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란 핵합의 탈퇴의 파장] 美·이스라엘·이란의 내부 정치가 중동의 안보 지각에 균열 일으켜
[이란 핵합의 탈퇴의 파장] 美·이스라엘·이란의 내부 정치가 중동의 안보 지각에 균열 일으켜
이란 핵합의 탈퇴로 이스라엘·이란의 강경파 입지 강화…군사충돌로 이어져 긴장 고조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2015년 이란 핵합의’ 탈퇴를 발표하면서 중동 안보 지각에 균열이 생기고 있다. 트럼프의 이란 핵합의 탈퇴 발표가 나오자마자 서로 숙적인 이스라엘과 이란이 무력 충돌을 벌였다. 두 나라는 국경을 맞대고 있지는 않다. 하지만 시리아에 주둔하고 있는 이란 혁명수비대는 이스라엘군과 시리아가 경계를 맞대고 있는 점령지 골란고원에서 이스라엘과 군사적 공방을 주고받았다. 이란 혁명수비대는 이란의 최고 종교지도자인 라흐바르가 통제하는 군부대로 혁명 수호를 목적으로 한다. 이란은 이슬람 시아파 최고지도자인 라흐바르가 선거로 뽑힌 대통령과 의회와 군 등을 통제할 수 있는 권한이 있는 신정국가다. 혁명수비대는 이란 종교세력이 직접 거느린 친위 부대인 셈이다. 이스라엘과 이란은 시리아 내전을 놓고 으르렁거려왔으나 미국의 이란 핵합의 탈퇴 이후 직접적·노골적으로 서로 공격에 나섰다. 특히 이스라엘군은 5월 10일 시리아 내 이란 혁명 수비대 측 무기고와 병참기지, 정보 시설 등을 대대적으로 공습했다고 미국의 소리(VOA) 방송이 보도했다. CNN에 따르면 이번 공격에는 시리아에 있는 것으로 확인되거나 알려진 대부분의 이란 혁명수비대 군사 인프라가 포함됐다. 이에 따라 이번 공격이 1973년 이스라엘과 아랍권 사이의 욤키루프 전쟁(제4차 중동전쟁) 이후 이스라엘의 최대 외부 공격이라는 평가가 나오고 있다.
골란고원은 원래 시리아 영토로 1967년 이스라엘과 아랍권 사이의 6일전쟁(제3차 중동전쟁) 당시 이스라엘이 점령해 지금까지 계속 차지하고 있다. 6일전쟁 당시 이스라엘이 점령했던 이집트의 시나이 반도는 1979년 양국이 평화협정을 체결하고 외교관계를 맺으면서 1982년까지 순차적으로 이집트에 반환됐다. 하지만 시리아는 이스라엘과 대화는 물론 접촉도 거부해 골란고원 반환 협상은 시작도 못한 상태다.
골란고원의 군사적 대치는 중동 전역의 안정과 세력 균형을 흔들 수 있는 불길한 조짐으로 볼 수 있다. 이 직전 벌어졌던 트럼프의 이란 핵합의 탈퇴가 이란을 흔들었다. 정상국가로 국제사회에 복귀해 안정적인 사회를 유지하려는 개혁파 하산 로하니 이란 대통령의 꿈을 물거품으로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결국 트럼프의 이란 핵합의 탈퇴는 이란에서 강경파인 종교지도자들의 발언권만 강화해줄 수 있다는 우려가 있었는데 이런 우려가 즉각 현실로 나타난 셈이다. 미국이 이란 핵합의에서 탈퇴했다는 것을 명분으로 이란 강경파들이 미국이 비호하고 있는 이스라엘에 대한 직접 공격을 시작한 것으로 해석할 수 있기 때문이다.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도 숙적 이란이 정상국가로 이행해 경제 발전의 기회를 얻는 것을 근본적으로 차단하려는 전략적인 의도가 있는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그 뒤에는 이스라엘의 보수적 분위기를 계속 유지해 정권을 지키려는 국내 정치적인 의도도 있음을 무시할 수 없다. 결국 미국과 이란, 이스라엘의 내부 정치는 중동 정세라는 몸통을 뒤흔드는 꼬리일 수 있다. 가장 문제는 미국이다. 미국 내부정치의 최고 문제는 트럼프 대통령 자신이다. 앞서 5월 8일 트럼프 대통령은 백악관 회견에서 “이란 핵합의는 일방적이고 재앙적이며 끔찍한 협상이므로 애초에 체결되지 않았어야 했다”라며 탈퇴를 선언했다. 이로써 애초 3월 12일 종료 예정이던 대이란 제재 유예는 더 이상 연장되지 않게 됐다. 미국은 2015년 5월 의회를 통과한 ‘이란 핵 합의 검증법(INARA)’으로 합의를 관리해왔다. 이 법에 따르면 미 대통령은 90일마다 이란의 협정 준수를 평가해야 하며 만일 이란이 합의를 지키지 않는다고 판단하면 의회가 이런 판단 이후 60일 안에 이란 제재를 복원할 수 있다. 미 대통령은 120일마다 핵합의에 따른 대이란 제재 유예의 연장 여부를 결정한다. 이에 따라 앞으로 미국의 대이란 금융·경제 제재는 유예기간만 지나면 전면적으로 다시 실시될 전망이다.
