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광원의 ‘CEO를 위한 생태학 산책’(11) 방향 설정] 남이 보지 못하는 곳으로 제대로 가라
[서광원의 ‘CEO를 위한 생태학 산책’(11) 방향 설정] 남이 보지 못하는 곳으로 제대로 가라
방향 탐색·제시가 리더의 중요한 미덕 … ‘빨리’ ‘열심히’만 외치면 공멸의 지름길 자연의 생명력은 보면 볼수록 대단한 게 많다. 몸은 작아도 살아가는 능력은 결코 작지 않은 생명체들도 그중 하나다. 예를 들어 미국 전역에 걸쳐 사는 제왕나비는 겨울이 오면 일제히 따뜻한 남쪽 나라로 향한다. 멕시코 남부에 있는 겨울 월동지로 날아가는 것이다. 쉬운 일이 아니다. 미국 북동부나 그 윗쪽의 캐나다 남부에 서식하는 녀석들은 무려 3000km나 되는 여정을 감당해내야 한다. 어느 순간 10억 마리나 되는 나비가 일제히 날아오르는 모습은 보는 사람에겐 장관이지만 서울에서 태국까지의 거리를 오로지 팔랑거리는 날개와 작은 몸집으로 날아가야 하는 나비에겐 고난의 여정이다. 나비 중에선 가장 큰 축에 속하지만 8~9cm 정도밖에 안 되는 몸으로 어떻게 이 먼 거리를, 그것도 정확하게 날아갈 수 있을까? 이게 끝이 아니다. 갔으니 돌아와야 한다. 갈 때는 바람을 타고 가니 비교적 쉽게, 2주 만에 여정을 마무리하지만 올 때는 완전히 다르다. 2개월이나 되는 시간과 무려 3세대에 걸친 여정을 치러내야 한다. 겨울을 이겨내느라 허약해진 데다가 먹는 것도 충분치 못해 수명도 짧다. 그래서 할아버지 세대가 출발하면 손자·손녀 세대들이 도착한다. 신기한 건 언어가 없어 정보를 전달해 줄 수도 없고, 누군가 가이드를 해주는 것도 아닌데 정확히 자기 고향을 찾아간다는 것이다.
지금까지 연구한 바에 따르면 이 나비들의 머리 속에는 지구 자기장을 감지하는 자철석과 특별한 유전자가 있어 이걸로 방향을 찾는다. ‘유전자 내비게이션’이라고 할 수 있는데 우리 눈에는 보이지도 않는 작은 자철석을 이용해 대를 이어가며 고향을 찾아가는 것이다. 덕분에 좋은 환경에서 살아가게 된 4세대 나비는 수명이 1~3대에 비해 10배나 길다. 겨울이 오면 한 번에 멕시코로 날아갈 수도 있다.
아주 특별한 재능 같지만 자연에는 이런 ‘체내 나침반’을 활용하는 생명체가 의외로 많다. 귀소 본능이 강해 전쟁 때 전서구로 많이 쓰였던 비둘기는 부리 둘레에 자철석을 갖고 있고, 송어는 머릿속에, 꿀벌은 뱃속에 가지고 있다. 알에서 태어난 후 바다로 나간 바다거북도 이걸 이용해 자기가 태어난 곳으로 정확하게 돌아오고, 향유고래 또한 뇌 속의 자철석을 이용해 매년 적도 근처로 가서 짝짓기를 하고 새끼를 낳은 후 다시 원래 살던 남극과 북극으로 돌아간다. 제왕나비보다 10배나 먼 3만km나 되는 먼 여정인데도 정확하게 원하는 방향을 찾아간다.
생명의 역사에서 일관되게 나타나는 삶의 원리 중 하나는 살아가는 데 별 필요가 없는 걸 가지고 있다가는 언제 사라질지 모른다는 것이다. 몸이 무거워져 변화에 순발력 있게 대응하지 못하는 데다 에너지 낭비가 많아지는 까닭이다. 세상을 잘 사는 비결은 간단하다. 시대가 원하는 걸 재빨리 갖추고, 그러지 않는 걸 빨리 버려야 한다. 변화는 변명을 용납하지 않는다. 그렇다면 많은 생명체가 ‘쇠(철)’를 몸 속에 갖고 있는 이유는 뭘까? 살아가는 데 없어서는 안 되는 방향을 탐지할 수 있기 때문이다.
