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0자’의 총성 없는 전쟁
‘140자’의 총성 없는 전쟁
페이스북 · 트위터 등 소셜미디어가 21세기 전쟁을 어떻게 바꾸고 있나 페이스북은 2016년 미국 대선을 전후해 이른바 ‘댓글 농장(troll farm)’으로 불리는 러시아 정부 연관 단체 인터넷 리서치 에이전시(IRA)를 통해 약 3000건의 광고가 집행됐다는 사실을 공개했다. 불만을 가진 전직 IRA 직원의 폭로로 밝혀진 사실이었다. 그는 “그 일을 하는 자신이 영웅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었겠지만 사실은 그저 비열한 인간일 뿐이었다”고 말했다.
우크라이나의 ‘페이스북 전사’는 연료부터 과일까지 모든 것을 SNS를 통해 구한다. “무엇보다 네트워크가 중요하다. 사람들은 누구든 우리가 필요한 것을 제공할 수 있는 다른 사람을 알고 있다.”
시리아 라카를 ‘수도’로 삼았던 급진 무장단체 이슬람국가(IS)는 온라인 메신저 왓츠앱(WhatsApp)과 바이버(Viber)를 통해 프랑스인을 대원으로 포섭했다. “신문에 보도되는 것은 믿지 마라. 여기선 모든 무슬림이 평화롭게 산다. 여기선 우리가 진실된 뜻을 이뤄간다.”
한 젊은 팔레스타인 여성은 가자 지구에서 이스라엘의 공습이 치열한 와중에 이런 트윗을 올렸다. “폭탄 터지는 소리를 도저히 견딜 수 없어 울부짖는다. 청각을 잃을 지경이다.”
이상은 데이비드 파트리카라코스의 사려 깊고 흥미진진한 책 ‘140자로 치르는 전쟁: 소셜미디어가 바꿔놓는 21세기의 전쟁(War in 140 Characters: How Social Media Is Reshaping Conflict in the Twenty-First Century)’에 소개되는 실제 사례들이다. 이 책은 현재와 과거의 전쟁 이론을 다루지만 저자는 자신의 지식을 자랑하지 않고 인물 위주로 쉽고 재미있게 풀어간다.
파트리카라코스가 인용한 사례는 배경과 지역이 각각 다르지만 그들 전부는 그가 ‘호모 디지탈리스(homo digitalis)’라고 부르는 새로운 부류의 인간을 상징한다. “고도로 네트워크화한 개인은 특히 이원론적이다. 세상을 선과 악, 자기 편 아니면 적으로 본다. 소셜미디어의 핵심에 위치한 네트워크는 구심력과 원심력 둘 다를 갖는다. 이전엔 불가능했던 속도와 규모로 사람들을 한데 모으기도 하고 뿔뿔히 흩어놓기도 한다.”
파트리카라코스는 소셜미디어의 영향력을 과소평가해선 안 된다고 강조한다. 페이스북의 인구는 중국보다 많으며, 트위터와 페이스북은 미국인에게 대부분의 뉴스를 제공하는 주된 플랫폼이다.
베테랑 해외 특파원인 파트리카라코스는 2014년 봄 우크라이나 동부에 도착해 “트위터가 뉴욕타임스나 NBC보다 더 최신 정보를 전한다”는 사실을 깨닫고는 이 책을 쓰기로 결심했다. 그해 여름은 전쟁과 소셜미디어에서 매우 중대한 시점이었다. IS가 그해 6월 이라크 제2의 도시 모술을 점령한 뒤 전 세계의 헤드라인을 장식했다. 한 달 뒤 이스라엘은 ‘방어의 칼날(Operation Protective Edge)’ 작전을 개시했다. 팔레스타인 무장 조직 하마스가 이스라엘 십대 소년 3명을 납치 살해한 뒤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 어린이 한 명을 보복 납치살해한 사건 등 여러 차례의 국지 도발에 이어 가자 지구에서 일어난 대규모 전투였다.
