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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필재의 ‘브라보! 세컨드 라이프’(12) 김종열 한국한의학연구원장] ‘10년 후 무엇을 하면 행복할까’ 늘 고민해야

[이필재의 ‘브라보! 세컨드 라이프’(12) 김종열 한국한의학연구원장] ‘10년 후 무엇을 하면 행복할까’ 늘 고민해야

공학도에서 한의사로 인생 전환... “고교 때 가고 싶은 길 찾기 어려워”
사진:김성태 객원기자
“건축물 내진 설계의 기본인 지진도, 한의사가 진단할 때 짚는 맥도 모두 파동입니다. 공학도로서 공부한 파동이 한의학 연구자로서 과학적 연구를 하는 데 많은 도움이 됐어요.” 공학도 출신인 김종열 한국한의학연구원장은 건축과 토목을 공부한 덕에 공학과 한의학 간 시너지 효과를 낼 수 있었다고 말했다. “공학도로서 보낸 나날과 그 후 건설 기술 연구에 바친 기간을 합친 12년의 세월은 이른바 매몰비용이 아니었고, 그런 만큼 후회도 없습니다.”

김 원장은 서울대 건축학과를 거쳐 카이스트 대학원에서 토목공학 석사를 한 후 건설기술연구원에 근무하다 서른하나에 한의대에 진학했다. 건기연 연구원 시절 한의원에서 과민성 대장염을 고친 것이 전공을 바꾸는 계기가 됐다. “점심시간에 축구를 하다 발목을 삐어 한의원을 찾았습니다. 체질에 관한 대화를 나누다 설사 증상에 대해 얘기했더니 소음인 특유의 냉증이라며 몸이 따듯해지는 약을 지어줬어요. 과민성 대장염이라는 병명도 없을 때라 병원에서 환자 취급도 받지 못한 시절이죠. 한의학은 서양 의학과 패러다임이 달라요. 양의학은 병명이 안 나오면 아무것도 못합니다. 반면 한의학은 우리 몸의 불균형 상태를 바로잡아 치료를 하죠.”
 “공학도로 지내는 동안 즐겁지 않아”
그는 한의학을 연구하려는 사람들에게 학부에서 먼저 학문적 테크닉이 많이 축적된 공학을 공부할 것을 권할 만하다고 말했다. 그가 건기연을 그만두겠다고 하자 원장이 말단 연구원인 그를 불러 만류했다. 어머니를 제외한 가족과 친구들도 모두 그의 전공 전환에 반대했다. “자신이 어떤 삶을 살고 싶어 하는지 알 필요가 있습니다. 저는 중·고등학교 시절 수학을 잘했어요. 그래서 공대에 진학했고 공학을 잘할 수 있었죠. 어느 정도 인정도 받았고요. 건축 설계에 대한 능력이 부족한 걸 깨닫고 구조 역학으로 전공을 바꾼 것도 수학적 계산을 잘했기 때문이죠. 그런데 공학도로서 연구를 하는 동안 즐겁지 않았고 보람도 못 느꼈어요. 10년 후 무엇을 해야 더 행복할까 생각해 보니 답이 뚜렷이 보였습니다.” 그래서 그는 대학에 들어간 후 전공이 맞지 않으면 가능한 한 빨리 길을 바꾸라고 권한다. “현 입시제도 하에서 고등학교 때까지 가고 싶은 길을 찾기란 어렵습니다. 대학 입학 후 전공 선택이 잘못됐으면 10년이 걸리더라도 새 길을 찾는게 좋아요.”

김 원장은 한의학연 원장 취임 후 가장 큰 성과로 한의학 연구의 방향을 국민들의 요구에 맞춘 것을 꼽았다. 한의학연은 한약의 안전성을 밝히기 위한 임상연구와 더불어 한약을 양약과 함께 먹어도 안전한지 연구한다. 과거 한약의 안전성 연구는 동물 실험만 했었다. 한약의 치료효능을 과학적으로 입증하는 연구도 실시했다. 한의사들에게 치료의 방향을 제시하는 한편 이에 대한 과학적 근거를 제공하려 인공지능 한의사도 개발 중이다. 한의학연은 그동안 한의학의 과학화를 주도했다. 사상의학에 따른 사상체질 진단을 객관화하는 분석 툴을 개발했고, 한의사의 주관적 판단을 대체하는 맥진기·설진기 등의 진단 기계를 고안해 냈다. 맥진기는 사람 대신 맥을 짚고 설진기는 3차원 디지털 영상으로 혀를 촬영해 건강 상태와 질병 여부를 진단한다. 국영문으로 읽는 ‘내 손 안에 동의보감’이라는 애플리케이션도 개발했다. 동의보감은 한의학의 대표 의서로 2009년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에 등재됐다. “흔히 용한 한의원이라느니 한의사와 연때가 맞아야 한다고 하는데 한의사의 진단이 정확하지 않다는 인식이 많습니다. 한의학을 과학화·표준화해 한의원 간 편차를 줄이려 합니다.”

