 노리는 중국에 호재로 작용해 국제 외교 의전에서 최초의 파격일지 모른다. 지난 1월 28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백악관 집무실에서 다른 나라 수반과 전화 통화 중 너무 짜증이 난 나머지 고함을 지른 다음 수화기를 쾅 내려놓으며 일방적으로 전화를 끊어버렸다. 1시간으로 예정된 통화가 25분 정도 진행됐을 때였다. 왜 최초의 사례라고 말할 수 있을까?
그때 트럼프 대통령이 통화한 상대방은 맬컴 턴불 호주 총리였다. 호주라면 미국의 확고한 동맹국이라 지금까지 그처럼 드러내놓고 격분을 표한 적이 없었다. 그렇다면 트럼프 대통령이 울화통을 터뜨린 주제는 무엇이었을까?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이 호주와 맺은 난민 상호교환 협정이었다. 태평양의 나우루 공화국과 파푸아 뉴기니 마누스 섬에 있는 호주 역외 난민시설에 수용된 1250명을 미국이 받아주기로 한 합의를 말한다.
트럼프는 강경한 반(反)이민주의 후보로 출마해 대통령에 당선됐다. 따라서 그가 미국의 주요 동맹국 중 하나를 당혹스럽게 만든 이번 일도 그런 노선의 일부로 봐야할 듯하다. 불법 이민자의 월경을 막기 위해 미국-멕시코 국경에 높은 장벽을 설치하거나 국제 난민 수용을 거부함으로써 이민에 더 강경한 입장을 취하는 것이 트럼프 후보의 선거 공약이었다. 트럼프 대통령은 취임하자마자 그런 공약을 이행하려는 거침없는 행보를 보였다. 한 언론이 지적하듯이 ‘스턴 총(전기충격기)’에 의한 통치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공화당 후보로 대통령선거에 출마한 트럼프는 워싱턴 D.C.의 미국 정부가 기능장애에 걸렸다는 전제 아래서 선거전을 치렀다. 연방정부가 미국인 대다수의 이익을 폭넓게 대변하지 못하고 부패했다는 판단이었다. 그래서 그는 대통령에 당선되자 자신의 방식대로 국정을 운영하기로 마음먹었다. 그 과정에서 지금까지 미국 정부가 따르던 방식을 무시한다고 해서 ‘뭐가 그리 대수냐?’라는 게 그의 사고방식이다.
그러나 이런 태도로 인해 트럼프 대통령 자신이나 미국이 치러야 하는 대가가 갈수록 분명해진다. 그가 유세에서 도입하겠다고 약속한 이슬람 분쟁 지역 출신 난민에 대한 ‘극단적인 입국 심사’는 재앙을 불렀다. 과격한 새 정책이 어떤 부작용을 수반할지 검토해보지도 않은 것은 사실상의 직무 태만이다.
그의 이민 규제 행정명령은 일단 접어 두고 아직은 미국 내부에서 논란이 ‘적은’ 무역 문제를 생각해 보자. 좀 더 넓게 보자면 미국과 중국의 관계를 말한다. 이 문제와 관련해 트럼프 대통령의 첫 결정이 내려졌다. 그는 지난 1월 23일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 탈퇴를 선언하는 행정명령에 서명했다(TPP는 버락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이 일본과 함께 주도적으로 추진한 다자간 무역협정으로 원래 중국을 제외한 아시아태평양 12개국이 참여했다). 그로부터 일주일 후 미국 무역대표부는 뉴질랜드 정부에 공문을 보내 미국이 TPP에 참여할 의도가 없다는 사실을 나머지 관련국에 통보해 줄 것을 요청했다. 하지만 아직까지 그런 결정의 2차적 영향에 관한 트럼프 행정부의 고려는 전혀 없다. 그런 결정을 내릴 땐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았지만 거기서 파생될 수 있는 사태에 전혀 대비가 돼 있지 않다는 뜻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취임사에서 후보 시절 여러 차례 언급한 자신의 구상을 또 다시 반복했다. ‘미국 우선주의(America First)’를 정부 최고의 목표로 삼겠다는 선언이었다. 그런 맥락에서 그는 대부분의 무역협정이 미국의 이익에 부합하지 않는다고 판단한다. 그 논리에 따라 트럼프 대통령은 TPP에서 탈퇴를 선언했고,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을 재협상하며 한국 같은 동맹국들과 이미 합의된 자유무역협정(FTA)도 재검토할 뜻을 밝혔다. 이런 무역협정이 미국에 이득이 되지 않는다면 차라리 폐기하는 게 낫다는 생각이다.
