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권당 신임대표에 ‘미니-메르켈’ 크람프-카렌바우어 사무총장 선출 … 유럽의 비전 계승할 수 있을까 지난 12월 7일 함부르크에서 열린 전당대회에서 안네그레트 크람프-카렌바우어 사무총장(왼쪽)이 신임대표로 선출됐다. / 사진:AP-NEWSIS독일의 집권 기독민주당(기민당·CDU)이 지난 12월 7일 함부르크에서 열린 전당대회에서 안네그레트 크람프-카렌바우어 사무총장을 새 지도자로 선출했다. 2000년 이후 18년 동안 CDU 대표를 맡아온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는 헤센 주 지방선거 다음 날인 지난 10월 29일 선거 부진의 책임을 지고 당대표직에서 이번 달 물러나고 차기 총선에서 총리 재선에 출마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따라서 크람프-카렌바우어가 CDU의 새 지도자로 선출된 것은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집권당 대표가 총리로 선출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이니셜을 따 ‘AKK’라는 애칭으로 불리는 크람프-카렌바우어 신임대표는 메르켈 총리의 측근으로 알려졌기 때문에 그녀의 정책을 계승할 가능성이 크다(두 사람의 관계를 빗대 크람프-카렌바우어를 ‘미니 메르켈’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그러나 크람프-카렌바우어 신임대표는 자신이 고유한 정체성과 독립적인 의제를 갖고 있다고 말했다. 그럼에도 CDU 대의원 1000여 명의 비밀 투표에서 크람프-카렌바우어 사무총장이 선출된 것은 당원들이 기존 정책의 연속성과 안정을 선택했다는 뜻이다.
미국 싱크탱크 애틀랜틱 카운슬 연구원이자 유럽 정치 전문가인 프랜 버웰은 “크람프-카렌바우어가 CDU 대표로 선출된 것은 당에서 메르켈 총리의 영향력이 건재하다는 표시”라고 뉴스위크에 설명했다. “메르켈 총리는 선거 직전 퇴임사를 통해 대의원들 앞에서 자신의 견해를 밝혔다. 그녀가 후계자로 크람프-카렌바우어를 낙점했다는 점은 확실하다. 크람프-카렌바우어는 새로운 세대의 등장과 ‘연속성 속의 변화’를 상징한다. 독일 유권자 다수가 거부감을 갖지 않는 이유다.”
메르켈 총리는 전당대회 도중 30분간 진행한 퇴임사에서 자신의 정치 스타일을 설명했다. “세계를 흑백으로 보지 않으려 했으며, 오히려 다양한 명암이 있다고 봤다. ... 항상 타협을 믿었고, 기민당은 누구에게도 선을 긋지 않았으며 누구도 선동·비방하지 않았다. ... 정치적 적수를 심하게 공격한 적이 없고 항상 천을 감싸서 펜싱을 했다.” 자기반성도 빠뜨리지 않았다. “당 내부에서 흥분된 논쟁이 벌어져 그것을 뛰어넘으려 할 때 항상 주춤거렸다. 그래서 당원들이 신경을 많이 쓰도록 만들었다.”
언론은 메르켈 총리의 당대표직 사임 연설을 ‘메르켈답다’고 평가했다. 객관적이고 냉정하게 자신을 평가했다는 뜻이다. 하지만 전당대회 참석자들의 반응은 열정적이었다. 연설이 다 끝나기도 전에 모두 일어나 박수를 보냈다. 기립 박수는 10분 동안이나 지속됐다. 참석자들의 손에는 ‘고마워요 메르켈’이라고 적힌 팻말이 들려 있었다. 전당대회장에서 메아리친 환호는 메르켈 총리에 대한 당원들의 신뢰와 당대표로서 그녀의 입지를 상징적으로 보여줬다.
하지만 최근 들어 메르켈 총리의 당 지도력은 크게 흔들렸다. 가장 큰 타격은 지방의회 선거에서 CDU의 잇따른 패배였다. 지난 10월 28일 헤센 주 선거에서 CDU는 28%의 지지를 얻는 데 그쳤다. 직전 선거보다 11% 포인트 하락했다. 1970년 이후 최저 득표율이었다.
독일 집권당의 지지율 하락은 난민 정책을 둘러싼 연정 내부의 견해차에서 비롯됐다. 메르켈 총리가 적극적인 난민포용 정책을 펴자 기독사회당(기사당·CSU) 대표인 호르스트 제호퍼 내무장관이 강하게 제동을 걸었다. 지난 7월 ‘난민환승센터’를 독일과 오스트리아 국경에 세우는 방안을 둘러싸고 두 사람의 갈등은 격화됐다. “난민 정책을 둘러싼 이견 때문에 두 정당의 70년간 동맹관계가 무너질 위기에 놓였다”는 지적도 나왔다.