이란 핵합의는 핵개발 의혹을 받아왔던 이란이 핵개발 프로그램을 폐기하고 핵 활동을 제한하며 이를 검증하기 위한 국제사회의 감시를 받기로 한 대가로 미국과 유럽연합(EU)의 경제 제재를 차례로 완화하기로 한 합의다. 2015년 7월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상임이사국인 미국·영국·프랑스·러시아·중국에 독일을 더한 6개국이 이란과 합의해 2016년 1월 발효된 것으로 공식명칭은 ‘포괄적 공동행동계획(JCPOA)’이다. 반대파의 의회 장악 등 각각 복잡한 국내 사정이 있던 미국 등 협정 당사국들은 이 합의를 의회 비준이 필요한 국제 협정 대신 공동행동계획으로 만들면서 의회의 반대를 비롯한 국내 정치 논란을 피해갔다. 미국의 경우 의회가 법으로 이 합의를 통제해왔다. 대통령이 90일마다 이란이 핵합의를 준수하는지 여부를 확인하고 120일마다 제재 유예를 갱신해왔던 이유다.
하지만 트럼프 대통령은 2017년 10월 13일 기존의 이란 핵합의에 3가지를 더 요구했다. 이란에 대한 모든 제재를 2025년 10월 18일 이후 해제한다는 조항의 삭제, 기존 합의에 없었던 탄도미사일 규제 신설, 기존에 미국이 지목한 핵의혹 시설만 국제원자력기구(IAEA)가 사찰하는 대신 이란 전역을 즉각 사찰할 수 있도록 허용하라는 내용이다. 전임 버락 오바마 정권이 합의할 때부터 반발했던 트럼프는 취임하자마자 새로운 조건을 내걸고 어렵사리 이뤘던 국제합의를 부정해왔다.
여기에 이란의 숙적인 이스라엘의 네타냐후 총리까지 나서서 트럼프의 옆구리를 찔렀다. 네타냐후 총리는 4월 30일 직접 프레젠테이션까지 하며 이란이 핵합의 이후에도 이를 무시하고 10㏏급 핵탄두 5개를 생산하는 핵개발 프로그램을 비밀리에 가동해왔다고 주장했다. 네타냐후는 이 프레젠테이션에서 ‘프로젝트 아마드’라는 이름의 비밀 핵개발 프로그램의 내용이 담긴 문서를 이란 수도 테헤란의 비밀 저장소에서 입수했다고 주장했다. 실제로 트럼프는 협정 탈퇴를 발표하는 날에도 “이란이 핵 프로그램에 대해 거짓말을 했다는 명백한 증거가 있다”라며 “이 합의로는 이란 핵폭탄을 막을 수가 없다”라고 주장했다. 트럼프를 비롯한 미국 보수 진영의 이란 핵합의, 나아가 이란 자체에 대한 불신을 드러낸 셈이다.
