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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추어 과학자 ‘보핀’이 세상 바꾼다

아마추어 과학자 ‘보핀’이 세상 바꾼다

첨단 리서치 도구를 손에 쉽게 넣을 수 있어 누구나 데이터 수집하고 우리의 집단 지식 발전시킬 수 있어
식물 기반 약제 (특히 의료용 마리화나)로 눈을 돌려 부모가 찾아낸 약제가 소녀의 발작을 가라앉혀 의료계의 관심을 끌었다. 사진은 의료용 마리화나 합법화를 요구하는 환자와 그 가족들. / 사진:RICK BOWMER-AP-NEWSIS
요즘엔 기술이 발달해 누구나 스스로 문제를 해결하고 집단적으로 서로를 돕는 도구를 갖고 있다. 그것이 크라우드소싱 데이터(불특정 다수에 맡겨 수집한 데이터)와 시민과학의 바탕을 이루는 단순하면서도 효과적인 아이디어다. 두 분야 모두 우리의 일상생활을 편하게 만들고 개인 헬스케어를 증진하는 등 어디서나 상당히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다.

예컨대 러시아워에 공항으로 가는 지름길을 찾아야 한다고 하자. 웨이즈(Waze) 앱은 수천 명의 지역 운전자들로부터 도로 정보를 받아 A지점에서 B지점에 이르는 가장 효율적인 이동경로를 제안한다. 교통정보 수집 헬기가 필요 없다. 이 비유(네트워크에 연결된 군중이 집단지능을 이용해 최선의 이동경로를 추천한 사례)는 솔루션이 없던 개인적 심지어 세계적인 문제에 얼마든지 적용할 수 있다.

시민과학은 근래 등장한 것 같지만 한때 과학의 유일한 형태였다. 벤자민 프랭클린, 아이작 뉴턴, 찰스 다윈 같은 그런 초창기 명사들은 취미 삼아 자연세계를 파고들어 그것에 대한 우리의 인식을 근본적으로 바꿔놓은 사람들이다.

그리고 우리의 정확한 항해 시스템은 1714년 영국 정부가 지구를 남북으로 가르는 자오선인 경도 측정법의 골치 아픈 수수께끼의 답을 다수 대중에게서 구한 콘테스트에서 기인한다. 정부 당국은 매력적인 포상금에 덧붙여 항해에서 ‘추측항법(dead reckoning)’을 퇴출시킨 인물이 되는 영예를 내세워 우수한 두뇌들을 불러모을 수 있었다. 한편 경도상(Longitude Prize)은 아직도 살아 있다. 현재의 과제는 유해 생명체의 항생제 내성 문제의 해결이다.

영국영어에선 그런 호기심 많은 타입을 가리켜 ‘보핀(boffin)’으로 부른다. 말하자면 과학에 대한 열정과 거창한 문제에 답을 구하려는 의욕을 겸비한 아마추어 과학자를 말한다. 요즘 ‘보핀 폭발’이랄 만한 현상이 벌어지고 있다. 첨단 리서치 도구를 쉽게 손에 넣을 수 있어 거의 누구나 데이터를 수집하고 우리의 집단 지식을 발전시킬 수 있다.

시민과학자 모델은 요즘 여러 분야에서 응용되고 있다. 천체사진 분석부터 철새 이동로 추적, 영국국립환경연구위원회(NERC)가 출범시킨 연구선의 작명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방식으로 응용된다. 한편 작명 컨테스트에선 ‘보티 맥보트페이스(Boaty McBoatface)’라는 인기만점의(그리고 터무니없는) 이름이 뽑혔다. 이는 ‘쓰레기를 넣으면 쓰레기가 나온다(garbage in, garbage out)’는 원칙이 크라우드소싱에도 적용됨을 보여준다. 열성적이고 박식한 군중이 리서치를 성공으로 유도할 수 있듯이 무책임한(또는 너무 유머러스한) 군중은 그것을 사보타주할 수 있다.

헬스케어가 시민과학의 가장 유망하고 잠재적으로 위험한 분야 중 하나로 꼽히는 까닭이다. 이런 유의 리서치에는 많은 동기가 있다. 어쨌든 대형 제약회사의 수익을 내기 위한 통증관리 ‘솔루션’이 마약성진통제(opioid) 위기를 초래하는 사이 ‘검증되지 않은’ 식물성·천연 약제가 전례 없는 인기를 누린다.

세계 인구의 약 80%가 식물 기반 약제에 의존한다. 식물 원료 치료제가 선사시대부터 수세대에 걸쳐 고통 완화에 도움을 줬지만 그 긍정적인 효능을 단발적이고 신뢰성이 떨어진다고 무시하는 경우가 많다. 요즘 제약회사들은 조사팀을 파견해 자연세계를 샅샅이 훑으며 합성해 특허 내고 수익을 창출할 수 있는 식물 기반 파생물을 찾는다.

관심이 있다면 전 과정을 직접 진행하면서 긍정적인 결과를 얻어낼 수 있는지 알아보고 싶어진다. 난치성 뇌전증을 앓는 샬럿 피기라는 소녀의 뇌전증이 낫지 않자 그녀의 부모가 그렇게 했다. 처방약은 소녀에게 도움이 되지 않았으며 부작용이 생겨 소녀의 삶을 더욱 힘들게 만들었다. 그래서 다른 가족들이 실험했던 식물 기반 약제(특히 카나비스)로 눈을 돌려 부모가 찾아낸 한 가지 약제가 소녀의 발작을 가라앉히면서 화제가 됐다. 제약업계가 이에 주목해 샬럿을 치료한 식물의 처방약 버전인 에피디올렉스(Epidiolex)가 탄생했다.

신약 연구의 바퀴는 아주 느리게 굴러간다. 샬럿은 2006년 처음 발작을 일으켰지만 에피디올렉스는 지난해 미국 식품의약국(FDA)의 승인을 받았다. 하지만 치료제를 10여 년이나 기다릴 수 없을 때도 있다.

따라서 외상후스트레스장애(PTSD)로부터 다발성경화증·만성통증·발작장애에 이르는 온갖 질병으로 고통받는 사람들이 식물 기반 약제로 실험하면서 성공담과 실패담을 공유해 다른 사람들에게 도움을 준다. 건강 추적 기술을 이용해 식물성 약제를 더 유익하고 효과적으로 사용하는 길이 열리고 있으며 비슷한 목표를 가진 사람들의 커뮤니티가 형성되고 있다. 마찬가지로 생의학시민과학허브(Biomedical Citizen Science Hub), 사이스타터닷컴(SciStarter.com) 같은 단체들이 셀프 실험자들을 연결해 노하우를 서로 공유할 수 있게 한다.

수요가 클수록 누군가 도움이 될 만한 원료로 실험할 확률도 커진다. 그런 개인적 실험을 하는 도구가 향상되고 개인적 실험 수천 건의 데이터 기반 결과가 보급되면서 결과의 품질도 향상된다. 대형 제약회사가 초조해할 만하다. 그들이 건강증진을 독점하던 시대는 끝났다. 모든 웨이즈 이용자가 사람들이 교통정체를 우회하도록 도움을 줄 수 있듯이 크라우드소싱 참여 연구자들도 더 건강한 세상으로 나아가는 새로운 방향을 제시하고 있다.

이젠 우리 모두가 아마추어 과학자(boffins)다. 당신은 무엇을 연구하는가?

- 피터 칼피



※ [필자는 투여와 환자 증상에 따른 복용법의 표준화를 통한 대안의료의 보급을 전문으로 하는 디지털 헬스케어 기업 고파이어(Gofire)의 CEO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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