요즘 전쟁은 예전과 달리 두 전선에서 치러진다. 하나는 탱크와 대포를 동원하는 지상의 전선이고, 다른 하나는 트윗과 스냅 사진을 동원하는 소셜미디어 전선이다. 더구나 그중에서도 으뜸은 ‘스토리텔링’ 전쟁이다. 이 전쟁에선 각목과 돌멩이가 뼈를 부러뜨리는 동안 ‘스토리’가 전쟁을 승리 또는 패배로 이끌 수 있다.
웹 2.0은 전쟁 2.0의 시발점이다. 십대 소녀가 트위터로 전투를 생중계함으로써 한 국가 전체를 궐기하게 만들 수 있는 세계다. IS가 유프라테스 강에서 배를 탄 젊은이들의 사진으로 감수성 예민한 여성을 유혹해 성전 전사로 전쟁터에 나서도록 만들 수 있는 세상이다.
1만여 개에 이르는 페이스북 피드를 통해 쏟아지는 정보와 가짜뉴스는 양도 어마어마하지만 영향력도 매우 크다. 전통적인 전시 선전은 ‘적대 세력’을 표적으로 삼았지만 요즘 러시아의 크렘린, 우크라이나, 이스라엘 방위군, 팔레스타인의 하마스, IS 등 국가 당국이나 무장조직이 감행하는 소셜미디어 공격은 전 세계를 대상으로 펼쳐진다.
이 영역에선 누구나 전쟁의 행위자가 될 수 있다. 파트리카라코스는 자신의 저서에서 다룬 8명의 주요 인물 중에서 4명이 여성이고 3명이 민간인인 사실이 결코 우연이 아니라고 설명한다. 여성과 어린이 등 역사적으로 전쟁에서 제외된 계층이 이제는 무대의 중앙을 차지하고 이전엔 상상조차 할 수 없었던 방식으로 그 전쟁 무대를 이끌어갈 수 있다.
위계질서가 확실한 전통적인 뉴스 매체의 패권은 거의 사라졌다. 이제 그런 기관은 개인으로 대체됐다. 또 팩트는 ‘스토리’로, 토론은 감정의 표현으로 바뀌었다. 알고리즘이 우리가 무엇을 보고 세계를 어떻게 보는지 결정한다. 소셜미디어는 사적이고 은밀하다. 유혹하고 회피하며 꼬드기고 허위를 믿게 한다. 조작된 영상과 거짓말이 넘쳐난다. 그곳에선 음모론이 번성하며 널리 퍼진다.
파트리카라코스는 이런 변화의 결과가 영향력이 클 뿐 아니라 매우 위험하다고 경고한다. “소셜미디어 시대의 악의를 가진 행위자는 우리 모두가 방송인 또는 모금자 또는 선전원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잘 안다. 호모 디지탈 리스는 최악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무기로 활용된다.”
요즘 같은 탈진실의 세계는 탈진실의 지도자도 만들어냈다고 파트리카라코스는 지적한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부터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까지 이들 새로운 지도자의 목표는 “예전의 정치인처럼 진실을 왜곡하는 게 아니라 객관적인 진실이 존재한다는 개념 자체를 뒤엎는 것이다.” 자신에게 불리한 모든 정보를 두고 트럼프 대통령은 “가짜뉴스!”라고 외친다. 다른 시대 같으면 그런 헛소리는 지금처럼 잘 먹혀들 수 없다.
전쟁과 포퓰리즘, 반세계화 정서의 현 추세를 지켜보는 목격자로서 파트리카라코스는 이렇게 결론짓는다. “중동 전역에서 거의 한 세기만에 겪는 전쟁과 불안의 공습으로 좌절한 사람들과 기회주의적인 선동가들이 전 세계를 불태울 수 있는 가연성 혼합물을 만들어낸다.”
그러나 파트리카라코스는 재앙 예언가는 아니다. 호모 디지탈리스의 어둠은 적어도 부분적으로는 ‘21세기 종군기자’라는 빛에 의해 조금씩 밝아질 수 있다. 소셜미디어라는 도구는 기만만이 아니라 명확한 설명을 위해서도 사용될 수 있다는 뜻이다.
