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틴의 사이버전 묘수인가 악수인가
푸틴의 사이버전 묘수인가 악수인가
15년여 전 파탄국가였던 러시아가 지금은 서방을 쥐고 흔드는 강자로 떠올랐다. 그 배경은 무엇일까. 새 천년이 시작된 지 며칠 뒤였다. 모스크바 주재 미국 대사관이 수십 년 동안 미국 대사 저택으로 쓰던 스파소 하우스에서 리셉션을 열고 있었다. 새해 첫날 러시아 격동기의 보리스 옐친 시대가 갑자기 충격적으로 막을 내렸다. 옛 소련을 무너뜨리고 러시아를 혼란스런 신생 민주체제로 이끌었던 러시아 대통령이 사임을 발표했다. 불과 4개월 전 그가 총리로 지명했던 인물이 후계자였다. 외부 세계는 말할 필요도 없이 러시아인도 거의 모르던 전 KGB 요원 출신 블라디미르 푸틴이었다.
당시 러시아 주재 미국 대사는 부드러운 말투의 직업 외교관 짐 콜린스였다. 그는 리셉션 장을 돌면서 크렘린 수뇌부의 극적인 변화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손님들에게 물었다. 안도하는 분위기가 지배적이었다. 수많은 공약과 함께 개막됐던 옐친 시대는 무질서하고 극히 부패한 반유토피아로 전락했다. 야성적인 에너지를 내뿜으며 혜성처럼 등장했던 옐친은 만성 질환에 시달리며 갈수록 보드카에 빠져들었다.
옛 소련 독재체제를 되살리려 했던 수구 세력을 모스크바 한복판에서 탱크에 올라타 돌려세운 장면은 냉전 종식의 가장 상징적인 순간 중 하나다. 정치적 연줄을 가진 사업가 그룹이 경제적으로 나라를 유린하고 소득의 대부분을 해외로 빼돌렸다. 정부 예산이 바닥나고 공복들은 녹을 받지 못했다(당시 부인 생일파티를 열어줄 돈이 없어 자살한 소비에트로켓부대 대령의 기사를 썼던 기억이 있다). 한때 막강했던(그리고 상당히 유능했던) KGB 요원들이 민간기업으로 빠져나가면서 국가 보안 기구의 사기가 떨어지고 부패가 갈수록 심해졌다. 러시아는 혼란으로 빠져들었다.
콜린스 대사는 다양한 의견을 경청한 뒤 자신도 의견을 말했다. “이 나라의 질서를 바로잡을 수 있는 인물이 필요하다.” 다시 말해 그도 옐친의 퇴진을 다행으로 여겼다.
러시아와 관련된 온갖 문제로 워싱턴 D.C. 정가의 히스테리가 심해지는 가운데 우리가 요즘 잊은 게 한 가지 있다. 지금은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서방 정치인과 언론 사이에서 흔히 만화 속 악당처럼 묘사되지만 과거 밀월 기간도 있었다는 사실이다. 당시 푸틴의 KGB 경력에 눈을 감고 대신 그가 탈소련 이후의 기간 중 고향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개혁주의 성향 시장의 보좌관으로 열심히 일했다는 사실에 초점을 맞추는 사람이 많았다.
당시 빌 클린턴 정부의 국무장관이었던 매들린 올브라이트는 그를 ‘개혁파’로 불렀다. 그리고 그 뒤 10년 동안 워싱턴의 공화·민주 양 진영 모두 푸틴에게 속아 넘어갔다. 2001년 9·11 사태 이후 테러와의 전쟁에서 러시아의 도움이 절실히 필요했던 조지 W. 부시 대통령은 “[푸틴의] 영혼을 들여다봤다”는 유명한 말을 남겼다(존 매케인 상원의원은 “나도 그래 봤는데 철자 3개 KGB가 보이더라”고 우스갯소리를 했다). 근래 들어 2012년 대선에선 푸틴을 미국에 대한 위협이라고 평한 미트 롬니 공화당 후보를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비웃었다. “아직도 1980년대의 외교정책을 버리지 않았다”고 비꼬았다. 2012년 미국 대선 기간 동안의 일이다. 요즘 비판자들에 따르면 러시아는 서방이 소중히 여기는 모든 것을 위협하는 존재이며 2016년 대선에선 주로 사이버공간을 통해 개입을 시도했다. 미국이 가장 소중히 여기는 자산인 민주주의도 그들의 공격을 받았다. 매케인 상원의원은 워싱턴의 대다수 기성체제를 대변해 그것을 ‘전쟁 행위’로 불렀다. 트럼프 신정부는 그의 선거 캠프 운동원들이 힐러리 클린턴의 백악관 입성을 막으려고 러시아와 결탁했는지에 관해 연방수사국(FBI)의 조사를 받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자신의 첫 국가안보회의 보좌관 마이클 플린을 해고해야 했다. 정권인수 기간 중 그가 세르게이 키슬랴크 러시아 대사와 접촉해 러시아 제재 해제를 논의하고도 이를 은폐한 사실이 드러난 뒤였다. 이어 지난 5월 10일엔 트럼프 캠프와 러시아 내통 의혹에 대한 FBI의 조사를 총괄하던 제임스 코미 국장을 해고했다. 그런 조치엔 트럼프 대통령이 러시아 정부와 아무 관계도 없다고 명확히 공언하려 하지 않았다는 점도 일정 부분 작용했다.
