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란의 질주
광란의 질주
북한이 핵탄두 장착한 장거리 미사일 갖게 되는 날 그리 멀지 않아… 사이버 전쟁 통해 미사일 실험 저지하고 2차 제재 등 대북제재 더 강화해야 그 영상은 선명하지 않았지만 끔찍했다. 지난 2월 13일 아침, 통통한 중년 남성이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 공항에서 마카오로 가는 비행기를 타기 위해 출발 터미널로 천천히 걸어가고 있었다. 김정남은 북한 독재자 김정일의 장남이자 한때는 정권을 이을 후계자로 여겨졌던 인물이었다. 그러나 김정남은 정권을 물려받지 못했다. 그는 언행이 가볍고 여자 관계가 복잡한 데다 도박을 좋아했다. 30세가 됐을 무렵엔 가짜 여권을 들고 도쿄 디즈니랜드에 들어가려다가 적발돼 쫓겨나면서 아버지의 분노를 산 일도 있었다. 그는 결국 아버지의 허락 하에 한때 포르투갈의 식민지였던 도박의 도시 중국 마카오에서 중국 공안의 주시 하에 살기로 했다.
김정남은 북한의 현재 지도자인 김정은의 이복형이지만 두 사람은 한 번도 서로 만나지 못했다. 김정남은 김정은보다 13살이 더 많았다. 북한의 유명 여배우였던 김정남의 어머니는 김정일과 불륜 관계였다. “김정남과 김정은은 서로 다른 집에서 자랐다”고 전직 한국 정보기관 출신 소식통은 말했다. “게다가 김정남은 어렸을 때 스위스로 유학을 갔다. 두 사람은 만날 일이 없었다.” 2월 13일 벌어진 일이 더 당혹스럽고 비극적으로 보이는 이유다.북한 남성 4명과 베트남과 인도네시아 여성 각각 1명이 그날 아침 7시 30분부터 출발 터미널의 식당에서 김정남을 기다리고 있었다. 김정남이 터미널을 지나가자 두 여성이 그에게 다가갔다. 1명은 마치 그의 시선을 분산시키듯 정면으로 향했고, 그 사이 나머지 한 여성이 김정남의 뒤로 접근했다. 두 여성은 순식간에 김정남의 얼굴을 손으로 문지른 뒤 각각 다른 방향으로 서둘러 빠져나갔다. 몇 분 뒤 김정남은 몸의 이상을 느끼고 경찰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이후 김정남은 구급차에 실려 병원으로 후송됐지만 여성들과 마주친 지 20여분 만에 사망했다. 유엔에서 대량 살상용 화학무기로 규정한 치명적 신경작용제 독극물인 VX로 공격을 당한 뒤였다.
말레이시아 경찰은 사건 발생 이틀 뒤 베트남 여성 도안 티 흐엉을 체포했다. 흐엉은 베트남으로 돌아갈 생각이었는지 쿠알라룸푸르 공항으로 돌아왔다가 경찰에 붙잡혔다. 다음날 새벽 경찰은 인도네시아 여성 시티 아이샤가 묵고 있는 공항 근처 호텔에 들이닥쳤다. 이후 그녀는 자신이 TV 방송 촬영에 참여하는 대가로 120달러를 받았을 뿐이라고 주장했다.
두 여성은 살인죄로 기소됐다. 북한 남성 1명도 체포됐지만 말레이시아 당국은 기소 증거가 불충분하다는 이유로 이 남성을 북한으로 돌려보냈다. 암살에 연루된 다른 북한 남성들은 이미 말레이시아를 빠져나간 것으로 보인다.
전현직 한미 고위 관료들은 이 암살 사건이 의심의 여지 없이 김정은의 지시를 받은 것이라고 말한다. 암살범들의 대담한 수법은 이 사건을 한층 놀랍게 만들었다. 보안카메라가 작동되고 있는 공공장소에서 벌어진 이번 범행은 그 순간이 전 세계에 공개됐다.
그러나 이 사건은 피비린내 나는 학살의 시작에 불과했다. 철저하게 계획되고 사전 연습까지 실시됐던 김정남 암살 사건으로부터 2주 뒤 한국 정보기관은 김정은이 막강한 실권자였던 김원홍 국가안전보위상을 가택 연금시키고 보위성 간부 5명을 고사포로 처형했다고 밝혔다.