트럼프의 국제 협약이나 합의의 일방적인 파기는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이미 전임 오바마 대통령이 서명했거나 심지어 주도했던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과 파리기후협약도 잇따라 폐기했다. 지난해 5월 25일 벨기에 브뤼셀에서 열렸던 나토(북태평양조약기구) 28개 회원국 정상회의에서는 “한 나라에 대한 군사 공격은 회원국 전체에 대한 침공으로 간주해 즉각 개별 회원국 또는 집단으로 대응한다”는 나토 헌장 5조를 언급하지 않아 문제가 됐다. 제2차 세계대전 종전 직후인 1949년 서유럽의 안보를 위해 나토를 창설한 이후 당시 해리 트루먼 대통령을 비롯한 역대 모든 미국 대통령은 나토 헌장 5조를 준수하겠다는 명시적 약속을 해왔다. 이를 언급하지 않은 것은 나토 창설 이후 트럼프가 처음이다. 트럼프는 이날 집단방위 의무를 입에 올리지 않은 대신 정상회의에 앞서 열린 신청사 개막식 연설에서 “미국은 우리 편에 선 친구들을 절대 저버리지 않을 것”이라고 말한 것이 고작이다.
대신 트럼프는 나토 회원국 정상들을 향해 국내총생산(GDP)의 2% 수준으로 국방비 지출을 늘리기로 한 약속을 지키지 않는다고 비난했다. 그는 “28개 회원국 중 23개국이 여전히 약속했던 수준의 방위비를 지불하지 않고 있다”라며 “이는 미 국민과 납세자에게 불공정한 일이며, 이들 나라는 과거 수년에 걸쳐 (미국에) 엄청난 빚을 지고 있다”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결국 비공개회의에서 나토 회원국 정상들은 2024년까지 7년 동안 GDP 2% 수준까지 국방비를 증액하기로 약속했지만 ‘미국 우선주의’를 강조해온 트럼프는 결국 나토 헌장 5조를 언급하지 않고 정상회의를 마쳤다.
동맹국에 대한 집단방위 약속을 언급하지 않으면 동맹 결속에 균열에 오게 마련이다. 미국의 강력한 동맹인 독일의 앙겔라 메르켈 총리는 그 직후인 지난해 5월 28일 독일 뮌헨의 한 선거 유세에서 “우리가 다른 나라들에 전적으로 의존하던 시대는 어느 정도 지나갔다. 이는 최근 며칠 간의 경험에서 나온 얘기”라고 트럼프를 에둘러 비판했다. 메르켈 총리는 “우리 유럽인들은 운명을 스스로의 손으로 만들어가야 한다”라고도 강조했다.
이렇듯 트럼프의 이란 핵합의 탈퇴와 네타냐후의 이란 핵개발 정보 확보 주장, 그리고 이란 혁명수비대의 골란고원 이스라엘 초소 공격은 국제정치의 냉혹함 이상을 보여준다. 국내 정치가 어떻게 국제 정치에 개입하고 있는지를 잘 보여주기도 한다. 트럼프의 핵합의 탈퇴는 미국 공화당 강경파와 친이스라엘계 또는 유대계 정치세력의 눈치를 본 것이라는 분석이다. 일본 아사히 신문은 트럼프가 개신교 보수 강경파인 복음파의 눈치를 본 것이라는 해석도 내놓았다. 트럼프는 중간선거에서 승리하고 나아가 재선 입지를 다지기 위해 집토끼 격인 이들 다양한 보수 강경파의 눈치를 볼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다.
