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그 경제는 자유 위장한 착취
기그 경제는 자유 위장한 착취
우버와 리프트 같은 수십억 대 매출 올리는 대기업이 최저 소득자에게 사업 위험 떠넘기는 수단이다 최근 수십 년 사이 영국의 노사관계 용어에 큰 변화가 생겼다. 기업들은 더 이상 직원을 감원하지 않는다. 대신 ‘규모축소(downsize)’하거나 ‘구조조정(reorganize)’한다. 일부 기업에선 직원을 ‘동료(associates)’로 부른다. 잠재적으로 사용자와 노동자 간의 적대적 소지가 있는 관계를 의도적으로 모호하게 만들려는 시도인 듯하다. ‘자유’와 ‘자율’은 통상적으로 고용관계법의 부재를 의미한다.
이른바 ‘기그(gig, 일거리 중심의 일시적 계약근로)’ 경제에는 이런 용어가 넘쳐난다. 실리콘밸리 기반 ‘와해성 혁신가들(disrupters)’의 아이디어인 앱 기반 기그 근로가 서방 경제환경의 기본 요소로 급속히 자리 잡아간다. 현재 영국에선 기그 경제 종사자가 100만 명을 넘는다. 그리고 그들에게 주어진 일자리 중 다수가 불안정하고 보수가 형편없다. 잉글랜드 은행의 수석 경제전문가는 자영업이 일반적이고 노조가 없던 산업혁명 이전 시절로 영국이 복귀할 수 있다고 시사하기도 했다.
이를 염두에 두고 영국 정부는 지난해 옛 토니 블레어 정부의 고문을 지낸 매튜 테일러 팀에게 저임 근로에 대한 검토를 의뢰했다. 테리사 메이 정부는 ‘낙오(left behind)’ 계급에 어필하면서 브렉시트 이후 근로계층의 삶에 어려움을 안겨주는 핵심적 요인 중 하나인 악덕 고용주에게 강력히 대처하는 모습을 유권자에게 보여주고자 했던 모양이다.
그러나 보고서는 실망스러웠다. 물론 근로자들이 “권리를 제대로 존중 받지 못한다”는 뻔한 지적도 있었다. 하지만 보고서의 권고안이 채택됐다면 새로 제안된 ‘의존적 계약근로자(dependent contractor)’ 고용항목으로 근로 환경이 오히려 더 악화됐을지도 모른다. 이 정책은 소송에서 승리한 사람들에게서 최저임금 보장 받을 권리를 다시 빼앗는 새로운 장애물이 됐을 것이다.
때마침 공교롭게도 저임금 착취노동(sweated labor)의 인적 피해가 언론에서 화제가 됐다. 지난 2월 초 택배 업체 DPD의 운전기사 돈 레인이 당뇨 치료를 위해 병원에 다녀온 일로 회사로부터 벌금을 부과 받은 직후 사망했다. 미망인은 남편이 업무 대타를 찾지 못할 경우 DPD로부터 하루 150파운드(약 23만원)의 벌금을 맞을 수 있다고 걱정하며 몇 차례 병원 예약을 펑크 냈다고 가디언 신문에 말했다.
문제는 이런 관행이 불법이 아니라는 데 있다. DPD는 다수의 다른 업체들과 함께 운전기사 다수를 ‘가맹자(franchisees)’로 처우한다. 병가와 유급휴가 같은 복지후생의 수혜 자격이 없다는 의미다. 병으로 하루 결근하면 약 200파운드(약 30만원)의 임금을 못 받을 뿐 아니라 그에 따른 벌금까지 더해진다.