돌연 워싱턴 D.C. 공기에 워터게이트 스타일의 위기감이 짙게 깔렸다. 그러나 이번 스캔들에는 두드러진 특징이 있다. 앞으로 몇 주, 몇 개월에 걸쳐 여러 건의 조사가 전개되는 동안 이번 일이 자생적이 아니라 모스크바에서 비롯된 스캔들임을 명심해야 한다. 냉전 중 러시아가 미국 정치를 이렇게 효과적으로 흔들어 놓은 적은 거의 없었을 성싶다.
이것이 위기인지 아니면 트럼프 대통령의 말마따나 대선에서 패배한데 분노한 민주당 진영이 꾸며내고 그들과 한 패인 언론 동조자들이 퍼뜨린 ‘가짜’ 뉴스인지에 관한 논란은 일단 접어두자. 푸틴이 쇠잔하고 파산한 나라를 물려받은 지 20년도 채 되지 않았다. 한때 초강대국이던 러시아는 자기 뒷마당에서조차 지정학적 영향력을 거의 행사하지 못했다(미국은 1999년 코소보 전쟁 중 러시아 우방 세르비아를 폭격해 러시아 정부에 굴욕을 안겨주고 당시 옐친 정부에서 KGB의 후신인 연방보안국을 이끌던 푸틴을 분노케 했다).
이제 러시아가 다시 미국의 공적 1호가 됐다. 그리고 푸틴은 세계 각지에서 공세를 펼치고 있다. 그는 시리아 독재자 바샤르 알-아사드 대통령의 주요 후원자다. 대담하게 러시아 군대를 파견해 반(反) 아사드 이슬람 반군과 싸우도록 한 덕분이다. 크림반도를 합병하고 우크라이나 동부에 배치한 러시아군 병력과 특수부대원들도 아직까지 남아 있다. 극동에선 중국 정부와 군사적 결속을 다진다. 그리고 푸틴의 사이버 전사들은 유럽과 미국에서 큰 혼란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푸틴은 어떻게 이 모든 일을 해냈을까? 그는 1990년대의 굴욕(푸틴은 소련의 붕괴가 “20세기 최대의 지정학적 재앙”이라는 유명한 말을 남겼다)에서 한 가지 본질적인 통찰을 얻었다. 그는 방대한 천연자원(석유·가스·광물·목재)이 러시아의 최대 자산임을 알았다. 옐친은 이 모두를 올리가르히(신흥재벌)들에게 헐값에 팔아넘겼다. 푸틴은 이들 자산의 소유권 회복이 러시아 정부에 대단히 중요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러시아 정부가 국가의 자원(특히 석유)을 소유한다면 특히 유럽에서 다시 막대한 영향력을 행사하게 된다고 판단했다. 푸틴은 그 작업에 착수했다.
사업가 미하일 호도르코프스키가 1990년대 인수한 석유 대기업 유코스의 사례를 살펴보자. 그가 약 1억 5000만 달러에 넘겨받은 유코스는 2004년에는 평가액이 200억 달러로 불어났다. 푸틴 정부는 2003년부터 유코스와 경영진에게 잇따라 탈세 혐의를 씌우기 시작했다. 모스크바 정부는 미납 세금 270억 달러를 추징했지만 푸틴은 그것으로 만족하지 않았다. 유코스는 러시아 석유의 20%를 생산했는데 푸틴은 그것을 되찾고자 했다. 정부는 유코스의 자산을 동결한 채 합의를 보려 하지 않았다. 그러던 중 2003년 10월 호도르코프스키가 체포됐다(그는 10년 이상 감방 생활을 하게 된다). 모스크바 정부는 이어 유코스의 자산을 몰수해 결국에는 로스네프트라는 회사에 넘겨줬다. 푸틴처럼 KGB 출신인 이고르 세친이 이끄는 회사였다.
