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리카에 드리운 독재의 그림자 이젠 걷힐까
아프리카에 드리운 독재의 그림자 이젠 걷힐까
37년 장기 집권한 짐바브웨의 무가베, 쿠데타와 탄핵으로 퇴진 … 아프리카의 다른 장수 독재자들도 전전긍긍 지난해 1월 로버트 무가베(91) 짐바브웨 대통령은 에티오피아에서 열린 아프리카연합(AU) 정상회의에 참석했다. 연설에 나선 그는 처음부터 서방의 아프리카 문제 개입을 맹비난했다. 청중은 지난 수십 년 동안 그랬듯이 연거푸 환호성을 올리며 박수를 치고 재치 있는 농담에 웃음을 터뜨렸다. 무가베는 “그들은 아프리카의 모든 곳에 존재한다”고 말했다. “반드시 물리적으로 드러나지 않는다고 해도 그들은 비정부기구나 스파이를 통해 이곳에 침투한다. 또 그들은 여기 와서 우리를 도우러 아프리카에 있다고 능청스럽게 거짓말을 한다. 우리 아프리카인은 이런 노예 상태를 더는 참고 견뎌선 안 된다.” 연설이 끝나자 청중은 초고령 정치인인 그에게 기립박수를 보냈다.
그로부터 2년도 채 못 가 그의 37년 장기 집권이 급작스럽게 막을 내렸다. 지난 11월 무가베는 그동안 자신을 따르던 군부와 집권 여당 의원들에 의해 쫓겨났다. 무가베는 부인인 그레이스에게 권력을 물려주기 위해 자신의 후계자로 유력하던 에머슨 음난가그와 부통령을 경질했다. 군부가 그런 조치에 반발하면서 지난 11월 15일 쿠데타가 일어났다. 무가베는 약 1주일간 퇴진을 거부하며 버텼지만 집권당인 아프리카민족전선-애국동맹(ZANU-PF) 주도로 탄핵 절차가 개시되자 결국 사임했다.
피를 흘리진 않았지만 쿠데타였다. 짐바브웨 사법부는 무가베 축출의 정당성을 인정했다. 세계의 많은 나라도 국민의 인권을 잔혹하게 유린하고 대다수 국민을 헐벗게 만든 경제 붕괴를 초래한 무가베의 몰락과 짐바브웨의 정권 교체를 환영했다. 이제 아프리카의 다른 지도자들도 노심초사해야 할까? 그들 중 일부는 권좌를 유지할 목적으로 임기 제한울 규정한 헌법을 개정했으며, 투표를 조작했고, 시민사회를 탄압했다. 그 때문에 그들은 무가베가 툭하면 호되게 비판하던 서방 정부들로부터 자주 비난을 샀다.
2009년 버락 오바마는 미국 대통령으로선 처음 아프라카를 방문하면서 이렇게 말했다. “아프리카는 강한 권력자가 아니라 강한 제도가 필요하다. 법의 지배가 공포와 뇌물의 지배에 밀려나는 사회에서 살고 싶어하는 사람은 없다. 그건 민주주의가 아니라 독재다.”
오바마가 언급한 ‘강한 권력자’ 몇몇은 지난 11월 짐바브웨에서 무가베가 쫓겨나는 모습을 지켜보면서 불안감을 떨칠 수 없었던 듯하다. 1986년부터 우간다를 통치해온 요웨리 무세베니 대통령은 무가베가 하야한 바로 다음날 군인들의 봉급 인상을 약속했다. 남아공에선 갈수록 인기를 잃어가는 제이컵 주마 대통령이 자신을 몰아내려는 시도를 막아내느라 분투하는 와중에 집권 여당의 원내대표마저 지도부 교체가 시급한 상황이라고 공개적으로 거론했다.
미국 싱크탱크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 산하 아프리카 프로그램의 리처드 다우니 부국장은 짐바브웨의 쿠데타를 두고 “아프리카에서 여전히 국가 수반으로서 권세를 부리는 늙은 공룡들에게 주는 경고”라고 말했다. “그들은 국민이나 당의 명령에 따라 통치 권한을 위임 받았을 뿐이다. 따라서 그들이 이제 그만 물러날 때라고 선언하면 버틸 재간이 별로 없다.”
지난해 아프리카의 장기 통치자 몇 명이 그런 운명을 맞았다. 지난해 12월 감비아를 22년 동안 철권통치를 해온 야흐야 자메 대통령이 대선에서 패했지만 이후 개표 과정에 부정이 있었다고 주장하며 퇴진을 거부하다가 결국 망명의 길을 택했다. 같은해 8월엔 앙골라에서 호세 에두아르도 도스 산토스 대통령이 38년 동안의 최장기 집권 후 물러났다. 그가 이끌던 집권 여당의 호아로 로렌코 전 국방장관이 그의 후임으로 대통령이 되면서 산토스의 측근들을 숙청하기 시작했다.
