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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7년을 기억하는 스무 가지 방식(12) 공포팔이] 공포는 낙관보다 잘 팔리고 비관은 낙관보다 안전하다

[1997년을 기억하는 스무 가지 방식(12) 공포팔이] 공포는 낙관보다 잘 팔리고 비관은 낙관보다 안전하다

고위험가구 가계부채, 인구절벽론, 경제위기 주기설 등 비관론 팽배... 집단적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 증상
공포는 낙관보다 잘 팔리고, 비관은 낙관보다 안전하다. 이를 비롯한 몇 가지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해, 어느 사회나 비관론이 낙관론보다 우세한 시기가 많다[상자 기사 참조]. 그러나 한국 사회는 세계 어느 곳보다 비관론이 팽배하다. 이 현상의 일부는 1997년 외환위기를 겪은 후 얻은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 증상으로 이해된다. 여기에 2008년 한국에도 큰 타격을 준 글로벌 금융위기는 불안과 긴장을 늦추지 못하는 상태가 우리 사회의 ‘뉴 노멀(new normal)’, 즉 새로운 정상이 되게끔 했다.
 합리적 분석·전망에 따른 두려움은 긍정적 동인
두려움은 생존에 도움을 주는 심리 상태다. 그러나 근거가 없거나 발생할 가능성이 거의 없거나 요인을 잘못 짚은 공포는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 도움은커녕 시간과 에너지를 쓸데없이 소모하게 한다. 지나친 공포는 스트레스 호르몬인 코르티솔이 인체에 미치는 부작용과 같은 악영향을 사회에 준다. 과다 분비된 코르티솔은 지방을 축적되게 하고 혈압을 올리며 만성피로와 만성두통, 불면증도 일으킬 수 있다. 지나친 공포는 사회를 움츠리게 하고, 위축된 사회는 더 큰 스트레스를 받는다. 이는 심리에 다시 악영향을 줘 악순환을 낳는다.

합리적인 분석과 전망에 따른 두려움이 긍정적인 동인이 된다. 그런 두려움은 적극적인 대응을 자극하고, 그렇게 방비해 두면 나쁜 상황이 닥쳤을 때 충격을 크게 줄이거나 넘길 수 있다. 경제와 관련한 한국 사회의 불안과 공포는 계속해서 새로운 내용과 형식을 찾아내 채택한다. 경제위기는 주기적으로 닥친다, 가계부채가 부실해져 금융시스템 전체가 탈이 날 위험(시스템 리스크)이 높다, 한국 경제는 사람 수가 급감하는 인구절벽에서 큰 위기에 빠진다 등이 그런 새로운 내용과 형식이다. 이번 글에서는 이들 공포의 근거를 찬찬히 살펴본다.

‘금리가 1%포인트 오르면 부채 고위험가구가 34만 가구로 증가할 것으로 예측됐다. 고위험가구는 부동산 등 자산을 모두 팔아도 빚을 상환할 수 없는 상태에서 가처분소득의 40% 이상을 빚 갚는 데 쓰고 있는 가구다. 이들은 금리 인상의 직격탄을 맞을 수 있는 한계차주로 가계부채 위기를 촉발시킬 수 있는 취약한 고리다(세계일보, 2017년 6월 22일).’

한국은행의 ‘2016 금융안정보고서’를 소개한 기사 중 일부다. 제목만 보면 가계부채 시한폭탄이 터져 한국 경제가 위기를 맞을 것 같다. 과연 그렇게 될까? ‘불가능하진 않지만 확률이 매우 낮다’가 답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가계부채 위기는 시스템 리스크가 현실이 되는 상황을 가리킨다. 시스템 리스크란 개별 금융회사가 부실해지는 데 그치지 않고 금융시스템 전체가 부실채권에 짓눌릴 위험을 뜻한다. 시스템 리스크가 현실이 되면 금융이 마비돼 경제가 침체에 빠질 가능성이 있다.

