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의 숨통 바짝 조여라’
‘러시아의 숨통 바짝 조여라’
푸틴 대통령은 서방의 어떤 위협도 크렘린은 항상 이겨낸다고 자랑하지만 이번 미국의 경제제재는 과거와는 다르다 과거 러시아 모스크바 시내에 서방 정치인들의 캐리커처를 걸어놓고 러시아 술만 파는 ‘제재(Sanctions)’라는 선술집이 있었다. 미국과 유럽의 대 러시아 경제 제재 노력에 대한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태도를 상징하는 종합 축소판이었다. 루블화 가치가 55% 폭락하고 외국인 투자가 뚝 끊기고 물가가 뛰는데도 푸틴과 관영 프로파간다 조직은 제재를 대수롭지 않게 받아넘긴 전력이 있다. 서방이 아무리 파멸시키려 애써도 러시아는 항상 이겨낼 것이라고 푸틴은 자랑한다.
하지만 미국 정부가 그 어느 때보다 강력한 경제제재를 러시아에 가하겠다는 다짐을 이행할 경우 그런 자신감이 앞으로 몇 달 동안 상당한 테스트를 받게 될 듯하다. 3개의 경제제재 부과 노력이 별도로 진행 중이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9월 12일 미국 선거개입을 “국가적 비상사태”로 선포하고 외국 기업·기관·개인의 개입에 대한 제재를 승인하는 행정명령에 서명했다. 국가정보국이 잠재적인 개입을 평가하는 임무를 맡는다. 이 행정명령의 대상이 러시아만은 아니지만(미국 정부는 중국·이란·북한도 주의해야 한다고 밝혔다) 현재 로버트 뮬러 특별검사가 조사 중인 2016년 미국 대선 중 러시아의 해킹 의혹이 직접적인 원인이 됐다.트럼프 대통령의 행정명령은 의회에 선수를 치려는 시도였다. 의회는 같은 날 러시아 선거개입에 더 가혹하고 통렬한 처벌을 가하려는 법안의 1단계를 통과시켰다. 푸틴 대통령을 향한 트럼프 대통령의 충정은 놀라웠다. 단적인 예로 지난 7월 핀란드 헬싱키에서의 정상회담에선 선거에 개입하지 않았다는 푸틴 대통령의 말을 휘하 정보기관들이 만장일치로 내린 결론보다 더 신뢰하는 듯했다. 지난해 의회에서 통과된 이전 제재 법안의 집행에도 늑장을 부렸다.
그러나 의회와 트럼프 정부 내에서 대 러시아 강경노선이 폭넓은 지지를 얻자 트럼프 대통령도 대세를 따르지 않을 수 없었다. 존 볼턴 국가안보보좌관은 트럼프 대통령의 행정명령에 관해 “우리는 대통령이 이 문제를 지휘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게 중요하다고 여겼다”고 말했다.
의회에서 검토 중인 조치(일명 ‘크렘린 공격으로부터 미국의 안전 보호법’)는 러시아를 사실상 세계경제와 차단함으로써 그들의 추가적인 선거 개입을 저지하려는 취지다. 그 방안은 주요 러시아 은행들의 자본시장 접근 금지, 러시아 가스·석유 회사들의 해외 자산 동결뿐 아니라 러시아 봇넷과 그것을 운영하는 기업의 폐쇄 등으로 이뤄진다. 아울러 푸틴 대통령과 러시아 지배계급 구성원의 개인 자산에 대한 조사도 실시된다.
그 법안은 러시아에 “전술핵무기”보다 더 큰 타격을 줄 것이라고 그 법안의 많은 공화당 지지자 중 한 명인 밥 코커 상원 외교위 위원장(테네시)이 지난 8월 20일 기자들에게 말했다. 헬싱키 회담에서 푸틴 대통령에 대한 트럼프 대통령의 친밀한 태도를 가리켜 “그의 대통령 임기 중 가장 중대한 실수”로 평한 뉴트 깅리치 전 하원의장도 그 법안의 또 다른 공화당 지지자다.2014~2016년 대 러시아 제재 초안 작성에 직접 관여했던 오바마 정부의 한 고위 관료는 익명을 조건으로 “이제 새로운 국면으로 접어들고 있다”고 말했다. “원래는 러시아 경제가 글로벌 경제에 얼마나 긴밀하게 얽혔는지 (푸틴 대통령에게) 보여주려는 의도였지 러시아 경제를 봉쇄하려는 건 아니었다. 우크라이나에 대한 러시아의 추가 침략을 중단시키려는 취지였다.” 그러나 4년이 지난 지금 워싱턴 정계의 공기가 바뀌었다.“(2016년 대선) 해킹 이후 ‘러시아를 최대한 응징하라. 나사를 끝까지 조여라’는 분위기가 팽배해졌다.”
