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의 인터폴 적색수배 남발 막아라”
“러시아의 인터폴 적색수배 남발 막아라”
반체제 인사 · 환경운동가만이 아니라 대유럽 영향력 확대의 걸림돌 제거에도 국제 체포영장 이용해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오랫동안 주요 국제기구에서 자신이 가진 영향력을 동원해 러시아의 팽창주의를 추구했다. 그런 기구로서 대표적인 예가 유엔이다. 푸틴 대통령은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에서 러시아가 가진 거부권을 최대한 활용해 시리아 내전을 뜻대로 조종할 수 있었다. 또 다른 예는 화학무기금지기구(OPCW)다. 푸틴 대통령은 그 기구에서 가스 공격에 연루된 나라들에 책임을 물으려는 국제사회의 노력을 가로막았다.
하지만 푸틴 대통령이 그보다 더 큰 영향력을 발휘한다고 알려진 기구가 있다. 인터폴이다. 모든 회원국이 상호 주권을 존중하면서 국제범죄의 방지와 진압에 협력하기 위해 설립한 세계 최대의 경찰 조직으로 정식 명칭은 ‘국제형사경찰기구(ICPO)’다. 러시아는 특히 정치적 반대세력을 탄압하기 위해 인터폴의 ‘적색수배’를 남발했다. 수배된 피의자를 세계 어느 인터폴 회원국에서든 체포할 수 있는 국제 영장을 가리킨다.
러시아의 적색수배 표적은 주로 반체제 인사나 환경운동가였다. 그러나 아무런 악의 없는 인물이 운 나쁘게 수배 표적이 되는 경우도 있다. 러시아 국영 에너지업체 가스프롬을 잘못 건드린 어느 헝가리 기업의 회장이 바로 그런 예다.지난 11월 21일 아랍에미리트 두바이에서 열린 제87차 인터폴 총회 도중 실시된 인터폴 총재 선거에서 한국 경기경찰청장 출신인 김종양 부총재가 후보로 나서 푸틴 대통령의 측근으로 가장 유력한 후보였던 알렉산드르 프로코프추크 부총재를 누르고 당선되자 자유세계가 모두 한마음으로 안도의 한숨을 내쉰 것도 바로 그 때문이었다. 미국과 영국을 비롯한 서방은 프로코프추크 후보가 인터폴 수장을 맡으면 푸틴 대통령의 정적 탄압 등에 인터폴이 악용될 위험성이 크다는 점 등을 들어 프로코프추크 후보 당선 저지 운동을 공개적으로 펼쳤다. 그에 따라 김 신임총재 선출을 ‘서방의 승리’라고 분석한 언론도 있다. 그렇다고 위협이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다. 프로코프추크는 비록 인터폴 총재선거에선 패했지만 여전히 부총재로서 막강한 영향력을 갖는다.
서방국가에선 인터폴 총재의 중요성이 오랫동안 과소평가됐다. 하지만 세계 최대 규모의 경찰 조직을 총재가 다른 이익을 도모할 목적으로 이용할 경우 회원국들이 큰 피해를 볼 수 있다. 러시아와 관련해선 특히 유럽연합(EU)이 취약하다. 러시아가 페이스북 조작으로 미국 선거에 개입해 민주주의를 손상했다는 의혹과 마찬가지 논리에서다.인터폴의 적색수배를 불순한 의도를 가진 세력이 남용하면 심각한 피해를 초래할 수 있다. 적색수배는 인터폴의 194개 회원국 중 어느 나라라도 요청할 수 있다. 그러나 러시아가 수배권을 가장 심하게 남용하는 나라 중 하나다. 인터폴은 조직 내부의 독립적인 감사도 없고, 견제와 균형의 장치도 없으며, 외부의 감독기관도 없다. 인터폴은 완전 자치기구다. 또 적색수배의 3%만이 실행 전 철저히 검토된다. 그렇다고 해도 회원국이 원칙을 철저히 따른다면 문제는 없다.
그러나 인터폴은 상당 기간 정치적인 도구로 이용됐다. 인터폴은 그처럼 막강하면서도 불투명한 조직이기에 개혁이 더욱 시급하다. 김 신임총재가 즉시 개혁에 나서지 않는다면 인터폴은 이전과 다를 바 없는 불행한 기구로 남게 될 것이다.