방향은 언제부터 생겨났을까? 우주가 생길 때부터 있었겠지만 동물이 방향을 인식하게 된 건 비교적 ‘최근’의 일이다. 지구에 생명이 생겨나기 시작한 게 36억년 정도 되는데 지금으로부터 5억4000만여년 전에서야 비로소 방향을 인식하고 방향 감지를 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 전에는 왜 방향 인식이라는 게 없었을까? 눈이라는 게 없었다. 지금으로서는 상상이 안 가지만 그런 시절이 있었다. 움직일 수는 있는데 눈이 없으니 살아가는 건 운이었다. 이리저리 지나다니다가 먹을 게 걸리면 조금 더 살아갈 수 있었고, 그렇지 못하면 사라져야 했다. 언제나 그렇듯 살아있음의 원리는 좀 더 나은 능력을 만들어 낸 쪽의 손을 들어주는데, 이때도 마찬가지였다. 우연에 의지해야 했던 삶을 확률이 있는 가능성으로 전환시키려는 노력을 한 생명들이 드디어 5억4000만여년 전 눈을 만들어 냈고 번성의 주역이 됐다. 주인공은 해파리의 조상이었다. 비록 밝은 것과 어두운 것을 구분하는 원시적인 것이었지만 효과는 대단했을 것이다. 밝을 때, 그러니까 해가 떠 있을 때는 물 속 깊은 곳으로 갔다가 이 밝음이 사라지면 물 표면 가까이 나올 수 있는 아주 단순한 눈이었지만 이들은 자신들을 노리는 포식자를 효과적으로 피할 수 있어서 생존력을 획기적으로 높일 수 있었다. 눈의 탄생은 단순한 능력이 하나 더해진 게 아니었다. 세상을 볼 수 있다는 건 어디로 가야 할지 알게 됐다는 것이다. 눈을 가진 녀석들은 자신이 가야 할 곳을 발견할 수 있었고, 그곳으로 곧바로 갈 수 있었다. 여기저기 돌아다니며 운에 기대어 살아야 하는, 쓸데없는 에너지 낭비를 획기적으로 줄일 수 있었다. 당연히 번성할 수밖에 없었고 세상은 곧 눈을 가진 녀석들과 그러지 못한 녀석들로 나뉘었다. 급물살을 타기 시작한 변화의 흐름에서 후자는 휩쓸려 사라져 갔다. 짧은 시간 안에 눈은 대부분 동물들의 필수 능력이 됐다.
혁신이 가진 특성 중의 하나는 혁신이 일반화될수록 경쟁이 이전보다 몇 배나 치열해진다는 점이다. 눈의 탄생 또한 마찬가지였다. 세상을 보게 된 생명체들의 삶은 곧 쫓고 쫓기는 추격전이 되었고, 생과 사는 누가 먼저 보느냐에서 좌우되는 일이 많아졌다. 당연히 더 나은 눈의 진화가 생존의 조건을 좌우하면서 눈은 진화의 아이콘이 됐다. 좋은 눈을 가질수록 생존의 우위를 가질 수 있어 그 시대를 자신들의 것으로 만들 수 있었다. 예를 들어 우리가 교과서에서 배운 삼엽충은 눈다운 눈을 개발한 덕분에 3억년이나 번성할 수 있었다(우리 호모사피엔스는 출현한 지 겨우 20만년쯤 됐다!).