의회의 조치와 평행을 이루는 제3의 제재는 미국 재무부와 국무부가 지난 8월 22일 발동한 조치다. 지난 3월 잉글랜드 솔즈베리에서 전 스파이 세르게이 스크리팔을 포함해 4명에 대한 신경 가스 독살 기도에 대한 대응이었다. “국제법을 어기고 화학 또는 생물학 무기를 사용한” 모든 나라에 대해 미국 대통령이 조치를 취하도록 한 미국법(1991년 제정) 위반이 그 근거였다. 이 조치에 따라 러시아는 90일 내에 비밀 화학무기 시설에 대한 국제사찰을 허용하지 않을 경우 더 가혹한 처벌을 받아야 한다. 사실상 미국은 러시아를 북한·이란과 함께 화학무기 테러 후원국가로 낙인 찍는 절차를 밟고 있다.결과적으로 러시아는 초고속 컴퓨터, 최첨단 석유탐사 장비와 레이저 같은 미국의 첨단기술 제품을 더 이상 받을 수 없다. 이 조치는 러시아 경제의 최대 급소인 석유시추와 군수산업을 공격하려는 의도다.
러시아는 사찰 허용 방안을 묵살했다. 따라서 11월이 오면 미국 재무부가 나사를 더욱 세게 조일 것으로 예상된다. 서방에서 영업하는 러시아 은행과 기업에 대한 이란 식 제재가 포함될 수 있다. 그게 전부가 아니다. 의회와 재무부에서 추가 조치를 고려 중이다. 외국인 투자자 지분이 3분의 1에 달하는 국내외 러시아 국채에 대한 제재 그리고 러시아 관료들의 해외 자금에 대한 전면적인 조사 등이다. 그 뒤 앞선 제재에서 몇몇 푸틴 측근들에게 부과된 자산 동결과 비자 발급 중단이 훨씬 더 광범위하게 실시된다. 선술집 ‘제재’의 문을 다시 열 때가 됐는지도 모른다. 러시아 제재 압력으로 트럼프 대통령은 정치·외교적으로 곤경에 처했다. 그는 지난 7월의 트윗에서 대 러시아 강경파로 콘셉트를 바꾸려는 듯한 시도를 하면서 흥미로운 예측을 덧붙였다. 크렘린 정부가 11월의 중간선거에 다시 개입해 민주당을 지지하리라는 예측이었다. ‘러시아가 다가오는 선거에 영향을 미치려 온갖 수단을 동원할까 몹시 걱정된다. 러시아에 나보다 강경했던 대통령은 없었다는 사실에 근거할 때 그들은 민주당을 적극 밀어줄 것이다. 그들은 분명 트럼프를 원치 않는다!’
하지만 트럼프 대통령은 여전히 푸틴을 직접적으로 비판하려 들지 않는다. 그가 헬싱키에서 푸틴 대통령을 향해 드러냈던 친밀감은 로버트 뮬러 특별검사 그리고 트럼프 선거진영과 러시아 간 내통 의혹과 관련된 지속적인 조사에 대한 반감에서 비롯됐을 수 있다. 트럼프의 대통령 임기 첫 200일 거의 내내 “미국의 러시아 정책은 사실상 트럼프와 의회 2개 노선이 별도로 존재했다”고 러시아과학아카데미 산하 싱크탱크인 미국·캐나다학 연구소의 블라디미르 바실리예프는 말했다. “하나는 타협적이고 건설적이며 다른 하나는 적대적인 건 분명하다.”따라서 지난 9월 12일 트럼프 대통령의 행정명령 서명은 대통령과의 기싸움에서 러시아 강경파들의 결정적인 승리를 의미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헬싱키에서 약속했던 관계의 재설정 대신 미국은 러시아와 전면적인 경제전쟁으로 나아가고 있다.
물론 푸틴 대통령과 러시아 국민이 어떻게 반응할지는 더 불확실하다. 러시아가 국제법을 위반할 때마다(예컨대 2014년 크림반도의 우크라이나 영토 합병 또는 2016년 미국 대선 개입) 미국과 유럽연합(EU)은 크렘린 정부에 대한 경제 제재 패키지를 발표했다. 그중 어느 것도 푸틴의 지지율을 약화시키거나 시리아·우크라이나 또는 국내 반체제 세력을 향한 러시아의 강경한 태도를 바꾸지 못했다.지금까지 푸틴 대통령은 경기침체를 외국의 적들 탓으로 돌리는 방법으로 제재에 맞섰다. 크렘린이 거의 완벽하게 통제하는 러시아 언론매체가 국내에서 강력하게 밀고 있는 논리다. 러시아 상원 국방위원회의 프란츠 클린체비치 위원은 최근 국영TV에서 이번 제재가 “러시아를 파멸시키려는 다각적인 글로벌 음모”의 일환이라고 비난했다. 크렘린이 통제하는 관영 미디어는 경제 제재를 가리켜 아무 효과도 없고 러시아보다 서방에 더 큰 타격을 준다고 평가절하했다.