테일러 리뷰의 권고안에 따라 정부는 몇 가지 환영할 만한 제안을 했다. 모든 근로자에게 급여명세서를 제공하도록 의무화하고 제로아워 계약(zero hours contracts, 정해진 근무시간 없이 일한 만큼 시급을 받는 노동 계약) 근로자에게 상근직을 요구할 권리를 부여할 계획이다.무엇보다도 정부는 기존 유급휴가와 병가 수당이 지급되도록 하겠다고 약속했다. 하지만 어떤 방법으로 할지는 밝히지 않았다. 그리고 기그 고용주에게 자영업자로 잘못 분류된 사람들에게도 그런 규정을 적용할지도 시사하지 않았다. 민원 상담기구 시티즌스 어드바이스의 조사에선 이런 식으로 자영업자로 잘못 분류된 사람이 영국 내 무려 46만 명에 달할 수 있다.
현재로선 고용주가 근로자를 부정확하게 분류해도 거의 불이익을 받지 않는다. 그리고 최저임금에 관한 한 정부의 단속 기록을 놓고 보면 악덕 고용주가 테일러 리뷰를 두려워할 이유가 거의 없다. 노동시장감독 책임자인 데이비드 멧카프 국장은 지난해 노동연금부(DWP)의 한 위원회에서 평균적인 기업에 대한 최저임금 지급 불이행 조사는 “500년에 한 번”꼴로 실시된다고 보면 된다고 말했다. 이는 “그것을 지킬 만한 인센티브가 거의 없다는 의미”라고 덧붙였다.
나는 근간 예정인 저서 ‘취업(Hired)’의 자료 조사를 위해 몇 달 동안 우버 기사로 일했다. 그 경험에서 가장 놀라웠던 사실은 우버 ‘운동’이 만들어낸 궤변과 궁핍한 현실 간의 괴리였다. ‘자영업자 사장’이 누린다는 온갖 자율과 자유에도 불구하고 하루 중 특정 시간대의 일에서만 이익이 생겼으며 우버는 우리에게 앱을 통해 받은 일거리를 “골라 선택할” 수 없다고 분명하게 선을 그었다. 우버는 우리가 손님을 태울 때마다 무려 25%의 수수료를 떼어갔으며 고객으로부터 받는 평가가 나쁘면 앱 이용이 ‘금지’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이런 이른바 신축적인 근로를 위해 우리는 근로자의 권리 대부분을 포기했다.
물론 많은 평론가는 기그 경제에서의 생활이 그렇게 힘들다면 왜 그냥 그만두고 다른 일을 하지 않는지 의문을 제기한다. 그러나 자유시장의 마법적인 속성에 관해 이상론을 늘어놓기 전에 많은 사람이 처한 환경을 돌아볼 필요가 있다. 우버의 데이터를 보면 런던의 우버 운전기사 중 약 3분의 1은 실업률 10% 이상인 지역 출신이다.
마찬가지로 런던 이외 지역에서 보수 좋은 육체노동이 최근 수십 년 사이 콜센터와 물류창고의 열악한 일자리로 대체됐다. 대부분 불안정한 임시직이다. BBC 방송 보도에 따르면 일부 지역에선 지난 10년 사이 풀타임 일자리가 현저히 감소했다.
이 모두가 근로자에게 이중고를 안겨준다. 금융규제의 부재로 발동이 걸린 2008년 금융위기는 금융 시스템 붕괴의 책임을 정부에 돌리려는 지식인들의 가차없는 공격을 촉발했다. 이어진 기그 경제의 부상도 어렵게 획득한 근로자 복지혜택에 그에 못지 않은 타격을 줬다. 직원을 고용하기보다 독립 계약근로자에 의존하면 기업의 직접 운영비를 최대 25%까지 낮출 수 있는 것으로 추산됐다.
이는 거액의 매출을 올리는 대기업들이 말하자면 일부 최저 소득자에게 사업 위험을 떠넘긴다는 의미다. 자율의 가면을 쓴 착취다. 최신 유행의 완곡어법으로 정성스럽게 포장한 새로운 형태의 속박이다. 정부의 무기력한 대응은 다른 많은 사안에 대한 접근방식과 같은 특징을 갖고 있다. 기득권층을 뒤흔들 의사가 없기 때문에 공허한 사탕발림 외에는 근로자에게 제시할 게 거의 없다는 점이다.