현재 가계부채는 부실해져도 금융시스템 전체에 부담을 줄 정도는 아닌 것으로 분석된다. 시스템 리스크로 이어지지 않아 위기가 되지는 않으리라는 말이다. 이 기사가 전한 한은 금융안정보고서는 ‘2016년 가계 금융·복지 조사 결과’를 활용해 분석한 자료다. 위험가구는 부채상환능력이 취약하다고 분석된 가구이고, 고위험가구는 부채상환능력이 취약한 데다 자산 매각을 통한 부채상환능력도 취약하다고 분석된 가구다.
 가계부채가 시스템 리스크로 악화될 가능성 작아
금리가 1%포인트 오르면 고위험가구가 31만 5000가구에서 34만 가구로 2만 5000가구 증가한다. 이 증가가 가계부채 위기를 격발할 정도인지 의문이다. 고위험가구가 전체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얼마나 될까. 고위험가구 수는 부채가구 수의 2.9%이고, 고위험가구는 전체 금융부채의 7%인 62조원을 빚지고 있다. 고위험가구 수는 1년 전에 비해 1만8000가구 늘었고 고위험가구의 금융부채 규모는 15조6000억원 증가했다.

고위험가구가 금융시스템의 화약고인지, 이 통계로는 가늠할 수 없다. 위험가구 수가 126만3000가구고, 전체 부채가구의 12%이며, 위험가구가 보유한 금융부채 규모는 186조7000억원으로 총 금융부채의 21%를 지고 있다는 통계를 봐도 판단이 서지 않기는 마찬가지다. 한은의 같은 자료에서 가계의 전체적인 채무상환능력을 분석한 부분을 찾아보자. 채무상환능력을 판단하는 기준은 소득과 자산 두 가지를 생각할 수 있다. 우선 처분가능소득 대비 가계부채의 비율은 153%로 1년 새 9%포인트 상승해 채무상환능력 측면에서 악화됐다. 그러나 이 비율은 지난해 말과 비교하면 비슷했다(0.1%포인트 하락).

가계금융자산 대비 가계부채의 비율은 2017년 1분기 말 45.8%로 추정돼 2010~16년 평균인 45.5% 수준에서 벗어나지 않았다. 이 비율이 45%선이라는 것은 평균적으로 가계의 금융자산이 부채의 2.2배 규모임을 뜻한다. 이에 대해 한은은 “금융자산으로 평가한 가계의 채무상환능력이 대체로 양호하다는 점을 시사한다”고 풀이했다. 이어 “다만 앞으로 시장금리가 상승할 경우 채무 부담이 큰 취약계층을 중심으로 채무상환능력이 저하될 우려가 있다는 점에는 유의할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이 자료에 따르면 가계부채의 질적 구조도 개선됐다. 은행 주택담보대출의 상환 방식이 개선됐고 만기구조도 길어졌다. 우선 은행 주택담보대출 중 고정금리·분할상환 대출 비중은 2016년 말 현재 각각 43.0%, 45.1%로 2010년 이후 확대 추세를 이어왔다. 고정금리 대출 비중이 커질수록 금리 상승에 따라 이자를 더 내는 부담이 줄어든다. 분할상환 대출은 비거치 분할상환 방식을 가리키며 이 비율이 높아지면 원금 상환 시기 도래에 따른 주름이 덜 간다. 또 만기구조 장기화를 살펴보면, 잔존만기 10년 초과 대출의 비중이 2010년 말 40.9%에서 2017년 1분기 말 52.3%로 11.4%포인트나 높아졌다.

가계부채 리스크를 터뜨릴 수 있는 요인으로 금리 상승 외에 집값 하락이 거론된다. 집값이 크게 하락하면 주택담보대출의 담보여력이 줄고, 가구는 한도초과 대출 금액을 갚아야 한다. 이를 상환하지 못하는 가구는 집을 팔아야 하고, 주택 매물이 나오면 집값이 더 떨어지는 소용돌이에 빠진다.

그러나 집값 하락 위험은 크지 않다. 국내 주택가격에는 거품이 끼었다고 보기 어렵다. 집값이 제풀에 떨어지기 시작해 지역에 따라서는 급락할 가능성이 작다는 말이다. 이와 관련해 조동철 한은 금융통화위원회 위원도 지난 6월 초 같은 견해를 내놓은 바 있다. 조 이원은 ‘한은 금요강좌’ 700회 기념 특강에서 “우리나라의 전국 주택가격은 소비자물가 정도의 수준으로 상승해왔다”며 “최근 2~3년간 가계부채와 주택투자가 늘어나는 과정에서(도) 부동산 버블이 많이 생기지 않았다”고 분석했다. 또 주택 가격이 하락해도 우리나라는 담보여력 감소로 인한 상환 압박이 크지 않다. 주택담보인정비율(LTV)을 과거 일본이나 미국에 비해 낮게 유지했고, 그래서 집값이 폭락하지 않는 이상 한도초과 대출 금액이 발생하지 않는다.