미국 정권 인수 기간 동안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은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에게 북한이 가장 급박한 외교안보 문제라고 경고했다. 오바마의 임기 동안 북한은 수차례의 성공적인 지하 핵실험을 실시하고 탄도미사일의 사정거리를 늘리려 해왔다. 북한 정권의 목적은 명백했다. 미국 본토에 닿을 수 있는 대륙간 탄도미사일에 핵탄두를 부착하는 것이다. 언제든 북한이 이 목적을 달성하면 “상황이 완전히 달라지게 될 것”이라고 조지 W. 부시 정권에서 국가안보보좌관을 지냈던 빅터 차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 한국석좌가 말했다.
정권 인수에 관여했던 고위 관료에 따르면 오바마의 충고에 정신이 번쩍 든 트럼프 대통령은 북한에 대한 브리핑을 정보 기관에 요구했다. 김정남 암살 하루 전 트럼프 대통령은 아베 신조 일본 총리와 플로리다 팜비치의 자신이 소유한 리조트 마라라고에서 만찬을 즐겼다.
그때 북한이 탄도미사일을 발사했다. 전문가들은 이 미사일이 기존에 북한이 발사했던 미사일보다 훨씬 적은 이동식 발사차량을 필요로 하기 때문에 더 신속하게 발사될 수 있다고 분석했다. 그러면 미국과 그 동맹국들이 북한의 미사일 발사 전에 선제타격을 하기가 더 어려워진다.최근의 미사일 발사와 김정남 암살 사건은 트럼프 정부에 충격으로 다가왔다. 왜 북한이 그토록 미국과 그 우방, 심지어 북한의 유일한 동맹인 중국에도 성가신 문제인지 생생하게 보여준 사건이었다. 북한이 핵무기와 장거리 미사일을 개발한다는 것은 뉴스도 아니다. 진짜 문제는 계속해서 대북제재 수위가 높아지고 있음에도 북한 정권이 꾸준히 성과를 내는 것처럼 보인다는 데 있다.
한미 정보기관은 북한이 핵탄두를 소형화해서 장거리 미사일에 부착하는 데 최소 4년은 더 걸린다고 본다. 미국 대선 직전 리처드 하스 미 외교협회 회장은 칼럼에서 북한이 2020년 위기를 일으키는 시나리오를 제시했다. 차 석좌는 북한이 2년 내에 장거리 핵미사일 개발 능력을 갖게 된다고 믿는다. 시기가 언제가 됐든 변화를 주지 않는 한 언젠가 핵 위기는 현실이 된다는 얘기다.
김정남 암살은 이 핵무기 경쟁을 더 공포스럽게 만든다. 북한이 얼마나 예측 불가능하고 막무가내인지를 여실히 보여주기 때문이다. 이런 모습은 대중매체에서 북한과 김정은을 다룰 때 내세우는 이미지와 일치한다. 김정일이 영화 ‘팀 아메리카’에서, 김정은이 2014년 영화 ‘인터뷰’에서 어떤 인물로 등장했는지 생각해보라. 그들은 아무 때나 무슨 짓이든 하고자 하는 미치광이들로 묘사됐다.
한·미·일 외교가와 군부의 견해는 그보다 덜 자극적이다. 이들 대다수는 김정은이 단지 정권을 유지하고 권력을 김씨 일가 혈통에 붙잡아두길 원한다고 본다. 김정일은 핵 무기를 보유하는 것이 최고의 보험성 정책이라고 믿었고 김정은도 분명 이에 동의하는 듯이 보인다. 김정은은 그 누구도 핵무장한 북한과 분쟁을 일으키려 하지 않으리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이런 견해에 따르면 권력 보존 의지가 강한 북한은 미국이나 동아시아의 미 동맹국을 공격했다간 나라가 지도상에서 사라지리라는 것도 이해하고 있을 것이다.
이는 제임스 매티스 신임 미 국방부 장관이 한일 양국을 처음 방문해 전달했던 메시지다. 트럼프 대통령은 대선 유세 기간 이 두 동맹국을 긴장시킬 만한 발언들을 일삼았다. 한일 양국이 모두 핵무장을 할 수도 있다는 말까지 했었다. 그래서 서울을 방문한 매티스 장관은 미 동맹국을 향한 북한의 공격은 “위협적인 대응”을 받게 될 것이라는 메시지를 북한을 포함해 전 세계에 전달했다.