- 제임스 블러드워스
※ [필자는 영국 유수의 정치 블로그 ‘레프트 풋 포워드(Left Foot Forward)’의 전 편집장으로 ‘능력사회 신화(The Myth of Meritocracy)’의 저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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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른바 ‘기그(gig, 일거리 중심의 일시적 계약근로)’ 경제에는 이런 용어가 넘쳐난다. 실리콘밸리 기반 ‘와해성 혁신가들(disrupters)’의 아이디어인 앱 기반 기그 근로가 서방 경제환경의 기본 요소로 급속히 자리 잡아간다. 현재 영국에선 기그 경제 종사자가 100만 명을 넘는다. 그리고 그들에게 주어진 일자리 중 다수가 불안정하고 보수가 형편없다. 잉글랜드 은행의 수석 경제전문가는 자영업이 일반적이고 노조가 없던 산업혁명 이전 시절로 영국이 복귀할 수 있다고 시사하기도 했다.
이를 염두에 두고 영국 정부는 지난해 옛 토니 블레어 정부의 고문을 지낸 매튜 테일러 팀에게 저임 근로에 대한 검토를 의뢰했다. 테리사 메이 정부는 ‘낙오(left behind)’ 계급에 어필하면서 브렉시트 이후 근로계층의 삶에 어려움을 안겨주는 핵심적 요인 중 하나인 악덕 고용주에게 강력히 대처하는 모습을 유권자에게 보여주고자 했던 모양이다.
그러나 보고서는 실망스러웠다. 물론 근로자들이 “권리를 제대로 존중 받지 못한다”는 뻔한 지적도 있었다. 하지만 보고서의 권고안이 채택됐다면 새로 제안된 ‘의존적 계약근로자(dependent contractor)’ 고용항목으로 근로 환경이 오히려 더 악화됐을지도 모른다. 이 정책은 소송에서 승리한 사람들에게서 최저임금 보장 받을 권리를 다시 빼앗는 새로운 장애물이 됐을 것이다.
때마침 공교롭게도 저임금 착취노동(sweated labor)의 인적 피해가 언론에서 화제가 됐다. 지난 2월 초 택배 업체 DPD의 운전기사 돈 레인이 당뇨 치료를 위해 병원에 다녀온 일로 회사로부터 벌금을 부과 받은 직후 사망했다. 미망인은 남편이 업무 대타를 찾지 못할 경우 DPD로부터 하루 150파운드(약 23만원)의 벌금을 맞을 수 있다고 걱정하며 몇 차례 병원 예약을 펑크 냈다고 가디언 신문에 말했다.
문제는 이런 관행이 불법이 아니라는 데 있다. DPD는 다수의 다른 업체들과 함께 운전기사 다수를 ‘가맹자(franchisees)’로 처우한다. 병가와 유급휴가 같은 복지후생의 수혜 자격이 없다는 의미다. 병으로 하루 결근하면 약 200파운드(약 30만원)의 임금을 못 받을 뿐 아니라 그에 따른 벌금까지 더해진다.
테일러 리뷰의 권고안에 따라 정부는 몇 가지 환영할 만한 제안을 했다. 모든 근로자에게 급여명세서를 제공하도록 의무화하고 제로아워 계약(zero hours contracts, 정해진 근무시간 없이 일한 만큼 시급을 받는 노동 계약) 근로자에게 상근직을 요구할 권리를 부여할 계획이다.무엇보다도 정부는 기존 유급휴가와 병가 수당이 지급되도록 하겠다고 약속했다. 하지만 어떤 방법으로 할지는 밝히지 않았다. 그리고 기그 고용주에게 자영업자로 잘못 분류된 사람들에게도 그런 규정을 적용할지도 시사하지 않았다. 민원 상담기구 시티즌스 어드바이스의 조사에선 이런 식으로 자영업자로 잘못 분류된 사람이 영국 내 무려 46만 명에 달할 수 있다.