이란도 국내 사정이 복잡하다. 1979년 이후 확립된 종교계 우위의 신정체제에 대해 국민이 피로감을 표시하고 있기 때문이다. 국민이 직접 뽑은 대통령과 의회 위에 군림하는 종교 세력이 21세기 청년들의 눈에 좋게 보일 리가 없다. 더구나 종교세력은 혁명수비대를 움직여 중동 전역에 혁명을 수출하고 지역 패권을 확보하는 데 많은 예산을 쓰고 있다. 이란은 유전지대인 페르시아만과 중동의 지역 패권을 놓고 사우디아라비아와 각축전을 벌여왔다. 이란의 개입은 중동의 이슬람 시아파 세력권을 가리키는 지정학적 개념인 ‘시아파 초승달 지대’를 지역 패권 격돌장으로 만들었다. ‘시아파 초승달 지대’는 페르시아만의 바레인(시아파 인구 65%)에서 시작해 그 북쪽으로 이란(90~94%), 그 서쪽으로 이라크(65%)와 지중해 연안의 시리아(16%이나 정부군이 시아파의 분파인 알라위트(11%)가 주축)를 거쳐 레바논(27%)까지 이르는 지역이다. 아라비아 반도 서남부 예멘을 포함할 수도 있다. 이란은 자국에서 서쪽으로 이라크-시리아-레바논까지 시아파 세력권을 지리적으로 연결해 지중해쪽 출구를 확보하려는 야심이 있다. 이를 통해 지역 패권국가로 성장할 지정학적인 바탕을 마련할 수 있다. ‘시아파 초승달 지대’를 장악하려는 야심이 꿈틀거리게 된 가장 큰 배경은 아이러니컬하게도 2003년 미국의 이라크 침공이다. 미국은 사담 후세인 정권을 무너뜨리고 민주선거를 통해 새 정부를 구성하려고 시도했지만 결과는 친이란 시아파의 집권이었다. 이라크 인구는 시아파 64.5%, 수니파 31.55%로 구성됐는데 수니파인 후세인을 몰아내고 민주선거를 실시하자 인구가 다수인 시아파가 권력을 장악한 것이다.
사우디는 2014년 9월부터 814km 길이의 이라크 국경을 따라 방호 장벽을 쌓고 있다. 5중 차단벽을 설치한 첨단 시설이다. 3만 명 규모의 국경 경비대가 배치돼 감시시설에서 근무하게 된다. 20km마다 감시 레이더를 설치하고 벽에 감지 센서까지 부착해 외부인의 침입을 통제한다. 공중에는 정찰기와 무인감시기가 상시 정찰활동을 편다. 이란은 시리아 내전에서는 시아파의 분파인 알라위트파인 바샤르 알아사드 대통령 정권을 지원 중이다. 사우디는 이에 맞서 알아사드 정권에 대항하는 수니파 반군을 돕고 있다.
하지만 종교세력의 의도와 달리 실업과 생활고에 시달리는 이란 국민은 이런 지출에 퉁명스러운 반응이다. 지난해 12월 28일부터 1월 중순까지 이란에서 전국적인 시위가 벌어진 것도 이러한 상황 때문으로 볼 수 있다. 시위대는 처음에는 실업, 물가 폭등과 같은 정부의 경제 정책 실패를 규탄하는 시위를 벌였다. 하지만 진압이 과격해지면서 시위대는 최고지도자와 기득권을 쥔 종교세력, 신정체제를 반대하는 주장을 펴기 시작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이란 신정체제의 권력을 움켜쥔 종교세력과 혁명수비대가 국민의 살림살이를 돌보는 대신 혁명 이념과 이슬람 시아파의 패권을 위해 해외 분쟁에 개입해 매년 수십억 달러를 펑펑 쓰는 현실에 불만을 터뜨렸다. 이란에선 이미 2009년 대선에 불만을 품은 젊은이들은 거리에서 시위를 벌이며 ‘부정선거’라고 항의했다. 이들은 그해 11월 옛 미 대사관 앞에서 열린 미 대사관 점거 인질사건 기념행사에서 ‘미국에게 죽음을’이라는 전통적인 구호를 외치는 사이에서 ‘독재자에게 죽음을’이라는 구호를 외쳤다.
중동 최악의 시나리오는 사우디와 이란이 대리전을 넘어 직접적인 충돌로 가는 것이다. 이럴 경우 사우디와 이스라엘의 접근이 가속화되는 엄청난 패러다임 전환이 이뤄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중동 전체가 뒤흔들리는 엄청난 이합집산, 합종연횡이 벌어질 수도 있다. 이럴 경우 세력 균형이 이뤄지면 다행이지만 행여 군사충돌이라도 발생하면 세계 경제가 출렁거리는 악몽의 시나리오가 가동될 가능성도 있다.
