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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연금을 65세에 받으라고?

국민연금을 65세에 받으라고?

생활수준 악화에도 푸틴 대통령 지지 변치 않던 러시아 국민, 국민연금 제도 개혁안에 뿔났다
모스크바의 고령 여성이 국민연금 수령 나이를 65·63세로 상향 조정하는 개혁안에 반대하는 포스터를 들고 있다. / 사진:AP-NEWSIS
2005년 가을,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자신의 2기 정부 중 TV에 출연해 대 국민 질의응답 시간을 갖고 있었다. 프로그램이 끝나갈 무렵 한 중년 여성이 러시아 국민의 국민연금 수령 나이를 정부가 늦추기를 원한다는 언론 보도에 관해 논평을 요구했다.

푸틴 대통령에게는 중요한 질문이었다. 2000년 집권 후 높은 지지를 받은 것은 일정 부분 고령인구에게 연금이 제때 전액 지급되도록 하는 데 성공했기 때문이다. 전임자인 보리스 옐친 대통령 시절엔 연금이 정상적으로 지급되는 일이 드물었다. 푸틴 대통령은 카메라를 똑바로 바라보며 말했다. 그는 검지를 좌우로 흔들며 “정년 연장에 반대한다”며 “내가 대통령 자리에 있는 한 그런 일은 절대 없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13년이 지난 지금 푸틴 대통령은 여전히 대통령 자리를 지키지만 그가 러시아 국민에게 한 약속이 부메랑으로 돌아왔다. 그가 이끄는 집권 통합러시아당은 현재 세계에서 가장 낮은 편에 속하는 국민연금 수령 나이를 남성의 경우 60에서 65세로, 여성은 55세에서 63세로 연장하는 법안을 제출했다. 수령 나이 상향조정은 여러 해에 걸쳐 점진적으로 실시될 예정이다. 군인과 경찰관 등 일부 직종의 은퇴연령은 변경되지 않는다. 하지만 개혁안에 대한 역풍은 푸틴 대통령의 인기에 지금까지 어느 때보다 큰 치명상을 남겼다. 서방과의 관계가 갈수록 적대적으로 변해갈 동안에도 국내에서 압도적인 인기를 누렸던 푸틴 대통령에게 이번의 하락세를 되돌릴 길은 보이지 않는 듯하다.

연금수령 나이 연장은 1930년대 초 소련 독재자 조지프 스탈린 시절 은퇴연령이 책정된 이후 최초의 조정이 된다. 정부 전문가들은 오래 전부터 장기적으로는 재원 조달이 불가능하다며 크렘린 정부에 연금제도 수정을 촉구해왔다. 하지만 소련과 러시아 지도자들은 번번이 국민의 반발에 대한 우려에서 개혁이행을 미뤄왔다. 현재의 국민연금은 한 달 평균 1만3342루블(약 22만원)에 불과한 적은 금액이지만 경제적으로 의지할 만한 가족이 없는 러시아인 수백만 명에게는 생명줄이나 다름없다.

게다가 개혁안은 축구 국가대표팀의 첫 경기에 온 나라의 관심이 집중됐던 2018 월드컵 개막일에 발표됐다. 정부가 인기 없는 뉴스를 월드컵 열기에 끼워 팔려 했다는 의혹을 불러일으켰다. 진짜로 그런 의도였다면 그 전략은 실패했다. 그 법안은 광범위한 분노와 전국적인 항의시위를 촉발했으며 수십억 달러의 부패 혐의 그리고 근년 들어 악화되는 생활수준에도 요지부동이던 푸틴 대통령의 인기를 뚝 떨어뜨렸다. 국영 여론조사기관인 러시아언론조사센터에 따르면 그의 지지도가 불과 2주 사이 77%에서 63%로 떨어졌다.

서방 지도자들의 평균 지지율에 비하면 그래도 높은 수준이지만 국영 매체에 대한 전적인 통제를 자랑하는 푸틴 대통령 입장에선 걱정스러운 하락세라고 분석가들은 말한다. 또한 2014년 러시아가 우크라이나의 크림반도를 합병하기 직전 이후 가장 낮은 지지율이다. 당시 크림반도 합병 이후 서방 국가들과 대치국면 속에서 푸틴 대통령의 인기가 하늘로 날아올랐다.개혁안이 지지를 못 받는 데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지만 주로 많은 러시아인이 연금을 받을 만큼 오래 살지 못할 것이라고 걱정하기 때문이다. 러시아의 기대수명이 높아지지만 남성의 기대수명은 66세에 불과하며 10명의 남성 중 한 명은 65세 생일까지 살지 못한다. 연금수령 나이 연장에 반대하는 노조 연합인 러시아 노동 총동맹의 통계다. 최근 모스크바에서 열린 한 시위 참가자가 든 피켓에는 ‘일터에서 죽고 싶지 않다’고 적혀 있었다. 러시아 여성의 기대 수명은 73세지만 연령차별이 만연해 일단 중년에 들어서면 취업기회가 극히 제한되며 일부는 정부안으로 인해 연금도 못 받고 일자리도 없는 처지가 될 수 있다고 걱정한다. 모스크바에서 거주하는 40세의 싱글맘 율리아 코르지나는 “정부가 연금수령 나이를 늦출 경우 내 미래가 정말로 두렵다”고 말했다.