하지만 바로 거기서 2차적인 부작용이 나타난다. 오바마 대통령은 TPP가 반드시 필요하다고 미국 의회를 설득하면서 아시아·태평양 지역에서 미국이 주도하는 새로운 무역협정이 없다면 갈수록 강해지는 중국이 주도권을 잡아 그 공백을 메울 것이라고 경고했다. 되새길 만한 경고다.
아니나 다를까,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은 지난 1월 스위스 다보스에서 열린 세계경제포럼(WEF)의 한 연설에서 자유무역의 투사를 자임했다. “우리는 자유무역의 글로벌 네트워크를 구축하기 위해 아시아·태평양 자유무역지대(FTAAP)를 만들고 역내포괄적경제동반자협정(RCEP)을 위한 협상을 적극 추진할 계획이다. 중국은 열려 있고 투명하며 서로에게 이익되는 역내 자유무역협정 체결을 확고히 지지하며 기본적으로 분열된 배타적인 블록 형성은 단호히 반대한다. 중국은 위안화의 평가절하를 통해 무역 경쟁력을 강화하려는 의도가 조금도 없다. 통화전쟁을 일으킬 생각은 더더욱 없다.”
희한한 점은 그의 연설을 들은 포럼 참석자 다수가 그의 말을 그대로 믿는 것 같았다는 것이다(여러 참석자가 실제로 그렇게 말했다). 시진핑 주석의 통치 아래서 중국에서 다국적기업이 사업하기가 쉬워진 게 아니라 오히려 더 어려워졌는 데도 말이다. 아시아·태평양은 경제적으로 여전히 세계에서 가장 역동적인 지역이다. 이처럼 중요한 곳에서 미국 대신 중국이 주도권을 갖도록 하는 것이 트럼프 행정부가 마땅히 경계했어야 할 2차적인 부작용이다. 그런 행동은 한국과 일본 같은 미국의 확고한 동맹국들을 동요하게 만든다. 그들은 아무리 따져봐도 미국이 태평양 지역에서 주도적인 역할을 계속하는 게 더 낫다고 판단한다.
아베 신조 일본 총리는 미국 대선이 끝난 직후인 지난해 11월 17일 뉴욕의 트럼프 타워를 찾아 외국 정상으로서는 처음 대통령 당선인 신분의 도널드 트럼프를 만났다. 그 자리에서 그는 트럼프 당선인에게 TPP의 필요성을 역설하며 미국이 주도적 역할을 계속 맡아야 한다고 역설했지만 아무런 소용이 없었다.
기본적으로 한국과 일본은 중국의 의도를 의심한다. 그들은 중국이 역사적인 우월감을 갖고 이웃을 적대적으로 대하며, 아시아·태평양 지역을 지배하려는 끝없는 야심을 가졌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트럼프 대통령은 미국의 중요한 동맹국인 한국과 일본을 안심시키기는커녕 더 불안케 했다. TPP 문제에서 만이 아니다. 예를 들어 한국은 TPP 회원국이 아니다. 이미 미국과 FTA를 체결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트럼프 대통령은 한미 FTA를 재검토하겠다고 으름장을 놓았다. 미국보다 한국에 더 많은 이익이 돌아간다고 믿기 때문이다. 그것이 무역협정에 관한 그의 기본적인 태도다. 하지만 한미 FTA를 폐기하면 어떤 결과가 나올까?
지난여름 한국의 고위관리는 이렇게 말했다. “FTA는 무역협정에 그치는 게 아니라 정치와 외교 등 거의 모든 측면에서 회원국을 서로 얽어매는 폭넓은 틀이 된다. 그런 협정을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이유만으로 폐기하려는 것은 오랜 애인에게 갑자기 사랑이 식었다며 다신 보지 말자고 통보하는 것과 사실상 같다.”