그러나 쿠알라룸푸르에서의 대담한 암살은 김정은의 자기 보호 본능이 그의 행동을 어느 정도 합리적으로 만들 것이라는 사람들의 믿음을 뒤흔들었다. 또 이 사건은 이제 막 대북정책 수립에 들어간 트럼프 정부의 우려를 한층 고조시켰다. “세상에, 김정은이 미쳤다는 생각밖엔 들지 않는다”고 트럼프 대통령 측 인사는 말했다.사람들은 이번 암살의 동기를 놓고 갖가지 추정을 하고 있다. 왜 김정은은 신경작용제를 써서 동남아시아의 대형 공항에서 북한에 몇 년 살지도 않았고 자신과 만난 적도 없는 이복형을 죽였을까?
한 가지 짐작되는 이유는 김정남이 그동안 북한 정권을 비판해왔다는 것이다. 김정남은 북한이 중국처럼 경제를 개방하고 국민이 더 나은 삶을 살게 해야 한다고 주장해왔다. 북한에서 최고 지도자에 대한 비판은 금지돼 있다. 김정은과 같은 김씨 혈통을 가진 사람의 비판은 이 젊은 독재자의 심기를 거슬렀을 수도 있다.
일부 한국 매체는 김정남이 영국 런던에서 활동하는 김주일 국제탈북민연대 사무총장과 2014년 중국에서 처음 만난 이래 지금까지 연락을 주고받았다고 보도했다. 김 사무총장은 김정남에게 망명 탈북자들의 지도자가 돼 달라고 요청했지만 거부당했다. 김 사무총장은 김정남이 북한 내부에서든 탈북자 집단에서든 정권 세습에 반대했다고 전했다. 게다가 김정남은 정치에 관심이 없다는 말도 했다고 한다. 잘 알려진 김정남의 쾌락주의적 생활 방식을 보면 이는 분명 사실일 것이다.
이처럼 아주 미약한 정권 위협 요소조차도 김정은에겐 이복형을 죽이기에 충분한 이유였을까? 전직 한국 정보기관 요원은 그럴 수 있다고 말했지만, 현재 정보기관과 군부에 있는 고위 관료들은 회의적이다. “김주일이 자기 조직을 홍보하려고 지어낸 얘기 같다”고 정보 당국자는 말했다. 오바마 정부의 전직 국방부 고위 관료는 “지금까지 제기된 김정남 암살 동기는 모두 낭설”이라고 못박았다.
한·중·미·일 4개국에 보다 시급한 질문은 앞으로 어떻게 할 것인지다. 지난 3월 1일 매체 보도에 따르면 트럼프 정부는 대북정책에서 군사적 대응을 포함한 “모든 옵션”을 고려하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과거 트위터에서 북한의 핵 개발을 저지하겠다고 선언한 적이 있으니 이 보도는 믿을 만한 것으로 보였다. 그러나 바로 다음날 트럼프 정부는 “모든 옵션은 늘 고려 대상”이라며 정부가 강경한 대북정책에 치우쳤다는 언론 보도를 부인했다.
트럼프 정부가 고려 중인 옵션 하나는 사이버 전쟁을 통해 북한의 미사일 실험을 저지하려던 오바마 정부의 노력을 확대하는 것이다. 지난 3월 4일 뉴욕타임스는 오바마 정부가 2014년부터 사이버전 활동을 대폭 늘렸으며 그중 일부는 북한 미사일 실험을 막는 데 성공했다고 보도했다. 그러나 이 프로그램에 회의적인 사람들은 사이버전만으론 북한을 막기에 충분하지 않다고 본다. 그들은 지난해 7월부터 올해 2월까지 북한이 세 차례의 미사일 발사를 성공적으로 해냈다고 지적했다.
지난 3월 6일 북한은 4개의 중거리 미사일을 발사했다. 최근 시작된 한미 연합 군사훈련에 맞춘 무력 과시임이 분명하다. 대북정책에 관여했던 전 고위 관료들은 “북한을 상대할 옵션들이 여러 가지 있지만 좋은 옵션은 하나도 없다”는 오바마 정부 국방부 출신 인사의 말에 모두 동의했다.