정부가 직접하든 푸틴 충성파들이 이끄는 사기업을 통해서든 자산의 소유권 반환이 시작됐다. 푸틴은 1990년대 옐친이 했던 일을 원점으로 돌려놓고 있었다. 오늘날 러시아에 매장된 석유자원은 상당부분 국유 기업들이 통제한다.
푸틴에겐 타이밍이 그보다 좋을 수 없었다. 1990년대 거의 모든 원자재 가격이 하락했다. 그러나 2000년대로 접어들면서 중국이 탐욕스러운 원자재 소비국으로 새로 등장했다. 중국 경제는 수년 간 연속해 연간 10%에 육박하는 성장을 기록했다. 당시 러시아가 중국에 직접 판매하는 양은 많지 않았다. 냉전시대로 거슬러 올라가는 양국 간의 전략적 경계심이 작용한 탓이었다. 그러나 그것은 중요하지 않았다. 석유·목재·보크사이트 등 온갖 원자재에 대한 중국의 수요가 전 세계 시세를 끌어올리면서 러시아 경제도 막대한 혜택을 입었다.
호도르코프스키가 날조된 혐의로 옥살이를 하는 데 인권 운동가들은 격분했지만 러시아의 일반 국민은 개의치 않았다. 2007년 모스크바를 방문했다가 옐친의 퇴진 이후 얼마나 많이 바뀌었는지를 보고 크게 놀랐던 기억이 있다. 1990년대엔 도시의 대부분이 우중충하고 싸구려 느낌이 강했었는데 곳곳에 소매 매장이 새로 들어서고 그에 걸맞은 소비력을 지닌 쇼핑객이 많았다.
푸틴에게는 중국의 경제적 부상이 그의 집권 초 10년과 맞아떨어지는 행운이 따랐다. 그러나 그는 원자재 붐이 안겨준 돈으로 무엇을 할지 알았다. 국가 재정을 보완하고 그 과정에서 국가안보국, KGB 후속 기관들, 내무부, 군대를 재건하기 시작했다.
그는 또한 조국을 위해 일하려는 젊고 신기술에 정통한 러시아 젊은이들을 모집했다. 1990년대 후반 내가 주재할 당시엔 그런 제안에 거의 아무도 관심을 갖지 않았을 것이다. 러시아에 관한 현재의 신경질적인 반응 속에서 푸틴의 부상과 관련해 대다수 서방 사람이 간과하는 중요한 문제가 바로 여기 있다. 러시아의 경제회복뿐 아니라 푸틴이 엉망진창이던 나라의 질서를 되찾고 있다는 인식이 널리 확산되면서 그는 국내에서 튼튼한 지지기반을 확보했다.
대다수 러시아인은 그가 러시아를 다시 위대하게 만든다고 보고 그에게 박수갈채를 보냈다. 덕분에 모스크바 정부는 유능한 젊은이들에게 조국을 위해 사이버 전사로 활약하라고 설득하기가 쉬워졌다. 미국 민주당전국위원회(DNC)와 힐러리 클린턴 선거진영을 해킹한 사람들은 냉전시대의 베테랑들이 아니다. 주로 특이한 온라인 닉네임을 갖고 신나게 대혼란을 유발하는 밀레니엄 세대들이다.
러시아는 2007년 처음으로 외국 정부를 겨냥해 대규모 사이버 공격을 펼쳤다. 1991년 옛 소련이 붕괴됐을 때 독립을 주장했던 발트해 3국 중 하나인 에스토니아가 표적이었다. 모스크바발 디도스(DDos, 분산 서비스거부) 공격으로 에스토니아 정·재계 웹사이트 수십 개가 며칠 동안 마비됐다. 모스크바는 앞서 에스토니아에 거주하는 러시아 민족을 차별했다며 격분했다.
지난 5월 12일 뉴스위크가 독점 보도했듯이 그해 러시아는 당시 미국 대선 후보 버락 오바마 진영을 해킹했다. 당시 캠페인 관계자들은 공격당한 줄도 몰랐다. 오바마가 당선되자 러시아 해커들은 국무부·에너지부·국방부의 고위 관료 여럿을 공격했다.
그것은 시작에 불과했다. 모스크바 정부는 2008년 또 다른 대규모 사이버 공격에 착수했다. 그들이 말하는 이른바 ‘근린외국(near abroad, 옛 소련제국)’을 통제하려는 노력의 일환으로 러시아 병력이 조지아(그루지아)를 침공했다. 조지아 수도 트빌리시 정부의 당시 국가안보회의 보좌관 데이비드 바타슈빌리는 이렇게 회고했다. “러시아 군대가 국경을 넘는 시점에 우리 정부와 언론의 웹사이트가 모두 다운됐다. 대대적이고 아주 효과적인 사이버 공격이었다.”
