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영수의 ‘돈이 되는 茶 이야기’] 타이완 민주화 투쟁 아지트 ‘쯔텅루 차관’
[서영수의 ‘돈이 되는 茶 이야기’] 타이완 민주화 투쟁 아지트 ‘쯔텅루 차관’
군부정부 감시 피해 지식인들 모여 … 인문차관이면서 문화살롱 기능도 쯔텅루(紫藤廬)는 타이완 최고의 차관(茶館)이다. 타이완은 2016년부터 한국인이 선호하는 방문지 1위로 자리매김했다. 타이완의 수도 타이베이에 오면 차(茶)를 좋아하지 않는 사람도 들리는 명소가 티 카페, 쯔텅루다. 타이완 최고 인문차관이면서 문화살롱 기능을 하는 쯔텅루는 화려하게 눈에 띄는 간판도 없고 규모와 시설도 뛰어나지 않다. 판매하는 차와 서빙되는 음식도 가성비가 높다고 추천하기 어렵다. 쯔텅루의 자산은 눈과 맛으로 느끼는 물질이 아니다. 보이는 것이 전부가 아닌 무형 자산이 쯔텅루의 진짜 매력이다. 쯔텅루는 일제 식민지 시절 일본총독부 관사로 지어진 건물이다. 보라색 꽃이 우아하게 피어오르는 커다란 등나무 3그루가 정원에 있는 연유로 쯔텅루라는 이름을 갖게 됐다. 창업주 저우위는 1975년 아버지에게 이 건물을 물려받아 주거 용도로 사용하다가 1981년 타이완 최초로 인문차관 개념을 도입해 창업했다. 자연과 인간의 조화로운 재창조를 테마로 음악을 연주하고 무용을 하며 시를 낭독하는 문화공간으로 태어난 쯔텅루는 예전에 볼 수 없었던 차 문화공간이었다. 화가들의 훌륭한 갤러리로서도 일조했지만 쯔텅루의 숨은 가치는 타이완 민주화 투쟁의 아지트 역할에 있다.
쯔텅루가 탄생한 배경에는 1979년 12월 10일 발생한 메이리다오(美麗島) 사건이 있다. 진보 성향의 잡지 메이리다오를 발간하던 집행부가 유엔이 정한 세계 인권선언 기념일에 맞춰 야간 집회 신청을 신청했지만 1949년부터 계엄체제를 유지하던 국민당정부는 불허했다. 민주화를 요구하는 야간 집회는 강행됐다. 경찰과 군이 투입돼 진압 작전에 나서며 시위대와 물리적 충돌이 벌어졌다. 집회를 주도한 메이리다오 잡지사 임원들은 체포돼 군법재판을 받아 징역 12년에서 무기징역을 받았다. 이 사건을 변호하던 변호사였던 천수이볜(陳水扁)은 정계에 입문해 민주진보당 후보로 나서 2000년 타이완 총통으로 당선됐다. 민주진보당은 메이리다오 사건 주동자와 변호인들이 주축이 돼 창당됐다. 현재 타이완 총통인 차이잉원(蔡英文)은 천수이볜과 같은 민주진보당 주석이다.
쯔텅루는 타이완 민주화 역사에 커다란 이정표가 된 메이리다오 사건에 자극받은 지식인들이 군사정부의 감시를 피해 문화행사를 빌미로 비교적 안전하게 만날 수 있었던 연락처인 동시에 피난처였다. 집단 학살은 없었던 메이리다오 사건을 당시 타이완 정부는 ‘가오슝 폭력사건 반란안’이라고 불렀다. 타이완의 아름다움을 노래하는 서정적인 민요 ‘메이리다오’는 한동안 금지곡이 됐다. 타이완판 ‘임을 위한 행진곡’이 된 ‘메이리다오’는 포르투갈 선원들이 타이완을 아름다운 섬 ‘포모사(Formosa)’라고 부르면서 생겨난 이름을 한자로 바꾼 명칭이다. 2016년 5월 20일 차이잉원 총통은 취임식에 국가보다 먼저 ‘메이리다오’를 제창했다.
쯔텅루는 정치 현실을 외면하는 사회 분위기와 정치와 예술을 애써 분리하던 시절에 상실감과 좌절에 빠진 민주인사를 위해 기꺼이 집회장소를 제공한 타이완 민주화 성지다. 타이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여성 언론인 천원첸도 쯔텅루의 단골 멤버였다. 메이리다오 투쟁에 참여했던 쯔텅루 창업주 저우위는 부인 린후이펑과 이혼하며 쯔텅루에 대한 모든 권리를 양도했다. 문화행위를 앞세워 민주화를 도모하던 올드보이들은 “저우위가 없는 쯔텅루는 영혼과 정신은 사라지고 거죽만 남았다”고 안타까움을 토로하기도 했다.
