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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셋, 한국경제 | 대기업 지배구조를 바꾸자] 기관투자 역할 강화하고 다중대표소송 단계적 도입하자

[리셋, 한국경제 | 대기업 지배구조를 바꾸자] 기관투자 역할 강화하고 다중대표소송 단계적 도입하자

이사회 견제·감시 강화로 정경유착 고리 끊어야 … 공정위 개입 줄여 당사자간 합의 유도해야
‘최순실 게이트’의 본류인 K스포츠·미르재단에는 700억원이 넘는 기업 자금이 들어갔다. 삼성 등 국내 53개 대기업이 규모에 비례해 돈을 냈다. 하지만 이들 중 이사회 의결을 거친 건 포스코와 KT 단 두 곳뿐이다. 투명경영위원회(기아차)나 윤리위원회(현대모비스) 등 최소한의 절차를 거친 곳까지 더해도 네다섯 곳에 불과하다. 기업 내부의 의사결정구조가 그만큼 부실했다는 얘기다.

중앙일보·JTBC의 국가 개혁 프로젝트 ‘리셋 코리아’의 기업 지배구조 분과는 이런 문제의 뿌리가 불투명한 기업 지배구조에서 비롯된다고 진단했다. 적은 지분을 가진 지배주주가 계열사 간 출자를 통해 경영권을 유지하다 보니 전체 주주의 이익보다 총수 일가의 이익을 우선시하는 행태를 보인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이런 이해상충을 제한할 수 있는 기업 내부와 사회적 시스템은 미비하다. 공정거래위원회에 따르면 총수가 있는 10대 기업집단의 총수 일가 지분은 지난해 평균 2.6%에 불과했다. 반면에 다단계 교차 출자를 통한 계열사 지분율은 54.9%에 달했다. 영향력과 책임의 이런 불일치는 정경유착으로 이어지기 쉽다. 대주주로선 기업 내부의 문제를 자체적으로 해결하기보다 권력에 기대 손쉽게 해결하려는 유혹을 느낄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지배구조 분과는 이를 고치려면 정부 규제에만 의존하지 말고 시장이 작동하도록 해야 한다는 데 의견을 모았다. 기업 문제의 당사자인 대주주와 소액주주·채권자·협력업체·소비자가 공동의 이익을 위해 협업할 수 있게끔 지배구조를 개혁해야 한다는 것이다.

과제 1 | 기관투자가의 적극적 의결권 행사먼저 기관투자가의 역할 강화를 위한 스튜어드십 코드(Stewardship code)의 적극 행사가 필요하다. 스튜어드십 코드는 의결권을 포함한 다양한 측면의 주주권 행사 과정을 객관화·투명화하고 그 결과를 공시토록 하는 제도다. 국민연금이나 펀드가 국민과 고객의 이익을 극대화하는 방향으로 권리를 행사하는 토대가 된다. 스튜어드십 코드는 지난해 12월 금융위원회 주도로 제정됐지만 아직 국민연금 등 주요 기관이 수용 여부를 밝히지 않고 있다. 조명현 한국기업지배구조원장은 “지난해 금융위원회가 제정한 스튜어드십 코드를 대표적 기관투자가인 국민연금부터 채택하면 많은 지배구조 문제가 시장에서 해결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과제 2 | 다중대표소송 단계적 도입이는 모회사 주주가 불법행위를 한 자회사 혹은 손자회사 임원들을 상대로 손해배상 소송을 낼 수 있는 제도다. 현재 국회에서 논의되고 있지만 소송 남발이 우려된다는 이유로 재계가 강하게 반대하고 있다. 그러나 지배구조 분과에선 원고가 피고의 자료를 볼 수 있는 디스커버리 제도가 채택돼 있지 않은 한국의 민사소송 절차를 감안할 때 남소 우려는 과장된 것이라는 데 의견을 모았다. 김우찬 고려대 교수는 “재벌 계열사의 70% 이상이 비상장임에도 불구하고 다중대표소송을 인정하지 않는 것은 주주가 손해를 보더라도 보전해 주지 않겠다는 것과 크게 다를 바 없다”고 지적했다. 다만 초기엔 모회사가 자회사의 지분 50% 이상을 보유한 경우로 한정해 단계적으로 도입할 것을 제안했다.