김정남 암살 사건 여파로 미국이 북한을 국무부 지정 테러지원국 명단에 다시 올릴 것이 거의 확실시된다. W. 부시 정부는 2008년 핵 협상을 기대하며 북한을 테러지원국 명단에서 제외했다. 그러나 중앙정보국(CIA)에서 북한 분석을 담당했던 브루스 클링너 헤리티지재단 선임연구원은 테러지원국 지정이 “정치적 의미를 갖는 모욕 주기 전략”이라고 설명했다. 김정은이 이를 신경 쓸지는 분명치 않다.트럼프 대통령은 지역 내 미 동맹국이 북한의 불법 무역을 차단하는 능력을 키우도록 돕는 방안도 고려한다. 지난가을 미 외교협회 보고서에 따르면 북한이 제재를 피해 미사일 기술을 개발하는 능력은 미국과 그 우방들을 걱정에 빠뜨리고 있다. 북한의 무기 개발을 지연시키려면 지역 내에서 북한의 움직임을 차단할 보다 효율적인 방법을 고안하는 것이 시급하다고 트럼프 대통령 측 고문은 말했다.
미국이 국제사회의 대북제재를 더 강화하리라는 것도 거의 확실시된다. 전문가들은 2차 제재가 가장 가능성 높은 방법이라고 본다. 북한이 돈을 세탁하고 미사일 개발을 위한 부품을 불법 수입할 때 중국 기업들을 통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방법 역시 쉽지만은 않다. 중국이 북한과 거래하는중국 기업을 대상으로 하는 제재에 동의할까? 일부 전문가들은 김정남 암살 여파로 중국도 북한 정권의 생명줄인 석탄 수입을 중단했다는 데 주목한다. 그러나 중국의 대북정책이 늘 그랬듯이 석탄 수입 중단이 얼마나 지속될지, 그 효과가 얼마나 될지는 확실하지 않다. 북한은 지난해 중국으로 역대 최대량의 석탄을 수출했으며 당장은 더 많은 석탄을 수출할 필요성을 느끼지 않고 있다. 게다가 중국은 석탄 공급 과다 상태다. 중국의 수입 중단이 올해 1분기를 넘어서도 지속될지 여부가 중국의 진정성을 확인하는 척도가 될 것이다.
중국이 북한 국경에서 사업하는 중국 기업에 대한 제재에 동참할 것이라는 긍정적 전망을 조심스럽게 내놓는 사람들도 있다. 그런 기업 대다수는 별로 중요하지도 않고 국영 기업도 아니기 때문이다. 양제츠 전 중국 외교부장은 최근 워싱턴에서 트럼프 대통령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회담을 추진 중이었다. 트럼프 대통령 측근에선 정권 초기에 회담을 갖는 것에 신중론이 나오지만 북한을 둘러싼 위기감이 고조되면서 미중 회담이 예상보다 일찍 성사될 가능성도 커졌다.
전문가들은 미국과 그 동맹국들이 대북 강경책을 펼 때 유리하게 작용하는 요소가 한 가지 더 있다고 지적한다. 시 주석은 김정은이 북한 지도자로서 적합하지 않다고 보고 거의 존중하지 않는 것으로 알려졌다. 김정은은 중국 지도자들과 가까운 장성택을 2013년 처형했다. 장성택은 중국 공안 당국처럼 김정남을 주시하고 있었다. 그런데도 중국은 김정남 암살을 막지 못했다. 중국에서 생애 대부분을 보낸 그의 암살은 중국에 대한 모독이었다. 중국이 달가울 리가 없다. 미국은 중국이 얼마나 심기가 불편한지 당장 파악에 나서야 한다.
차 석좌와 다른 전문가들이 말하는 것처럼 북한이 핵탄두를 장착한 장거리 미사일을 갖게 되는 날은 그리 멀지 않았다. 그렇게 되면 북한은 한국과 일본에 도발을 더 자주 감행할 것이다. 어쩌면 국지전을 일으킨 뒤 미국 측의 반격을 유도할지도 모른다. 우리한테는 어디로든 쏠 수 있는 핵무기가 있으니 어디 한번 건드려보라는 식으로 말이다. 이런 전망은 북한 문제를 훨씬 더 시급히 해결해야 할 과제로 만든다. 이런 상황이 지속되면 선제타격론은 그것이 몰고 올 위험에도 불구하고 의제로 나올 수도 있다.