사우디와 이란은 이스라엘과 이란 만큼 오랫동안 서로 숙적이었다. 1979년 1~2월 이란에서 발생한 이슬람 혁명이 기원이다. 이 혁명으로 팔라비 왕정이 전복되고 아야톨라 호메이니를 앞세운 이슬람 정부가 수립됐다. 국민이 선출한 대통령과 의회가 국정을 이끌지만, 시아파 고위 성직자들이 국정과 입법을 감독하며 군을 통솔하는 권한을 갖는 ‘신정’과 ‘세속’의 하이브리드 체제다. 반왕정 민주화 세력과 종교세력이 타협한 결과다. 사우디는 이란에서 군주제가 몰락하는 것을 보고 충격을 받았을 것이다. 사우디 왕실이 혁명 후 이슬람 혁명 물결 파급과 시아파 세력 확대를 끊임없이 경계해온 이유다.
사실 사우디와 이란은 1979년 이란의 이슬람 혁명 이후 끊임없이 대립하며 중동 각지에서 대리전을 벌여왔다. 이란 세력이 확산하면 이슬람 혁명이 파급돼 군주제의 위상이 흔들리는 상황을 우려할 수밖에 없다. 아랍에미리트·쿠웨이트·바레인·카타르의 왕실은 오랫동안 공동운명체로서 손잡아왔다. 이란의 이슬람 혁명은 사우디의 보수화에 한몫했다. 결정적인 계기는 1979년 11~12월 이슬람 극단주의자들이 이슬람 성지 메카의 대모스크(미스지드 알하람) 점거사건이다. 자신을 마흐디(구세주)라고 주장하는 이슬람 극단주의자 무함마드 알카흐타니가 무장한 추종 세력을 이끌고 대모스크를 점거한 채 사우디 왕정 타도를 외쳤다. 배후에 왕정에 불만을 가진 울레마(이슬람 율법학자)들이 있는 것으로 추정됐다. 때를 맞춰 사우디 동부의 아라비아만(이란에선 페르시아만으로 부름) 연안 유전지대의 카티프에서 시아파 주민들이 봉기해 민주화를 요구하며 대규모 시위를 벌였다.
미국과 이란, 이스라엘을 넘어 사우디까지 내부 정치가 개입돼 중동 정세를 흔들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그럴 경우 국제경제의 앞날은 걷잡을 수 없는 혼돈으로 빠지는 최악의 상황으로 갈 수도 있다. 이를 막기 위한 국제사회의 지혜와 리더십이 절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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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란고원에서 이스라엘·이란 무력충돌
골란고원은 원래 시리아 영토로 1967년 이스라엘과 아랍권 사이의 6일전쟁(제3차 중동전쟁) 당시 이스라엘이 점령해 지금까지 계속 차지하고 있다. 6일전쟁 당시 이스라엘이 점령했던 이집트의 시나이 반도는 1979년 양국이 평화협정을 체결하고 외교관계를 맺으면서 1982년까지 순차적으로 이집트에 반환됐다. 하지만 시리아는 이스라엘과 대화는 물론 접촉도 거부해 골란고원 반환 협상은 시작도 못한 상태다.
골란고원의 군사적 대치는 중동 전역의 안정과 세력 균형을 흔들 수 있는 불길한 조짐으로 볼 수 있다. 이 직전 벌어졌던 트럼프의 이란 핵합의 탈퇴가 이란을 흔들었다. 정상국가로 국제사회에 복귀해 안정적인 사회를 유지하려는 개혁파 하산 로하니 이란 대통령의 꿈을 물거품으로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결국 트럼프의 이란 핵합의 탈퇴는 이란에서 강경파인 종교지도자들의 발언권만 강화해줄 수 있다는 우려가 있었는데 이런 우려가 즉각 현실로 나타난 셈이다. 미국이 이란 핵합의에서 탈퇴했다는 것을 명분으로 이란 강경파들이 미국이 비호하고 있는 이스라엘에 대한 직접 공격을 시작한 것으로 해석할 수 있기 때문이다.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도 숙적 이란이 정상국가로 이행해 경제 발전의 기회를 얻는 것을 근본적으로 차단하려는 전략적인 의도가 있는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그 뒤에는 이스라엘의 보수적 분위기를 계속 유지해 정권을 지키려는 국내 정치적인 의도도 있음을 무시할 수 없다. 결국 미국과 이란, 이스라엘의 내부 정치는 중동 정세라는 몸통을 뒤흔드는 꼬리일 수 있다.