인터폴이 정치적 도구로 이용된 가장 최근의 사례가 헝가리 에너지회사 MOL의 졸트 헤르나디 회장이다. 헤르나디 회장 사건을 두고 인터폴이 입장을 번복한 것은 거의 코미디 수준이었지만 그 배경엔 EU로 영향력을 확대하려는 러시아의 전략적 팽창주의가 자리 잡고 있었다.
2013년 MOL은 크로아티아 국영 에너지기업 INA의 지분 인수를 두고 가스프롬과 경쟁했다. 결국 MOL이 가스프롬을 누르고 승리했다. 그러자 헤르나디 회장이 크로아티아 전 총리에게 뇌물을 건넸다는 혐의가 불거지면서 크로아티아의 요청으로 그에 대한 인터폴의 적색수배가 내려졌다. 그 배경에는 가스프롬이 INA 지분 인수에 실패하면서 EU 회원국 중 하나에서 에너지 부문을 장악해 러시아의 대유럽 영향력을 넓혀 가겠다는 푸틴 대통령의 비전이 좌절됐다는 사실이 자리 잡고 있다.그러나 2016년 헤르나디 회장이 적색수배 목록에서 삭제되면서 그의 결백이 입증된 듯했다. 1년 뒤 유엔 중재위원회가 그 사건을 조사한 뒤 부패 증거가 없다고 결론짓고 그에 대한 모든 혐의를 기각했다.
그러나 러시아가 집요하게 이의를 제기하며 크로아티아를 상대로 MOL과의 계약을 취소하도록 치열한 로비를 벌였다. MOL이 가진 INA 지분을 러시아 업체가 차지할 수 있는 기회를 얻도록 하기 위해서였다. MOL이 INA 지분을 되팔려 하지 않자 크렘린은 헤르나디 회장이 크로아티아 전 총리에게 뇌물을 주고 지분을 인수했다고 다시 주장하면서 계약 전체를 무효로 몰아갔다. 결국 지난 11월 말 헤르나디 회장은 인터폴 적색수배 대상에 다시 올랐다. 모순은 2016년 인터폴이 그를 수배 대상에서 제외했을 때와 똑같은 혐의가 적용됐다는 사실이다. 게다가 유엔 중재위원회가 그의 무혐의를 선언했는데도 말이다.이처럼 코미디 같은 사태 진전에서 크로아티아는 러시아의 제안에 솔깃한 듯 MOL에 매각한 지분을 되찾아 크로아티아 최대 에너지업체의 새로운 전략적 파트너를 찾고 싶다는 뜻을 밝혔다. 이 문제가 불거진 이래 알렉세이 밀러 가스프롬 회장이 크로아티아를 방문했고, 푸틴 대통령도 크로아티아 수도 자그레브의 시장에게 직접 훈장을 수여했다. 크로아티아 주재 러시아 대사는 “크로아티아를 위해 러시아는 미국과 EU가 합친 것보다 더 많은 일을 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제 헤르나디 회장은 인터폴 적색수배가 내려졌기 때문에 헝가리를 벗어나면 위험한 상황이다. 인터폴이 심사숙고 없이 승인한 러시아의 마피아식 행동이라고 할 수 있다.
메시지는 분명하다. 발칸 지역을 포함한 동유럽 전체가 러시아의 뒷마당이라는 것이다. 특히 에너지에 관한 한 이 지역에 대한 러시아의 영향력은 아주 막강하다. 헤르나디 회장 같은 투자자를 박해하는 행위가 EU 브랜드에 영구한 피해를 끼치는 것은 시간 문제일 뿐이다. 자칫하면 수년 동안 인터폴의 러시아 데스크를 통해 터무니없는 혐의를 뒤집어 쓸 수 있는 상황에서 누가 그런 위험을 무릅쓰고 그곳에 투자하거나 진출할 엄두를 내겠는가?
총재가 누구든 인터폴이 앞으로도 푸틴 대통령의 뜻을 따른다면 온전한 민주국가들은 인터폴 탈퇴를 고려해야 할 것이다. 아니면 러시아를 인터폴에서 쫓아내야 할지 모른다. G8이 G7으로 바뀌었듯이 말이다(‘선진국 모임’인 G7 회의는 원래 러시아를 포함해 G8으로 운영됐으나 러시아의 크림반도 강제 합병으로 2014년 러시아를 축출했다).