이런 어려움 때문에 오바마는 트럼프 대통령에게 북한을 유념하라고 충고했다. 충고는 트럼프 대통령에게 전달됐지만, 그는 곧 한반도에 펼쳐질지도 모르는 재앙을 피할 만한 매력적인 옵션을 찾지 못하고 있다. 어느 누구도 그런 옵션을 갖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 빌 파월 뉴스위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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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남은 북한의 현재 지도자인 김정은의 이복형이지만 두 사람은 한 번도 서로 만나지 못했다. 김정남은 김정은보다 13살이 더 많았다. 북한의 유명 여배우였던 김정남의 어머니는 김정일과 불륜 관계였다. “김정남과 김정은은 서로 다른 집에서 자랐다”고 전직 한국 정보기관 출신 소식통은 말했다. “게다가 김정남은 어렸을 때 스위스로 유학을 갔다. 두 사람은 만날 일이 없었다.” 2월 13일 벌어진 일이 더 당혹스럽고 비극적으로 보이는 이유다.북한 남성 4명과 베트남과 인도네시아 여성 각각 1명이 그날 아침 7시 30분부터 출발 터미널의 식당에서 김정남을 기다리고 있었다. 김정남이 터미널을 지나가자 두 여성이 그에게 다가갔다. 1명은 마치 그의 시선을 분산시키듯 정면으로 향했고, 그 사이 나머지 한 여성이 김정남의 뒤로 접근했다. 두 여성은 순식간에 김정남의 얼굴을 손으로 문지른 뒤 각각 다른 방향으로 서둘러 빠져나갔다. 몇 분 뒤 김정남은 몸의 이상을 느끼고 경찰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이후 김정남은 구급차에 실려 병원으로 후송됐지만 여성들과 마주친 지 20여분 만에 사망했다. 유엔에서 대량 살상용 화학무기로 규정한 치명적 신경작용제 독극물인 VX로 공격을 당한 뒤였다.
말레이시아 경찰은 사건 발생 이틀 뒤 베트남 여성 도안 티 흐엉을 체포했다. 흐엉은 베트남으로 돌아갈 생각이었는지 쿠알라룸푸르 공항으로 돌아왔다가 경찰에 붙잡혔다. 다음날 새벽 경찰은 인도네시아 여성 시티 아이샤가 묵고 있는 공항 근처 호텔에 들이닥쳤다. 이후 그녀는 자신이 TV 방송 촬영에 참여하는 대가로 120달러를 받았을 뿐이라고 주장했다.
두 여성은 살인죄로 기소됐다. 북한 남성 1명도 체포됐지만 말레이시아 당국은 기소 증거가 불충분하다는 이유로 이 남성을 북한으로 돌려보냈다. 암살에 연루된 다른 북한 남성들은 이미 말레이시아를 빠져나간 것으로 보인다.
전현직 한미 고위 관료들은 이 암살 사건이 의심의 여지 없이 김정은의 지시를 받은 것이라고 말한다. 암살범들의 대담한 수법은 이 사건을 한층 놀랍게 만들었다. 보안카메라가 작동되고 있는 공공장소에서 벌어진 이번 범행은 그 순간이 전 세계에 공개됐다.
그러나 이 사건은 피비린내 나는 학살의 시작에 불과했다. 철저하게 계획되고 사전 연습까지 실시됐던 김정남 암살 사건으로부터 2주 뒤 한국 정보기관은 김정은이 막강한 실권자였던 김원홍 국가안전보위상을 가택 연금시키고 보위성 간부 5명을 고사포로 처형했다고 밝혔다.
미국 정권 인수 기간 동안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은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에게 북한이 가장 급박한 외교안보 문제라고 경고했다. 오바마의 임기 동안 북한은 수차례의 성공적인 지하 핵실험을 실시하고 탄도미사일의 사정거리를 늘리려 해왔다. 북한 정권의 목적은 명백했다. 미국 본토에 닿을 수 있는 대륙간 탄도미사일에 핵탄두를 부착하는 것이다. 언제든 북한이 이 목적을 달성하면 “상황이 완전히 달라지게 될 것”이라고 조지 W. 부시 정권에서 국가안보보좌관을 지냈던 빅터 차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 한국석좌가 말했다.