과제 3 | 공정거래법 집행에 경쟁 원리 도입갑을 관계로 일컬어지는 하도급 거래에서 억울한 일을 당한 협력업체가 할 수 있는 일은 공정위에 민원을 제기하는 것뿐이다. 공정위가 무혐의 처분하면 그것으로 끝이다.

그래서 공정위의 전속 고발권을 폐지해 누구나 고소·고발할 수 있도록 하자는 요구가 나왔다. 그러나 공정거래법의 모든 조항에 형사처벌이 규정돼 있는 현 상황에서 전속 고발권을 폐지하면 남소가 우려된다는 반발도 만만치 않다. 그 결과 2013년 7월 검찰총장은 물론 감사원장·중소기업청장·조달청장 등에게 고발요청권을 부여하는 타협이 이뤄졌다.

하지만 이들 기관이 실제 고발 요청을 한 경우는 매우 적다. 이상승 서울대 교수는 “공정위가 공정거래법 집행에 관한 전권을 갖고 있어 피해자 구제나 경쟁촉진 효과가 떨어진다”며 “담합처럼 중대한 시장질서 교란행위에 대해선 전속 고발권을 폐지하되, 나머지는 과징금 등 금전적 처벌을 대폭 강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나아가 피해자가 직접 법원에 위법행위의 금지를 청구할 수 있게 하고 징벌적 손해배상소송의 대상을 확대해 당사자끼리 민사적으로 문제를 해결하도록 유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분과장인 김상조 한성대 교수는 “불투명하고 취약한 기업 지배구조를 개혁하지 않고선 장기적 경영 안정과 효율적 자본시장 형성이 이뤄질 수 없다” 고 강조했다.
 [박스기사] 왜 지배구조 개선인가 - 후진적 지배구조, 코리아 디스카운트 원인
지난해 9월 한 외국계 증권사가 아시아 12개국 상장사들의 지배구조를 평가해 점수를 매겼다. 중국·일본에 이어 3위권의 경제 규모인 한국의 순위는 12개국 중 12위, 꼴찌였다. 이 증권사는 적은 지분으로 거대 기업집단을 지배하고 세습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정경유착, 불공정 거래, 자본의 비효율적 투자 등 많은 부작용이 나타나고 있다고 꼬집었다.

대기업 지배구조의 후진성은 스위스 국제경영개발대학원(IMD)의 연례 평가에서도 그대로 나타난다. 지난해 한국의 순위는 61개국 중 29위를 기록해 2008년 금융위기 이후 최저를 기록했다. 4대 평가 분야 가운데 특히 기업 효율성(48위)이 두드러지게 낮았다. 이 중에서도 경영 관행은 꼴찌인 61위를 기록했다. 세부 항목별로 봐도 기업윤리실천(58위)과 경영자의 사회적 책임(60위), 건강·안전 등의 관심도(56위)가 나란히 바닥 수준이다. 후진적 지배구조가 국가경쟁력 하락의 주된 원인이 되고 있는 것이다. 끊이지 않는 대기업 총수 일가의 갑질이나 소비자 안전을 도외시하는 경영 윤리 실종이 낳은 결과다. 이는 자본시장에 대한 불신과 한국 주식 저평가(코리아 디스카운트)로 이어진다. 조명현 한국기업지배구조원장은 “외국인 투자자들과 이야기하다 보면 코리아 디스카운트는 크게 지배구조와 지정학적 요인 두 가지에서 기인하는 것을 알 수 있다. 지정학적인 것이야 바꿀 수 없는 부분이지만 기업지배구조는 개선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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