이런 제안을 너무 극단적인 조치라고 생각할지 모른다. 하지만 러시아가 EU의 에너지 안보를 무너뜨리는 침묵의 쿠데타 도모에 국제적인 법집행 기구인 인터폴을 이용한 것은 그보다 훨씬 더 사악한 행동이다.
- 캄란 보카리
※ [필자는 캐나다 오타와대학 전문개발연구소 소속으로 현재 워싱턴 D.C.에서 활동하는 국가안보·외교정책 전문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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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푸틴 대통령이 그보다 더 큰 영향력을 발휘한다고 알려진 기구가 있다. 인터폴이다. 모든 회원국이 상호 주권을 존중하면서 국제범죄의 방지와 진압에 협력하기 위해 설립한 세계 최대의 경찰 조직으로 정식 명칭은 ‘국제형사경찰기구(ICPO)’다. 러시아는 특히 정치적 반대세력을 탄압하기 위해 인터폴의 ‘적색수배’를 남발했다. 수배된 피의자를 세계 어느 인터폴 회원국에서든 체포할 수 있는 국제 영장을 가리킨다.
러시아의 적색수배 표적은 주로 반체제 인사나 환경운동가였다. 그러나 아무런 악의 없는 인물이 운 나쁘게 수배 표적이 되는 경우도 있다. 러시아 국영 에너지업체 가스프롬을 잘못 건드린 어느 헝가리 기업의 회장이 바로 그런 예다.지난 11월 21일 아랍에미리트 두바이에서 열린 제87차 인터폴 총회 도중 실시된 인터폴 총재 선거에서 한국 경기경찰청장 출신인 김종양 부총재가 후보로 나서 푸틴 대통령의 측근으로 가장 유력한 후보였던 알렉산드르 프로코프추크 부총재를 누르고 당선되자 자유세계가 모두 한마음으로 안도의 한숨을 내쉰 것도 바로 그 때문이었다. 미국과 영국을 비롯한 서방은 프로코프추크 후보가 인터폴 수장을 맡으면 푸틴 대통령의 정적 탄압 등에 인터폴이 악용될 위험성이 크다는 점 등을 들어 프로코프추크 후보 당선 저지 운동을 공개적으로 펼쳤다. 그에 따라 김 신임총재 선출을 ‘서방의 승리’라고 분석한 언론도 있다. 그렇다고 위협이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다. 프로코프추크는 비록 인터폴 총재선거에선 패했지만 여전히 부총재로서 막강한 영향력을 갖는다.
서방국가에선 인터폴 총재의 중요성이 오랫동안 과소평가됐다. 하지만 세계 최대 규모의 경찰 조직을 총재가 다른 이익을 도모할 목적으로 이용할 경우 회원국들이 큰 피해를 볼 수 있다. 러시아와 관련해선 특히 유럽연합(EU)이 취약하다. 러시아가 페이스북 조작으로 미국 선거에 개입해 민주주의를 손상했다는 의혹과 마찬가지 논리에서다.인터폴의 적색수배를 불순한 의도를 가진 세력이 남용하면 심각한 피해를 초래할 수 있다. 적색수배는 인터폴의 194개 회원국 중 어느 나라라도 요청할 수 있다. 그러나 러시아가 수배권을 가장 심하게 남용하는 나라 중 하나다. 인터폴은 조직 내부의 독립적인 감사도 없고, 견제와 균형의 장치도 없으며, 외부의 감독기관도 없다. 인터폴은 완전 자치기구다. 또 적색수배의 3%만이 실행 전 철저히 검토된다. 그렇다고 해도 회원국이 원칙을 철저히 따른다면 문제는 없다.
그러나 인터폴은 상당 기간 정치적인 도구로 이용됐다. 인터폴은 그처럼 막강하면서도 불투명한 조직이기에 개혁이 더욱 시급하다. 김 신임총재가 즉시 개혁에 나서지 않는다면 인터폴은 이전과 다를 바 없는 불행한 기구로 남게 될 것이다.
인터폴이 정치적 도구로 이용된 가장 최근의 사례가 헝가리 에너지회사 MOL의 졸트 헤르나디 회장이다. 헤르나디 회장 사건을 두고 인터폴이 입장을 번복한 것은 거의 코미디 수준이었지만 그 배경엔 EU로 영향력을 확대하려는 러시아의 전략적 팽창주의가 자리 잡고 있었다.