푸틴 대통령은 의회가 제안한 미국안전보호법안을 가리켜 “상스러운” “모든 이성적인 한계를 벗어난” “국제법의 관점에서 전적으로 불법적”이라며 공격했다. 그는 러시아의 보복이 있을 것이라고 공언했다. “우리가 언제 어떤 대책을 내놓을지는 미국 상원에서 논의 중인 그 법 초안의 최종 버전에 달렸다.”
9월 12일의 제재조치가 발표된 이후 러시아 고위 관료들은 미국의 “히스테리”를 비난하며 러시아는 도움 없이 혼자 살아갈 만큼 강하다고 공언했다. 러시아 하원의 세르게이 젤렌즈니야크 부의장은 “우리 전자제품은 미국제보다 훨씬 고급”이라고 러시아 TV에 말했다.
실상 러시아에서 만들어지는 국제적 브랜드의 전화나 컴퓨터는 하나도 없다. 러시아가 생산하는 유일한 비행기인 수호이 슈퍼젯은 프랑스 항공전자기기와 엔진에 의존한다. 러시아의 최대 수출품은 연방수입의 52% 가까이 그리고 총수출의 70%를 차지하는 석유와 가스다. 그리고 무기·철강·알루미늄이 나머지 대부분을 차지한다.러시아 상원인 연방회의는 러시아제 로켓 부스터(현재 미국 항공우주국이 국제우주정거장으로의 보급품 공급에 사용)의 대미 수출 금지가 포함될 수 있는 상당수 반제재 조치의 초안을 작성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세르게이 랴브코프 러시아 외교부 차관은 러시아 국영 TV에서 러시아가 가진 힘의 이른바 “정보 구성요소”를 동원해 미국에 보복하겠다고 엄포를 놓았다. 러시아 해커들이 미국 정치에 또다시 개입하도록 하겠다는 신호인 듯하다. 대담프로 진행자가 더 구체적으로 말해달라고 다그치자 랴브코프 차관은 “우리 방식이 통할 것이다. 효과가 있을 것으로 확신한다”는 수수께끼 같은 말을 덧붙였다.
크렘린 정부는 제재의 영향을 과소평가하지만 워싱턴 정부는 “의심할 바 없이 그럴 의향만 있다면 러시아 경제의 숨통을 조일 힘이 있다”고 오바마 정부의 전 고위 관료는 말했다. “문제는 그 결과가 실질적으로 미국에 득이 되느냐는 점이다.”유가하락과 서방제재가 맞물려 러시아 주요 기업들의 가치가 급락했다. 2008년 8월 러시아의 국유 에너지 대기업 가즈프롬의 시가총액은 2610억 달러였다(애플은 1310억 달러). 10년 이 지난 지금 에너지 가격 하락과 미국·EU 제재 압박으로 가즈프롬의 시가총액은 520억 달러로 급감했다. 반면 애플은 세계 최초로 시가 총액 1조 달러 기업으로 올라섰다.
워싱턴 D.C.에 자리 잡은 비정부 기구 자유 러시아 재단의 일리야 자슬라브스키 연구팀장은 “러시아 일반 국민의 삶의 질과 경제력이 분명 저하됐다”고 말했다. 반면 러시아 올리가르히(신흥재벌)의 재산은 대체로 변화가 없었다. 그는 “개인적 제재 표적이 된 푸틴의 심복들은 해외계좌에 여전히 많은 돈을 갖고 있다”며 “그들은 위협을 느낄 뿐 타격을 입지는 않았다”고 말했다.
