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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술과 삶, 삶의 기술(1) 페이스북의 미래는?] ‘열린 광장’에서 ‘안락한 거실’로

[기술과 삶, 삶의 기술(1) 페이스북의 미래는?] ‘열린 광장’에서 ‘안락한 거실’로

개인정보 유출 등 사건·사고 늘면서 안전한 ‘사적 관계’로의 회귀 시도



정보통신기술(ICT)의 발전은 산업 현장에만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 기술의 발전이 곧바로 개인의 삶을 바꿔놓는 시대다. 기술은 우리의 삶을 어떻게 바꿔놓을지, 우리는 어떤 삶의 기술로 이를 받아들여야 하는지 살펴본다.
사진:© gettyimagesbank
한때 소셜미디어에서 재미있게 놀던 시절이 있었다. 트위터에는 예술인·정치가·연예인·백수·오타쿠 등이 모여 재치와 식견을 자랑했다. 페이스북에는 가족·친구들의 아기 사진과 여행 사진이 계속 올라왔다. 스마트폰 화면을 아래에서 위로 스크롤만 해도 재미가 가득했다. 단체카톡방(단톡방)에서 친구들과 채팅하며 한없이 시간을 보내도 지루한 줄 몰랐다.

하지만 이제 우리는 적당히 조심스러워졌다. 페이스북에 올린 사진을 직장 상사가 보고 있다는 것을 알았고, 술김에 올린 거친 언사의 포스트가 이직을 가로막을 수 있다는 것도 알았다. 어른들은 페이스북에 기사 링크나 명언 정도만 올리기 시작했고, 아이들은 부모와 선생님이 있는 카카오톡을 떠나 페이스북 메신저로 이주했다.
 20억 명의 커뮤니티, 페이스북의 그림자
실제로 페이스북은 위험한 곳이 됐다. 사람들은 페이스북에서 자신들의 정보가 수집되고 활용되는 방식에 불편함을 느끼기 시작했다. 페이스북과 광고주들이 개인정보를 미심쩍은 방식으로 활용해 맞춤 광고를 보여주고 있다는 의심이 커져갔다.

페이스북에서 심심풀이로 즐겼던 심리 검사 게임은 사실 사용자 프로필 구성에 필요한 데이터를 모으려는 미끼였고, 캠브리지 애널리티카 같은 회사는 이렇게 모은 데이터로 도널드 트럼프의 대통령 선거 운동을 컨설팅했다. 내가 좋아하는 내용, 듣고 싶어하는 말과 비슷한 내용만 계속 보여주는 알고리즘은 나를 확증편향의 거품 속에 가두었다.

약삭빠른 사람들은 사용자들이 좋아할 만한 가짜 뉴스를 만들어 페이스북 그룹에 퍼뜨리고 클릭을 유도해 돈을 벌었다. 러시아 정보기관은 페이스북 알고리즘을 타고 미국 대선 개입 공작을 벌였다. 페이스북은 해킹으로 의심되는 로그인이 이뤄질 때 휴대폰으로 발송된 인증문자를 입력하게 하는 2단계 인증 보안 서비스를 제공하는데, 이를 위해 입력한 휴대폰 번호마저 맞춤 광고에 썼다는 의혹도 제기됐다.

뉴질랜드의 테러범은 무슬림 사원에 총기를 난사해 무고한 사람을 살해하는 과정을 페이스북으로 생중계했다. 17분 간 노출된 이 영상은 페이스북과 유튜브를 통해 급속도로 퍼져나갔고, 페이스북은 사건 발생 후 1시간 만에 150만개의 동영상을 삭제해야 했다.

한때 재미있는 놀이터였던 곳이 이제는 지뢰밭처럼 여겨진다. ‘보다 개방적이고 연결된 세상을 만든다’는 페이스북의 이상이 너무 성공적으로 이뤄진 덕분인가 보다. 월간 사용자 20억 명의 거대 연결사회를 만들어냈으니 거기서 무슨 일이 일어나든 놀랄 일은 아니지 않은가? 최근 몇 년 간 페이스북은 끊임없이 쏟아지는 악재와 스캔들을 방어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그렇더라도 오늘날의 페이스북을 만든 개방형 소셜네트워크보다는 소수의 사람들이 더 마음 편하게 친밀할 대화를 나누는 사적 공간으로 사업의 중심을 옮기겠다는 선언은 의외로 받아들여진다. 마크 저커버그 페이스북 CEO는 지난 3월 7일 ‘프라이버시 중심 소셜네트워크’라는 새로운 비전을 밝히는 장문의 글을 페이스북에 올렸다. 그는 “페이스북은 사람들을 친구와 커뮤니티, 관심사가 같은 사람들과 연결해 주는 디지털 ‘마을 광장’ 역할을 했지만, 이제 사람들은 사람들과 보다 사적으로 교류할 수 있는 디지털 ‘거실’에 더 관심을 보이고 있다”며 “미래 인터넷에서는 프라이버시 중심 커뮤니케이션 플랫폼이 현재의 개방형 플랫폼보다 중요해질 것”이라고 썼다.