그 뒤로 푸틴은 사이버전 능력을 세계 각지에서 영향력을 행사하는 필수적인 요소로 삼았다. 페트로 포로셴코 우크라이나 대통령은 지난해 12월 말 중앙정부 기관들(국방부·재무부 그리고 수도 키예프의 전력망)이 불과 두 달 사이 6500회 공격을 받았다고 밝혔다.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지휘관들은 이 같은 찔러보기는 러시아 군대가 곧 우크라이나를 또다시 침공하리라는 전조일 수 있다고 우려한다.
이미 밝혀졌듯이 러시아는 또한 해외의 선거운동을 훼방 놓는 데도 데도 사이버 전사들을 동원한다. 예컨대 클린턴 후보 선거대책본부장 존 포데스타의 이메일을 해킹하거나 역시 모스크바가 반대한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신임 대통령의 파일을 훔쳐보는 식이다(마크롱에게 패한 극우 후보 마린 르펜은 공개적으로 푸틴을 지지했다).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도 모스크바 정부가 올가을 독일 총선 때 사이버 공격을 시도할 가능성이 있다고 경고한 바 있다. 러시아의 외국 개입은 분명하다. 그러나 이 같은 개입이 전략적으로 현명한지는 확실치 않다. 모스크바의 정치 분석가들은 클린턴의 말마따나 푸틴이 그녀를 떨어뜨리는 데 ‘집착했다’는 주장에 코웃음을 친다. 그러나 그가 오바마 정부에 반감을 품은 건 분명했다. 그는 오바마 정부가 2011년 러시아 전역에서 반푸틴 시위를 조장했다고 믿었다. 당시 국무장관이던 클린턴은 러시아 총선의 정통성을 비판했으며 푸틴은 “러시아의 정치절차에 대한 그런 개입은 용납할 수 없다”고 공언했다. 4년 뒤 푸틴은 해커들을 풀어 클린턴의 대선 캠페인을 훼방 놓았다.
이제 푸틴에겐 클린턴을 탈락시키고 트럼프의 당선을 도우려던 러시아의 노력이 그만한 가치가 있느냐는 의문이 남는다. 모스크바의 사이버 전사들이 미국 대선에 개입했음은 이미 명확해졌다. 그리고 워싱턴 D.C.에서 이번 사건에 대한 여러 건의 조사가 전개됨에 따라 앞으로 더 확연히 드러날 것이다. 편의상 푸틴이 자신의 정보기관에 트럼프 본인은 아니더라도 그의 선거진영과 결탁하도록 지시했다고 치자(그런 증거는 없지만 말이다). 그중 은밀히 이행될 수 있는 건 거의 없다. 노출될 가능성이 크다.
바로 그런 이유로 모스크바-워싱턴 정부의 관계가 양측이 인정하듯 현재 냉전 이후 최저 수준에 있다. 지난 5월 11일 트럼프 대통령은 세르게이 라브로프 러시아 외무장관을 만났다. 워싱턴에서 반러시아 히스테리가 고조되던 시점이었다. 트럼프 대통령에겐 당혹스러운 순간이었다. 그는 백악관에 입성할 당시 모스크바 정부와 관계 개선을 모색했지만 그러기엔 정치적 운신의 폭이 갈수록 좁아지고 있다.
푸틴의 단기적인 지정학적 목표는 명확하다고 외교관들은 말한다. 그는 시리아에서 물러나지 않을 것이며 러시아 군대가 현지에 파견돼 있어 미국은 아사드 시리아 대통령의 군사적 자산을 겨냥한 일회성 타격(러시아에 성실하게 사전 경고를 보내면서) 말고는 사실상 다른 조치를 취하기 어렵다. 푸틴은 또한 시리아에서 자신의 입지를 활용해 우크라이나 문제에서 서방의 양보를 얻어낼 수 있을지 알고 싶어 한다. 다시 말해 시리아에서 ‘안전 지대’ 설정에 협력하는 대가로 크림반도 점령으로 촉발된 미국과 유럽연합의 대 러시아 제재 해제를 요구할 수도 있다.
2000년 1월 1일 러시아는 국내적으로 혼란에 빠져 있었고 해외에서도 밀려나고 있었다. 그런 처지를 감안할 때 푸틴이 그런 제안을 시도할 만한 위치에 있다는 사실조차 놀라운 변화다. 그러나 현 상황에서 트럼프 정부 그리고 서구의 우방국들이 무엇이든 푸틴에게 양보할 만한 게 있을까?