이스라엘도 이란의 경제 발전 바라지 않아
이란 핵합의는 핵개발 의혹을 받아왔던 이란이 핵개발 프로그램을 폐기하고 핵 활동을 제한하며 이를 검증하기 위한 국제사회의 감시를 받기로 한 대가로 미국과 유럽연합(EU)의 경제 제재를 차례로 완화하기로 한 합의다. 2015년 7월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상임이사국인 미국·영국·프랑스·러시아·중국에 독일을 더한 6개국이 이란과 합의해 2016년 1월 발효된 것으로 공식명칭은 ‘포괄적 공동행동계획(JCPOA)’이다. 반대파의 의회 장악 등 각각 복잡한 국내 사정이 있던 미국 등 협정 당사국들은 이 합의를 의회 비준이 필요한 국제 협정 대신 공동행동계획으로 만들면서 의회의 반대를 비롯한 국내 정치 논란을 피해갔다. 미국의 경우 의회가 법으로 이 합의를 통제해왔다. 대통령이 90일마다 이란이 핵합의를 준수하는지 여부를 확인하고 120일마다 제재 유예를 갱신해왔던 이유다.
하지만 트럼프 대통령은 2017년 10월 13일 기존의 이란 핵합의에 3가지를 더 요구했다. 이란에 대한 모든 제재를 2025년 10월 18일 이후 해제한다는 조항의 삭제, 기존 합의에 없었던 탄도미사일 규제 신설, 기존에 미국이 지목한 핵의혹 시설만 국제원자력기구(IAEA)가 사찰하는 대신 이란 전역을 즉각 사찰할 수 있도록 허용하라는 내용이다. 전임 버락 오바마 정권이 합의할 때부터 반발했던 트럼프는 취임하자마자 새로운 조건을 내걸고 어렵사리 이뤘던 국제합의를 부정해왔다.
여기에 이란의 숙적인 이스라엘의 네타냐후 총리까지 나서서 트럼프의 옆구리를 찔렀다. 네타냐후 총리는 4월 30일 직접 프레젠테이션까지 하며 이란이 핵합의 이후에도 이를 무시하고 10㏏급 핵탄두 5개를 생산하는 핵개발 프로그램을 비밀리에 가동해왔다고 주장했다. 네타냐후는 이 프레젠테이션에서 ‘프로젝트 아마드’라는 이름의 비밀 핵개발 프로그램의 내용이 담긴 문서를 이란 수도 테헤란의 비밀 저장소에서 입수했다고 주장했다. 실제로 트럼프는 협정 탈퇴를 발표하는 날에도 “이란이 핵 프로그램에 대해 거짓말을 했다는 명백한 증거가 있다”라며 “이 합의로는 이란 핵폭탄을 막을 수가 없다”라고 주장했다. 트럼프를 비롯한 미국 보수 진영의 이란 핵합의, 나아가 이란 자체에 대한 불신을 드러낸 셈이다.
트럼프의 국제 협약이나 합의의 일방적인 파기는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이미 전임 오바마 대통령이 서명했거나 심지어 주도했던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과 파리기후협약도 잇따라 폐기했다. 지난해 5월 25일 벨기에 브뤼셀에서 열렸던 나토(북태평양조약기구) 28개 회원국 정상회의에서는 “한 나라에 대한 군사 공격은 회원국 전체에 대한 침공으로 간주해 즉각 개별 회원국 또는 집단으로 대응한다”는 나토 헌장 5조를 언급하지 않아 문제가 됐다. 제2차 세계대전 종전 직후인 1949년 서유럽의 안보를 위해 나토를 창설한 이후 당시 해리 트루먼 대통령을 비롯한 역대 모든 미국 대통령은 나토 헌장 5조를 준수하겠다는 명시적 약속을 해왔다. 이를 언급하지 않은 것은 나토 창설 이후 트럼프가 처음이다. 트럼프는 이날 집단방위 의무를 입에 올리지 않은 대신 정상회의에 앞서 열린 신청사 개막식 연설에서 “미국은 우리 편에 선 친구들을 절대 저버리지 않을 것”이라고 말한 것이 고작이다.