다시 말해 온라인 커뮤니케이션에서 모바일 메신저, 일정 시간이 지나면 사라지는 메시지, 소규모 그룹 등의 비중이 커지고 있다는 얘기다. 사람들은 흔적이 불특정 다수에게 노출되고 한번 뱉은 말은 영원히 박제되는 개방형 소셜미디어에 대해 점점 조심스러워지고 있다. 친한 사람들과 안심하고 대화할 수 있는, 그래서 보다 편안하게 자기 자신이 될 수 있는 디지털 공간의 수요가 커지고 있다. 프라이버시 중심 플랫폼의 핵심은 ‘안심하고 스스로를 드러낼 수 있는 곳’을 만드는 점이다.

저커버그는 이를 위해 6가지 원칙을 제시했다. 사적인 상호작용과 암호화, 만료 기간이 있는 메시지, 안전, 상호운용, 안전한 데이터 저장 등이다. 사용자가 심적 안전을 느낄 수 있는 서비스 구성과 데이터가 해커나 공권력에 노출될 우려를 불식하는 정보보안 등을 모두 포함한다.

‘사적 상호작용’은 원하는 사람과만 데이터 유출 우려 없이 편리하게 사용하는 환경을 말한다. 메신저를 생각하면 될 듯하다. 주고받는 메시지가 모두 ‘암호화’되어 대화하는 사용자들 외에는 정보를 알아볼 수 없는 종단간 암호화는 사적 상호작용의 밑바탕이다. ‘만료 기간이 지나면 사라지는 메시지’는 사람들이 안심하고 자신을 드러낼 수 있게 한다. 이 때문에 페이스북은 스냅챗을 뻔뻔하게 베꼈다.

또 저커버그는 사용자가 기대하는 수준의 ‘안전’을 제공하겠다고 약속한다. ‘상호운용’은 페이스북 메신저, 왓츠앱, 인스타그램 등 페이스북의 다른 서비스 사용자들이 앱의 경계를 넘어 편리하게 대화하는 환경을 제시한다. 권위주의적 국가에 서버를 두지 않아 정부가 프라이버시를 침해할 소지를 없애는 등 사용자 데이터의 ‘안전한 저장’도 강조했다.

모두 좋은 말이지만 뜬금없는 것도 사실이다. 저커버그가 인정한대로 페이스북은 프라이버시에 관해선 별로 평가가 좋지 않다. 친구관계와 관심사의 거미줄로 이뤄진 개방된 플랫폼에서 광고 수익을 얻는 페이스북의 현재 사업 모델과도 배치된다.
 페이스북의 변신은 무모한 도전?
그러나 페이스북의 최근 몇 년 간 행보를 보면 이번 발표가 완전히 하늘에서 떨어진 것은 아님을 알 수 있다. 페이스북은 사용자가 일상을 나누지 않고 광고주만 넘쳐나는 플랫폼은 위험함을 인식하고 있었다. 기업 브랜드 페이지 등 광고성 정보에 사람들이 질려 떠나지 않도록 페이지 도달률은 낮추고 일반 사용자가 올리는 동영상을 우대했다. 스냅챗을 인수하려 하고, 인수에 실패하자 24시간 후 메시지가 사라지는 스냅챗의 ‘스토리’와 똑같은 서비스를 내놓기도 했다. 모두 페이스북에 친구들과의 친밀한 소통이 되살아나도록 하려는 시도였다.

모바일 메신저에 대한 관심도 꾸준했다. 페이스북이 스마트폰 태동기부터 카카오톡이나 위챗 같은 아시아권 메신저를 면밀히 관찰한 것은 업계에 공공연한 비밀이다. 그러다 유럽과 남미 지역 최고 인기 메신저 왓츠앱을 2014년 190억 달러(약 20조 원)에 인수했다. 페이스북 메신저도 월간 사용자 10억 명을 넘은 지 오래다.

페이스북의 성장과는 별도로 페이스북과는 성격이 다른 메신저 등 사적 커뮤니케이션의 잠재력을 알아보고 꾸준히 준비했다. 메신저에서 수익을 내는 방법도 고민해왔다. 이번 저커버그의 선언문에도 힌트가 있다. “왓츠앱처럼 안전한 메시징 서비스를 구축한 후, 이를 바탕으로…(중략)…비즈니스·결제·상거래 등을 가능케 하고 궁극적으로 기타 많은 사적 서비스를 가능하게 할 계획이다.” 메신저는 사적인 성격이 강한 만큼 보다 생활에 밀접한 서비스를 효과적으로 제공하며 수익을 낼 수 있으리라는 기대다.

페이스북의 전환이 잘 이뤄질지는 미지수다. 프라이버시 중심 플랫폼 선언 직후 회사의 초기 멤버로 페이스북의 핵심인 뉴스피드를 만든 크리스 콕스 최고제품책임자(CPO)가 회사를 떠났는데, 미래 방향에 대한 이견 때문이라는 보도가 나오기도 했다. 하지만 페이스북이 다시 한 번 변신에 성공한다면, 어쩌면 우리는 조만간 다른 형태의 페이스북 가두리 안에서 더 많은 시간과 돈을 쓰게 될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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