워싱턴에선 1970년대 초 이후 꾸준히 모스크바 정부와 관계개선을 모색해 왔던 민주당도 푸틴 때문에 ‘러시안들이 몰려온다!’고 신경질적으로 반응하는 냉전 전사들로 변했다. 본능적으로 러시아를 불신하는 많은 공화당원은 이번 푸틴 폭풍우가 불어 닥칠 때 몸을 숨길 만한 벙커를 찾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이 푸틴의 비위를 맞추는 쪽으로 미국의 외교정책 방향을 바꾸려 할 경우 그들은 그에게 아무런 방패막이도 제공하지 않을 것이다. 취임 후 불과 4개월 만에 갈수록 고립돼 가는 트럼프 대통령에겐 괴상한 위협과 비난 트윗을 날리는 일만 남게 된다.
스파이 보스 출신인 푸틴이 러시아의 긍지와 강대국 이미지를 되살렸을지 모르지만 2016년 미국 대선을 자신에게 유리한 후보 쪽으로 기울이려는 그의 공작이 도를 넘은 듯하다. 자신이 원하는 결과는 얻었지만 언젠가 후회하는 날이 올지도 모른다.
- 빌 파월 뉴스위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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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러시아 주재 미국 대사는 부드러운 말투의 직업 외교관 짐 콜린스였다. 그는 리셉션 장을 돌면서 크렘린 수뇌부의 극적인 변화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손님들에게 물었다. 안도하는 분위기가 지배적이었다. 수많은 공약과 함께 개막됐던 옐친 시대는 무질서하고 극히 부패한 반유토피아로 전락했다. 야성적인 에너지를 내뿜으며 혜성처럼 등장했던 옐친은 만성 질환에 시달리며 갈수록 보드카에 빠져들었다.
옛 소련 독재체제를 되살리려 했던 수구 세력을 모스크바 한복판에서 탱크에 올라타 돌려세운 장면은 냉전 종식의 가장 상징적인 순간 중 하나다. 정치적 연줄을 가진 사업가 그룹이 경제적으로 나라를 유린하고 소득의 대부분을 해외로 빼돌렸다. 정부 예산이 바닥나고 공복들은 녹을 받지 못했다(당시 부인 생일파티를 열어줄 돈이 없어 자살한 소비에트로켓부대 대령의 기사를 썼던 기억이 있다). 한때 막강했던(그리고 상당히 유능했던) KGB 요원들이 민간기업으로 빠져나가면서 국가 보안 기구의 사기가 떨어지고 부패가 갈수록 심해졌다. 러시아는 혼란으로 빠져들었다.
콜린스 대사는 다양한 의견을 경청한 뒤 자신도 의견을 말했다. “이 나라의 질서를 바로잡을 수 있는 인물이 필요하다.” 다시 말해 그도 옐친의 퇴진을 다행으로 여겼다.
러시아와 관련된 온갖 문제로 워싱턴 D.C. 정가의 히스테리가 심해지는 가운데 우리가 요즘 잊은 게 한 가지 있다. 지금은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서방 정치인과 언론 사이에서 흔히 만화 속 악당처럼 묘사되지만 과거 밀월 기간도 있었다는 사실이다. 당시 푸틴의 KGB 경력에 눈을 감고 대신 그가 탈소련 이후의 기간 중 고향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개혁주의 성향 시장의 보좌관으로 열심히 일했다는 사실에 초점을 맞추는 사람이 많았다.
당시 빌 클린턴 정부의 국무장관이었던 매들린 올브라이트는 그를 ‘개혁파’로 불렀다. 그리고 그 뒤 10년 동안 워싱턴의 공화·민주 양 진영 모두 푸틴에게 속아 넘어갔다. 2001년 9·11 사태 이후 테러와의 전쟁에서 러시아의 도움이 절실히 필요했던 조지 W. 부시 대통령은 “[푸틴의] 영혼을 들여다봤다”는 유명한 말을 남겼다(존 매케인 상원의원은 “나도 그래 봤는데 철자 3개 KGB가 보이더라”고 우스갯소리를 했다). 근래 들어 2012년 대선에선 푸틴을 미국에 대한 위협이라고 평한 미트 롬니 공화당 후보를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비웃었다. “아직도 1980년대의 외교정책을 버리지 않았다”고 비꼬았다. 2012년 미국 대선 기간 동안의 일이다. 요즘 비판자들에 따르면 러시아는 서방이 소중히 여기는 모든 것을 위협하는 존재이며 2016년 대선에선 주로 사이버공간을 통해 개입을 시도했다. 미국이 가장 소중히 여기는 자산인 민주주의도 그들의 공격을 받았다. 매케인 상원의원은 워싱턴의 대다수 기성체제를 대변해 그것을 ‘전쟁 행위’로 불렀다. 트럼프 신정부는 그의 선거 캠프 운동원들이 힐러리 클린턴의 백악관 입성을 막으려고 러시아와 결탁했는지에 관해 연방수사국(FBI)의 조사를 받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자신의 첫 국가안보회의 보좌관 마이클 플린을 해고해야 했다. 정권인수 기간 중 그가 세르게이 키슬랴크 러시아 대사와 접촉해 러시아 제재 해제를 논의하고도 이를 은폐한 사실이 드러난 뒤였다. 이어 지난 5월 10일엔 트럼프 캠프와 러시아 내통 의혹에 대한 FBI의 조사를 총괄하던 제임스 코미 국장을 해고했다. 그런 조치엔 트럼프 대통령이 러시아 정부와 아무 관계도 없다고 명확히 공언하려 하지 않았다는 점도 일정 부분 작용했다.