대신 트럼프는 나토 회원국 정상들을 향해 국내총생산(GDP)의 2% 수준으로 국방비 지출을 늘리기로 한 약속을 지키지 않는다고 비난했다. 그는 “28개 회원국 중 23개국이 여전히 약속했던 수준의 방위비를 지불하지 않고 있다”라며 “이는 미 국민과 납세자에게 불공정한 일이며, 이들 나라는 과거 수년에 걸쳐 (미국에) 엄청난 빚을 지고 있다”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결국 비공개회의에서 나토 회원국 정상들은 2024년까지 7년 동안 GDP 2% 수준까지 국방비를 증액하기로 약속했지만 ‘미국 우선주의’를 강조해온 트럼프는 결국 나토 헌장 5조를 언급하지 않고 정상회의를 마쳤다.
동맹국에 대한 집단방위 약속을 언급하지 않으면 동맹 결속에 균열에 오게 마련이다. 미국의 강력한 동맹인 독일의 앙겔라 메르켈 총리는 그 직후인 지난해 5월 28일 독일 뮌헨의 한 선거 유세에서 “우리가 다른 나라들에 전적으로 의존하던 시대는 어느 정도 지나갔다. 이는 최근 며칠 간의 경험에서 나온 얘기”라고 트럼프를 에둘러 비판했다. 메르켈 총리는 “우리 유럽인들은 운명을 스스로의 손으로 만들어가야 한다”라고도 강조했다.
이렇듯 트럼프의 이란 핵합의 탈퇴와 네타냐후의 이란 핵개발 정보 확보 주장, 그리고 이란 혁명수비대의 골란고원 이스라엘 초소 공격은 국제정치의 냉혹함 이상을 보여준다. 국내 정치가 어떻게 국제 정치에 개입하고 있는지를 잘 보여주기도 한다. 트럼프의 핵합의 탈퇴는 미국 공화당 강경파와 친이스라엘계 또는 유대계 정치세력의 눈치를 본 것이라는 분석이다. 일본 아사히 신문은 트럼프가 개신교 보수 강경파인 복음파의 눈치를 본 것이라는 해석도 내놓았다. 트럼프는 중간선거에서 승리하고 나아가 재선 입지를 다지기 위해 집토끼 격인 이들 다양한 보수 강경파의 눈치를 볼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다.
이란도 국내 사정이 복잡하다. 1979년 이후 확립된 종교계 우위의 신정체제에 대해 국민이 피로감을 표시하고 있기 때문이다. 국민이 직접 뽑은 대통령과 의회 위에 군림하는 종교 세력이 21세기 청년들의 눈에 좋게 보일 리가 없다. 더구나 종교세력은 혁명수비대를 움직여 중동 전역에 혁명을 수출하고 지역 패권을 확보하는 데 많은 예산을 쓰고 있다. 이란은 유전지대인 페르시아만과 중동의 지역 패권을 놓고 사우디아라비아와 각축전을 벌여왔다. 이란의 개입은 중동의 이슬람 시아파 세력권을 가리키는 지정학적 개념인 ‘시아파 초승달 지대’를 지역 패권 격돌장으로 만들었다. ‘시아파 초승달 지대’는 페르시아만의 바레인(시아파 인구 65%)에서 시작해 그 북쪽으로 이란(90~94%), 그 서쪽으로 이라크(65%)와 지중해 연안의 시리아(16%이나 정부군이 시아파의 분파인 알라위트(11%)가 주축)를 거쳐 레바논(27%)까지 이르는 지역이다. 아라비아 반도 서남부 예멘을 포함할 수도 있다. 이란은 자국에서 서쪽으로 이라크-시리아-레바논까지 시아파 세력권을 지리적으로 연결해 지중해쪽 출구를 확보하려는 야심이 있다. 이를 통해 지역 패권국가로 성장할 지정학적인 바탕을 마련할 수 있다.