이뿐인가? 곤충은 4억년 전 독자적으로 겹눈을 개발한 덕분에 지금까지 100만종 이상의 다양성을 만들어내며 여전히 번성하고 있고, 한 시대를 군림했던 공룡은 최초로 쌍안시를 만든 주인공이었다. 쌍안시란 지금 우리처럼 두 눈이 정면에 있어 시야가 겹치는 것을 말한다. 카메라의 화소가 겹쳐질수록 화질이 선명해지듯 시야가 겹치게 되면 대상을 정확하게 볼 수 있고 거리 또한 정확하게 가늠할 수 있는 3차원 영상을 만들어낼 수 있다. 지금의 우리를 있게 한 영장류도 새로운 눈을 개발했다. 색깔을 구분할 수 있는 눈이 그것이다. 고양이와 호랑이는 색맹이어서 우리처럼 다양한 색깔을 볼 수 없고 개는 초록색만 볼 수 있다. 하지만 영장류는 녀석들이 볼 수 없는 빨간색을 볼 수 있다. 빨간색을 인지할수록 생존에 유리했기 때문이다. 자연에 있는 빨간색은 대체로 영양분이 많으면서도 씹기 쉬운 먹이인 경우가 많다. 연한 새싹이나 열매처럼 말이다.
생명의 역사에서 왜 눈이 이렇게 중요한 위치를 차지할까? 가야 할 방향을 제대로 알아야 제대로 된 삶을 살 수 있고, 여기에는 눈만큼 효과적인 게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눈은 항상 진화의 증거였고 번성한 생명체의 핵심 역량이었다.
우리의 뇌에는 방향을 담당하는 두 곳이 있다. 뇌 깊숙하게 자리하고 있는 해마와 그 주변 신경세포가 그곳인데, 각각 내가 지금 어떤 공간, 어느 곳에 있는지와 지금 내가 어디로 향하고 있는지를 판단한다. 전자는 우리 몸 곳곳에서 보내는 감각 정보를 모두 모아 일종의 정신적 지도를 만든다. 정보에는 등급이 있어서 눈에서 보내는 신호를 가장 우선하고 그 다음으로 후각·동작 순으로 우선 순위를 부여한다. 우리가 시각을 가장 우선적인 감각으로 선택했기 때문이다. 우리 뇌의 3분의 1 가량을 시각중추가 차지하고 있는 게 그 증거다. 이렇게 작성된 정보를 토대로 나침반 역할을 하는 후자가 어디로 향하고 있는가를 판단한다. 이 두 기능이 본능으로 장착돼 있다는 건 살아가는 데 반드시 필요하다는 뜻이다.
올바른 상황판단을 하기 위해서는 이 둘에 하나가 더 필요하다. 기억이다. 기억이 있어야 어떤 장소, 어떤 상황을 떠올려 지금 내가 있는 곳과 비교해, 이 곳이 어디이고, 어떤 곳인지 판단할 수 있고 앞으로 벌어질 상황과 연결시킬 수 있다. ‘처음 와 보는 곳’이라는 판단이 내려지면 몸에 긴장하라는 지시를 내리고, ‘언젠가 와 본 곳인데 안전하다’는 판단이 들면 경계 수위를 낮춘다.
알츠하이머 치매로 사망한 이들의 뇌를 보면 왜 기억이 중요한지 확실하게 알 수 있다. 기억을 담당하는 측두엽과 두정엽, 전두엽 피질 같은 부위가 특히 심하게 쪼그라들어 있다. 이렇게 많은 기억이 사라지다 보니 이런 사람은 내가 어디서 왔는지 모르고, 지금 어디에 있는지 가늠할 수 없다. 당연히 어디로 가야 할지 몰라 아무 데나 돌아다닌다. 치매 환자들이 외출했다가 집을 제대로 찾아오지 못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제대로 살아가려면 내가 어디에서 왔는지를 기억할 수 있어야 하고, 지금 어디에 있으며, 이제 어디로 가고 있는지를 잘 판단할 수 있어야 하는 것이다.
