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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7년을 기억하는 스무 가지 방식(8) 세계화의 덫] 준비 안 된 자본시장 개방... 절차는 희극, 결과는 비극

[1997년을 기억하는 스무 가지 방식(8) 세계화의 덫] 준비 안 된 자본시장 개방... 절차는 희극, 결과는 비극

실체 없는 세계화 구호 속에 자본시장 빗장 풀어... 금융부문 체질 취약한 상황에서 위험 키워
김영삼 대통령이 1996년 12월 12일 청와대에서 레이니 미국대사를 포함, OECD 회원국 주한대사 등 각계 인사와 함께 한국의 OECD가입 축하 리셉션을 갖고 축배를 들고 있다. / 사진. 중앙포토
박근혜 정부의 ‘창조경제’가 희극이었다면, 그보다 20년 전 출범한 김영삼 정부의 ‘세계화’는 희비극이었다.

박근혜 전 대통령이 창조경제가 무엇인지 모르면서 무언가를 창조하자고 한 것이나 마찬가지로, 김영삼(YS) 전 대통령도 세계화의 실체를 구체적으로 설명하지 못한 채 세계화를 외쳤다.

김영삼 정부의 세계화는 광범위한 영역에 걸쳐 산만하게 추진됐고 대부분 성과를 내지 못했다. 그나마 세계화가 활발히 진척된 분야가 자본시장 개방이었다. 그러나 이는 준비되지 않은 세계화였고 외환위기의 요인이 됐다.

해외자본이 봇물을 이루며 들어오면서 외채가 급증했는데 돈을 운용하는 제도와 관행은 과거 행태 그대로였다. 외채는 한국 경제의 활력이 떨어지는 동안에도 증가했고, 게다가 단기로 차입한 돈이 장기로 운용됐다. 한국 경제의 미래를 둘러싼 의구심이 고개를 들자 해외자본이 빠져나가기 시작했다. 해외자본이 썰물처럼 유출되고 외환보유액이 바닥나면서 한국 경제는 외환위기에 좌초되고 말았다.

세계화는 국제화를 세게 하는 것?:
김영삼 정부는 한 손에는 사정과 개혁의 칼을 들고 휘두르는 한편 다른 한 손에는 국제화·세계화라는 깃발을 흔들었다. YS는 연설마다 국제화·세계화를 강조했다. 그는 해외동포를 위한 1994년 신년사에서 “정치, 경제, 사회 등 모든 분야에서 선진화, 국제화, 미래화를 위한 개혁을 반드시 성공시킬 것”이라고 말했다. 또 1995년 초 세계화추진위원과의 간담회에서는 “세계화는 일류화, 합리화, 일체화, 한국화, 인류화 등 다섯 가지 의미를 담고 있다”고 설명했다.

김영삼 대통령이 김진현 세계화추진위원장으로부터 세계화 추진 관련 보고를 받고 있다. / 사진. 중앙포토
국제화와 세계화의 개념이 뚜렷하지 않고 두 개념이 구분되지 않는다는 지적이 많았다. 이에 대한 김영삼 정부의 해명은 오히려 혼란을 더했다. 주돈식 청와대 공보수석은 “세계화는 개별 국가의 개념이 약해지고 세계가 단일공동체로 확산하는 것을 의미하는, 국제화의 상위개념”이라고 주장했다. 김진현 세계화추진위원회 공동위원장은 “국제화는 국가주의에 바탕을 둔 경영 차원의 1대 1 개념이고, 세계화는 국제화를 포함해 지구공동체를 창출하자는 포괄적인 개념”이라고 표현했다. 김 위원장은 “죽지 않으려면 세계화를 해야 한다”고 강변했다. 해명조차 모호하자 ‘세계화는 국제화를 세게 하는 것이냐’는 비아냥도 나왔다. 언론은 국제화·세계화가 무엇인지, 두 개념에 어떤 차이가 있는지 구구한 해석을 내놓았다. 이런 가운데 공무원은 경제국제화기획단, 기업세계화지원기획단 등을 만들어 정책적인 내용을 담기에 바빴다.