쯔텅루는 타이완 민주화의 산실로 가치를 인정받아 문화 사적지로 지정돼 보호받고 있는 차관이다. 타이완의 차관은 차를 판매하기 위해 시음하는 차좡(茶莊)으로 부르는 차 상점과 차와 식사를 겸하는 찻집이 있다. 최근에는 차와 스낵을 판매하는 디저트 카페가 젊은이에게 인기가 높다. 타이완 사회시대상을 반영하는 차관은 규모와 기능에 따라 다양하게 부른다. 한국에서 한때 유행했던 다방을 차팡(茶房) 또는 차팡(茶坊)이라고 한다. 차쓰(茶肆)와 차쥐(茶居)도 차관을 뜻하며 차팅(茶亭)은 간이찻집에 주로 사용하지만 제일 중요한 기준은 주인장이 이름 붙이기 나름이다.
쯔텅루의 숨은 매력을 잘 알고 있는 타이완 출신 영화감독 리안은 1994년 연출한 영화 [음식남녀]에서 쯔텅루를 세계에 소개했다. ‘식욕과 색욕’을 소재로 가족의 갈등과 화해를 다룬 [음식남녀]는 중국의 고전 [예기(禮記)] 예운(禮運) 편에 나오는 공자의 말로 ‘먹는 것과 남녀 간의 사랑은 사람들이 크게 원하는 일이고 죽는 것과 가난한 고통은 사람들이 크게 싫어하는 일이다(飮食男女 人之大欲存焉, 死亡貧苦人之大惡存焉)’라는 구절에서 빌려왔다. 타이완을 방문하는 국빈들이 즐겨 찾는 그랜드호텔의 수석요리사이지만 점점 미각을 상실해가고 있는 노년의 사내와 요리보다 더 마음대로 안 되는 세 딸의 이야기를 그린 영화 [음식남녀] 속에 나오는 쯔텅루는 비밀스런 만남과 애틋한 이별의 장소로 그려진다.
쯔텅루를 겨울비 나리는 이른 저녁에 찾았다. 도로변 건물 외벽에 문화행사를 알리는 포스터가 게시판에 붙어있었다. 거리에서 얼핏 지나치기 쉬운 쯔텅루 입구는 일본식 목조건물로 들어서는 정원에 야외 테이블과 등나무가 있었다. 물고기가 헤엄치는 앙증맞은 연못이 보이는 1층 실내는 넓은 홀로 테이블과 의자가 배치돼 있었다. 2층과 별채에 있는 다다미를 깐 아담한 방은 예약이 필요하다고 했다. 직접 우려마시는 차와 전통다과가 전문이지만 가벼운 식사도 가능했다. 쯔텅루는 사전정보가 전혀 없이 와도 좋고 쯔텅루가 품고 있는 사연을 알고 오면 더 많은 것을 느낄 수 있는 오래되고 푸근한 동네찻집 분위기였다. 차를 마시며 담소하는 이들의 상당수는 명품 찻집 쯔텅루를 일부러 찾아온 외지인과 외국인이었다. 이방인이지만 ‘이곳에 드디어 왔다’는 무언의 공감대가 눈빛과 표정으로 전해지고 있었다. 일본총독부 관사에서 타이완 민주화 투쟁 기지로 다시 태어난 히스토리는 쯔텅루가 보유한 최대 자산이다.
※ 서영수 - 1956년생으로 1984년에 데뷔한 대한민국 최연소 감독 출신. 미국 시나리오 작가조합 정회원. 1980년 무렵 보이차에 입문해 중국 윈난성 보이차 산지를 탐방하는 등 차 문화에 조예가 깊다. 중국 CCTV의 특집 다큐멘터리 [하늘이 내린 선물 보이차]에 출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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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이리다오 사건에 자극받은 지식인들 피난처
쯔텅루가 탄생한 배경에는 1979년 12월 10일 발생한 메이리다오(美麗島) 사건이 있다. 진보 성향의 잡지 메이리다오를 발간하던 집행부가 유엔이 정한 세계 인권선언 기념일에 맞춰 야간 집회 신청을 신청했지만 1949년부터 계엄체제를 유지하던 국민당정부는 불허했다. 민주화를 요구하는 야간 집회는 강행됐다. 경찰과 군이 투입돼 진압 작전에 나서며 시위대와 물리적 충돌이 벌어졌다. 집회를 주도한 메이리다오 잡지사 임원들은 체포돼 군법재판을 받아 징역 12년에서 무기징역을 받았다. 이 사건을 변호하던 변호사였던 천수이볜(陳水扁)은 정계에 입문해 민주진보당 후보로 나서 2000년 타이완 총통으로 당선됐다. 민주진보당은 메이리다오 사건 주동자와 변호인들이 주축이 돼 창당됐다. 현재 타이완 총통인 차이잉원(蔡英文)은 천수이볜과 같은 민주진보당 주석이다.
