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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구 줄어도 기후변화 막을 수 없다”

“인구 줄어도 기후변화 막을 수 없다”

출산율 떨어져도 일인당 소비 계속 증가할 수밖에 없어 탄소 발자국 줄이기 어려워
지난해 유엔은 2100년이 되면 세계 인구가 110억 명을 넘어설 것이라고 전망했다. / 사진:GETTY IMAGES BANK
20세기 동안 세계 인구는 초기하급수적으로 늘었다. 인구가 무섭게 팽창하면서 재앙을 경고하는 메시지가 쏟아졌다. 대표적인 예가 1968년 폴 에를리히 미국 스탠퍼드대학 교수가 쓴 책 ‘인구 폭탄(The Population Bomb)’이었다. 인구 감소 조치의 즉각적인 시행이 없으면 1970~80년대 들어 인구 증가가 식량 생산을 앞지르면서 집단으로 굶어 죽는 사태가 발생할 것이라는 섬뜩한 경고였다. 그러나 맬서스 인구론적 재앙이라는 이런 끔찍한 예측은 다행히도 녹색혁명 덕분에 실현되지 않았다. 인구가 늘어도 식량 생산이 충분히 감당할 수 있었다는 뜻이다.

인구 증가의 주된 요인은 사망률과 출생률이지만 초기의 인구 규모도 그 못지않게 중요하다. 의학의 기적으로 수명이 연장되는 동시에 산아제한과 가족계획으로 출산율은 떨어졌다. 그러나 출산율 하락의 주요 요인은 여성의 교육과 지위 향상이었다.

이처럼 인구 증가율이 낮아져도 초기 인구 규모 때문에 전체 인구는 계속 늘고 있다. 이를 흔히 ‘인구 모멘텀’이라 부른다. 지금까지의 인구 규모가 컸기 때문에 출산율이 하락한 후에도 상당 기간 인구가 지속적으로 증가하는 경향을 가리킨다. 지난해 유엔은 2100년이 되면 세계 인구가 110억 명을 넘어설 것이라고 전망했다.

유엔은 21세기 하반기가 되면 세계 인구의 거의 70%는 인구대체 수준(일정 인구를 유지하는 데 필요한 출산율로 선진국의 경우 여성 1명 당 2.1명으로 정의된다) 아래의 출산율을 나타낼 것으로 예상한다. 그럼에도 인구 감축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꾸준히 나온다. 최근엔 지구온난화를 완화하기 위해 유엔 산하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 간 협의체(IPCC)’가 제시한 온실가스 배출 감축 목표의 맥락에서 그런 촉구가 나왔다. ‘인구 기후 폭탄(Population Climate Bomb)’이라고 할 만하다.

인구 증가가 기후변화에 중대한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인구 감축이 필요하다는 이런 경고는 기후변화와 관련해 현재의 상태를 불러온 여러 가지 중요한 요인을 무시한 결과에서 비롯됐다. 무엇보다 인구가 기후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임의적인 설명이 문제다. 온실가스 배출이 상품과 서비스 속에 숨겨진 채 세계 곳곳으로 이동하는 글로벌 무역 네트워크를 고려하지 않았다는 뜻이다.학력과 지위가 향상된 여성의 출산율 하락도 의도치 않았던 일인당 소비의 증가와 관련 있을지 모른다. 게다가 환경 발자국을 늘리지 않고서 인간개발지수(삶의 질)를 향상하는 방법을 우리는 아직 찾지 못해 추가적인 부작용도 생긴다. 모든 선진국은 환경 발자국이 상당히 크다. 그뿐이 아니라 어떤 개도국도 일인당 소비를 늘리지 않고선 더 높은 생활수준에 도달할 방법이 없다.

출산율 줄어도 일인당 소비는 계속 증가할 수밖에 없다. / 사진:GETTY IMAGES BANK
IPCC는 기후변화와 지구온난화의 동인으로서 인구적 요인을 무시한다는 비난을 자주 받는다. 당연히 인구 추이 예상은 온실가스 배출, 기후변화의 완화와 적응에 관한 미래 시나리오를 도출하기 위한 계산의 중요한 일부분이다. 하지만 일각에선 반드시 인구를 줄여야 온실가스 배출을 더 효과적으로 감소시킬 수 있다고 좀 더 명확하게 언급하기를 원한다.

가장 최근의 예가 미국 뉴욕 소재 비영리기관 인구위원회(Population Council)의 존 본가르츠 박사와 미국 국립기상연구소(NCAR)의 브라이언 오닐 박사가 발표한 논문이다. 그들은 ‘지구온난화 정책: 인구가 무시되는가?’라는 제목의 논문에서 지구온난화 대책에서 인구적인 요인이 완전히 논외로 취급됐다고 개탄했다. 그들은 전반적인 IPCC 기후 평가의 중요한 일부분으로서 인구 문제가 반드시 포함돼야 한다는 주장을 다방면에서 정당화한 듯하다. 그러나 인간의 소비 패턴이 줄어들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는 중요한 사실을 그들은 고려하지 않았다. 개도국에서든 선진국에서든 소비가 늘어나는 상황은 결코 다르지 않다.

논문 저자들은 인구에 관한 네 가지 중요한 오해를 거론했다.

* 인구 증가가 더는 문제되지 않는다는 학계의 주장과 관련해 그들은 사하라 사막 이남의 아프리카 지역에선 출산율이 여전히 높다고 지적한다.

* 그들은 방글라데시가 파키스탄과 달리 인구 증가율을 낮추는 데 성공했다는 사례를 들어 인구 정책이 효과적이지 않다는 주장이 잘못됐다고 주장한다.