짐바브웨의 신임 대통령 에머슨 음난가그와는 정보당국 수장 등을 지내며 무가베 권력을 수호해왔던 인물이다. 그는 짐바브웨의 기득권층이며 수구 세력인 군과 해방전 참전군인들의 절대적 지지를 받는다. 따라서 짐바브웨가 독재자를 몰아내고 또 다른 독재자를 세웠다는 우려도 나온다. 다시 말해 민주화 봉기가 아니라 일종의 ‘경고’였다는 뜻이다. 이처럼 군부가 쿠데타로 짐바브웨를 장악했다는 사실을 고려하면 군부와 당 장악을 공고히 하기 위해 이례적인 조치를 취한 아프리카 지도자는 우간다의 무세베니 대통령(군인 봉급 인상을 약속했다)만이 아닐 것이다. 특히 대중의 불만이 고조되는 나라에선 당연히 그럴 수밖에 없다.
무가베가 나라를 더 잘 통치하고 국민의 지지를 받았더라면 짐바브웨의 군부 지도자들도 쿠데타를 생각하지 않았을지 모른다. 영국 버밍엄대학에서 아프리카의 민주주의를 연구하는 닉 치즈먼 교수는 “무가베가 국내적으로나 국제적으로 인기가 형편없다고 판단했기 때문에 군부가 들고 일어났다”고 설명했다.
카메룬의 폴 비야 대통령과 적도기니의 테오도로 오비앙 응게마 대통령(현재 아프리카에서 최장기 집권하고 있는 지도자) 등 국민의 불만이 높아가는 다른 나라의 지도자들도 이제 자리를 잃을 위험이 있다. 그러나 짐바브웨와 달리 그런 나라의 정치적 격변은 군부의 개입보다 민중 봉기로 촉발될 가능성이 더 크다고 치즈먼 교수는 지적했다. “거리의 대중을 먼저 살펴볼 필요가 있다. 집단 시위가 큰 변수다.”
그러나 조만간 짐바브웨 사태에서 영향을 받은 민중 시위가 늘어날 가능성은 별로 없다. 근년 들어 아프리카의 민주화 진전은 드물었다고 관측통들은 지적한다. 퓨 리서치 센터의 최근 조사에 따르면 아프리카 국가의 많은 국민은 비민주적인 정부 형태도 받아들일 수 있다고 생각한다.
무가베의 축출이 아프리카 민주주의에 도움이 될지는 수년이 지나야 확실히 알 수 있을 것이다. 음난가그와 신임 대통령이 약속했듯이 경제 개혁과 내년의 공정 선거가 제대로 이뤄진다면 무가베를 몰아낸 쿠데타는 짐바브웨 민주주의 발전의 분수령으로 기록될 것이다.
그러나 만약 국민과 사회의 조건이 악화되고 집권당 ZANU-PF가 독재를 추진한다면 2017년 11월은 짐바브웨만이 아니라 아프리카 대륙 전체를 완전히 다른 길로 들어서게 한 전환점으로 기억될 것이다. 남아공 요하네스버그 소재 ‘데모크라시 워크스’ 재단의 윌리엄 구메데 회장은 “무가베의 퇴진을 원치 않았던 사람은 없다”고 말했다. “따라서 새로운 시작이 아니다. 하지만 잘하면 새로운 시작이 될 가능성이 있다.”
- 크리스타 마르 뉴스위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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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로부터 2년도 채 못 가 그의 37년 장기 집권이 급작스럽게 막을 내렸다. 지난 11월 무가베는 그동안 자신을 따르던 군부와 집권 여당 의원들에 의해 쫓겨났다. 무가베는 부인인 그레이스에게 권력을 물려주기 위해 자신의 후계자로 유력하던 에머슨 음난가그와 부통령을 경질했다. 군부가 그런 조치에 반발하면서 지난 11월 15일 쿠데타가 일어났다. 무가베는 약 1주일간 퇴진을 거부하며 버텼지만 집권당인 아프리카민족전선-애국동맹(ZANU-PF) 주도로 탄핵 절차가 개시되자 결국 사임했다.
피를 흘리진 않았지만 쿠데타였다. 짐바브웨 사법부는 무가베 축출의 정당성을 인정했다. 세계의 많은 나라도 국민의 인권을 잔혹하게 유린하고 대다수 국민을 헐벗게 만든 경제 붕괴를 초래한 무가베의 몰락과 짐바브웨의 정권 교체를 환영했다. 이제 아프리카의 다른 지도자들도 노심초사해야 할까? 그들 중 일부는 권좌를 유지할 목적으로 임기 제한울 규정한 헌법을 개정했으며, 투표를 조작했고, 시민사회를 탄압했다. 그 때문에 그들은 무가베가 툭하면 호되게 비판하던 서방 정부들로부터 자주 비난을 샀다.
2009년 버락 오바마는 미국 대통령으로선 처음 아프라카를 방문하면서 이렇게 말했다. “아프리카는 강한 권력자가 아니라 강한 제도가 필요하다. 법의 지배가 공포와 뇌물의 지배에 밀려나는 사회에서 살고 싶어하는 사람은 없다. 그건 민주주의가 아니라 독재다.”