트럼프 대통령의 국가안보팀에서 그나마 ‘(사려 깊은) 어른’으로 꼽히는 제임스 매티스 국방장관이 취임 후 첫 해외 방문국으로 한국과 일본을 택한 것도 그런 이유가 작용한 게 분명하다. 매티스 장관은 한국과 일본을 안심시킬 필요가 있다는 사실을 잘 안다. 한국의 야당은 반미·친중 성향이 강하다. 미국이 한미 FTA에서 발을 빼면 그들과 중국에 호재가 될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이 과연 그런 상황을 원할까? 정권인수기에 그는 FTA를 재검토하고 대만과 관련해선 ‘하나의 중국’ 정책을 수정할 뜻을 내비쳤다. 또 렉스 틸러슨 신임 국무장관은 인사청문회 증언을 통해 남중국해에서 중국의 팽창주의에 맞서야 한다고 말했다. 그런 언행은 또 다른 이유에서 이 지역을 불안케 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중국과의 정면 대결을 밀어붙이는 듯하다는 인상을 줬기 때문이다. 이 경우 일차적으로 나타날 수 있는 반응은 쉽게 짐작할 수 있다. 빌 클린턴 행정부 시절 그랬듯이 중국이 대만 해협으로 미사일을 쏠지 모른다. 대만 문제에 관한 한 현상태를 변화시키지 말라는 것이 중국의 확고한 뜻이라는 것을 입증하기 위해서다. 클린턴 전 대통령이 그랬듯이 트럼프 대통령도 미군 항모단을 그곳으로 파견할까? 아니면 “마음대로 하라. 우리에겐 미국이 최우선이다”라고 말할까? 그건 이 지역의 어느 나라도 원치 않는 뜻밖의 2차적 부작용이 될 것이다. 하지만 현재로선 동아시아에서 어느 나라도 트럼프 대통령이 그런 사태에 어떻게 반응할지 모른다는 게 더 문제다.
그들이 예측할 수 없을 만한 이유가 있다. 트럼프 대통령과 그의 참모들이 지금까지 중국을 향해 표출한 적대감을 고려하면 중국이 대만이나 다른 곳에서 미국의 신임 정부를 시험하고 싶어 할 수도 있다. 아울러 트럼프 대통령이 자칭 ‘경제적 국수주의자’이며 국가안보 분야의 경험이 전혀 없는 스티브 배넌 백악관 수석전략가를 국가 안보회의(NSC) 상임위원으로 임명했다는 사실(반면 합참의장과 국가정보국장은 ‘그들의 책임과 전문 분야에 속하는 문제가 논의될 때’를 제외하고는 NSC에서 배제하기로 했다)을 고려하면 NSC가 중국의 도발에 어떤 식으로 반응할지는 아무도 모르는 일이다.
2차적인 부작용은 때론 예견하기가 어렵다. 1980년대 미국이 아프가니스탄에서 소련군을 몰아내기 위해 과격 이슬람 무장단체에 무기를 공급했을 때는 20년 뒤 알카에다의 공격으로 미국 뉴욕의 세계무역센터 타워가 무참히 파괴되리라고 내다본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하지만 지금은 무역 문제와 중국, 아시아에서 미국의 역할에 관한 한 나타날 수 있는 부작용이 누가 봐도 명백하다. 그런데도 트럼프 행정부에서 진지하게 검토되지 않는다는 사실이 걱정스러울 뿐이다.
- 빌 파월 뉴스위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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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 트럼프 대통령이 통화한 상대방은 맬컴 턴불 호주 총리였다. 호주라면 미국의 확고한 동맹국이라 지금까지 그처럼 드러내놓고 격분을 표한 적이 없었다. 그렇다면 트럼프 대통령이 울화통을 터뜨린 주제는 무엇이었을까?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이 호주와 맺은 난민 상호교환 협정이었다. 태평양의 나우루 공화국과 파푸아 뉴기니 마누스 섬에 있는 호주 역외 난민시설에 수용된 1250명을 미국이 받아주기로 한 합의를 말한다.
트럼프는 강경한 반(反)이민주의 후보로 출마해 대통령에 당선됐다. 따라서 그가 미국의 주요 동맹국 중 하나를 당혹스럽게 만든 이번 일도 그런 노선의 일부로 봐야할 듯하다. 불법 이민자의 월경을 막기 위해 미국-멕시코 국경에 높은 장벽을 설치하거나 국제 난민 수용을 거부함으로써 이민에 더 강경한 입장을 취하는 것이 트럼프 후보의 선거 공약이었다. 트럼프 대통령은 취임하자마자 그런 공약을 이행하려는 거침없는 행보를 보였다. 한 언론이 지적하듯이 ‘스턴 총(전기충격기)’에 의한 통치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공화당 후보로 대통령선거에 출마한 트럼프는 워싱턴 D.C.의 미국 정부가 기능장애에 걸렸다는 전제 아래서 선거전을 치렀다. 연방정부가 미국인 대다수의 이익을 폭넓게 대변하지 못하고 부패했다는 판단이었다. 그래서 그는 대통령에 당선되자 자신의 방식대로 국정을 운영하기로 마음먹었다. 그 과정에서 지금까지 미국 정부가 따르던 방식을 무시한다고 해서 ‘뭐가 그리 대수냐?’라는 게 그의 사고방식이다.