정권 인수에 관여했던 고위 관료에 따르면 오바마의 충고에 정신이 번쩍 든 트럼프 대통령은 북한에 대한 브리핑을 정보 기관에 요구했다. 김정남 암살 하루 전 트럼프 대통령은 아베 신조 일본 총리와 플로리다 팜비치의 자신이 소유한 리조트 마라라고에서 만찬을 즐겼다.
그때 북한이 탄도미사일을 발사했다. 전문가들은 이 미사일이 기존에 북한이 발사했던 미사일보다 훨씬 적은 이동식 발사차량을 필요로 하기 때문에 더 신속하게 발사될 수 있다고 분석했다. 그러면 미국과 그 동맹국들이 북한의 미사일 발사 전에 선제타격을 하기가 더 어려워진다.최근의 미사일 발사와 김정남 암살 사건은 트럼프 정부에 충격으로 다가왔다. 왜 북한이 그토록 미국과 그 우방, 심지어 북한의 유일한 동맹인 중국에도 성가신 문제인지 생생하게 보여준 사건이었다. 북한이 핵무기와 장거리 미사일을 개발한다는 것은 뉴스도 아니다. 진짜 문제는 계속해서 대북제재 수위가 높아지고 있음에도 북한 정권이 꾸준히 성과를 내는 것처럼 보인다는 데 있다.
한미 정보기관은 북한이 핵탄두를 소형화해서 장거리 미사일에 부착하는 데 최소 4년은 더 걸린다고 본다. 미국 대선 직전 리처드 하스 미 외교협회 회장은 칼럼에서 북한이 2020년 위기를 일으키는 시나리오를 제시했다. 차 석좌는 북한이 2년 내에 장거리 핵미사일 개발 능력을 갖게 된다고 믿는다. 시기가 언제가 됐든 변화를 주지 않는 한 언젠가 핵 위기는 현실이 된다는 얘기다.
김정남 암살은 이 핵무기 경쟁을 더 공포스럽게 만든다. 북한이 얼마나 예측 불가능하고 막무가내인지를 여실히 보여주기 때문이다. 이런 모습은 대중매체에서 북한과 김정은을 다룰 때 내세우는 이미지와 일치한다. 김정일이 영화 ‘팀 아메리카’에서, 김정은이 2014년 영화 ‘인터뷰’에서 어떤 인물로 등장했는지 생각해보라. 그들은 아무 때나 무슨 짓이든 하고자 하는 미치광이들로 묘사됐다.
한·미·일 외교가와 군부의 견해는 그보다 덜 자극적이다. 이들 대다수는 김정은이 단지 정권을 유지하고 권력을 김씨 일가 혈통에 붙잡아두길 원한다고 본다. 김정일은 핵 무기를 보유하는 것이 최고의 보험성 정책이라고 믿었고 김정은도 분명 이에 동의하는 듯이 보인다. 김정은은 그 누구도 핵무장한 북한과 분쟁을 일으키려 하지 않으리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이런 견해에 따르면 권력 보존 의지가 강한 북한은 미국이나 동아시아의 미 동맹국을 공격했다간 나라가 지도상에서 사라지리라는 것도 이해하고 있을 것이다.
이는 제임스 매티스 신임 미 국방부 장관이 한일 양국을 처음 방문해 전달했던 메시지다. 트럼프 대통령은 대선 유세 기간 이 두 동맹국을 긴장시킬 만한 발언들을 일삼았다. 한일 양국이 모두 핵무장을 할 수도 있다는 말까지 했었다. 그래서 서울을 방문한 매티스 장관은 미 동맹국을 향한 북한의 공격은 “위협적인 대응”을 받게 될 것이라는 메시지를 북한을 포함해 전 세계에 전달했다.
그러나 쿠알라룸푸르에서의 대담한 암살은 김정은의 자기 보호 본능이 그의 행동을 어느 정도 합리적으로 만들 것이라는 사람들의 믿음을 뒤흔들었다. 또 이 사건은 이제 막 대북정책 수립에 들어간 트럼프 정부의 우려를 한층 고조시켰다. “세상에, 김정은이 미쳤다는 생각밖엔 들지 않는다”고 트럼프 대통령 측 인사는 말했다.사람들은 이번 암살의 동기를 놓고 갖가지 추정을 하고 있다. 왜 김정은은 신경작용제를 써서 동남아시아의 대형 공항에서 북한에 몇 년 살지도 않았고 자신과 만난 적도 없는 이복형을 죽였을까?