이런 원리는 살아있는 인간들로 구성된 조직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지금 어디에 있는지, 어디로 가는지 알려주지 않은 채 무조건 ‘나를 따르라’ ‘열심히 하자’고 하는 리더들이 있다. 예전에야 가능한 일이었지만 갈수록 먹히질 않는다. 아니 강조할수록 다들 슬슬 뒷걸음질치며 머뭇거리거나 어디론가 사라져 버린다. 우리 안에 깊숙하게 자리하고 있는 이 오래된 본능을 충족시켜 주지 못하니 자기도 모르게 가능성이 더 있는 곳으로 가는 것이다. 어떻게 해야 할까? 환경이 불확실할수록 생존의 본질인 이 세 가지를 조직에 제시할 수 있어야 한다. 이 과정에서 반드시 유념해야 할 게 있다. 앞에서 말했던 것처럼 인간은 시각을 우선한다는 사실이다. 백문이 불여일견이고 보는 걸 믿는다. 조직이 리더의 말보다 행동에 의미를 더 부여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말보다 행동이 더 진실에 기반하는 까닭이다. 아무리 말을 잘해도 보여줄 수 없다면 설득력은 떨어진다. 왜 모범이 중요하고 프레젠테이션이 중요한가? 시각적 본능을 충족시켜 주기 때문이다. 잭 웰치가 현직에 있을 때 “그런 거대 기업을 효과적으로 잘 이끌어나가는 비결이 뭐냐”는 질문을 받은 적이 있다. 그때 그가 한 말은 그가 왜 대단한 CEO였는지 알게 해준다. “딱 하나다. 나는 내가 어디로 가고 있는지 알고 있다. 그리고 GE의 전 구성원도 내가 어디로 가고 있는지 알고 있다.” 그는 말이 어눌하고 더듬 거리기까지 했으며 다소 안하무인이었지만 누구보다 방향 설정 능력이 뛰어난 데다 자신이 가고 있는 곳을 잘 보여준 덕분에, 다시 말해 앞장 서서 잘 이끌어간 덕분에 GE를 최고의 기업으로 만들 수 있었다.
“도대체 어디로 가야 할지 모르겠다.” 갈수록 이런 말을 하는 리더가 많아지고 있다. 방향 설정을 어떻게 하느냐에서 생존이 엇갈리는 이 시대가 리더들에게 자신만의 방향을 찾아내라고 요구하고 있기 때문이다. 방향 탐색과 제시에 미흡한 리더일수록 속도를 강조하는 경향이 있다. 주어진 방향에서 오로지 ‘열심히, 더 열심히’라는 속도만을 최선으로 여기고 살아온 탓이다.
이제 시대는 5억4000만년 전의 세상살이가 그랬듯 더 밝은 눈을 가진 이들이 더 잘 살고, 어디로 가야 할지 아는 쪽이 이기는 상황이 됐다. 방향이 있어야 속도가 제 기능을 하고, 조금 늦게 가더라도 제대로 가는 게 필요한 시대가 됐다. ‘빨리’도 중요하지만 ‘제대로’가 더 중요한 시대가 됐다. “열심히 하자” “최선을 다 하자”는 말은 이제 리더가 강조해야 할 말이 아니다. 남들이 보지 못하는 걸 보고 적절한 방향을 제시하면 강조하지 않아도 구성원들이 스스로 알아서 열심히 하는 시대가 된 까닭이다. 가야 할 곳도 모른 채 일단 달려보자는 사람들은 위험하다. 달리는 만큼 제대로 된 삶에서 멀어지게 되고, 멀어지는 만큼 빨리 사라지기 때문이다.. ‘금세기 안에 화성에 100만 명이 살 수 있는 도시를 건설한다.’ 민간 우주 개발 업체 ‘스페이스 X’ 대표이자 전기자동차 업체 테슬라의 CEO인 일론 머스크가 처음 이 말을 했을 땐 다들 지나가는 말인 줄 알았다. 결제 서비스 페이팔(PayPal)을 매각해 억만장자가 된 젊은 기업가의 치기쯤으로 여겼다. 하지만 최근 로켓 재활용에 성공하는 등 ‘말도 안 되는 꿈’을 조금씩 현실화시키자 눈길이 달라지고 있다. 그는 어렸을 적 읽었던 [은하수를 여행하는 히치하이커를 위한 안내서]를 통해 꿈을 키웠다고 했다. 세계 최대 전자상거래업체 아마존닷컴 창립자 제프 베저스 회장도 마찬가지다. “다섯 살 때부터 우주로 가는 로켓을 꿈꿔 왔다”는 그가 2000년 설립한 우주선 개발사 블루오리진은 올해 말까지 유인 우주선을 발사할 계획이다. 세계 드론 시장의 70%를 점유한 1위 업체 중국 DJI의 창업자 프랭크 왕은 또 어떤가? 초등학생 때 본 헬리콥터를 자동 제어하는 꿈을 계속 키워 세계 최대 드론 기업으로 만들어냈다. 이들의 꿈에는 공통점이 있다. 이제는 전설이 된 스티브 잡스가 그랬듯 우리가 일상적으로 살아가는 반복적이고 익숙한 세상 ‘바깥’에 꿈이 있다. 말도 안 되는 꿈을 가능성으로 만들어 새로운 세상을 만들어 가고 있다. 과감하게 지도 밖으로 간 덕분에 서양인 최초로 아메리카 대륙을 발견한 콜럼버스처럼 말이다. 우리의 꿈은 어디에 있을까?
