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동사니가 살아 움직이는 무대
잡동사니가 살아 움직이는 무대
스위스 초현실 극단 무멘산츠의 물체극 ‘너와 나’ … 상실감·성장 등의 주제를 기이한 은유로 묘사해 직업상 이상한 행사에 많이 가 봤다. ‘누드 아니메 아트 팝업’이나 관객에게 싸구려 루트 비어(생강과 다른 식물 뿌리로 만든 탄산음료)를 퍼붓는 광대가 등장하는 랩 콘서트 등등. 하지만 이런 공연들도 무멘산츠에 비하면 약과다. 일상적인 생활용품을 활용한 ‘물체극’을 선보이는 스위스 초현실 극단 무멘산츠는 미국 존제이대학(뉴욕 소재) 제럴드 W. 린치 극장에서 ‘너와 나(You and Me)’라는 작품을 공연 중이다(7월 22일까지).
이 극단은 1972년 창단했으며 무멘산츠라는 극단명은 예전의 마임(무언극)을 뜻하는 독일어 단어에서 유래했다. 내가 이 극단의 공연을 접한 건 유튜브에 올라온 ‘머펫 쇼’(1976)를 본 게 전부였다. 그들은 포스트잇 메모지를 이용해 다양한 얼굴표정을 묘사하면서 대사 한 마디 없이 깊이 있는 감정을 표현했다.
그래서 난 최근 끈적끈적하고 더운 여름날 저녁 동료 한 명을 이끌고 뉴욕 59번가에 있는 그 극장을 찾았다. 우리는 눈앞에 어떤 광경이 펼쳐질지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객석은 주로 40년 전 전성기 시절의 이 극단을 기억할 만한 연배의 관객으로 채워졌다. 그중에는 자녀와 손자를 데려온 사람도 꽤 있었는데 그들이 이 공연을 보고 나면 결코 잊지 못할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처음엔 밀레니엄 세대가 별로 눈에 안 띠어 어색했지만 자리를 잡고 앉았다.그 후 진행된 80분 간의 공연은 기묘함 그 자체였다. 마치 누군가 ‘스톰프’ 공연에서 요란한 소리를 모두 제거하고 대신 은유적 상징주의를 채워 넣은 듯했다. 거대한 손 모양의 코스튬을 입은 배우들이 관객 사이를 걸어 다니며 공연이 시작됐다. 그 다음엔 비닐봉투를 씌운 막대기들이 해파리처럼 무대 위를 떠다니고 옷감을 접어 만든 다양한 얼굴 표정이 나타났다. 배경음악도 없이 공연 내내 들린 소리라곤 이따금 객석에서 터져나오는 기침 소리와 윙윙거리는 파리 소리뿐이었다. 가끔 가벼운 웃음소리가 어색한 분위기를 누그러뜨릴 때도 있었지만 그런 순간은 순식간에 지나가버렸다. 난 깜깜한 극장 안에서 공연에 관한 메모를 끄적거렸지만 나중에 보니 횡설수설이었다. ‘달걀, 자신에게 진실할 것, 파리를 잡아먹는 동물, 바이올린 마스크’ 등등.
공연을 본 지 며칠 뒤에도 난 그때 느낀 감정을 어떻게 처리해야 할지 몰랐다. 공연을 보면서 때때로 너무 따분해 ‘끝없는 비닐봉투의 행렬을 지켜보느니 차라리 거대한 쓰레기 괴물이 나를 잡아먹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하지만 아주 재미있는 대목도 있었다. 상실감·성장·자아발견 등의 주제는 기이한 느낌을 주는 은유로 설명됐다. 마지막 두 장면이 제일 좋았다. 관객이 보는 앞에서 진흙 마스크를 만들어 얼굴에 쓴 배우들과 핸드폰에 중독된 후드티 입은 사람들(테크놀로지에 중독된 세대를 꼬집는 게 분명했다)이 인상적이었다.