지금껏 푸틴은 크렘린의 프로파간다 조직을 등에 업고 2014년 이후 루블화 가치의 55% 하락뿐 아니라 물가상승을 견뎌낼 수 있었다. 지난 8월 말 그의 지지율은 변함없이 80%대를 지켰다(하지만 경기침체로 인한 연금개혁이 국민적인 저항을 받으면서 지지율 하락 위험성이 커졌다). 같은 달 퓨리서치센터가 실시한 여론조사에선 러시아인의 47%는 제재조치가 지금까지 경제에 “심각한” 영향을 미쳤다고 본 반면 58%는 국제문제를 다루는 푸틴 대통령의 능력에 대한 “강한 믿음”을 나타냈다.그러나 미국의 새로운 제재는 러시아를 유례 없는 방식으로 세계경제로부터 고립시켜 지금까지와는 상황이 달라질 수 있다. 미국 의회가 러시아 국영에너지 대기업들의 해외 사업을 표적으로 삼으려 한다면 노드 스크림 2 파이프라인의 미래는 불투명해진다. 이 파이프라인은 러시아의 가스 대기업 가즈프롬 그리고 프랑스·오스트리아·영국-네덜란드·독일 전력 대기업 간의 수십억 달러 규모 제휴사업이다. 우크라이나를 통과하는 현재의 수송루트를 우회해 발트해 해저를 통해 550억㎥의 천연가스를 유럽으로 공급하도록 설계된 파이프라인이다.
EU도 예의 주시한다. 지난 8월 초 러시아 본토와 크림반도의 합병된 영토를 연결하는 거대한 교량 건설에 참여한 6개 러시아 건설업체에 제재를 부과했다. EU가 미국의 뒤를 따라 가령 가즈프롬에 가혹한 제재를 부과한다면 노드 스트림 2는 침몰하고 말 것이다.
EU는 스크리팔의 독살 기도로 고도의 경계 태세에 돌입한 상태다. 지난 9월 초 영국 정부는 러시아 군사정보국 GRU 요원으로 확인된 러시아 국민 2명을 기소하기에 충분한 증거를 경찰이 수집했다고 발표했다. 전 스파이 스크리팔과 그의 딸에 대한 살인 미수뿐 아니라 화학무기법 위반 혐의다. 독살기도 후 곧바로 러시아로 귀국한 용의자 2명은 자신들은 스포츠 영양학자라고 주장한다(러시아 외교부 대변인 마리아 자카로바는 그들의 이름은 “우리에게 아무 의미도 없다”고 답했다). 러시아 헌법에선 자국민의 해외 인도를 금하기 때문에 용의자들이 영국 재판정에 서게 될 가능성은 거의 없다. 1999년 집권 초부터 푸틴 대통령의 권력은 적대적인 서방에 맞서 자국의 이익을 수호하는 스트롱맨 이미지를 바탕으로 했다. 재야 정치 단체 ‘우파연합(Union of Right Forces)’의 레오니드 고즈만 회장은 “푸틴은 모든 러시아인에게 위대한 나라의 국민이라는 긍지를 심어줬다”고 말했다. “문제는 이런 자화상이 허황된 세계관에 근거했다는 점이다. 우리는 우크라이나에서 ‘적들’ ‘파시스트들’, ‘우리를 무릎 꿇게 만들려는’ 미국에 에워싸여 있다. 그것은 전 세계에 대한 증오에 근거로 한다. 그들에겐 모두가 적이다.”
바로 그런 핵심 이데올로기 때문에 미국 정책입안자 입장에선 제재가 까다로운 도박이 된다. 푸틴 대통령의 술수에 넘어가기 때문이다. 미국과 EU의 압박이 가혹할수록 그의 신화는 더 굳건해진다.
4년 전 오바마 정부가 발동한 초창기 제재의 수립자 중 일부는 푸틴 대통령과 가까운 올리가르히 집단의 자산을 추적하면 정책변화를 강제할 수 있다고 믿었다. 천만의 말씀이었다. 그러나 당시의 제재는 수십 명의 지명된 개인만 표적으로 했다. 러시아 지배계급 전체에 제재를 적용한다면 변화를 가져올 수 있을까?
모스크바의 독립적인 인터넷 기반 도즈드 TV의 평론가 콘스탄틴 본 에거트는 “옛 소련 공산당 정치국과 달리 오늘날의 지배계급은 러시아를 지배할 뿐 아니라 소유하기도 한다”고 말했다. “그들은 외부 세계에 석유·가스·금·금속을 팔아 살아가기 때문에 글로벌 경제와 불가분의 관계에 있다. 그들 가족과 아이들은 마이애미의 펜트하우스, 전용기, 페라리, 영국 셀프리지 백화점에서의 쇼핑 없이는 살 수 없다.” 옛 공산당 정치국은 “미국의 압력에 훨씬 덜 취약했다”고 그는 덧붙인다.
현대의 러시아 중산층은 인터넷과 해외 여행을 통해 넓은 세계와 더 밀접하게 연결됐다. 그런 점에서 러시아 보통사람들의 여행, 인터넷 접근 또는 해외자산 소유를 제한함으로써 통제를 강화하려는 크렘린 정부의 최근 시도는 정치적으로 훨씬 더 큰 위험이 따른다. 열쇠는 얼마나 기다릴 수 있느냐다.