오바마가 언급한 ‘강한 권력자’ 몇몇은 지난 11월 짐바브웨에서 무가베가 쫓겨나는 모습을 지켜보면서 불안감을 떨칠 수 없었던 듯하다. 1986년부터 우간다를 통치해온 요웨리 무세베니 대통령은 무가베가 하야한 바로 다음날 군인들의 봉급 인상을 약속했다. 남아공에선 갈수록 인기를 잃어가는 제이컵 주마 대통령이 자신을 몰아내려는 시도를 막아내느라 분투하는 와중에 집권 여당의 원내대표마저 지도부 교체가 시급한 상황이라고 공개적으로 거론했다.
미국 싱크탱크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 산하 아프리카 프로그램의 리처드 다우니 부국장은 짐바브웨의 쿠데타를 두고 “아프리카에서 여전히 국가 수반으로서 권세를 부리는 늙은 공룡들에게 주는 경고”라고 말했다. “그들은 국민이나 당의 명령에 따라 통치 권한을 위임 받았을 뿐이다. 따라서 그들이 이제 그만 물러날 때라고 선언하면 버틸 재간이 별로 없다.”
지난해 아프리카의 장기 통치자 몇 명이 그런 운명을 맞았다. 지난해 12월 감비아를 22년 동안 철권통치를 해온 야흐야 자메 대통령이 대선에서 패했지만 이후 개표 과정에 부정이 있었다고 주장하며 퇴진을 거부하다가 결국 망명의 길을 택했다. 같은해 8월엔 앙골라에서 호세 에두아르도 도스 산토스 대통령이 38년 동안의 최장기 집권 후 물러났다. 그가 이끌던 집권 여당의 호아로 로렌코 전 국방장관이 그의 후임으로 대통령이 되면서 산토스의 측근들을 숙청하기 시작했다.
짐바브웨의 신임 대통령 에머슨 음난가그와는 정보당국 수장 등을 지내며 무가베 권력을 수호해왔던 인물이다. 그는 짐바브웨의 기득권층이며 수구 세력인 군과 해방전 참전군인들의 절대적 지지를 받는다. 따라서 짐바브웨가 독재자를 몰아내고 또 다른 독재자를 세웠다는 우려도 나온다. 다시 말해 민주화 봉기가 아니라 일종의 ‘경고’였다는 뜻이다. 이처럼 군부가 쿠데타로 짐바브웨를 장악했다는 사실을 고려하면 군부와 당 장악을 공고히 하기 위해 이례적인 조치를 취한 아프리카 지도자는 우간다의 무세베니 대통령(군인 봉급 인상을 약속했다)만이 아닐 것이다. 특히 대중의 불만이 고조되는 나라에선 당연히 그럴 수밖에 없다.
무가베가 나라를 더 잘 통치하고 국민의 지지를 받았더라면 짐바브웨의 군부 지도자들도 쿠데타를 생각하지 않았을지 모른다. 영국 버밍엄대학에서 아프리카의 민주주의를 연구하는 닉 치즈먼 교수는 “무가베가 국내적으로나 국제적으로 인기가 형편없다고 판단했기 때문에 군부가 들고 일어났다”고 설명했다.
카메룬의 폴 비야 대통령과 적도기니의 테오도로 오비앙 응게마 대통령(현재 아프리카에서 최장기 집권하고 있는 지도자) 등 국민의 불만이 높아가는 다른 나라의 지도자들도 이제 자리를 잃을 위험이 있다. 그러나 짐바브웨와 달리 그런 나라의 정치적 격변은 군부의 개입보다 민중 봉기로 촉발될 가능성이 더 크다고 치즈먼 교수는 지적했다. “거리의 대중을 먼저 살펴볼 필요가 있다. 집단 시위가 큰 변수다.”
그러나 조만간 짐바브웨 사태에서 영향을 받은 민중 시위가 늘어날 가능성은 별로 없다. 근년 들어 아프리카의 민주화 진전은 드물었다고 관측통들은 지적한다. 퓨 리서치 센터의 최근 조사에 따르면 아프리카 국가의 많은 국민은 비민주적인 정부 형태도 받아들일 수 있다고 생각한다.
무가베의 축출이 아프리카 민주주의에 도움이 될지는 수년이 지나야 확실히 알 수 있을 것이다. 음난가그와 신임 대통령이 약속했듯이 경제 개혁과 내년의 공정 선거가 제대로 이뤄진다면 무가베를 몰아낸 쿠데타는 짐바브웨 민주주의 발전의 분수령으로 기록될 것이다.
그러나 만약 국민과 사회의 조건이 악화되고 집권당 ZANU-PF가 독재를 추진한다면 2017년 11월은 짐바브웨만이 아니라 아프리카 대륙 전체를 완전히 다른 길로 들어서게 한 전환점으로 기억될 것이다. 남아공 요하네스버그 소재 ‘데모크라시 워크스’ 재단의 윌리엄 구메데 회장은 “무가베의 퇴진을 원치 않았던 사람은 없다”고 말했다. “따라서 새로운 시작이 아니다. 하지만 잘하면 새로운 시작이 될 가능성이 있다.”
- 크리스타 마르 뉴스위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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