난 이 공연의 표적 관객층은 아니었다. 내게 행위예술은 늘 진지한 생각을 불러일으키기보다는 짜증스럽게 느껴졌다. 뉴욕 현대미술관(MoMA)의 설치미술작품을 보면서도 큰 한숨을 내쉴 때가 많았다. 예전의 무멘산츠 공연을 기억하는 사람이 아니라면 공감하기 어려운 공연이지만 절대 잊혀지진 않을 듯하다.
- 스티븐 아사크 뉴스위크 기자
ⓒ이코노미스트(https://economist.co.kr) '내일을 위한 경제뉴스 이코노미스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극단은 1972년 창단했으며 무멘산츠라는 극단명은 예전의 마임(무언극)을 뜻하는 독일어 단어에서 유래했다. 내가 이 극단의 공연을 접한 건 유튜브에 올라온 ‘머펫 쇼’(1976)를 본 게 전부였다. 그들은 포스트잇 메모지를 이용해 다양한 얼굴표정을 묘사하면서 대사 한 마디 없이 깊이 있는 감정을 표현했다.
그래서 난 최근 끈적끈적하고 더운 여름날 저녁 동료 한 명을 이끌고 뉴욕 59번가에 있는 그 극장을 찾았다. 우리는 눈앞에 어떤 광경이 펼쳐질지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객석은 주로 40년 전 전성기 시절의 이 극단을 기억할 만한 연배의 관객으로 채워졌다. 그중에는 자녀와 손자를 데려온 사람도 꽤 있었는데 그들이 이 공연을 보고 나면 결코 잊지 못할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처음엔 밀레니엄 세대가 별로 눈에 안 띠어 어색했지만 자리를 잡고 앉았다.그 후 진행된 80분 간의 공연은 기묘함 그 자체였다. 마치 누군가 ‘스톰프’ 공연에서 요란한 소리를 모두 제거하고 대신 은유적 상징주의를 채워 넣은 듯했다. 거대한 손 모양의 코스튬을 입은 배우들이 관객 사이를 걸어 다니며 공연이 시작됐다. 그 다음엔 비닐봉투를 씌운 막대기들이 해파리처럼 무대 위를 떠다니고 옷감을 접어 만든 다양한 얼굴 표정이 나타났다. 배경음악도 없이 공연 내내 들린 소리라곤 이따금 객석에서 터져나오는 기침 소리와 윙윙거리는 파리 소리뿐이었다. 가끔 가벼운 웃음소리가 어색한 분위기를 누그러뜨릴 때도 있었지만 그런 순간은 순식간에 지나가버렸다. 난 깜깜한 극장 안에서 공연에 관한 메모를 끄적거렸지만 나중에 보니 횡설수설이었다. ‘달걀, 자신에게 진실할 것, 파리를 잡아먹는 동물, 바이올린 마스크’ 등등.
공연을 본 지 며칠 뒤에도 난 그때 느낀 감정을 어떻게 처리해야 할지 몰랐다. 공연을 보면서 때때로 너무 따분해 ‘끝없는 비닐봉투의 행렬을 지켜보느니 차라리 거대한 쓰레기 괴물이 나를 잡아먹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하지만 아주 재미있는 대목도 있었다. 상실감·성장·자아발견 등의 주제는 기이한 느낌을 주는 은유로 설명됐다. 마지막 두 장면이 제일 좋았다. 관객이 보는 앞에서 진흙 마스크를 만들어 얼굴에 쓴 배우들과 핸드폰에 중독된 후드티 입은 사람들(테크놀로지에 중독된 세대를 꼬집는 게 분명했다)이 인상적이었다.
난 이 공연의 표적 관객층은 아니었다. 내게 행위예술은 늘 진지한 생각을 불러일으키기보다는 짜증스럽게 느껴졌다. 뉴욕 현대미술관(MoMA)의 설치미술작품을 보면서도 큰 한숨을 내쉴 때가 많았다. 예전의 무멘산츠 공연을 기억하는 사람이 아니라면 공감하기 어려운 공연이지만 절대 잊혀지진 않을 듯하다.
- 스티븐 아사크 뉴스위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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