김 원장의 어머니는 5년 전 폐암 환자였다. 말기였고 다섯 군데로 전이가 됐다. 5년 만에 어머니는 삼성의료원에서 의학적 완치 판정을 받았다. 그는 유전자 표적 치료제와 더불어 한약을 처음부터 같이 쓴 덕이라고 말했다. “유전자 표적 치료제만 썼다면 아마 수명을 열 달 연장하는 데 그쳤을 가능성이 큽니다. 서양 의학은 주로 병의 원인을 다스립니다. 말하자면 암세포를 공격하는 거죠. 문제는 이 과정에서 면역력이 떨어지는데 서양 의학은 이 문제에 대처하지 못해요. 반면 한의학은 면역력을 강화합니다. 그래서 암세포에 대한 공격과 면역력 강화라는 수비를 함께 한 겁니다. 사실 암의 근본 원인이 면역력이 떨어지는 거예요.”

그는 국내 양의학계와 한의학계가 서로 협력하면 전 세계의 암 환자들을 우리 의학계가 치료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문제는 제가 한의원 원장이라고 하더라도 저의 한방 치료 권유를 암 환자들이 받아들이지 않을 거라는 거예요. 삼성의료원 의료진의 사회적 권위가 더 높기 때문이죠. 삼성의료원에서는 저의 어머니에게 한약은 절대 안 된다고 했었습니다.” 삼성의료원 의료진은 왜 한약을 쓰지 말라고 했을까? 그는 한의학에 대한 몰이해 탓이라고 말했다. “서양 의학을 전공한 의사로서 ‘나는 한의학에 대해 모르고, 한약을 썼을 때 나의 처방과 어떤 상호작용을 일으킬지 알 수 없다’고 말했어야 한다고 봅니다. 양의학계와 한의학계 간에 서로 존중하는 자세와 협력 체계를 만들어 가려는 노력이 아쉽습니다. 보건복지부도 이런 방향으로 강하게 푸시해야 합니다.”

그는 어머니의 말기 암 완치 사례를 논문으로 발표하려고 한다. 한 케이스만 다루기에 신뢰가 높지는 않겠지만 이런 의학계 풍토에서 다른 사례를 찾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그는 부인과 슬하의 세 딸과 함께 산다. 집안의 유일한 남성이다. 지난해 한 음악회에 그는 부인과 나란히 개량 한복을 입고 갔다. 가는 길엔 서로 팔짱을 끼었다. 아내와 30년 전 한 결혼을 리뉴얼하는 두 번째 결혼식을 하는 게 그의 버킷 리스트이다. 아직 부인의 동의를 얻지는 못했다고 귀띔했다. 부인과는 건설기술연구원을 그만두고 한의대 시험을 준비할 때 만났다. 딸들은 페미니스트에 동물애호가들이다. 한 사람은 채식주의자이다. 나름 진보적으로 살아온 그이지만 딸들은 이런 그의 성향을 잘 인정하지 않는 눈치다. 주장이 강했던 자신의 20대를 돌아보며 그는 되도록 져 주려 한다. 이른바 꼰대 방지 5계명 중 ‘존경 받는 것은 권리가 아니라 나름대로 이룩한 성취다’를 되새긴다.
 버킷 리스트는 아내와의 두 번째 결혼식
20대 시절 그는 자신이 추구할 가치는 자유와 사랑이라고 믿었다. 내면이 자유로운 사람이 되고 싶었고 사람과의 관계는 사랑으로 맺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지금은 한의학연 경영의 철학이기도 한 ‘맑고 밝고 따뜻하게’ 살려고 한다. 구성원들과 소통할 땐 있는 그대로의 육성을 듣고 솔직하게 표현한다. 보직 간부들에게는 자신이 수립한 경영 계획을 이행하되 목적지로 가는 경로는 스스로 선택하라고 말한다. 연구원장을 마치고 나면 다시 한의원이나 한방병원 원장으로 돌아가 임상과 연구를 병행하고 싶다고 그는 말했다. “연구를 하는 동안 임상 능력이 더 좋아졌어요. 그래서 다시 환자를 잘 치료해 보고 싶습니다.”

그는 젊은 세대가 헬조선 인식틀에 갇히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지금 젊은 세대는 부모 세대만큼 살기 어려운 게 눈앞의 현실입니다. 하지만 자신들이 꿈꾸는 세상을 스스로 만들면 된다고 생각했으면 합니다. 과거 민주화와 여성 인권의 신장도 결국 꿈꾼 사람들이 이뤄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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