※ 필자는 인간자연생명력연구소 소장이다. 조직과 리더의 지속가능한 성장을 위한 콘텐트를 연구하고 있다. 저서로 [사장으로 산다는 것] [사장의 길] [사자도 굶어 죽는다]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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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만km 거리 여정에서 방향 정확히 찾는 향유고래
지금까지 연구한 바에 따르면 이 나비들의 머리 속에는 지구 자기장을 감지하는 자철석과 특별한 유전자가 있어 이걸로 방향을 찾는다. ‘유전자 내비게이션’이라고 할 수 있는데 우리 눈에는 보이지도 않는 작은 자철석을 이용해 대를 이어가며 고향을 찾아가는 것이다. 덕분에 좋은 환경에서 살아가게 된 4세대 나비는 수명이 1~3대에 비해 10배나 길다. 겨울이 오면 한 번에 멕시코로 날아갈 수도 있다.
아주 특별한 재능 같지만 자연에는 이런 ‘체내 나침반’을 활용하는 생명체가 의외로 많다. 귀소 본능이 강해 전쟁 때 전서구로 많이 쓰였던 비둘기는 부리 둘레에 자철석을 갖고 있고, 송어는 머릿속에, 꿀벌은 뱃속에 가지고 있다. 알에서 태어난 후 바다로 나간 바다거북도 이걸 이용해 자기가 태어난 곳으로 정확하게 돌아오고, 향유고래 또한 뇌 속의 자철석을 이용해 매년 적도 근처로 가서 짝짓기를 하고 새끼를 낳은 후 다시 원래 살던 남극과 북극으로 돌아간다. 제왕나비보다 10배나 먼 3만km나 되는 먼 여정인데도 정확하게 원하는 방향을 찾아간다.
생명의 역사에서 일관되게 나타나는 삶의 원리 중 하나는 살아가는 데 별 필요가 없는 걸 가지고 있다가는 언제 사라질지 모른다는 것이다. 몸이 무거워져 변화에 순발력 있게 대응하지 못하는 데다 에너지 낭비가 많아지는 까닭이다. 세상을 잘 사는 비결은 간단하다. 시대가 원하는 걸 재빨리 갖추고, 그러지 않는 걸 빨리 버려야 한다. 변화는 변명을 용납하지 않는다. 그렇다면 많은 생명체가 ‘쇠(철)’를 몸 속에 갖고 있는 이유는 뭘까? 살아가는 데 없어서는 안 되는 방향을 탐지할 수 있기 때문이다.