이 책은 저널리즘이 정답은 아니지만 적으도 해법의 작으면서도 중요한 부분이라는 사실을 시의적절하게 상기시킨다.
- 레베카 그리그 뉴스위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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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크라이나의 ‘페이스북 전사’는 연료부터 과일까지 모든 것을 SNS를 통해 구한다. “무엇보다 네트워크가 중요하다. 사람들은 누구든 우리가 필요한 것을 제공할 수 있는 다른 사람을 알고 있다.”
시리아 라카를 ‘수도’로 삼았던 급진 무장단체 이슬람국가(IS)는 온라인 메신저 왓츠앱(WhatsApp)과 바이버(Viber)를 통해 프랑스인을 대원으로 포섭했다. “신문에 보도되는 것은 믿지 마라. 여기선 모든 무슬림이 평화롭게 산다. 여기선 우리가 진실된 뜻을 이뤄간다.”
한 젊은 팔레스타인 여성은 가자 지구에서 이스라엘의 공습이 치열한 와중에 이런 트윗을 올렸다. “폭탄 터지는 소리를 도저히 견딜 수 없어 울부짖는다. 청각을 잃을 지경이다.”
이상은 데이비드 파트리카라코스의 사려 깊고 흥미진진한 책 ‘140자로 치르는 전쟁: 소셜미디어가 바꿔놓는 21세기의 전쟁(War in 140 Characters: How Social Media Is Reshaping Conflict in the Twenty-First Century)’에 소개되는 실제 사례들이다. 이 책은 현재와 과거의 전쟁 이론을 다루지만 저자는 자신의 지식을 자랑하지 않고 인물 위주로 쉽고 재미있게 풀어간다.
파트리카라코스가 인용한 사례는 배경과 지역이 각각 다르지만 그들 전부는 그가 ‘호모 디지탈리스(homo digitalis)’라고 부르는 새로운 부류의 인간을 상징한다. “고도로 네트워크화한 개인은 특히 이원론적이다. 세상을 선과 악, 자기 편 아니면 적으로 본다. 소셜미디어의 핵심에 위치한 네트워크는 구심력과 원심력 둘 다를 갖는다. 이전엔 불가능했던 속도와 규모로 사람들을 한데 모으기도 하고 뿔뿔히 흩어놓기도 한다.”
파트리카라코스는 소셜미디어의 영향력을 과소평가해선 안 된다고 강조한다. 페이스북의 인구는 중국보다 많으며, 트위터와 페이스북은 미국인에게 대부분의 뉴스를 제공하는 주된 플랫폼이다.
베테랑 해외 특파원인 파트리카라코스는 2014년 봄 우크라이나 동부에 도착해 “트위터가 뉴욕타임스나 NBC보다 더 최신 정보를 전한다”는 사실을 깨닫고는 이 책을 쓰기로 결심했다. 그해 여름은 전쟁과 소셜미디어에서 매우 중대한 시점이었다. IS가 그해 6월 이라크 제2의 도시 모술을 점령한 뒤 전 세계의 헤드라인을 장식했다. 한 달 뒤 이스라엘은 ‘방어의 칼날(Operation Protective Edge)’ 작전을 개시했다. 팔레스타인 무장 조직 하마스가 이스라엘 십대 소년 3명을 납치 살해한 뒤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 어린이 한 명을 보복 납치살해한 사건 등 여러 차례의 국지 도발에 이어 가자 지구에서 일어난 대규모 전투였다.
요즘 전쟁은 예전과 달리 두 전선에서 치러진다. 하나는 탱크와 대포를 동원하는 지상의 전선이고, 다른 하나는 트윗과 스냅 사진을 동원하는 소셜미디어 전선이다. 더구나 그중에서도 으뜸은 ‘스토리텔링’ 전쟁이다. 이 전쟁에선 각목과 돌멩이가 뼈를 부러뜨리는 동안 ‘스토리’가 전쟁을 승리 또는 패배로 이끌 수 있다.