그러나 이런 태도로 인해 트럼프 대통령 자신이나 미국이 치러야 하는 대가가 갈수록 분명해진다. 그가 유세에서 도입하겠다고 약속한 이슬람 분쟁 지역 출신 난민에 대한 ‘극단적인 입국 심사’는 재앙을 불렀다. 과격한 새 정책이 어떤 부작용을 수반할지 검토해보지도 않은 것은 사실상의 직무 태만이다.
그의 이민 규제 행정명령은 일단 접어 두고 아직은 미국 내부에서 논란이 ‘적은’ 무역 문제를 생각해 보자. 좀 더 넓게 보자면 미국과 중국의 관계를 말한다. 이 문제와 관련해 트럼프 대통령의 첫 결정이 내려졌다. 그는 지난 1월 23일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 탈퇴를 선언하는 행정명령에 서명했다(TPP는 버락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이 일본과 함께 주도적으로 추진한 다자간 무역협정으로 원래 중국을 제외한 아시아태평양 12개국이 참여했다). 그로부터 일주일 후 미국 무역대표부는 뉴질랜드 정부에 공문을 보내 미국이 TPP에 참여할 의도가 없다는 사실을 나머지 관련국에 통보해 줄 것을 요청했다. 하지만 아직까지 그런 결정의 2차적 영향에 관한 트럼프 행정부의 고려는 전혀 없다. 그런 결정을 내릴 땐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았지만 거기서 파생될 수 있는 사태에 전혀 대비가 돼 있지 않다는 뜻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취임사에서 후보 시절 여러 차례 언급한 자신의 구상을 또 다시 반복했다. ‘미국 우선주의(America First)’를 정부 최고의 목표로 삼겠다는 선언이었다. 그런 맥락에서 그는 대부분의 무역협정이 미국의 이익에 부합하지 않는다고 판단한다. 그 논리에 따라 트럼프 대통령은 TPP에서 탈퇴를 선언했고,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을 재협상하며 한국 같은 동맹국들과 이미 합의된 자유무역협정(FTA)도 재검토할 뜻을 밝혔다. 이런 무역협정이 미국에 이득이 되지 않는다면 차라리 폐기하는 게 낫다는 생각이다.
하지만 바로 거기서 2차적인 부작용이 나타난다. 오바마 대통령은 TPP가 반드시 필요하다고 미국 의회를 설득하면서 아시아·태평양 지역에서 미국이 주도하는 새로운 무역협정이 없다면 갈수록 강해지는 중국이 주도권을 잡아 그 공백을 메울 것이라고 경고했다. 되새길 만한 경고다.
아니나 다를까,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은 지난 1월 스위스 다보스에서 열린 세계경제포럼(WEF)의 한 연설에서 자유무역의 투사를 자임했다. “우리는 자유무역의 글로벌 네트워크를 구축하기 위해 아시아·태평양 자유무역지대(FTAAP)를 만들고 역내포괄적경제동반자협정(RCEP)을 위한 협상을 적극 추진할 계획이다. 중국은 열려 있고 투명하며 서로에게 이익되는 역내 자유무역협정 체결을 확고히 지지하며 기본적으로 분열된 배타적인 블록 형성은 단호히 반대한다. 중국은 위안화의 평가절하를 통해 무역 경쟁력을 강화하려는 의도가 조금도 없다. 통화전쟁을 일으킬 생각은 더더욱 없다.”
희한한 점은 그의 연설을 들은 포럼 참석자 다수가 그의 말을 그대로 믿는 것 같았다는 것이다(여러 참석자가 실제로 그렇게 말했다). 시진핑 주석의 통치 아래서 중국에서 다국적기업이 사업하기가 쉬워진 게 아니라 오히려 더 어려워졌는 데도 말이다. 아시아·태평양은 경제적으로 여전히 세계에서 가장 역동적인 지역이다. 이처럼 중요한 곳에서 미국 대신 중국이 주도권을 갖도록 하는 것이 트럼프 행정부가 마땅히 경계했어야 할 2차적인 부작용이다. 그런 행동은 한국과 일본 같은 미국의 확고한 동맹국들을 동요하게 만든다. 그들은 아무리 따져봐도 미국이 태평양 지역에서 주도적인 역할을 계속하는 게 더 낫다고 판단한다.
아베 신조 일본 총리는 미국 대선이 끝난 직후인 지난해 11월 17일 뉴욕의 트럼프 타워를 찾아 외국 정상으로서는 처음 대통령 당선인 신분의 도널드 트럼프를 만났다. 그 자리에서 그는 트럼프 당선인에게 TPP의 필요성을 역설하며 미국이 주도적 역할을 계속 맡아야 한다고 역설했지만 아무런 소용이 없었다.