방향은 언제부터 생겨났을까? 우주가 생길 때부터 있었겠지만 동물이 방향을 인식하게 된 건 비교적 ‘최근’의 일이다. 지구에 생명이 생겨나기 시작한 게 36억년 정도 되는데 지금으로부터 5억4000만여년 전에서야 비로소 방향을 인식하고 방향 감지를 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 전에는 왜 방향 인식이라는 게 없었을까? 눈이라는 게 없었다. 지금으로서는 상상이 안 가지만 그런 시절이 있었다. 움직일 수는 있는데 눈이 없으니 살아가는 건 운이었다. 이리저리 지나다니다가 먹을 게 걸리면 조금 더 살아갈 수 있었고, 그렇지 못하면 사라져야 했다. 언제나 그렇듯 살아있음의 원리는 좀 더 나은 능력을 만들어 낸 쪽의 손을 들어주는데, 이때도 마찬가지였다. 우연에 의지해야 했던 삶을 확률이 있는 가능성으로 전환시키려는 노력을 한 생명들이 드디어 5억4000만여년 전 눈을 만들어 냈고 번성의 주역이 됐다. 주인공은 해파리의 조상이었다. 비록 밝은 것과 어두운 것을 구분하는 원시적인 것이었지만 효과는 대단했을 것이다. 밝을 때, 그러니까 해가 떠 있을 때는 물 속 깊은 곳으로 갔다가 이 밝음이 사라지면 물 표면 가까이 나올 수 있는 아주 단순한 눈이었지만 이들은 자신들을 노리는 포식자를 효과적으로 피할 수 있어서 생존력을 획기적으로 높일 수 있었다.
생존력 획기적으로 높인 눈의 탄생
혁신이 가진 특성 중의 하나는 혁신이 일반화될수록 경쟁이 이전보다 몇 배나 치열해진다는 점이다. 눈의 탄생 또한 마찬가지였다. 세상을 보게 된 생명체들의 삶은 곧 쫓고 쫓기는 추격전이 되었고, 생과 사는 누가 먼저 보느냐에서 좌우되는 일이 많아졌다. 당연히 더 나은 눈의 진화가 생존의 조건을 좌우하면서 눈은 진화의 아이콘이 됐다. 좋은 눈을 가질수록 생존의 우위를 가질 수 있어 그 시대를 자신들의 것으로 만들 수 있었다. 예를 들어 우리가 교과서에서 배운 삼엽충은 눈다운 눈을 개발한 덕분에 3억년이나 번성할 수 있었다(우리 호모사피엔스는 출현한 지 겨우 20만년쯤 됐다!).
이뿐인가? 곤충은 4억년 전 독자적으로 겹눈을 개발한 덕분에 지금까지 100만종 이상의 다양성을 만들어내며 여전히 번성하고 있고, 한 시대를 군림했던 공룡은 최초로 쌍안시를 만든 주인공이었다. 쌍안시란 지금 우리처럼 두 눈이 정면에 있어 시야가 겹치는 것을 말한다. 카메라의 화소가 겹쳐질수록 화질이 선명해지듯 시야가 겹치게 되면 대상을 정확하게 볼 수 있고 거리 또한 정확하게 가늠할 수 있는 3차원 영상을 만들어낼 수 있다.
눈은 진화의 증거이자 생명체의 핵심 역량
생명의 역사에서 왜 눈이 이렇게 중요한 위치를 차지할까? 가야 할 방향을 제대로 알아야 제대로 된 삶을 살 수 있고, 여기에는 눈만큼 효과적인 게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눈은 항상 진화의 증거였고 번성한 생명체의 핵심 역량이었다.
우리의 뇌에는 방향을 담당하는 두 곳이 있다. 뇌 깊숙하게 자리하고 있는 해마와 그 주변 신경세포가 그곳인데, 각각 내가 지금 어떤 공간, 어느 곳에 있는지와 지금 내가 어디로 향하고 있는지를 판단한다. 전자는 우리 몸 곳곳에서 보내는 감각 정보를 모두 모아 일종의 정신적 지도를 만든다. 정보에는 등급이 있어서 눈에서 보내는 신호를 가장 우선하고 그 다음으로 후각·동작 순으로 우선 순위를 부여한다. 우리가 시각을 가장 우선적인 감각으로 선택했기 때문이다. 우리 뇌의 3분의 1 가량을 시각중추가 차지하고 있는 게 그 증거다. 이렇게 작성된 정보를 토대로 나침반 역할을 하는 후자가 어디로 향하고 있는가를 판단한다. 이 두 기능이 본능으로 장착돼 있다는 건 살아가는 데 반드시 필요하다는 뜻이다.