한 가지 짐작되는 이유는 김정남이 그동안 북한 정권을 비판해왔다는 것이다. 김정남은 북한이 중국처럼 경제를 개방하고 국민이 더 나은 삶을 살게 해야 한다고 주장해왔다. 북한에서 최고 지도자에 대한 비판은 금지돼 있다. 김정은과 같은 김씨 혈통을 가진 사람의 비판은 이 젊은 독재자의 심기를 거슬렀을 수도 있다.
일부 한국 매체는 김정남이 영국 런던에서 활동하는 김주일 국제탈북민연대 사무총장과 2014년 중국에서 처음 만난 이래 지금까지 연락을 주고받았다고 보도했다. 김 사무총장은 김정남에게 망명 탈북자들의 지도자가 돼 달라고 요청했지만 거부당했다. 김 사무총장은 김정남이 북한 내부에서든 탈북자 집단에서든 정권 세습에 반대했다고 전했다. 게다가 김정남은 정치에 관심이 없다는 말도 했다고 한다. 잘 알려진 김정남의 쾌락주의적 생활 방식을 보면 이는 분명 사실일 것이다.
이처럼 아주 미약한 정권 위협 요소조차도 김정은에겐 이복형을 죽이기에 충분한 이유였을까? 전직 한국 정보기관 요원은 그럴 수 있다고 말했지만, 현재 정보기관과 군부에 있는 고위 관료들은 회의적이다. “김주일이 자기 조직을 홍보하려고 지어낸 얘기 같다”고 정보 당국자는 말했다. 오바마 정부의 전직 국방부 고위 관료는 “지금까지 제기된 김정남 암살 동기는 모두 낭설”이라고 못박았다.
한·중·미·일 4개국에 보다 시급한 질문은 앞으로 어떻게 할 것인지다. 지난 3월 1일 매체 보도에 따르면 트럼프 정부는 대북정책에서 군사적 대응을 포함한 “모든 옵션”을 고려하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과거 트위터에서 북한의 핵 개발을 저지하겠다고 선언한 적이 있으니 이 보도는 믿을 만한 것으로 보였다. 그러나 바로 다음날 트럼프 정부는 “모든 옵션은 늘 고려 대상”이라며 정부가 강경한 대북정책에 치우쳤다는 언론 보도를 부인했다.
트럼프 정부가 고려 중인 옵션 하나는 사이버 전쟁을 통해 북한의 미사일 실험을 저지하려던 오바마 정부의 노력을 확대하는 것이다. 지난 3월 4일 뉴욕타임스는 오바마 정부가 2014년부터 사이버전 활동을 대폭 늘렸으며 그중 일부는 북한 미사일 실험을 막는 데 성공했다고 보도했다. 그러나 이 프로그램에 회의적인 사람들은 사이버전만으론 북한을 막기에 충분하지 않다고 본다. 그들은 지난해 7월부터 올해 2월까지 북한이 세 차례의 미사일 발사를 성공적으로 해냈다고 지적했다.
지난 3월 6일 북한은 4개의 중거리 미사일을 발사했다. 최근 시작된 한미 연합 군사훈련에 맞춘 무력 과시임이 분명하다. 대북정책에 관여했던 전 고위 관료들은 “북한을 상대할 옵션들이 여러 가지 있지만 좋은 옵션은 하나도 없다”는 오바마 정부 국방부 출신 인사의 말에 모두 동의했다.