YS는 1994년 11월 17일 세계화에 방점을 찍는다.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담을 마친 뒤 호주 시드니에서 한국을 세계경영의 중심국가로 발전시킨다는 의미를 담았다며 ‘세계화선언’을 발표한다. 그는 세계화의 방향으로 세계경영의 중심국가로 발전을 비롯해 국가 간의 경쟁과 협력을 조화시킬 정책과 인력 개발, 세계화를 겨냥한 제도와 의식의 개혁, 창의를 가진 자가 성공하는 사회 건설을 제시했다. 무슨 말인가? YS의 경제교사였던 한이헌 청와대 경제수석은 “세계화는 국제화보다 한층 광범위하고 적극적이며 진취적인 개념으로 선진국 진입을 성공적으로 실현시키기 위해 세계를 내다보는 개혁을 추진하겠다는 뜻”이라고 풀이했다.

구호 만든 뒤 내용을 계속 바꿔:
김영삼 정부는 실체를 담지 않은 채 세계화라는 포장을 먼저 내놓았다. 그래서 세계화의 내용은 수시로 변했다. 세계화는 처음에는 주로 기업의 해외진출을 의미했다. 그 다음 단계에서 세계화는 모든 영역의 개혁으로 확장됐다.

1993년 2월 25일 김영삼 대통령이 14대 대통령 취임 선서을 하고 있다.
기업세계화지원기획단은 1994년 5월 발족했다. 각계 대표로 구성된 이 기획단은 7개월 동안 회의를 거쳐 그해 12월 최종보고서를 내놓았다. 앞서 한국무역협회는 이와 관련해 경제기획원 기업세계화지원기획단 제도개선 소위원회에 제출한 ‘우리나라 해외투자제도의 개선방안’ 보고서에서 한국의 해외투자는 대만이나 일본에 크게 못 미친다고 분석했다. 이 보고서에 따르면 해외투자 잔액의 국민총생산(GNP) 대비 비중이 일본은 11.5%, 대만은 2.7%인데 비해 한국은 1.4%에 그쳤다. 기획단은 최종보고서에서 해외투자 제한업종의 완화·철폐, 투자금액·지분·절차상의 제한 및 사후관리 완화, 현지 금융조달의 용도제한 폐지 등을 촉구했다.

김영삼 정부는 1994년 2월 해외직접투자 절차 간소화, 투자제 한 업종 축소, 해외직접투자 지원제도 도입 등 자유화 조치를 시행했다. 1995년 10월에는 투자제한 업종을 대폭 풀고 투자허가절차를 간소하게 하며 자기자금 조달비율을 설정하는 등 해외투자 자유화 확대 및 건실화 방안을 시행했다.

국내 기업의 해외진출과 함께 외국 기업의 국내투자 유치정책도 펼쳐졌다. 김영삼 정부는 1993년 외국인투자 개방 5개년 계획을 시작으로 외국인투자대상 업종을 확대하고 투자 절차를 간소하게 했다. 1996년 5월에는 외국인투자가 제한되는 81개 업종 중 47개 업종을 2000년까지 단계적으로 전면개방 또는 부분개방한다는 계획을 시행했다. 1997년 1월에는 ‘외국인 투자 및 외자도입에 관한 법률’을 개정하고 2월부터 구주취득 방식에 의한 외국인투자를 부분적으로 허용하고 일정 요건을 충족하는 외국인투자기업은 국가산업단지 등의 토지사용료 및 임대료를 감면받을 수 있게 됐다.

외국인의 기업에 대한 투자와 함께 자본거래가 자유화됐다. 자본거래 자유화는 김영삼 정부 출범 전인 1992년 1월 국내 주식시장에 대한 외국인 투자를 개방하면서 본격 추진됐다. 자본시장 개방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가입 협상과 이에 앞선 우루과이라운드(UR) 금융서비스 협상을 통해 더욱 확대됐다. 선진국 클럽인 OECD 가입은 김영삼 정부 세계화의 구체적인 목표였고, 한국은 1996년 12월 이 클럽의 회원이 됐다. 그러나 자본시장 개방은 외채 급증으로 이어졌고 외환위기의 배경이 됐다. 이 부분은 잠시 후 다루기로 한다.

세계화는 1995년 1월 이후에는 세계화추진위원회에서 맡아 법·경제질서, 정치·언론, 행정·지방, 환경, 문화·의식 등 영역에 걸쳐 전개됐다. 법·경제질서와 관련한 과제로 관행과 제도 합리화를 위한 사법 개혁, 금융의 경쟁성, 세정의 공정성 확보, 생산적이고 합리적인 도시 관계가 꼽혔다. 정치·언론 과제로는 정책으로 경쟁, 당내 민주화 보장, 차세대 지도자 양성, 국회의원의 전문성 및 직종 대표성 제고, 정론을 통한 사회적 공기로서의 언론 등이 선정됐다. 이로부터 1996년에 49개 세부 실천과제가 나왔다.