푸틴 대통령과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터키 대통령에 대한 미국의 최근 조치가 보여주듯이 제재는 단기적으로 독재자를 띄워주는 경향을 띤다. 하지만 장기적으로 체제를 약화시킬 확률이 높다. 숨막히게 하는 경제제재를 해제하는 대가로 이란 측이 핵프로그램을 폐기하기로 했을 때가 단적인 예다(이 협정은 그 뒤 트럼프 대통령에 폐기됐다).
에거스 평론가는 미국이 우위에 있다고 본다. “제재 전쟁은 장거리 경주와 같다”고 그는 말한다. “누구든지 객관적으로 더 힘 세고 참을성 있는 쪽이 이기게 마련이다. 어떻게 보든 미국이 그런 쪽이다.” 물론 참을성 면에서는 푸틴 대통령은 달인의 경지에 있음을 입증했다. 더 결정적인 문제는 따로 있을지 모른다. 미국 의회와 정부가 미국 역사상 가장 참을성 없는 대통령에 맞서 러시아에 대한 강경노선을 유지할 수 있을까?
- 오웬 매튜스 뉴스위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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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미국 정부가 그 어느 때보다 강력한 경제제재를 러시아에 가하겠다는 다짐을 이행할 경우 그런 자신감이 앞으로 몇 달 동안 상당한 테스트를 받게 될 듯하다. 3개의 경제제재 부과 노력이 별도로 진행 중이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9월 12일 미국 선거개입을 “국가적 비상사태”로 선포하고 외국 기업·기관·개인의 개입에 대한 제재를 승인하는 행정명령에 서명했다. 국가정보국이 잠재적인 개입을 평가하는 임무를 맡는다. 이 행정명령의 대상이 러시아만은 아니지만(미국 정부는 중국·이란·북한도 주의해야 한다고 밝혔다) 현재 로버트 뮬러 특별검사가 조사 중인 2016년 미국 대선 중 러시아의 해킹 의혹이 직접적인 원인이 됐다.트럼프 대통령의 행정명령은 의회에 선수를 치려는 시도였다. 의회는 같은 날 러시아 선거개입에 더 가혹하고 통렬한 처벌을 가하려는 법안의 1단계를 통과시켰다. 푸틴 대통령을 향한 트럼프 대통령의 충정은 놀라웠다. 단적인 예로 지난 7월 핀란드 헬싱키에서의 정상회담에선 선거에 개입하지 않았다는 푸틴 대통령의 말을 휘하 정보기관들이 만장일치로 내린 결론보다 더 신뢰하는 듯했다. 지난해 의회에서 통과된 이전 제재 법안의 집행에도 늑장을 부렸다.
그러나 의회와 트럼프 정부 내에서 대 러시아 강경노선이 폭넓은 지지를 얻자 트럼프 대통령도 대세를 따르지 않을 수 없었다. 존 볼턴 국가안보보좌관은 트럼프 대통령의 행정명령에 관해 “우리는 대통령이 이 문제를 지휘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게 중요하다고 여겼다”고 말했다.
의회에서 검토 중인 조치(일명 ‘크렘린 공격으로부터 미국의 안전 보호법’)는 러시아를 사실상 세계경제와 차단함으로써 그들의 추가적인 선거 개입을 저지하려는 취지다. 그 방안은 주요 러시아 은행들의 자본시장 접근 금지, 러시아 가스·석유 회사들의 해외 자산 동결뿐 아니라 러시아 봇넷과 그것을 운영하는 기업의 폐쇄 등으로 이뤄진다. 아울러 푸틴 대통령과 러시아 지배계급 구성원의 개인 자산에 대한 조사도 실시된다.
그 법안은 러시아에 “전술핵무기”보다 더 큰 타격을 줄 것이라고 그 법안의 많은 공화당 지지자 중 한 명인 밥 코커 상원 외교위 위원장(테네시)이 지난 8월 20일 기자들에게 말했다. 헬싱키 회담에서 푸틴 대통령에 대한 트럼프 대통령의 친밀한 태도를 가리켜 “그의 대통령 임기 중 가장 중대한 실수”로 평한 뉴트 깅리치 전 하원의장도 그 법안의 또 다른 공화당 지지자다.2014~2016년 대 러시아 제재 초안 작성에 직접 관여했던 오바마 정부의 한 고위 관료는 익명을 조건으로 “이제 새로운 국면으로 접어들고 있다”고 말했다. “원래는 러시아 경제가 글로벌 경제에 얼마나 긴밀하게 얽혔는지 (푸틴 대통령에게) 보여주려는 의도였지 러시아 경제를 봉쇄하려는 건 아니었다. 우크라이나에 대한 러시아의 추가 침략을 중단시키려는 취지였다.” 그러나 4년이 지난 지금 워싱턴 정계의 공기가 바뀌었다.“(2016년 대선) 해킹 이후 ‘러시아를 최대한 응징하라. 나사를 끝까지 조여라’는 분위기가 팽배해졌다.”