돌연 워싱턴 D.C. 공기에 워터게이트 스타일의 위기감이 짙게 깔렸다. 그러나 이번 스캔들에는 두드러진 특징이 있다. 앞으로 몇 주, 몇 개월에 걸쳐 여러 건의 조사가 전개되는 동안 이번 일이 자생적이 아니라 모스크바에서 비롯된 스캔들임을 명심해야 한다. 냉전 중 러시아가 미국 정치를 이렇게 효과적으로 흔들어 놓은 적은 거의 없었을 성싶다.
이것이 위기인지 아니면 트럼프 대통령의 말마따나 대선에서 패배한데 분노한 민주당 진영이 꾸며내고 그들과 한 패인 언론 동조자들이 퍼뜨린 ‘가짜’ 뉴스인지에 관한 논란은 일단 접어두자. 푸틴이 쇠잔하고 파산한 나라를 물려받은 지 20년도 채 되지 않았다. 한때 초강대국이던 러시아는 자기 뒷마당에서조차 지정학적 영향력을 거의 행사하지 못했다(미국은 1999년 코소보 전쟁 중 러시아 우방 세르비아를 폭격해 러시아 정부에 굴욕을 안겨주고 당시 옐친 정부에서 KGB의 후신인 연방보안국을 이끌던 푸틴을 분노케 했다).
이제 러시아가 다시 미국의 공적 1호가 됐다. 그리고 푸틴은 세계 각지에서 공세를 펼치고 있다. 그는 시리아 독재자 바샤르 알-아사드 대통령의 주요 후원자다. 대담하게 러시아 군대를 파견해 반(反) 아사드 이슬람 반군과 싸우도록 한 덕분이다. 크림반도를 합병하고 우크라이나 동부에 배치한 러시아군 병력과 특수부대원들도 아직까지 남아 있다. 극동에선 중국 정부와 군사적 결속을 다진다. 그리고 푸틴의 사이버 전사들은 유럽과 미국에서 큰 혼란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차르의 찬란한 부상
사업가 미하일 호도르코프스키가 1990년대 인수한 석유 대기업 유코스의 사례를 살펴보자. 그가 약 1억 5000만 달러에 넘겨받은 유코스는 2004년에는 평가액이 200억 달러로 불어났다. 푸틴 정부는 2003년부터 유코스와 경영진에게 잇따라 탈세 혐의를 씌우기 시작했다. 모스크바 정부는 미납 세금 270억 달러를 추징했지만 푸틴은 그것으로 만족하지 않았다. 유코스는 러시아 석유의 20%를 생산했는데 푸틴은 그것을 되찾고자 했다. 정부는 유코스의 자산을 동결한 채 합의를 보려 하지 않았다. 그러던 중 2003년 10월 호도르코프스키가 체포됐다(그는 10년 이상 감방 생활을 하게 된다). 모스크바 정부는 이어 유코스의 자산을 몰수해 결국에는 로스네프트라는 회사에 넘겨줬다. 푸틴처럼 KGB 출신인 이고르 세친이 이끄는 회사였다.
정부가 직접하든 푸틴 충성파들이 이끄는 사기업을 통해서든 자산의 소유권 반환이 시작됐다. 푸틴은 1990년대 옐친이 했던 일을 원점으로 돌려놓고 있었다. 오늘날 러시아에 매장된 석유자원은 상당부분 국유 기업들이 통제한다.