다른 기사를 하나 보자. ‘일본은 1996년부터 인구가 줄기 시작했고, 우리는 20년 시차를 가지고 내년부터 인구가 준다. 인구가 줄면 어떤 심각한 사태가 벌어지는지 실감하지 못하고 있다…(중략)…이 악순환이 무서운 복합불황, 곧 잃어버린 20년이다. 지난 60년간 우리가 경험하지 못한 사태가 곧 닥친다(경향신문, 2016년 6월 18일).’

해리 덴트가 지은 [2018 인구 절벽이 온다] 표지.
경제예측가 해리 덴트가 경고하면서 인구절벽은 국내에서 이슈가 됐다. 덴트는 책 [2018 인구절벽이 온다]에서 “한국은 2018년 이후 인구절벽 아래로 떨어지는 마지막 선진국이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덴트는 2015년 10월 서울에서 열린 세계지식포럼에서도 한국의 2018년 인구절벽을 경고했다.

덴트는 책에서 일본의 거품 붕괴에 이은 장기 불황을 인구로 설명하고, 한국도 인구가 정점을 지나는 2018년 이후 수십 년 동안 내수가 계속 하강하게 된다고 내다봤다. 그는 이에 미리 대응하려면 부동산을 매각하라고 조언했다. 인구절벽은 경제 전반과 맞물린 이슈이지만 특히 부동산시장에 큰 변수로 논의 되고 있다.

인구절벽은 15~64세 생산가능인구의 비중이 급속도로 낮아지는 현상을 가리킨다. 특히 가장 왕성한 소비층인 40대 중·후반 인구가 줄어드는 인구절벽의 충격이 크다고 분석된다. 우리나라는 올해부터 생산가능인구가 줄어든다고 전망됐다. 통계청은 최근 ‘2015~2065년 장래인구추계’를 내놓고 생산가능인구가 올해부터 매년 감소해 2065년에 2062만 명으로 줄어들 것으로 예상했다. 이는 지난해 3763만 명보다 무려 45% 적은 수준이다.

생산가능인구 감소는 출산율 저하 때문이다. 한국의 합계출산율은 1971년 4.54명으로 최고를 기록한 후 낮아져 2020년 무렵 세계에서 가장 낮은 수준으로 하락했고 지난해엔 1.17명으로 떨어졌다. 이에 따라 한 해 신생아 숫자는 1970년대 100만 명에서 2002년 49만 명으로 줄었다.

생산가능인구 감소는 소비행태와 산업현장, 복지 등에 걸쳐 폭넓게 영향을 미친다. 문제는 유례 없는 속도다. 서서히 진행되는 변화는 거대한 번혁이더라도 질서있는 대응이 가능하다. 그러나 급속하게 닥치는 변화는 각 경제 주체가 미처 적응할 준비를 하지 못할 경우 큰 충격을 준다. 한국의 생산가능인구 감소는 세계에서 가장 빠르게 진행되고 있고, 이런 측면을 주시해 대비책을 마련해야 한다.

그러나 모든 것을 인구절벽으로 견강부회해 설명하고 인구절벽이 재앙의 시작이라는 식으로 과장하는 일은 문제 해결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 우선 일본의 장기 불황이 인구절벽으로 인해 빚어진 만큼, 한국도 인구절벽 아래로 굴러 떨어지면서 일본 꼴이 된다는 전망은 단순한 대입이다. 또 인구절벽으로 주택시장이 가까운 시기에 큰 타격을 받는다는 전망은 과장된 측면이 있다.