이란 내부에서 신정체제에 피로감
사우디는 2014년 9월부터 814km 길이의 이라크 국경을 따라 방호 장벽을 쌓고 있다. 5중 차단벽을 설치한 첨단 시설이다. 3만 명 규모의 국경 경비대가 배치돼 감시시설에서 근무하게 된다. 20km마다 감시 레이더를 설치하고 벽에 감지 센서까지 부착해 외부인의 침입을 통제한다. 공중에는 정찰기와 무인감시기가 상시 정찰활동을 편다. 이란은 시리아 내전에서는 시아파의 분파인 알라위트파인 바샤르 알아사드 대통령 정권을 지원 중이다. 사우디는 이에 맞서 알아사드 정권에 대항하는 수니파 반군을 돕고 있다.
하지만 종교세력의 의도와 달리 실업과 생활고에 시달리는 이란 국민은 이런 지출에 퉁명스러운 반응이다. 지난해 12월 28일부터 1월 중순까지 이란에서 전국적인 시위가 벌어진 것도 이러한 상황 때문으로 볼 수 있다. 시위대는 처음에는 실업, 물가 폭등과 같은 정부의 경제 정책 실패를 규탄하는 시위를 벌였다. 하지만 진압이 과격해지면서 시위대는 최고지도자와 기득권을 쥔 종교세력, 신정체제를 반대하는 주장을 펴기 시작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이란 신정체제의 권력을 움켜쥔 종교세력과 혁명수비대가 국민의 살림살이를 돌보는 대신 혁명 이념과 이슬람 시아파의 패권을 위해 해외 분쟁에 개입해 매년 수십억 달러를 펑펑 쓰는 현실에 불만을 터뜨렸다. 이란에선 이미 2009년 대선에 불만을 품은 젊은이들은 거리에서 시위를 벌이며 ‘부정선거’라고 항의했다. 이들은 그해 11월 옛 미 대사관 앞에서 열린 미 대사관 점거 인질사건 기념행사에서 ‘미국에게 죽음을’이라는 전통적인 구호를 외치는 사이에서 ‘독재자에게 죽음을’이라는 구호를 외쳤다.
중동 최악의 시나리오는 사우디와 이란이 대리전을 넘어 직접적인 충돌로 가는 것이다. 이럴 경우 사우디와 이스라엘의 접근이 가속화되는 엄청난 패러다임 전환이 이뤄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중동 전체가 뒤흔들리는 엄청난 이합집산, 합종연횡이 벌어질 수도 있다. 이럴 경우 세력 균형이 이뤄지면 다행이지만 행여 군사충돌이라도 발생하면 세계 경제가 출렁거리는 악몽의 시나리오가 가동될 가능성도 있다.
사우디와 이란은 이스라엘과 이란 만큼 오랫동안 서로 숙적이었다. 1979년 1~2월 이란에서 발생한 이슬람 혁명이 기원이다. 이 혁명으로 팔라비 왕정이 전복되고 아야톨라 호메이니를 앞세운 이슬람 정부가 수립됐다. 국민이 선출한 대통령과 의회가 국정을 이끌지만, 시아파 고위 성직자들이 국정과 입법을 감독하며 군을 통솔하는 권한을 갖는 ‘신정’과 ‘세속’의 하이브리드 체제다. 반왕정 민주화 세력과 종교세력이 타협한 결과다. 사우디는 이란에서 군주제가 몰락하는 것을 보고 충격을 받았을 것이다. 사우디 왕실이 혁명 후 이슬람 혁명 물결 파급과 시아파 세력 확대를 끊임없이 경계해온 이유다.
사실 사우디와 이란은 1979년 이란의 이슬람 혁명 이후 끊임없이 대립하며 중동 각지에서 대리전을 벌여왔다. 이란 세력이 확산하면 이슬람 혁명이 파급돼 군주제의 위상이 흔들리는 상황을 우려할 수밖에 없다. 아랍에미리트·쿠웨이트·바레인·카타르의 왕실은 오랫동안 공동운명체로서 손잡아왔다.
사우디와 이란이 충돌하면 악몽 가능성
미국과 이란, 이스라엘을 넘어 사우디까지 내부 정치가 개입돼 중동 정세를 흔들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그럴 경우 국제경제의 앞날은 걷잡을 수 없는 혼돈으로 빠지는 최악의 상황으로 갈 수도 있다. 이를 막기 위한 국제사회의 지혜와 리더십이 절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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