푸틴에겐 타이밍이 그보다 좋을 수 없었다. 1990년대 거의 모든 원자재 가격이 하락했다. 그러나 2000년대로 접어들면서 중국이 탐욕스러운 원자재 소비국으로 새로 등장했다. 중국 경제는 수년 간 연속해 연간 10%에 육박하는 성장을 기록했다. 당시 러시아가 중국에 직접 판매하는 양은 많지 않았다. 냉전시대로 거슬러 올라가는 양국 간의 전략적 경계심이 작용한 탓이었다. 그러나 그것은 중요하지 않았다. 석유·목재·보크사이트 등 온갖 원자재에 대한 중국의 수요가 전 세계 시세를 끌어올리면서 러시아 경제도 막대한 혜택을 입었다.
호도르코프스키가 날조된 혐의로 옥살이를 하는 데 인권 운동가들은 격분했지만 러시아의 일반 국민은 개의치 않았다. 2007년 모스크바를 방문했다가 옐친의 퇴진 이후 얼마나 많이 바뀌었는지를 보고 크게 놀랐던 기억이 있다. 1990년대엔 도시의 대부분이 우중충하고 싸구려 느낌이 강했었는데 곳곳에 소매 매장이 새로 들어서고 그에 걸맞은 소비력을 지닌 쇼핑객이 많았다.
푸틴에게는 중국의 경제적 부상이 그의 집권 초 10년과 맞아떨어지는 행운이 따랐다. 그러나 그는 원자재 붐이 안겨준 돈으로 무엇을 할지 알았다. 국가 재정을 보완하고 그 과정에서 국가안보국, KGB 후속 기관들, 내무부, 군대를 재건하기 시작했다.
그는 또한 조국을 위해 일하려는 젊고 신기술에 정통한 러시아 젊은이들을 모집했다. 1990년대 후반 내가 주재할 당시엔 그런 제안에 거의 아무도 관심을 갖지 않았을 것이다. 러시아에 관한 현재의 신경질적인 반응 속에서 푸틴의 부상과 관련해 대다수 서방 사람이 간과하는 중요한 문제가 바로 여기 있다. 러시아의 경제회복뿐 아니라 푸틴이 엉망진창이던 나라의 질서를 되찾고 있다는 인식이 널리 확산되면서 그는 국내에서 튼튼한 지지기반을 확보했다.
대다수 러시아인은 그가 러시아를 다시 위대하게 만든다고 보고 그에게 박수갈채를 보냈다. 덕분에 모스크바 정부는 유능한 젊은이들에게 조국을 위해 사이버 전사로 활약하라고 설득하기가 쉬워졌다. 미국 민주당전국위원회(DNC)와 힐러리 클린턴 선거진영을 해킹한 사람들은 냉전시대의 베테랑들이 아니다. 주로 특이한 온라인 닉네임을 갖고 신나게 대혼란을 유발하는 밀레니엄 세대들이다.
러시아는 2007년 처음으로 외국 정부를 겨냥해 대규모 사이버 공격을 펼쳤다. 1991년 옛 소련이 붕괴됐을 때 독립을 주장했던 발트해 3국 중 하나인 에스토니아가 표적이었다. 모스크바발 디도스(DDos, 분산 서비스거부) 공격으로 에스토니아 정·재계 웹사이트 수십 개가 며칠 동안 마비됐다. 모스크바는 앞서 에스토니아에 거주하는 러시아 민족을 차별했다며 격분했다.
지난 5월 12일 뉴스위크가 독점 보도했듯이 그해 러시아는 당시 미국 대선 후보 버락 오바마 진영을 해킹했다. 당시 캠페인 관계자들은 공격당한 줄도 몰랐다. 오바마가 당선되자 러시아 해커들은 국무부·에너지부·국방부의 고위 관료 여럿을 공격했다.
그것은 시작에 불과했다. 모스크바 정부는 2008년 또 다른 대규모 사이버 공격에 착수했다. 그들이 말하는 이른바 ‘근린외국(near abroad, 옛 소련제국)’을 통제하려는 노력의 일환으로 러시아 병력이 조지아(그루지아)를 침공했다. 조지아 수도 트빌리시 정부의 당시 국가안보회의 보좌관 데이비드 바타슈빌리는 이렇게 회고했다. “러시아 군대가 국경을 넘는 시점에 우리 정부와 언론의 웹사이트가 모두 다운됐다. 대대적이고 아주 효과적인 사이버 공격이었다.”
그 뒤로 푸틴은 사이버전 능력을 세계 각지에서 영향력을 행사하는 필수적인 요소로 삼았다. 페트로 포로셴코 우크라이나 대통령은 지난해 12월 말 중앙정부 기관들(국방부·재무부 그리고 수도 키예프의 전력망)이 불과 두 달 사이 6500회 공격을 받았다고 밝혔다.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지휘관들은 이 같은 찔러보기는 러시아 군대가 곧 우크라이나를 또다시 침공하리라는 전조일 수 있다고 우려한다.