개념적인 부분부터 뜯어보자. 일본의 잃어버린 20년을 인구절벽이라는 요인으로 돌리는 것은 지나친 단순화다. 문재인 정부에서 청와대 경제보좌관이 된 김현철 서울대 교수는 “지금 일본이 어떻다는 것을 단편적으로만 알 뿐 (한국이) 대응책을 마련하지 못하고 있다”며 그 이유로 학자의 대부분이 미국에서 공부했다는 점을 들었다. 자신처럼 일본에서 공부한 학자는 소수라는 말이다.
 인구절벽에도 독일 부동산 가격은 계속 올라
1997년 12월 말 김대중 대통령 당선자가 측근에게 털어놨다는 “밤에 잠이 잘 안 온다”는 말이 언론에서 화제가 됐다. “경제 현안 보고를 받고 보니 위기가 생각보다 더 심각하더라”는 고민에 전국이 불안에 떨었다. 왼쪽 작은 사진은 김용환 전 비대위원장의 자서전에서 발췌한 98년 2월 5일자 외환일보. 정식 제목은 ‘외환보유고, 금리 및 주가 동향 일일보고’다.
일본에서 20년 가까이 교수로 재직 중인 박상준 와세다대학 교수의 분석은 다르다. 박 교수는 지난해 펴낸 책 [불황터널: 진입하는 한국 탈출하는 일본]에서 한국은 일본식 장기 불황에 진입하지 않는다고 전망했다. 박 교수는 현재 한국과 일본이 장기 침체에 빠져든 1990년대는 버블과 부실에서 큰 차이가 난다며 다음과 같이 강조했다. ‘일본은 버블의 붕괴가 장기 불황의 시작이었다. 버블기에 쌓아놓은 부채를 처리하지 못해 기업들은 이익이 나는 대로 투자보다는 부채의 상환에 주력했다. 그럼에도 기업의 도산이 속출했고 은행의 부실채권은 그 전모를 파악할 수 없을 만큼 불어났다. 부실채권 처리에는 거의 10년이 넘는 세월이 걸렸고, 부실채권 비율이 가까스로 3% 밑으로 떨어진 것은 2006년 들어서다. 그리고 일본 기업의 부채비율이 150% 정도까지 떨어진 것은 최근에 들어서다.’

이 분석이 더 정확하다. 박 교수는 이와 비교해 한국 경제를 다음과 같이 분석한다. ‘반면 우리나라는 이러한 일들을 1997년 외환위기 때 겪었고, 많은 기업이 도산하고 실직자가 급증하는 아픔이 있었지만 불과 수년 만에 기업의 부채비율과 금융권의 부실채권 비율이 정상 수준으로 돌아왔다. 현재 기업의 부채비율은 150%를 넘지 않고 금융권의 부실채권 비율도 2%를 넘지 않는다. 따라서 1990년대 일본과는 큰 차이가 있다. 그렇기 때문에 저성장 국면에 들어선다 하더라도 일본처럼 마이너스를 넘나드는 성장률 하락은 없을 것이다.’

‘인구절벽론’은 부동산시장에 이르면 ‘운명론’의 양상을 띤다. 강력한 힘에 의해 부동산시장이 장기 침체에 빠질 수밖에 없다는 식이다. 그러나 인구절벽을 별 충격 없이 넘긴 나라가 여럿 있다. 독일이 대표적인 국가다. 덴트의 가설을 적용하면 독일 부동산 가격은 이미 2006년 정점을 찍고 떨어졌어야 한다. 그러나 독일 부동산 가격은 2006년에 0.4% 올랐고 이후 2009년을 제외하고 2010년까지 연간 0.9~2.6% 상승했다. 특히 2011년 이후엔 상승폭을 넓혀 연간 5.9~7.4% 뛰었다.

홍춘욱 키움증권 투자전략팀장은 책 [인구와 투자의 미래]를 통해 인구절벽 운명론을 반박했다. 홍 팀장은 일본 부동산을 포함한 자산시장이 붕괴된 요인으로 정부의 대규모 주택 착공으로 인한 공급 초과, 중앙은행 통화정책의 실기, 내수 위주의 경제 구조 등을 들었다. 이어 베이비붐 세대 은퇴 시기를 이미 거친 영국·프랑스·캐나다·미국 등 다른 선진국들은 여전히 주택시장 호조를 보인다는 반례를 제시했다.