연정이 난민 정책을 둘러싸고 삐걱거리는 사이에 민심은 돌아섰고, 극우정당인 독일대안당(AfD)이 반사 이익을 챙겼다. 결국 메르켈 총리는 당대표직 사퇴로 책임을 졌다. 그런 배경에서 CDU의 신임대표로 선출된 크람프-카렌바우어는 지방 정치의 바닥부터 시작해 차근차근 단계를 밟아 중앙 정치로 진출했다. 1981년 CDU에 입당한 그녀는 인구 약 2만 명인 독일 남서부의 고향 퓨틀링엔의 시의원에서 시작해 프랑스-룩셈부르크와 국경을 이루는 자를란트 주 총리를 지냈다. 그래서 그녀는 프랑스어가 유창하다.
크람프-카렌바우어 신임 대표는 지난 2월 자를란트주 총리를 그만두고 메르켈 총리의 요청으로 CDU 사무총장을 맡았다. 당 서열 2위인 자리다. 동료 정치인들은 그녀를 실용주의자이며 어려운 상황에서도 통합을 통해 일을 해낼 수 있는 포용주의자로 묘사한다. 그녀는 당선 소감에서 올해 전당대회 표어였던 ‘함께 이끌어 갑시다’를 강조하며 단합을 호소했다. “대연정을 중심으로 모든 좌우 세력이, 모든 당원이, 책임질 위치에 있는 사람들 모두가 이 거대한 민족의 당을 유지하고 만들어 나가자.”
다른 한편으로 크람프-카렌바우어 신임 대표는 동성 결혼에 반대하는 사회적으로 보수파에 속한다. 이번 대표 선거에서 그녀의 적수는 동성애자 정치인으로 잘 알려진 옌스 슈판 보건부 장관과 보수적인 기업 변호사 출신인 프리드리히 메르츠 전 원내대표였다.
독일 정치 전문가인 요른스 플렉은 “국내적으로 크람프-카렌바우어는 당에서 좀 더 보수적인 진영에서 호응을 얻을 수 있어 CDU의 사회정책을 더욱 강하게 밀어붙일 수 있다”고 내다봤다. “대외적으로는 메르츠나 슈판이 대표가 됐을 경우 추진할 가능성이 컸던 공격적인 유로존 개혁을 피할 수 있게 됐다. 그러나 득표율 차이가 근소했다. 또 CDU의 보수파와 친기업파가 크람프-카렌바우어를 지지했기 때문에 앞으로 그들이 크람프-카렌바우어로부터 더 많은 것을 요구할 수 있다.”
독일 마셜펀드(GMF)의 피터 스파딩 연구원은 크람프-카렌바우어 신임 대표가 집권당의 ‘우클릭’을 밀어붙일 수 있다고 말했다. “크람프-카렌바우어 신임대표는 경쟁 후보 두 사람보다 메르켈 총리와 훨씬 가까웠다. 그녀가 넓은 맥락에서 CDU의 중도 노선을 유지하려고 애쓰겠지만 그녀를 메르켈 총리의 판박이로 보는 것은 잘못이다. 그녀는 당을 약간 우익으로 이동시킬 가능성이 크다. 특히 사회문화적인 이슈에서 그렇다.”
문제는 크람프-카렌바우어 신임대표가 당내 이견을 추스르고 CDU의 지지율을 어떻게 다시 끌어올리느냐다. 특히 난민 정책은 당은 물론 대연정의 토대를 흔든 사안이었던 만큼 메르켈 총리의 적극적 포용정책과 차별화가 이뤄질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아무튼 크람프-카렌바우어의 CDU 대표 당선으로 메르켈 총리도 한시름 놓게 됐다. 메르츠 전 원내대표가 당선될 경우 메르켈의 총리직 유지가 위태로울 수도 있었기 때문이다. 메르켈 총리는 2021년까지인 이번 임기를 채우겠다고 밝혔다. 바람대로 된다면 2005년부터 16년 동안 총리직을 수행하게 돼 헬무트 콜 전 총리(1982~1998년)와 함께 독일 최장수 총리 반열에 오르게 된다.
- 크리스티나 마자 뉴스위크 기자
ⓒ이코노미스트(https://economist.co.kr) '내일을 위한 경제뉴스 이코노미스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