이미 밝혀졌듯이 러시아는 또한 해외의 선거운동을 훼방 놓는 데도 데도 사이버 전사들을 동원한다. 예컨대 클린턴 후보 선거대책본부장 존 포데스타의 이메일을 해킹하거나 역시 모스크바가 반대한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신임 대통령의 파일을 훔쳐보는 식이다(마크롱에게 패한 극우 후보 마린 르펜은 공개적으로 푸틴을 지지했다).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도 모스크바 정부가 올가을 독일 총선 때 사이버 공격을 시도할 가능성이 있다고 경고한 바 있다.
스파이 마스터의 교훈
이제 푸틴에겐 클린턴을 탈락시키고 트럼프의 당선을 도우려던 러시아의 노력이 그만한 가치가 있느냐는 의문이 남는다. 모스크바의 사이버 전사들이 미국 대선에 개입했음은 이미 명확해졌다. 그리고 워싱턴 D.C.에서 이번 사건에 대한 여러 건의 조사가 전개됨에 따라 앞으로 더 확연히 드러날 것이다. 편의상 푸틴이 자신의 정보기관에 트럼프 본인은 아니더라도 그의 선거진영과 결탁하도록 지시했다고 치자(그런 증거는 없지만 말이다). 그중 은밀히 이행될 수 있는 건 거의 없다. 노출될 가능성이 크다.
바로 그런 이유로 모스크바-워싱턴 정부의 관계가 양측이 인정하듯 현재 냉전 이후 최저 수준에 있다. 지난 5월 11일 트럼프 대통령은 세르게이 라브로프 러시아 외무장관을 만났다. 워싱턴에서 반러시아 히스테리가 고조되던 시점이었다. 트럼프 대통령에겐 당혹스러운 순간이었다. 그는 백악관에 입성할 당시 모스크바 정부와 관계 개선을 모색했지만 그러기엔 정치적 운신의 폭이 갈수록 좁아지고 있다.
푸틴의 단기적인 지정학적 목표는 명확하다고 외교관들은 말한다. 그는 시리아에서 물러나지 않을 것이며 러시아 군대가 현지에 파견돼 있어 미국은 아사드 시리아 대통령의 군사적 자산을 겨냥한 일회성 타격(러시아에 성실하게 사전 경고를 보내면서) 말고는 사실상 다른 조치를 취하기 어렵다. 푸틴은 또한 시리아에서 자신의 입지를 활용해 우크라이나 문제에서 서방의 양보를 얻어낼 수 있을지 알고 싶어 한다. 다시 말해 시리아에서 ‘안전 지대’ 설정에 협력하는 대가로 크림반도 점령으로 촉발된 미국과 유럽연합의 대 러시아 제재 해제를 요구할 수도 있다.
2000년 1월 1일 러시아는 국내적으로 혼란에 빠져 있었고 해외에서도 밀려나고 있었다. 그런 처지를 감안할 때 푸틴이 그런 제안을 시도할 만한 위치에 있다는 사실조차 놀라운 변화다. 그러나 현 상황에서 트럼프 정부 그리고 서구의 우방국들이 무엇이든 푸틴에게 양보할 만한 게 있을까?
워싱턴에선 1970년대 초 이후 꾸준히 모스크바 정부와 관계개선을 모색해 왔던 민주당도 푸틴 때문에 ‘러시안들이 몰려온다!’고 신경질적으로 반응하는 냉전 전사들로 변했다. 본능적으로 러시아를 불신하는 많은 공화당원은 이번 푸틴 폭풍우가 불어 닥칠 때 몸을 숨길 만한 벙커를 찾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이 푸틴의 비위를 맞추는 쪽으로 미국의 외교정책 방향을 바꾸려 할 경우 그들은 그에게 아무런 방패막이도 제공하지 않을 것이다. 취임 후 불과 4개월 만에 갈수록 고립돼 가는 트럼프 대통령에겐 괴상한 위협과 비난 트윗을 날리는 일만 남게 된다.
스파이 보스 출신인 푸틴이 러시아의 긍지와 강대국 이미지를 되살렸을지 모르지만 2016년 미국 대선을 자신에게 유리한 후보 쪽으로 기울이려는 그의 공작이 도를 넘은 듯하다. 자신이 원하는 결과는 얻었지만 언젠가 후회하는 날이 올지도 모른다.
- 빌 파월 뉴스위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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