이 밖에 경제위기가 주기적으로 닥치는데, 10년 주기에 따라 2018년에 한국 경제가 큰 충격에 맞닥뜨릴 것이라는 예언도 있다. 경제학계에서 경기를 주기로 설명하는 이론이 자취를 감춘 지 오래됐다. 이런 마당에 경제위기 주기설이 다시 등장하는 것을 보면, 우리 사회는 ‘외환위기 후 스트레스 장애’에서 아직도 벗어나지 못한 듯하다. 다가올 위험에 대비해야 한다. 그러나 적절한 대응은 상황을 정확하게 인식하는 데에서 출발한다.
 [상자기사] 공포팔이의 사회심리적 분석 - 대중의 관심 끌려면 낙관론보다 비관론 펼쳐야
두려움은 희망보다 사람들 사이에 더 쉽고 빠르게 번지는 경향이 있다. 이런 경향은 진화 과정이 반영된 결과로 추정된다. 두려움은 위험이나 위험하다고 여겨지는 요소에 대한 심리적 반응이다. 위험 요소에 둔감해, 두려움을 느끼지 않거나 덜 느끼거나 심지어 위험 요소에도 낙관하는 개체는 실제 위험에 노출될 확률이 높아지고, 결국 자신의 DNA를 남기지 못하게 될 공산도 커진다.

위험에 예민해 남보다 더 두려워하고 대응하는 개체는 자신의 DNA를 다음 세대에 전할 가능성을 높인다. 이런 자연선택의 과정이 수십 만년 세대에 걸쳐 반복되면서 위험에 민감하게 대응하는 경향이 자리 잡았을 것이다.

두려움이 생존에 요구되는 필수재라면 낙관은 사치재다. 새로운 성공의 기회나 그런 기회로 보이는 것에 대한 낙관은, 결실을 거둘 경우 풍요로움을 제공하지만 실패는 그 개체를 생명조차 보장되지 못하는 환경에 떨어뜨린다. 낙관에 따르려면 큰 대가를 치러야 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한 원시부족이 수렵채집 생활이 한계선상에서 근근이 자신을 유지하는 상황이라고 하자. 누군가 걸어서 한 달 거리에 오아시스가 있어 먹을거리가 풍부할지 모른다는 상상을 말한다. 이 말이 그럴듯하다고 여겨 모험을 떠나 오아시스를 찾으면 더 바랄 나위가 없겠다. 그러나 막연한 희망을 좇아 나선 경우 십중팔구 실패하고, 모험가는 불귀의 객이 되고 말 것이다.

비관이 낙관보다 안전하다는 말은 무슨 뜻인가. 1년 뒤의 상황이 나빠진다는 비관론과 좋아진다는 낙관론을 생각해보자. 예측과 현실에는 네 가지 조합이 가능하다. 좋아진다고 했는데 좋아진 경우, 좋아진다고 했는데 나빠진 경우, 나빠진다고 했는데 좋아진 경우, 나빠진다고 했는데 나빠진 경우다. 예측이 적중한 둘은 제외한다. 당신이라면 좋아진다는 예상이 빗나가 상황이 나빠진 경우를 택하겠나, 아니면 나빠진다는 예상과 달리 좋아진 경우를 택하겠나. 당연히 후자다. 게다가 당신은 나빠진다는 예상에 대응해 긴축에 들어갔다면 좋은 결과는 더 달콤할 것이다. 반대로 좋아진다는 예상을 믿고 느슨하게 있다가 맞닥뜨린 악조건은 더욱 열악할 것이다.

예측을 자주 내놓아야 하는 자리에 있는 사람들은 예상과 실제의 이런 조합을 안다. 그래서 낙관론보다 비관론을 내놓는 편이 안전함을 안다. 이는 전망 가운데 비관론이 낙관론보다 더 많이 나오는 이유 중 하나다.

비관론의 수적 우세 현상에는 다른 요인도 작용한다. 앞서 거론한, 낙관보다 공포에 혹하는 대중의 성향도 관련이 있다. 이런 대중의 관심을 끌어 흥행에 성공하려면 낙관론보다 비관론을 내놓아야 한다. 그래서 경제 분야 ‘약장수’ 중에는 비관론자가 많다. 셋째 요인은 비관론이 낙관론보다 그럴싸해 보인다는 점이다. 한 증권시장 관계자는 이를 “약세장 주장은 언제나 더 지성적으로 들린다”는 말로 표현한 바 있다. 넷째 요인은 진심으로 상황이 악화될까 걱정하는 사람이 많은 경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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