기본적으로 한국과 일본은 중국의 의도를 의심한다. 그들은 중국이 역사적인 우월감을 갖고 이웃을 적대적으로 대하며, 아시아·태평양 지역을 지배하려는 끝없는 야심을 가졌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트럼프 대통령은 미국의 중요한 동맹국인 한국과 일본을 안심시키기는커녕 더 불안케 했다. TPP 문제에서 만이 아니다. 예를 들어 한국은 TPP 회원국이 아니다. 이미 미국과 FTA를 체결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트럼프 대통령은 한미 FTA를 재검토하겠다고 으름장을 놓았다. 미국보다 한국에 더 많은 이익이 돌아간다고 믿기 때문이다. 그것이 무역협정에 관한 그의 기본적인 태도다. 하지만 한미 FTA를 폐기하면 어떤 결과가 나올까?
지난여름 한국의 고위관리는 이렇게 말했다. “FTA는 무역협정에 그치는 게 아니라 정치와 외교 등 거의 모든 측면에서 회원국을 서로 얽어매는 폭넓은 틀이 된다. 그런 협정을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이유만으로 폐기하려는 것은 오랜 애인에게 갑자기 사랑이 식었다며 다신 보지 말자고 통보하는 것과 사실상 같다.”
트럼프 대통령의 국가안보팀에서 그나마 ‘(사려 깊은) 어른’으로 꼽히는 제임스 매티스 국방장관이 취임 후 첫 해외 방문국으로 한국과 일본을 택한 것도 그런 이유가 작용한 게 분명하다. 매티스 장관은 한국과 일본을 안심시킬 필요가 있다는 사실을 잘 안다. 한국의 야당은 반미·친중 성향이 강하다. 미국이 한미 FTA에서 발을 빼면 그들과 중국에 호재가 될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이 과연 그런 상황을 원할까? 정권인수기에 그는 FTA를 재검토하고 대만과 관련해선 ‘하나의 중국’ 정책을 수정할 뜻을 내비쳤다. 또 렉스 틸러슨 신임 국무장관은 인사청문회 증언을 통해 남중국해에서 중국의 팽창주의에 맞서야 한다고 말했다. 그런 언행은 또 다른 이유에서 이 지역을 불안케 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중국과의 정면 대결을 밀어붙이는 듯하다는 인상을 줬기 때문이다. 이 경우 일차적으로 나타날 수 있는 반응은 쉽게 짐작할 수 있다. 빌 클린턴 행정부 시절 그랬듯이 중국이 대만 해협으로 미사일을 쏠지 모른다. 대만 문제에 관한 한 현상태를 변화시키지 말라는 것이 중국의 확고한 뜻이라는 것을 입증하기 위해서다. 클린턴 전 대통령이 그랬듯이 트럼프 대통령도 미군 항모단을 그곳으로 파견할까? 아니면 “마음대로 하라. 우리에겐 미국이 최우선이다”라고 말할까? 그건 이 지역의 어느 나라도 원치 않는 뜻밖의 2차적 부작용이 될 것이다. 하지만 현재로선 동아시아에서 어느 나라도 트럼프 대통령이 그런 사태에 어떻게 반응할지 모른다는 게 더 문제다.
그들이 예측할 수 없을 만한 이유가 있다. 트럼프 대통령과 그의 참모들이 지금까지 중국을 향해 표출한 적대감을 고려하면 중국이 대만이나 다른 곳에서 미국의 신임 정부를 시험하고 싶어 할 수도 있다. 아울러 트럼프 대통령이 자칭 ‘경제적 국수주의자’이며 국가안보 분야의 경험이 전혀 없는 스티브 배넌 백악관 수석전략가를 국가 안보회의(NSC) 상임위원으로 임명했다는 사실(반면 합참의장과 국가정보국장은 ‘그들의 책임과 전문 분야에 속하는 문제가 논의될 때’를 제외하고는 NSC에서 배제하기로 했다)을 고려하면 NSC가 중국의 도발에 어떤 식으로 반응할지는 아무도 모르는 일이다.
2차적인 부작용은 때론 예견하기가 어렵다. 1980년대 미국이 아프가니스탄에서 소련군을 몰아내기 위해 과격 이슬람 무장단체에 무기를 공급했을 때는 20년 뒤 알카에다의 공격으로 미국 뉴욕의 세계무역센터 타워가 무참히 파괴되리라고 내다본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하지만 지금은 무역 문제와 중국, 아시아에서 미국의 역할에 관한 한 나타날 수 있는 부작용이 누가 봐도 명백하다. 그런데도 트럼프 행정부에서 진지하게 검토되지 않는다는 사실이 걱정스러울 뿐이다.
- 빌 파월 뉴스위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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