* 그들은 인구 감소로 온실가스 배출을 40% 이상 줄일 수 있다는 연구 결과를 인용하며 인구가 기후에 큰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는 주장을 일축한다.

* 인구 정책이 너무 논란을 많이 불러 성공할 수 없다는 주장을 두고 그들은 한걸음 더 나아가 개도국의 인구 증가가 기후와 경제발전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뿐 아니라 국제사회에서 인간의 복지를 증진시키는 정책 수단을 박탈한다고 주장한다.

이런 사고의 흐름을 살펴보면 몇 가지 중요한 현실이 반영되지 않았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인구 증가가 천연자원과 에너지원, 모든 동식물 종의 서식지, 토지사용 변화에 엄청난 부담을 주는 것은 부인할 수 없다. 그러나 다음과 같은 사실이 인구 문제를 생각보다 훨씬 더 복잡하게 만든다.

일부 예외가 있지만 세계 전체의 출산율이 계속 낮아진다. 물론 거기서 예외를 만드는 사회정치적인 요인을 해결하는 것도 중요하다. 그러나 학력과 지위가 향상된 여성이 자녀를 적게 갖는 주된 동기를 생각해보라. 자녀 각각에게 더 많은 인적·물적 투자를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자녀에게 더 많은 자원을 제공하기 위해 자녀를 적게 갖는다는 것은 전혀 문제가 될 게 없어 보인다. 그러나 바로 무해하게 보이는 계산이 곧바로 부작용을 불렀다. 각각의 자녀에게 더 많이 투자하면 일인당 소비가 늘어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일인당 소비는 출산율과 달리 세계 어디서든 하락세를 보이지 않는다. 중국과 인도(일인당 온실가스 배출이 각각 미국의 절반과 8분의 1에 불과하다) 같은 나라에서도 부유층의 일인당 소비는 미국과 비슷한 경향을 보인다. 따라서 그 평균치는 세계 전체의 소비 감소가 아니라 빈곤 수준을 나타낼 뿐이다.

소비 감축을 모든 인간 활동의 가장 중요한 목표로 삼지 않는다면 경제가 발전할수록 일인당 온실가스 배출은 증가할 수밖에 없다. 개도국이 놀라울 정도의 인구 감축에 성공한다고 해도 일인당 소비가 그보다 더 빨리 줄어들지 않으면 전체 온실가스 배출량은 감소하지 않을 것이다. 인구를 줄이면 온실가스 배출을 40% 감축할 수 있다는 계산은 현재 일인당 소비를 측정하는 방식에 커다란 허점이 있다는 사실을 고려하지 않은 결과다.

그 허점을 살펴보자. 선진국은 상품을 개도국에서 만들어 완성품을 수입한다. 온실가스 배출을 개도국으로 전가하는 것이다. 세계경제 구조가 그렇게 돼 있다. 세계 전체의 탄소 발자국 중 25%가 수입 상품 속에 숨어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이런 책임 전가는 결코 공정하지 않다. 토지사용 변화나 삼림 파괴의 책임을 인구에 전가하는 것이 공정하지 않은 것과 마찬가지다.

곡물과 과일·채소, 목재, 바이오연료 등의 거래는 세계 전체를 아우르는 복잡한 네트워크로 이뤄진다. 그 안에서 개도국은 경제적 생존과 성장을 위해 물과 토지, 삼림을 파괴한다. 반면 선진국은 상품과 서비스를 개도국에서 수입함으로써 삶의 질을 높이면서 온실가스 배출과 오염을 줄인다고 자랑한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지속적인 산아제한과 가족계획의 가치가 줄어드는 건 아니다. 그러나 의도치 않은 결과를 무시해선 안 된다. 중국의 ‘한자녀 정책’ 폐지가 전형적인 예다(중국은 1978년부터 인구 팽창을 막기 위해 1가구 1자녀 정책을 강제 실시했지만 이 정책으로 인구 고령화가 지속되고 노동인구가 감소하는 문제가 발생하자 2016년 자녀를 두 명까지 낳을 수 있도록 하는 ‘두 자녀 정책’을 도입했다). 한편 여러 개도국의 인구 연령 구조 측면에선 그나마 좋은 소식이 들린다.

선진국은 인구 고령화가 심각한 문제다. 인구 모형이 아래쪽의 젊은 층은 좁고 위로 갈수록 넓어지면서 각 연령층의 규모가 비슷한 형태가 된다. 침체된 출산율로 인해 인구 고령화가 가속화되는 일본이 대표적인 예다. 그와 달리 개도국은 25세 미만이 인구의 넓은 기저층을 이루는 피라미드형 연령 구조를 보인다. 따라서 여성의 학력과 지위를 높일 수 있는 좋은 기회를 제공한다. 여성의 교육과 지위 향상만큼 효과적인 피임 수단은 없는 것으로 입증됐다.

기후변화 적응과 완화 시나리오를 포함하는 IPCC의 기후 평가는 상품 생산에서 에너지 사용을 줄이고 탄소 발자국을 감축하는 데 초점을 맞춤으로써 더 효과적일 수 있다. 인구는 스스로 해결되는 문제다. 고에너지 생활방식을 원하는 우리의 욕구는 줄어들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 따라서 우리의 모든 역량을 탄소 중립적인 인간으로 진화하는 데 초점을 맞추는 것이 가장 바람직한 해결책이다. 그러면 세계는 자연적으로 건강한 인구 수준에 도달하게 될 것이다.

- 라구 무르투구데



※ [필자는 미국 메릴린드대학 대기해양과학·지구시스템과학 교수이며 현재 인도 뭄바이의 IIT에 교환교수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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