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대 뒤로 사라지는 신약들] ‘완전정복’ ‘기적의 치료제’ ‘천연신약’ 기대만…
[무대 뒤로 사라지는 신약들] ‘완전정복’ ‘기적의 치료제’ ‘천연신약’ 기대만…
개발 기간 길고 경쟁 심해 … ‘천연물신약’ 정부 참여하고도 실패하기도 지난해 9월 21일(현지시간) 미국 생명공학기업 버사티스(Versartis) 주가가 나스닥 장외거래에서 83.8% 폭락했다. 버사티스는 지속형 성장호르몬결핍증 소아 환자 치료제인 ‘소마바라탄’을 개발 중이었는데, 실망스러운 3상 임상 결과가 나오자 투자자들이 대거 이탈했다. 성장호르몬 시장은 매년 4% 늘고 있으며, 지속형 제품이 개발될 경우 폭발적인 성장이 예상되는 분야다. 이에 화이자·아센디스·노보노디스크 등 글로벌 제약사들이 대거 이 시장에 참여하고 있다. 소마바라탄은 3상 결과 12개월 간 월 2회 소마바라탄을 투여한 모든 임상 등록 소아 환자(ITT)들의 키가 9.44cm 성장하는 데 그쳤다. 경쟁사인 화이자의 ‘지노트로핀’ 임상실험 결과인 10.7cm에 약 2.3cm 미치지 못했다. 오차 신뢰 구간인 2.0cm를 벗어났다. 소마바라탄은 2상에서 기대 이상의 효능을 거둬 성인용 약품으로도 확장이 기대되던 약물이다. 기대감은 한풀 꺾였지만 버사티스는 소마바라탄의 기술적 오류를 바로 잡고 성인 대상의 임상 2상을 진행한다는 계획이다. 그러나 투자자들 사이에서는 이미 실망감이 퍼지며 지난해 24달러까지 치솟았던 주가는 현재 1.5달러대로 주저 앉았다.
바이오·제약 부문은 승자독식 구조다. 비아그라가 발기부전 치료제 시장을 일순간에 장악했듯이 혁신적인 신약은 제약산업은 물론 의료시장 전체를 흔들 수 있다. 그러나 신약은 개발 기간이 길고 당국의 인허가가 필요하며 소비자들의 신뢰를 얻어야 하는 등 성공의 과실을 얻을 때까지 오랜 인내와 투자가 필수적이다. 개발 기간 중 임상 실패, 경쟁 심화, 자금력 부족 등 여러 문제가 불거질 수 있어 실패 위험성이 크다. 그럼에도 ‘꿈의 치료제’ ‘완전정복’ 등의 수사를 등에 엎고 초기 기대감에 막대한 투자금이 몰린다. 신약 개발에 실패할 경우의 그 책임은 오롯이 투자자의 몫이다. 증권사 관계자는 “신약은 임상 단계별, 종류별로 성공 가능성이 다르며 이를 포함한 적정 가치를 매기기 어려운 것이 사실”이라고 지적했다.
신약 개발이 가장 많이 실패하는 과정은 임상 단계다. 임상실험은 실험실에서의 추론에 의존하는 실험연구와는 달리 피험자의 실제 투여 사례를 토대로 경험적 판단과 종합적인 해석을 얻는 과정이다. 여기서 발견한 문제를 해결해 부작용이 적고 효과가 뛰어난 약품을 개발한다. 임상 결과는 당국의 인허가에도 영향을 준다. 실험 단계에서 발견하지 못했지만 임상 과정에서 드러난 문제로 추락한 신약 프로젝트가 적지 않다. 미국 제약 업체인 브리스톨-마이어스(BMS)는 면역항암치료제 ‘옵디보’ 개발에 나서며 2014년 말 급부상했다. 20달러대이던 주가는 2016년 80달러에 육박할 정도로 치솟았다. 그러나 임상 실험 결과 효과가 미미하다고 발표되자 하루 만에 시가총액 25조원이 증발했다. 현재 BMS 주가는 50달러대에서 지지부진하다. 지난해에는 옵디보와 ‘여보이’라는 치료제를 합한 신장암 치료 병행약물 개발에 나섰지만 생존율 개선 효과가 크지 않은 것으로 나타나기도 했다. 미국 토비라의 경우 비알코올성지방간염 임상 2상에 실패하며 주가가 70% 하락했고, 키메릭스도 경구용 항바이러스 약물 임상 실패로 주가가 폭락한 바 있다. 국내에서도 지난 3월 22일 코스닥 시가총액 2위 신라젠이 함암치료제 펙사벡의 임상을 연기하거나 중단할 가능성이 있다는 소식이 퍼지며 코스닥지수가 20분 만에 2% 가까이 급락하기도 했다. 