연금제도 개혁안에 대한 역풍은 푸틴 대통령의 인기에 가장 큰 치명상을 남겼다. / 사진:PAVEL GOLOVKIN-AP-NEWSIS
크렘린 정부는 푸틴 대통령이 연금수령 나이를 미루지 않겠다는 약속을 어겼다고 시인하면서도 인구구성의 변화로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고 말한다. 인구 고령화가 빠르게 진행 중이며 정부 예측에 따르면 2044년에는 고령자 숫자가 노동인구 숫자에 근접해 국가예산에 막대한 압박을 가할 수 있다. 드미트리 메드베데프 총리는 개혁이 “오랫동안 미뤄온 불가피한 현안”이라고 말했다.

정부 안 발표 후 한 달여가 지난 7월 20일에야 푸틴 대통령이 마침내 연금 개혁안에 관해 논평했다. 그는 마음에 들지 않는다면서도 폐기하겠다는 뜻은 내비치지 않았다. “이것은 물론 우리 국민 다수에게 민감한 문제지만 감정에 따라 결정해서는 안 된다.”

그러나 러시아 국민은 수긍하지 않았다. 모스크바의 독립적인 여론조사 단체 레바다 센터의 조사에선 유권자의 90% 정도가 정부 안에 반대하며 40%는 정부 개혁안을 철회시키기 위해 거리로 뛰쳐나갈 용의가 있다고 말했다. 레바다 센터의 레브 구드코프 팀장은 “이는 사회에 심각한 분노와 긴장이 팽배해 있음을 보여준다”고 말했다.

그리고 그런 분노가 분출하기 직전이라는 조짐이 나타난다. 지난 8월 3일 러시아 서부 도시 칼루가의 국가연금기금 건물 앞에서 폭탄이 터져 건물 입구가 부분적으로 파손됐다. 국영매체는 폭발사건을 보도하지 않았으며 그것을 보도한 지역 방송사 웹사이트와 소셜미디어 페이지에서도 얼마 뒤 뉴스가 삭제됐다.

러시아 전역에서 지금까지 공산당 지지자, 노조원, 민주화 운동가 등 수만 명이 연금개혁에 항의하는 집회를 열었다. 러시아인이 전통적으로 휴가 그리고 다차(여름 별장)에서 돌아오는 가을에는 시위 규모가 커질 것이라고 전문가들은 내다본다. 저명한 반정부 운동가 알렉세이 나발니는 지방의회뿐 아니라 모스크바 시장 선거가 실시되는 9월 9일 정부 안에 반대하는 전국적인 항의시위의 확대를 촉구한다. 나발니는 “연금수령 나이 연장은 그야말로 범죄”라며 “필요한 개혁이라는 미명 아래 수천만 명을 강탈하는 행위”라고 말했다.

크렘린 정부는 연금 문제를 둘러싼 가두시위에 대단히 민감하게 반응해 관료들에게 여론동향을 모니터하도록 요청했을 정도다. 러시아 경제신문 베도모스티가 최근 크렘린 정부에 정통한 소식통을 인용해 보도한 내용이다.

그런 반발에도 불구하고 러시아 의회는 지난 7월 19일 1차 검토에서 법안을 승인했다. 그러나 집권 통합러시아당 내에서도 개혁을 둘러싼 불만이 표출돼 지도부가 그 논란 많은 정책에 찬성표를 던지도록 의원들을 단속해야 했다. 그래도 이탈자가 나왔다. 통합러시아당의 유명한 나탈리아 포클론스카야 의원이 지시를 거부하고 반대표를 던졌으며 그 밖에 8명의 의원이 표결에 불참했다.

정부안에 반대를 표시하는 통합러시아당 의원과 당원도 늘어나고 있다. 연금개혁안에 항의해 탈당한 전 통합러시아당 당원 니콜라이 타라코프는 “당의 정책과 지도부의 활동이 지금은 국가와 정반대를 향한다”고 말했다. 언론 보도에 따르면 오는 9월의 지방선거를 겨냥한 선거운동에서 푸틴 대통령과 메드베데프 총리의 사진을 사용하지 말라는 지시가 통합러시아당 당직자들에게 하달될 정도로 현재 두 지도자의 인기가 땅에 떨어졌다.

크렘린 연설문 작성자 출신의 정치분석가 압바스 갈리야모프는 푸틴이 연금개혁을 중단하고 개각을 단행한다 해도 유권자는 이를 ‘강요된 후퇴’로 해석할 수 있다고 말했다. 그에 따라 완전무결한 절대적 지도자로서 푸틴 대통령의 이미지가 치명상을 입을 수 있다는 설명이다. “현재로선 푸틴의 인기를 되살릴 만한 뾰족한 방법이 없다.”

- 마크 베네츠 뉴스위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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