의회의 조치와 평행을 이루는 제3의 제재는 미국 재무부와 국무부가 지난 8월 22일 발동한 조치다. 지난 3월 잉글랜드 솔즈베리에서 전 스파이 세르게이 스크리팔을 포함해 4명에 대한 신경 가스 독살 기도에 대한 대응이었다. “국제법을 어기고 화학 또는 생물학 무기를 사용한” 모든 나라에 대해 미국 대통령이 조치를 취하도록 한 미국법(1991년 제정) 위반이 그 근거였다. 이 조치에 따라 러시아는 90일 내에 비밀 화학무기 시설에 대한 국제사찰을 허용하지 않을 경우 더 가혹한 처벌을 받아야 한다. 사실상 미국은 러시아를 북한·이란과 함께 화학무기 테러 후원국가로 낙인 찍는 절차를 밟고 있다.결과적으로 러시아는 초고속 컴퓨터, 최첨단 석유탐사 장비와 레이저 같은 미국의 첨단기술 제품을 더 이상 받을 수 없다. 이 조치는 러시아 경제의 최대 급소인 석유시추와 군수산업을 공격하려는 의도다.
러시아는 사찰 허용 방안을 묵살했다. 따라서 11월이 오면 미국 재무부가 나사를 더욱 세게 조일 것으로 예상된다. 서방에서 영업하는 러시아 은행과 기업에 대한 이란 식 제재가 포함될 수 있다. 그게 전부가 아니다. 의회와 재무부에서 추가 조치를 고려 중이다. 외국인 투자자 지분이 3분의 1에 달하는 국내외 러시아 국채에 대한 제재 그리고 러시아 관료들의 해외 자금에 대한 전면적인 조사 등이다. 그 뒤 앞선 제재에서 몇몇 푸틴 측근들에게 부과된 자산 동결과 비자 발급 중단이 훨씬 더 광범위하게 실시된다. 선술집 ‘제재’의 문을 다시 열 때가 됐는지도 모른다.
‘러시아를 망하게 하려는 글로벌 음모’
하지만 트럼프 대통령은 여전히 푸틴을 직접적으로 비판하려 들지 않는다. 그가 헬싱키에서 푸틴 대통령을 향해 드러냈던 친밀감은 로버트 뮬러 특별검사 그리고 트럼프 선거진영과 러시아 간 내통 의혹과 관련된 지속적인 조사에 대한 반감에서 비롯됐을 수 있다. 트럼프의 대통령 임기 첫 200일 거의 내내 “미국의 러시아 정책은 사실상 트럼프와 의회 2개 노선이 별도로 존재했다”고 러시아과학아카데미 산하 싱크탱크인 미국·캐나다학 연구소의 블라디미르 바실리예프는 말했다. “하나는 타협적이고 건설적이며 다른 하나는 적대적인 건 분명하다.”따라서 지난 9월 12일 트럼프 대통령의 행정명령 서명은 대통령과의 기싸움에서 러시아 강경파들의 결정적인 승리를 의미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헬싱키에서 약속했던 관계의 재설정 대신 미국은 러시아와 전면적인 경제전쟁으로 나아가고 있다.
물론 푸틴 대통령과 러시아 국민이 어떻게 반응할지는 더 불확실하다. 러시아가 국제법을 위반할 때마다(예컨대 2014년 크림반도의 우크라이나 영토 합병 또는 2016년 미국 대선 개입) 미국과 유럽연합(EU)은 크렘린 정부에 대한 경제 제재 패키지를 발표했다. 그중 어느 것도 푸틴의 지지율을 약화시키거나 시리아·우크라이나 또는 국내 반체제 세력을 향한 러시아의 강경한 태도를 바꾸지 못했다.지금까지 푸틴 대통령은 경기침체를 외국의 적들 탓으로 돌리는 방법으로 제재에 맞섰다. 크렘린이 거의 완벽하게 통제하는 러시아 언론매체가 국내에서 강력하게 밀고 있는 논리다. 러시아 상원 국방위원회의 프란츠 클린체비치 위원은 최근 국영TV에서 이번 제재가 “러시아를 파멸시키려는 다각적인 글로벌 음모”의 일환이라고 비난했다. 크렘린이 통제하는 관영 미디어는 경제 제재를 가리켜 아무 효과도 없고 러시아보다 서방에 더 큰 타격을 준다고 평가절하했다.