올바른 상황판단을 하기 위해서는 이 둘에 하나가 더 필요하다. 기억이다. 기억이 있어야 어떤 장소, 어떤 상황을 떠올려 지금 내가 있는 곳과 비교해, 이 곳이 어디이고, 어떤 곳인지 판단할 수 있고 앞으로 벌어질 상황과 연결시킬 수 있다. ‘처음 와 보는 곳’이라는 판단이 내려지면 몸에 긴장하라는 지시를 내리고, ‘언젠가 와 본 곳인데 안전하다’는 판단이 들면 경계 수위를 낮춘다.
알츠하이머 치매로 사망한 이들의 뇌를 보면 왜 기억이 중요한지 확실하게 알 수 있다. 기억을 담당하는 측두엽과 두정엽, 전두엽 피질 같은 부위가 특히 심하게 쪼그라들어 있다. 이렇게 많은 기억이 사라지다 보니 이런 사람은 내가 어디서 왔는지 모르고, 지금 어디에 있는지 가늠할 수 없다. 당연히 어디로 가야 할지 몰라 아무 데나 돌아다닌다. 치매 환자들이 외출했다가 집을 제대로 찾아오지 못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제대로 살아가려면 내가 어디에서 왔는지를 기억할 수 있어야 하고, 지금 어디에 있으며, 이제 어디로 가고 있는지를 잘 판단할 수 있어야 하는 것이다.
이런 원리는 살아있는 인간들로 구성된 조직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지금 어디에 있는지, 어디로 가는지 알려주지 않은 채 무조건 ‘나를 따르라’ ‘열심히 하자’고 하는 리더들이 있다. 예전에야 가능한 일이었지만 갈수록 먹히질 않는다. 아니 강조할수록 다들 슬슬 뒷걸음질치며 머뭇거리거나 어디론가 사라져 버린다. 우리 안에 깊숙하게 자리하고 있는 이 오래된 본능을 충족시켜 주지 못하니 자기도 모르게 가능성이 더 있는 곳으로 가는 것이다. 어떻게 해야 할까?
보여줄 수 없다면 설득력 떨어져
“도대체 어디로 가야 할지 모르겠다.” 갈수록 이런 말을 하는 리더가 많아지고 있다. 방향 설정을 어떻게 하느냐에서 생존이 엇갈리는 이 시대가 리더들에게 자신만의 방향을 찾아내라고 요구하고 있기 때문이다. 방향 탐색과 제시에 미흡한 리더일수록 속도를 강조하는 경향이 있다. 주어진 방향에서 오로지 ‘열심히, 더 열심히’라는 속도만을 최선으로 여기고 살아온 탓이다.
이제 시대는 5억4000만년 전의 세상살이가 그랬듯 더 밝은 눈을 가진 이들이 더 잘 살고, 어디로 가야 할지 아는 쪽이 이기는 상황이 됐다. 방향이 있어야 속도가 제 기능을 하고, 조금 늦게 가더라도 제대로 가는 게 필요한 시대가 됐다. ‘빨리’도 중요하지만 ‘제대로’가 더 중요한 시대가 됐다. “열심히 하자” “최선을 다 하자”는 말은 이제 리더가 강조해야 할 말이 아니다. 남들이 보지 못하는 걸 보고 적절한 방향을 제시하면 강조하지 않아도 구성원들이 스스로 알아서 열심히 하는 시대가 된 까닭이다. 가야 할 곳도 모른 채 일단 달려보자는 사람들은 위험하다. 달리는 만큼 제대로 된 삶에서 멀어지게 되고, 멀어지는 만큼 빨리 사라지기 때문이다..
[박스기사] 그들의 꿈은 모두 ‘바깥’에 있다
※ 필자는 인간자연생명력연구소 소장이다. 조직과 리더의 지속가능한 성장을 위한 콘텐트를 연구하고 있다. 저서로 [사장으로 산다는 것] [사장의 길] [사자도 굶어 죽는다]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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