세계적인 고령화로 주목받는 치매 치료제도 임상 실패 사례가 숱하게 나온다. 항우울증 치료제 프로작으로 유명한 일라이릴리앤드컴퍼니의 ‘솔라네주맵’이 대표적이다. 이 약물은 혈액과 뇌척수액에 뭉친 아밀로이드 단백질을 파괴하는 효과가 있어 알츠하이머병 치료에 신기원을 열 것으로 기대를 모았다. 그러나 2016년 3상 결과, 환자의 인지기능을 개선하는 데 실패하고 말았다. 솔라네주맵이 실패한 이후 경쟁사 머크도 3개월 만에 치매치료제 개발을 포기했다. 현재 화이자·로슈·노바티스·GSK 등 세계적인 제약사들이 치매치료제 개발에 뛰어들었으나 아직까지 뾰족한 성과를 낸 곳은 없다. 알츠하이머 치료제는 1997년부터 지난해까지 약 150여개가 개발됐으나 이 중 3개만이 판매 승인을 얻었다. 그나마 이들 약물도 모두 일시적인 효과에 그치고 말았다. 의료계 관계자는 “국내는 물론 해외에서도 혈관·신경계·면역·항암 계열 신약은 임상 난이도가 높아 성공 가능성을 작게 본다”며 “이들 분야에서 임상 3상을 통과해 NDA(합성의약품 신약 승인)를 받은 신약을 찾기 어려운 것이 사실”이라고 지적했다.
신체에 부담이 적은 천연물신약 개발도 임상실험의 잇딴 실패로 몰락했다. 천연물신약은 한약재 등 천연물을 이용한 신약이다. 보건복지부는 2000년 ‘천연물신약 연구개발 촉진법’을 제정하고 연구개발사업에 1조4000억원에 달하는 예산을 투입했다. 식약처는 천연물신약 허가시 제출 자료와 심사 기준을 완화하고 임상실험도 일부 면제해줬다. 국내 제약산업의 독자적인 성장 방안을 모색하겠다는 취지에서다. 이를 통해 녹십자 ‘신바로’, SK케미칼 ‘조인스’, 동아에스티 ‘스티렌’ ‘모티리톤’, 안국약품 ‘시네츄라’, 영진약품 ‘유토마’ 등이 식약처의 천연물신약 허가를 받았다. 그러나 발암물질 검출 등 논란이 끊이지 않았다. 이에 감사원은 2015년 천연물신약에 느슨한 허가 심사 기준을 적용하는 것은 불합리하다고 지적하고 심사 기준을 강화했다. 식약처도 성분프로파일 자료를 제출하도록 하는 한편, 임상 기준을 강화했다. 천연물신약은 임상을 통해 효능을 확인하는 데 시간이 오래 걸리고 직접적인 인과관계를 입증하기 어렵다. 정부가 규제를 강화하자 천연물신약 개발이 급격히 위축됐다. 여기에 식약처는 지난해 ‘의약품의 품목허가·신고·심사 규정’ 일부 개정고시를 통해 2조 17조 ‘천연물신약’을 아예 삭제하면서 별다른 성과를 거두지 못한 채 사실상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경쟁사 약물의 부상이나 자금 부족 등으로 임상 과정에서 중도 포기하는 사례도 있다. 4월 한미약품은 항암제로 생긴 내성을 피하는 표적항암신약 ‘올리타’의 개발을 중단했다. 한미약품도 자체 일정에 맞춰 올리타 개발에 나섰으나 경쟁사들의 시장 선점과 해외 협력사들의 참여 포기로 중도 하차하고 말았다. 한미약품의 주가는 6거래일에 걸쳐 15% 급락했다. 특히 글로벌 제약사들과 경쟁하는 경우는 상대적으로 자금력이 부족해 개발을 포기하는 일도 적지 않게 나온다. 이에 전문가들은 신약이 국내 판매만을 노렸는지, 미국 식품의약처(FDA)까지 겨냥했는지 등도 투자에서 고려해야 할 점이라고 지적한다. 선민정 하나금융투자 연구원은 “임상은 통계학이다. 제약사가 투자금 유치를 위해 수치를 부풀리지 않았는지, 임상 계획을 잘 짰는지 꼼꼼히 따져봐야 한다”며 “글로벌 파이프라인(신약후보물질)을 폭넓게 확보하고 있는지, 경쟁사의 신약 개발 현황은 어떤지 등도 고려해야 할 변수”라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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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오·제약 부문은 승자독식 구조다. 