현재로선 고용주가 근로자를 부정확하게 분류해도 거의 불이익을 받지 않는다. 그리고 최저임금에 관한 한 정부의 단속 기록을 놓고 보면 악덕 고용주가 테일러 리뷰를 두려워할 이유가 거의 없다. 노동시장감독 책임자인 데이비드 멧카프 국장은 지난해 노동연금부(DWP)의 한 위원회에서 평균적인 기업에 대한 최저임금 지급 불이행 조사는 “500년에 한 번”꼴로 실시된다고 보면 된다고 말했다. 이는 “그것을 지킬 만한 인센티브가 거의 없다는 의미”라고 덧붙였다.
나는 근간 예정인 저서 ‘취업(Hired)’의 자료 조사를 위해 몇 달 동안 우버 기사로 일했다. 그 경험에서 가장 놀라웠던 사실은 우버 ‘운동’이 만들어낸 궤변과 궁핍한 현실 간의 괴리였다. ‘자영업자 사장’이 누린다는 온갖 자율과 자유에도 불구하고 하루 중 특정 시간대의 일에서만 이익이 생겼으며 우버는 우리에게 앱을 통해 받은 일거리를 “골라 선택할” 수 없다고 분명하게 선을 그었다. 우버는 우리가 손님을 태울 때마다 무려 25%의 수수료를 떼어갔으며 고객으로부터 받는 평가가 나쁘면 앱 이용이 ‘금지’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이런 이른바 신축적인 근로를 위해 우리는 근로자의 권리 대부분을 포기했다.
물론 많은 평론가는 기그 경제에서의 생활이 그렇게 힘들다면 왜 그냥 그만두고 다른 일을 하지 않는지 의문을 제기한다. 그러나 자유시장의 마법적인 속성에 관해 이상론을 늘어놓기 전에 많은 사람이 처한 환경을 돌아볼 필요가 있다. 우버의 데이터를 보면 런던의 우버 운전기사 중 약 3분의 1은 실업률 10% 이상인 지역 출신이다.
마찬가지로 런던 이외 지역에서 보수 좋은 육체노동이 최근 수십 년 사이 콜센터와 물류창고의 열악한 일자리로 대체됐다. 대부분 불안정한 임시직이다. BBC 방송 보도에 따르면 일부 지역에선 지난 10년 사이 풀타임 일자리가 현저히 감소했다.
이 모두가 근로자에게 이중고를 안겨준다. 금융규제의 부재로 발동이 걸린 2008년 금융위기는 금융 시스템 붕괴의 책임을 정부에 돌리려는 지식인들의 가차없는 공격을 촉발했다. 이어진 기그 경제의 부상도 어렵게 획득한 근로자 복지혜택에 그에 못지 않은 타격을 줬다. 직원을 고용하기보다 독립 계약근로자에 의존하면 기업의 직접 운영비를 최대 25%까지 낮출 수 있는 것으로 추산됐다.
이는 거액의 매출을 올리는 대기업들이 말하자면 일부 최저 소득자에게 사업 위험을 떠넘긴다는 의미다. 자율의 가면을 쓴 착취다. 최신 유행의 완곡어법으로 정성스럽게 포장한 새로운 형태의 속박이다. 정부의 무기력한 대응은 다른 많은 사안에 대한 접근방식과 같은 특징을 갖고 있다. 기득권층을 뒤흔들 의사가 없기 때문에 공허한 사탕발림 외에는 근로자에게 제시할 게 거의 없다는 점이다.
- 제임스 블러드워스
※ [필자는 영국 유수의 정치 블로그 ‘레프트 풋 포워드(Left Foot Forward)’의 전 편집장으로 ‘능력사회 신화(The Myth of Meritocracy)’의 저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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