쯔텅루는 타이완 민주화 역사에 커다란 이정표가 된 메이리다오 사건에 자극받은 지식인들이 군사정부의 감시를 피해 문화행사를 빌미로 비교적 안전하게 만날 수 있었던 연락처인 동시에 피난처였다. 집단 학살은 없었던 메이리다오 사건을 당시 타이완 정부는 ‘가오슝 폭력사건 반란안’이라고 불렀다. 타이완의 아름다움을 노래하는 서정적인 민요 ‘메이리다오’는 한동안 금지곡이 됐다. 타이완판 ‘임을 위한 행진곡’이 된 ‘메이리다오’는 포르투갈 선원들이 타이완을 아름다운 섬 ‘포모사(Formosa)’라고 부르면서 생겨난 이름을 한자로 바꾼 명칭이다. 2016년 5월 20일 차이잉원 총통은 취임식에 국가보다 먼저 ‘메이리다오’를 제창했다.
쯔텅루는 정치 현실을 외면하는 사회 분위기와 정치와 예술을 애써 분리하던 시절에 상실감과 좌절에 빠진 민주인사를 위해 기꺼이 집회장소를 제공한 타이완 민주화 성지다. 타이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여성 언론인 천원첸도 쯔텅루의 단골 멤버였다. 메이리다오 투쟁에 참여했던 쯔텅루 창업주 저우위는 부인 린후이펑과 이혼하며 쯔텅루에 대한 모든 권리를 양도했다. 문화행위를 앞세워 민주화를 도모하던 올드보이들은 “저우위가 없는 쯔텅루는 영혼과 정신은 사라지고 거죽만 남았다”고 안타까움을 토로하기도 했다.
쯔텅루는 타이완 민주화의 산실로 가치를 인정받아 문화 사적지로 지정돼 보호받고 있는 차관이다. 타이완의 차관은 차를 판매하기 위해 시음하는 차좡(茶莊)으로 부르는 차 상점과 차와 식사를 겸하는 찻집이 있다. 최근에는 차와 스낵을 판매하는 디저트 카페가 젊은이에게 인기가 높다. 타이완 사회시대상을 반영하는 차관은 규모와 기능에 따라 다양하게 부른다. 한국에서 한때 유행했던 다방을 차팡(茶房) 또는 차팡(茶坊)이라고 한다. 차쓰(茶肆)와 차쥐(茶居)도 차관을 뜻하며 차팅(茶亭)은 간이찻집에 주로 사용하지만 제일 중요한 기준은 주인장이 이름 붙이기 나름이다.
쯔텅루의 숨은 매력을 잘 알고 있는 타이완 출신 영화감독 리안은 1994년 연출한 영화 [음식남녀]에서 쯔텅루를 세계에 소개했다. ‘식욕과 색욕’을 소재로 가족의 갈등과 화해를 다룬 [음식남녀]는 중국의 고전 [예기(禮記)] 예운(禮運) 편에 나오는 공자의 말로 ‘먹는 것과 남녀 간의 사랑은 사람들이 크게 원하는 일이고 죽는 것과 가난한 고통은 사람들이 크게 싫어하는 일이다(飮食男女 人之大欲存焉, 死亡貧苦人之大惡存焉)’라는 구절에서 빌려왔다. 타이완을 방문하는 국빈들이 즐겨 찾는 그랜드호텔의 수석요리사이지만 점점 미각을 상실해가고 있는 노년의 사내와 요리보다 더 마음대로 안 되는 세 딸의 이야기를 그린 영화 [음식남녀] 속에 나오는 쯔텅루는 비밀스런 만남과 애틋한 이별의 장소로 그려진다.
쯔텅루를 겨울비 나리는 이른 저녁에 찾았다. 도로변 건물 외벽에 문화행사를 알리는 포스터가 게시판에 붙어있었다. 거리에서 얼핏 지나치기 쉬운 쯔텅루 입구는 일본식 목조건물로 들어서는 정원에 야외 테이블과 등나무가 있었다. 물고기가 헤엄치는 앙증맞은 연못이 보이는 1층 실내는 넓은 홀로 테이블과 의자가 배치돼 있었다. 2층과 별채에 있는 다다미를 깐 아담한 방은 예약이 필요하다고 했다. 직접 우려마시는 차와 전통다과가 전문이지만 가벼운 식사도 가능했다.
가벼운 식사도 가능
※ 서영수 - 1956년생으로 1984년에 데뷔한 대한민국 최연소 감독 출신. 미국 시나리오 작가조합 정회원. 1980년 무렵 보이차에 입문해 중국 윈난성 보이차 산지를 탐방하는 등 차 문화에 조예가 깊다. 중국 CCTV의 특집 다큐멘터리 [하늘이 내린 선물 보이차]에 출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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