비아그라가 발기부전 치료제 시장을 일순간에 장악했듯이 혁신적인 신약은 제약산업은 물론 의료시장 전체를 흔들 수 있다. 그러나 신약은 개발 기간이 길고 당국의 인허가가 필요하며 소비자들의 신뢰를 얻어야 하는 등 성공의 과실을 얻을 때까지 오랜 인내와 투자가 필수적이다. 개발 기간 중 임상 실패, 경쟁 심화, 자금력 부족 등 여러 문제가 불거질 수 있어 실패 위험성이 크다. 그럼에도 ‘꿈의 치료제’ ‘완전정복’ 등의 수사를 등에 엎고 초기 기대감에 막대한 투자금이 몰린다. 신약 개발에 실패할 경우의 그 책임은 오롯이 투자자의 몫이다. 증권사 관계자는 “신약은 임상 단계별, 종류별로 성공 가능성이 다르며 이를 포함한 적정 가치를 매기기 어려운 것이 사실”이라고 지적했다.
신약 개발이 가장 많이 실패하는 과정은 임상 단계다. 임상실험은 실험실에서의 추론에 의존하는 실험연구와는 달리 피험자의 실제 투여 사례를 토대로 경험적 판단과 종합적인 해석을 얻는 과정이다. 여기서 발견한 문제를 해결해 부작용이 적고 효과가 뛰어난 약품을 개발한다. 임상 결과는 당국의 인허가에도 영향을 준다. 실험 단계에서 발견하지 못했지만 임상 과정에서 드러난 문제로 추락한 신약 프로젝트가 적지 않다. 미국 제약 업체인 브리스톨-마이어스(BMS)는 면역항암치료제 ‘옵디보’ 개발에 나서며 2014년 말 급부상했다. 20달러대이던 주가는 2016년 80달러에 육박할 정도로 치솟았다. 그러나 임상 실험 결과 효과가 미미하다고 발표되자 하루 만에 시가총액 25조원이 증발했다. 현재 BMS 주가는 50달러대에서 지지부진하다. 지난해에는 옵디보와 ‘여보이’라는 치료제를 합한 신장암 치료 병행약물 개발에 나섰지만 생존율 개선 효과가 크지 않은 것으로 나타나기도 했다.
임상 실패에 하루 만에 시가총액 25조원 허공에
신체에 부담이 적은 천연물신약 개발도 임상실험의 잇딴 실패로 몰락했다. 천연물신약은 한약재 등 천연물을 이용한 신약이다. 보건복지부는 2000년 ‘천연물신약 연구개발 촉진법’을 제정하고 연구개발사업에 1조4000억원에 달하는 예산을 투입했다. 식약처는 천연물신약 허가시 제출 자료와 심사 기준을 완화하고 임상실험도 일부 면제해줬다. 국내 제약산업의 독자적인 성장 방안을 모색하겠다는 취지에서다. 이를 통해 녹십자 ‘신바로’, SK케미칼 ‘조인스’, 동아에스티 ‘스티렌’ ‘모티리톤’, 안국약품 ‘시네츄라’, 영진약품 ‘유토마’ 등이 식약처의 천연물신약 허가를 받았다. 그러나 발암물질 검출 등 논란이 끊이지 않았다. 이에 감사원은 2015년 천연물신약에 느슨한 허가 심사 기준을 적용하는 것은 불합리하다고 지적하고 심사 기준을 강화했다. 식약처도 성분프로파일 자료를 제출하도록 하는 한편, 임상 기준을 강화했다. 천연물신약은 임상을 통해 효능을 확인하는 데 시간이 오래 걸리고 직접적인 인과관계를 입증하기 어렵다. 정부가 규제를 강화하자 천연물신약 개발이 급격히 위축됐다. 여기에 식약처는 지난해 ‘의약품의 품목허가·신고·심사 규정’ 일부 개정고시를 통해 2조 17조 ‘천연물신약’을 아예 삭제하면서 별다른 성과를 거두지 못한 채 사실상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임상 계획, 경쟁사 등 꼼꼼히 따져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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