김정남 암살 사건 여파로 미국이 북한을 국무부 지정 테러지원국 명단에 다시 올릴 것이 거의 확실시된다. W. 부시 정부는 2008년 핵 협상을 기대하며 북한을 테러지원국 명단에서 제외했다. 그러나 중앙정보국(CIA)에서 북한 분석을 담당했던 브루스 클링너 헤리티지재단 선임연구원은 테러지원국 지정이 “정치적 의미를 갖는 모욕 주기 전략”이라고 설명했다. 김정은이 이를 신경 쓸지는 분명치 않다.트럼프 대통령은 지역 내 미 동맹국이 북한의 불법 무역을 차단하는 능력을 키우도록 돕는 방안도 고려한다. 지난가을 미 외교협회 보고서에 따르면 북한이 제재를 피해 미사일 기술을 개발하는 능력은 미국과 그 우방들을 걱정에 빠뜨리고 있다. 북한의 무기 개발을 지연시키려면 지역 내에서 북한의 움직임을 차단할 보다 효율적인 방법을 고안하는 것이 시급하다고 트럼프 대통령 측 고문은 말했다.
미국이 국제사회의 대북제재를 더 강화하리라는 것도 거의 확실시된다. 전문가들은 2차 제재가 가장 가능성 높은 방법이라고 본다. 북한이 돈을 세탁하고 미사일 개발을 위한 부품을 불법 수입할 때 중국 기업들을 통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방법 역시 쉽지만은 않다. 중국이 북한과 거래하는중국 기업을 대상으로 하는 제재에 동의할까? 일부 전문가들은 김정남 암살 여파로 중국도 북한 정권의 생명줄인 석탄 수입을 중단했다는 데 주목한다. 그러나 중국의 대북정책이 늘 그랬듯이 석탄 수입 중단이 얼마나 지속될지, 그 효과가 얼마나 될지는 확실하지 않다. 북한은 지난해 중국으로 역대 최대량의 석탄을 수출했으며 당장은 더 많은 석탄을 수출할 필요성을 느끼지 않고 있다. 게다가 중국은 석탄 공급 과다 상태다. 중국의 수입 중단이 올해 1분기를 넘어서도 지속될지 여부가 중국의 진정성을 확인하는 척도가 될 것이다.
중국이 북한 국경에서 사업하는 중국 기업에 대한 제재에 동참할 것이라는 긍정적 전망을 조심스럽게 내놓는 사람들도 있다. 그런 기업 대다수는 별로 중요하지도 않고 국영 기업도 아니기 때문이다. 양제츠 전 중국 외교부장은 최근 워싱턴에서 트럼프 대통령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회담을 추진 중이었다. 트럼프 대통령 측근에선 정권 초기에 회담을 갖는 것에 신중론이 나오지만 북한을 둘러싼 위기감이 고조되면서 미중 회담이 예상보다 일찍 성사될 가능성도 커졌다.
전문가들은 미국과 그 동맹국들이 대북 강경책을 펼 때 유리하게 작용하는 요소가 한 가지 더 있다고 지적한다. 시 주석은 김정은이 북한 지도자로서 적합하지 않다고 보고 거의 존중하지 않는 것으로 알려졌다. 김정은은 중국 지도자들과 가까운 장성택을 2013년 처형했다. 장성택은 중국 공안 당국처럼 김정남을 주시하고 있었다. 그런데도 중국은 김정남 암살을 막지 못했다. 중국에서 생애 대부분을 보낸 그의 암살은 중국에 대한 모독이었다. 중국이 달가울 리가 없다. 미국은 중국이 얼마나 심기가 불편한지 당장 파악에 나서야 한다.
차 석좌와 다른 전문가들이 말하는 것처럼 북한이 핵탄두를 장착한 장거리 미사일을 갖게 되는 날은 그리 멀지 않았다. 그렇게 되면 북한은 한국과 일본에 도발을 더 자주 감행할 것이다. 어쩌면 국지전을 일으킨 뒤 미국 측의 반격을 유도할지도 모른다. 우리한테는 어디로든 쏠 수 있는 핵무기가 있으니 어디 한번 건드려보라는 식으로 말이다. 이런 전망은 북한 문제를 훨씬 더 시급히 해결해야 할 과제로 만든다. 이런 상황이 지속되면 선제타격론은 그것이 몰고 올 위험에도 불구하고 의제로 나올 수도 있다.
이런 어려움 때문에 오바마는 트럼프 대통령에게 북한을 유념하라고 충고했다. 충고는 트럼프 대통령에게 전달됐지만, 그는 곧 한반도에 펼쳐질지도 모르는 재앙을 피할 만한 매력적인 옵션을 찾지 못하고 있다. 어느 누구도 그런 옵션을 갖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 빌 파월 뉴스위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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