내실 없는 세계화의 결과:
기업이 정부의 지원을 받아 의욕적으로 밀어붙인 해외투자는 상당 부분 부실해졌다. 세계화는 대우그룹이 앞장섰다. 대우는 1993년 세계경영을 선언한 뒤 2000년까지 해외에 650개 생산기지를 구축하고 매출을 138조원으로 늘린다는 목표를 제시했다. 1997년 하반기에는 해외 사업장이 500개를 돌파했다는 발표도 했다. 그러나 대우그룹의 세계화는 ‘제3세계화’였다. 선진 시장에서 품질로 경쟁하기보다는 제3세계 시장을 저렴한 가격으로 공략한다는 전략은 당장은 통하더라도 점점 경쟁에서 뒤로 처지는 결과로 이어질 수밖에 없었다. 삼성과 LG 등 대기업은 경쟁적으로 해외기업을 인수했다. 삼성전자는 미국 컴퓨터 업체 AST를 사들였고, LG전자는 TV 업체 제니스를 인수했다. 이들 기업은 해외 기업인수에서 값비싼 수업료만 치른 채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1998년 2월 20일 문민정부의 마지막 경제장관회의를 마친 임창열 부총리(앞줄 왼쪽에서 세 번째) 등 참석자들이 과천 재정경제원청사 계단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 사진. 중앙포토
세계화 정책 가운데 논리적 설득력을 가진 대목은 외국인투자 유치 정책이었다. 이 정책을 낳은 전략은 로버트 라이히 미국 하버드대 케네디행정대학원 교수가 쓴 [국가의 일]을 참고해 만들어졌다. 자본이 세계 전역으로 영역을 넓혀 증식하는 추세로부터 이익을 취하려면 국내기업인지 외국기업인지 가릴 것 없이 활동을 북돋워야 한다는 전략이었다. 외국인투자 유치는 활용에 따라 부족한 자본을 조달하고 선진 기술을 습득하며 일자리를 늘리는 성과를 얻을 수 있다. 그러나 해외기업의 국내 투자는 이렇다할 진척을 보지 못했고 국내 산업에 의미 있는 변화로 이어질 정도에 이르지 않았다.

김영삼 정부도 세계화의 실패를 부분적으로 인정했다. 청와대 정책기획수석실은 1997년 11월 세계화선언 3주년을 맞아낸 자체분석 자료에서 ‘현실적 제약을 충분하게 고려하지 않아 반발이 빚어졌고’ ‘구체적인 개혁추진 방안을 제시하지 못했으며’ ‘국민적인 공감대를 형성하지 못했고’ ‘개혁의 어려움을 극복하려는 정치적 의지가 부족했다’고 그 요인을 들었다.

해외자본의 위험을 사서 짊어지다:
여기까지는 세계화의 ‘희극’에 해당한다. 이제 세계화의 ‘비극’으로 들어간다. 김영삼 정부는 규제를 풀어 외국자본이 국내에 자유롭게 드나들게 하면서 스스로 위험에 뛰어들었다. 미국 등 선진국이 개방 압력을 넣기도 했고, 국내 대기업과 금융권이 강하게 요구하기도 했다. 민간 부문은 금리가 낮은 해외 차입을 선호했다.

한국 경제는 경상수지 적자가 누적되는 가운데 이를 자본수지 흑자로 메우게 됐다. 이는 대외균형 측면에서 불안하다는 지적이 나왔다. 여기서 상황을 호도하는 아이디어가 등장했다. ‘세계화 시대에는 경상수지 적자를 유입되는 해외자본으로 쉽게 보전할 수 있다’는 아이디어였다. 정부 당국자도 이 아이디어를 수용해, “국제수지를 걱정하는 것은 구시대적인 발상”이라고 말했다.

경제의 체질이 탄탄하지 않은 상태에서 유입 받은 해외자본은 부작용을 낳았다. 자본수지 흑자로 원화가 고평가된 가운데 민간부문은 확장 경영을 지속했고, 이로 인해 경상수지 적자가 확대됐다. 한국 경제는 대외균형에서 더욱 벗어났다.