푸틴 대통령은 의회가 제안한 미국안전보호법안을 가리켜 “상스러운” “모든 이성적인 한계를 벗어난” “국제법의 관점에서 전적으로 불법적”이라며 공격했다. 그는 러시아의 보복이 있을 것이라고 공언했다. “우리가 언제 어떤 대책을 내놓을지는 미국 상원에서 논의 중인 그 법 초안의 최종 버전에 달렸다.”
9월 12일의 제재조치가 발표된 이후 러시아 고위 관료들은 미국의 “히스테리”를 비난하며 러시아는 도움 없이 혼자 살아갈 만큼 강하다고 공언했다. 러시아 하원의 세르게이 젤렌즈니야크 부의장은 “우리 전자제품은 미국제보다 훨씬 고급”이라고 러시아 TV에 말했다.
실상 러시아에서 만들어지는 국제적 브랜드의 전화나 컴퓨터는 하나도 없다. 러시아가 생산하는 유일한 비행기인 수호이 슈퍼젯은 프랑스 항공전자기기와 엔진에 의존한다. 러시아의 최대 수출품은 연방수입의 52% 가까이 그리고 총수출의 70%를 차지하는 석유와 가스다. 그리고 무기·철강·알루미늄이 나머지 대부분을 차지한다.러시아 상원인 연방회의는 러시아제 로켓 부스터(현재 미국 항공우주국이 국제우주정거장으로의 보급품 공급에 사용)의 대미 수출 금지가 포함될 수 있는 상당수 반제재 조치의 초안을 작성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세르게이 랴브코프 러시아 외교부 차관은 러시아 국영 TV에서 러시아가 가진 힘의 이른바 “정보 구성요소”를 동원해 미국에 보복하겠다고 엄포를 놓았다. 러시아 해커들이 미국 정치에 또다시 개입하도록 하겠다는 신호인 듯하다. 대담프로 진행자가 더 구체적으로 말해달라고 다그치자 랴브코프 차관은 “우리 방식이 통할 것이다. 효과가 있을 것으로 확신한다”는 수수께끼 같은 말을 덧붙였다.
크렘린 정부는 제재의 영향을 과소평가하지만 워싱턴 정부는 “의심할 바 없이 그럴 의향만 있다면 러시아 경제의 숨통을 조일 힘이 있다”고 오바마 정부의 전 고위 관료는 말했다. “문제는 그 결과가 실질적으로 미국에 득이 되느냐는 점이다.”유가하락과 서방제재가 맞물려 러시아 주요 기업들의 가치가 급락했다. 2008년 8월 러시아의 국유 에너지 대기업 가즈프롬의 시가총액은 2610억 달러였다(애플은 1310억 달러). 10년 이 지난 지금 에너지 가격 하락과 미국·EU 제재 압박으로 가즈프롬의 시가총액은 520억 달러로 급감했다. 반면 애플은 세계 최초로 시가 총액 1조 달러 기업으로 올라섰다.
워싱턴 D.C.에 자리 잡은 비정부 기구 자유 러시아 재단의 일리야 자슬라브스키 연구팀장은 “러시아 일반 국민의 삶의 질과 경제력이 분명 저하됐다”고 말했다. 반면 러시아 올리가르히(신흥재벌)의 재산은 대체로 변화가 없었다. 그는 “개인적 제재 표적이 된 푸틴의 심복들은 해외계좌에 여전히 많은 돈을 갖고 있다”며 “그들은 위협을 느낄 뿐 타격을 입지는 않았다”고 말했다.
지금껏 푸틴은 크렘린의 프로파간다 조직을 등에 업고 2014년 이후 루블화 가치의 55% 하락뿐 아니라 물가상승을 견뎌낼 수 있었다. 지난 8월 말 그의 지지율은 변함없이 80%대를 지켰다(하지만 경기침체로 인한 연금개혁이 국민적인 저항을 받으면서 지지율 하락 위험성이 커졌다). 같은 달 퓨리서치센터가 실시한 여론조사에선 러시아인의 47%는 제재조치가 지금까지 경제에 “심각한” 영향을 미쳤다고 본 반면 58%는 국제문제를 다루는 푸틴 대통령의 능력에 대한 “강한 믿음”을 나타냈다.그러나 미국의 새로운 제재는 러시아를 유례 없는 방식으로 세계경제로부터 고립시켜 지금까지와는 상황이 달라질 수 있다. 미국 의회가 러시아 국영에너지 대기업들의 해외 사업을 표적으로 삼으려 한다면 노드 스크림 2 파이프라인의 미래는 불투명해진다. 이 파이프라인은 러시아의 가스 대기업 가즈프롬 그리고 프랑스·오스트리아·영국-네덜란드·독일 전력 대기업 간의 수십억 달러 규모 제휴사업이다. 우크라이나를 통과하는 현재의 수송루트를 우회해 발트해 해저를 통해 550억㎥의 천연가스를 유럽으로 공급하도록 설계된 파이프라인이다.