2013년 MOL은 크로아티아 국영 에너지기업 INA의 지분 인수를 두고 가스프롬과 경쟁했다. 결국 MOL이 가스프롬을 누르고 승리했다. 그러자 헤르나디 회장이 크로아티아 전 총리에게 뇌물을 건넸다는 혐의가 불거지면서 크로아티아의 요청으로 그에 대한 인터폴의 적색수배가 내려졌다. 그 배경에는 가스프롬이 INA 지분 인수에 실패하면서 EU 회원국 중 하나에서 에너지 부문을 장악해 러시아의 대유럽 영향력을 넓혀 가겠다는 푸틴 대통령의 비전이 좌절됐다는 사실이 자리 잡고 있다.그러나 2016년 헤르나디 회장이 적색수배 목록에서 삭제되면서 그의 결백이 입증된 듯했다. 1년 뒤 유엔 중재위원회가 그 사건을 조사한 뒤 부패 증거가 없다고 결론짓고 그에 대한 모든 혐의를 기각했다.
그러나 러시아가 집요하게 이의를 제기하며 크로아티아를 상대로 MOL과의 계약을 취소하도록 치열한 로비를 벌였다. MOL이 가진 INA 지분을 러시아 업체가 차지할 수 있는 기회를 얻도록 하기 위해서였다. MOL이 INA 지분을 되팔려 하지 않자 크렘린은 헤르나디 회장이 크로아티아 전 총리에게 뇌물을 주고 지분을 인수했다고 다시 주장하면서 계약 전체를 무효로 몰아갔다. 결국 지난 11월 말 헤르나디 회장은 인터폴 적색수배 대상에 다시 올랐다. 모순은 2016년 인터폴이 그를 수배 대상에서 제외했을 때와 똑같은 혐의가 적용됐다는 사실이다. 게다가 유엔 중재위원회가 그의 무혐의를 선언했는데도 말이다.이처럼 코미디 같은 사태 진전에서 크로아티아는 러시아의 제안에 솔깃한 듯 MOL에 매각한 지분을 되찾아 크로아티아 최대 에너지업체의 새로운 전략적 파트너를 찾고 싶다는 뜻을 밝혔다. 이 문제가 불거진 이래 알렉세이 밀러 가스프롬 회장이 크로아티아를 방문했고, 푸틴 대통령도 크로아티아 수도 자그레브의 시장에게 직접 훈장을 수여했다. 크로아티아 주재 러시아 대사는 “크로아티아를 위해 러시아는 미국과 EU가 합친 것보다 더 많은 일을 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제 헤르나디 회장은 인터폴 적색수배가 내려졌기 때문에 헝가리를 벗어나면 위험한 상황이다. 인터폴이 심사숙고 없이 승인한 러시아의 마피아식 행동이라고 할 수 있다.
메시지는 분명하다. 발칸 지역을 포함한 동유럽 전체가 러시아의 뒷마당이라는 것이다. 특히 에너지에 관한 한 이 지역에 대한 러시아의 영향력은 아주 막강하다. 헤르나디 회장 같은 투자자를 박해하는 행위가 EU 브랜드에 영구한 피해를 끼치는 것은 시간 문제일 뿐이다. 자칫하면 수년 동안 인터폴의 러시아 데스크를 통해 터무니없는 혐의를 뒤집어 쓸 수 있는 상황에서 누가 그런 위험을 무릅쓰고 그곳에 투자하거나 진출할 엄두를 내겠는가?
총재가 누구든 인터폴이 앞으로도 푸틴 대통령의 뜻을 따른다면 온전한 민주국가들은 인터폴 탈퇴를 고려해야 할 것이다. 아니면 러시아를 인터폴에서 쫓아내야 할지 모른다. G8이 G7으로 바뀌었듯이 말이다(‘선진국 모임’인 G7 회의는 원래 러시아를 포함해 G8으로 운영됐으나 러시아의 크림반도 강제 합병으로 2014년 러시아를 축출했다).
이런 제안을 너무 극단적인 조치라고 생각할지 모른다. 하지만 러시아가 EU의 에너지 안보를 무너뜨리는 침묵의 쿠데타 도모에 국제적인 법집행 기구인 인터폴을 이용한 것은 그보다 훨씬 더 사악한 행동이다.
- 캄란 보카리
※ [필자는 캐나다 오타와대학 전문개발연구소 소속으로 현재 워싱턴 D.C.에서 활동하는 국가안보·외교정책 전문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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