준비되지 않은 세계화였고, 준비 없는 개방이었다. 김영삼 정부는 금융부문이 튼튼하지도 않고 제 구실도 하지 못하는 단계에서 외화차입에 대한 건전성 감독체계를 갖추지 않은 채 해외자본에 빗장을 풀었다. 예컨대 금융기관의 외화부채 상환을 위한 유동성 확보를 감독하는 기준은 외환 사장이 상당히 나빠진 1997년 7월에야 도입됐다. 이규성 전 재정경제부 장관은 저서 [한국의 외환위기]에서 이런 불일치를 복기한 뒤 자본자유화를 추진해야 했다면 우선순위를 정해 단계적으로 개방했어야 했다고 지적했다. 그는 “외국인 직접투자, 외국인의 국내 증권 투자 및 내국인의 해외차입 중 어떤 순서로 자유화하며, 내국인의 해외차입에 있어 단기차입과 장기차입 중 어느 것을 먼저 자유화할 것인가 등에 대한 세밀한 검토와 대비가 있어야 했다”고 했다. 자본의 급격한 유출입이 덜한 외국인 직접투자와 장기차입을 먼저 여는 순서가 고려되지도 지켜지지도 않았다는 지적이다.
 [박스기사] ‘세계화’, 신기루 같았던 목표 - 당시 상황 정확히 인식하고 내실화 꾀했어야
우문에 현답이 나올 수 없었다. 과제를 잘못 잡았으니 제대로 추진될 수가 없었다.

국제화란 무엇인가. 국제는 ‘나라 사이의 관계나 여러 나라에 공통적인’이라는 뜻이고, 따라서 국제화(하자)는 우리나라의 제도 등 규범을 여러 나라에 공통적인 수준으로 맞춰나가자는 의미다. 국제적인 규범은 선진국의 규범이므로 국제화는 선진국의 규범을 채택하고 이를 통해 선진국이 되자는 뜻으로 풀이할 수 있다. 따라서 국제화를 목표 또는 수단으로 삼는 것은 그런 대로 말이 된다.

세계화는 다르다. 세계화는 자본이 이익을 극대화하기 위해 국경을 넘어 점점 더 전 지구적으로 활동하면서 세계 경제가 하나로 되는 양상을 가리킨다. ‘세계화하자’는 자본에는 하나의 전략이 될 수 있고, 거대 기업은 세계 전역에 생산·영업망을 촘촘히 엮어 가동함으로써 이익을 키울 수 있다. 그러나 세계화는 자본에도 방편일 뿐 목표는 아니다. 하물며 국경을 경계로 움직이는 국가는 세계화를 목표로 삼을 수 없다. 국가가 세계화한다는 것은 세계 경제와 긴밀히 통합됨으로써 세계 경제의 단일화에 기여한다는 의미로 풀이가 가능하다. 이것이 국가 경영의 목표가 될 수 없음은 자명하다.

정부가 기업의 세계화를 지원하는 것은 말이 된다. 여기에는 전제조건이 요구된다. 국내기업이 세계화의 준비가 돼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국내기업은 세계를 무대로 활약할 역량을 갖고 있지 않았다. 세계경영에 성공하기는커녕 나라 안에서도 확장 일변도 경영의 균열이 나타나고 있었다. 따라서 해외진출은 정부가 권장할 선택이 아니었다.

상황을 정확히 인식해야 문제를 제대로 파악하고 과제를 정할 수 있다. 과제를 잘 잡으면 해법도 잘 도출할 수 있다. 당시 한국 경제는 부실한 체력으로 몸집 불리기에 나서 안정성이 떨어진 상황이었다. 그런 상황에서 세계경기가 좋아지는 흐름을 타고 기업실적이 크게 개선됐을 뿐이었다. 한국 경제는 선진국 수준으로 진입하기 직전이 아니라 크게 휘청거리고 넘어질 위험이 컸다. 정부와 주요 경제주체는 1990년대 호황기에 체질을 개선하면서 위기를 선제로 대비했어야 했다. 금융부문을 통해 기업부문, 특히 대기업이 재무건전성을 갖추도록 유도하고 구조개혁에 힘을 쏟아야 했다. 안에서 새는 바가지는 밖에서는 더 새게 마련이다. 당시 한국은 세계가 아니라 안을 들여다보고 내실화를 꾀했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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