EU도 예의 주시한다. 지난 8월 초 러시아 본토와 크림반도의 합병된 영토를 연결하는 거대한 교량 건설에 참여한 6개 러시아 건설업체에 제재를 부과했다. EU가 미국의 뒤를 따라 가령 가즈프롬에 가혹한 제재를 부과한다면 노드 스트림 2는 침몰하고 말 것이다.
EU는 스크리팔의 독살 기도로 고도의 경계 태세에 돌입한 상태다. 지난 9월 초 영국 정부는 러시아 군사정보국 GRU 요원으로 확인된 러시아 국민 2명을 기소하기에 충분한 증거를 경찰이 수집했다고 발표했다. 전 스파이 스크리팔과 그의 딸에 대한 살인 미수뿐 아니라 화학무기법 위반 혐의다. 독살기도 후 곧바로 러시아로 귀국한 용의자 2명은 자신들은 스포츠 영양학자라고 주장한다(러시아 외교부 대변인 마리아 자카로바는 그들의 이름은 “우리에게 아무 의미도 없다”고 답했다). 러시아 헌법에선 자국민의 해외 인도를 금하기 때문에 용의자들이 영국 재판정에 서게 될 가능성은 거의 없다.
참고 기다리는 자가 승리한다
바로 그런 핵심 이데올로기 때문에 미국 정책입안자 입장에선 제재가 까다로운 도박이 된다. 푸틴 대통령의 술수에 넘어가기 때문이다. 미국과 EU의 압박이 가혹할수록 그의 신화는 더 굳건해진다.
4년 전 오바마 정부가 발동한 초창기 제재의 수립자 중 일부는 푸틴 대통령과 가까운 올리가르히 집단의 자산을 추적하면 정책변화를 강제할 수 있다고 믿었다. 천만의 말씀이었다. 그러나 당시의 제재는 수십 명의 지명된 개인만 표적으로 했다. 러시아 지배계급 전체에 제재를 적용한다면 변화를 가져올 수 있을까?
모스크바의 독립적인 인터넷 기반 도즈드 TV의 평론가 콘스탄틴 본 에거트는 “옛 소련 공산당 정치국과 달리 오늘날의 지배계급은 러시아를 지배할 뿐 아니라 소유하기도 한다”고 말했다. “그들은 외부 세계에 석유·가스·금·금속을 팔아 살아가기 때문에 글로벌 경제와 불가분의 관계에 있다. 그들 가족과 아이들은 마이애미의 펜트하우스, 전용기, 페라리, 영국 셀프리지 백화점에서의 쇼핑 없이는 살 수 없다.” 옛 공산당 정치국은 “미국의 압력에 훨씬 덜 취약했다”고 그는 덧붙인다.
현대의 러시아 중산층은 인터넷과 해외 여행을 통해 넓은 세계와 더 밀접하게 연결됐다. 그런 점에서 러시아 보통사람들의 여행, 인터넷 접근 또는 해외자산 소유를 제한함으로써 통제를 강화하려는 크렘린 정부의 최근 시도는 정치적으로 훨씬 더 큰 위험이 따른다. 열쇠는 얼마나 기다릴 수 있느냐다.
푸틴 대통령과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터키 대통령에 대한 미국의 최근 조치가 보여주듯이 제재는 단기적으로 독재자를 띄워주는 경향을 띤다. 하지만 장기적으로 체제를 약화시킬 확률이 높다. 숨막히게 하는 경제제재를 해제하는 대가로 이란 측이 핵프로그램을 폐기하기로 했을 때가 단적인 예다(이 협정은 그 뒤 트럼프 대통령에 폐기됐다).
에거스 평론가는 미국이 우위에 있다고 본다. “제재 전쟁은 장거리 경주와 같다”고 그는 말한다. “누구든지 객관적으로 더 힘 세고 참을성 있는 쪽이 이기게 마련이다. 어떻게 보든 미국이 그런 쪽이다.” 물론 참을성 면에서는 푸틴 대통령은 달인의 경지에 있음을 입증했다. 더 결정적인 문제는 따로 있을지 모른다. 미국 의회와 정부가 미국 역사상 가장 참을성 없는 대통령에 맞서 러시아에 대한 강경노선을 유지할 수 있을까?
- 오웬 매튜스 뉴스위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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