웹 2.0은 전쟁 2.0의 시발점이다. 십대 소녀가 트위터로 전투를 생중계함으로써 한 국가 전체를 궐기하게 만들 수 있는 세계다. IS가 유프라테스 강에서 배를 탄 젊은이들의 사진으로 감수성 예민한 여성을 유혹해 성전 전사로 전쟁터에 나서도록 만들 수 있는 세상이다.
1만여 개에 이르는 페이스북 피드를 통해 쏟아지는 정보와 가짜뉴스는 양도 어마어마하지만 영향력도 매우 크다. 전통적인 전시 선전은 ‘적대 세력’을 표적으로 삼았지만 요즘 러시아의 크렘린, 우크라이나, 이스라엘 방위군, 팔레스타인의 하마스, IS 등 국가 당국이나 무장조직이 감행하는 소셜미디어 공격은 전 세계를 대상으로 펼쳐진다.
이 영역에선 누구나 전쟁의 행위자가 될 수 있다. 파트리카라코스는 자신의 저서에서 다룬 8명의 주요 인물 중에서 4명이 여성이고 3명이 민간인인 사실이 결코 우연이 아니라고 설명한다. 여성과 어린이 등 역사적으로 전쟁에서 제외된 계층이 이제는 무대의 중앙을 차지하고 이전엔 상상조차 할 수 없었던 방식으로 그 전쟁 무대를 이끌어갈 수 있다.
위계질서가 확실한 전통적인 뉴스 매체의 패권은 거의 사라졌다. 이제 그런 기관은 개인으로 대체됐다. 또 팩트는 ‘스토리’로, 토론은 감정의 표현으로 바뀌었다. 알고리즘이 우리가 무엇을 보고 세계를 어떻게 보는지 결정한다. 소셜미디어는 사적이고 은밀하다. 유혹하고 회피하며 꼬드기고 허위를 믿게 한다. 조작된 영상과 거짓말이 넘쳐난다. 그곳에선 음모론이 번성하며 널리 퍼진다.
파트리카라코스는 이런 변화의 결과가 영향력이 클 뿐 아니라 매우 위험하다고 경고한다. “소셜미디어 시대의 악의를 가진 행위자는 우리 모두가 방송인 또는 모금자 또는 선전원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잘 안다. 호모 디지탈 리스는 최악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무기로 활용된다.”
요즘 같은 탈진실의 세계는 탈진실의 지도자도 만들어냈다고 파트리카라코스는 지적한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부터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까지 이들 새로운 지도자의 목표는 “예전의 정치인처럼 진실을 왜곡하는 게 아니라 객관적인 진실이 존재한다는 개념 자체를 뒤엎는 것이다.” 자신에게 불리한 모든 정보를 두고 트럼프 대통령은 “가짜뉴스!”라고 외친다. 다른 시대 같으면 그런 헛소리는 지금처럼 잘 먹혀들 수 없다.
전쟁과 포퓰리즘, 반세계화 정서의 현 추세를 지켜보는 목격자로서 파트리카라코스는 이렇게 결론짓는다. “중동 전역에서 거의 한 세기만에 겪는 전쟁과 불안의 공습으로 좌절한 사람들과 기회주의적인 선동가들이 전 세계를 불태울 수 있는 가연성 혼합물을 만들어낸다.”
그러나 파트리카라코스는 재앙 예언가는 아니다. 호모 디지탈리스의 어둠은 적어도 부분적으로는 ‘21세기 종군기자’라는 빛에 의해 조금씩 밝아질 수 있다. 소셜미디어라는 도구는 기만만이 아니라 명확한 설명을 위해서도 사용될 수 있다는 뜻이다.
이 책은 저널리즘이 정답은 아니지만 적으도 해법의 작으면서도 중요한 부분이라는 사실을 시의적절하게 상기시킨다.
- 레베카 그리그 뉴스위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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