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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유와 경영 분리한 일본 대기업 왜?

소유와 경영 분리한 일본 대기업 왜?

파나소닉의 마쓰시타 마사유키(松下正幸) 부회장이 오는 6월 27일 정기 주주총회에서 부회장과 등기이사 자리에서 비상근 특별 고문으로 물러난다. 파나소닉 창업주인 마쓰시타 고노스케 (松下幸之助)의 손자로 한때 최고 경영자(CEO)에 취임할 것이란 관측도 있었지만, 결국 부회장 직함까지 놓으며 조용히 퇴임하기로 했다. 파나소닉의 100년 역사상 창업주 일가가 경영진에서 사라지는 것은 처음이다. 마쓰시타 마사유키는 앞으로 마쓰시타 가문이 자금을 출연한 재단의 이사장으로서 사회공헌과 ‘마쓰시타 정경숙’의 활동에만 전념할 예정이다. 퇴임 이유에 대해 그는 “파나소닉에 입사한 것이 창업 50 주년이 되는 1968년이었다”며 “근속 50년을 맞아 좋은 이정표”라고만 설명했다.

파나소닉이 ‘오너경영’에서 탈피한 경위를 살펴보면 흥미롭다. 마쓰시타 고노스케에게는 아들이 없었다. 1961년에 후임 CEO로 취임한 마쓰시타 마사하루(松下正治)는 장녀의 남편이다. 도쿄대 법학부를 졸업하고 미츠이 은행에 근무하던 은행원이었다. 오너 일가의 경영 세습인 셈이다. 그러나 마쓰시타 마사하루는 ‘위대한 경영자’로 추앙 받는 장인과 비교를 받았다. 사내에서는 그의 경영 수완과 능력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는 목소리가 커졌다. 전국 판매점주들로부터 비판이 분출됐고, 결국 경영 일선에서 물러났던 마쓰시타 고노스케가 경영에 복귀하게 됐다. 1977년 기업 고문을 맡은 마쓰시타 고노스케는 오너 일가와는 아무 연관이 없는 야마시타 토시히코(山下俊彦)를 CEO로 기용했다. 그룹 회장은 여전히 마쓰시타 마사하루였지만, 경영의 실권은 전문경영인에게 쥐어준 것이다.

그러는 사이 창업주의 손자 마쓰시타 마사유키는 착착 ‘제왕학’을 전수받았다. 일본의 명문 사립 게이오대를 졸업하고 미국 펜실베이니아대 와튼스쿨로 유학을 다녀왔다. 파나소닉 관계사 사장을 거쳐 파나소닉 세탁기사업부 부장이 됐다. 단번에 회사 안팎의 주목을 받았다. 1986년 40세에 파나소닉 이사로 취임한 후 1990년 상무, 1992년 전무, 1996년 부사장으로 순조롭게 승진했다. 그렇지만 그는 불행히도 어느 자리에서도 이렇다 할 실적을 올리지 못했다. 이윽고 “경영자로서 역량이 부족하다”는 평가가 자리잡았고, 전문 경영인들 사이에서는 “창업가 사람이라고 CEO에 올라서는 안 된다”는 목소리가 힘을 얻기 시작했다.

마쓰시타 마사하루는 2000년 회장직을 퇴임하며 자신의 아들인 마쓰시타 마사유키에게 CEO 자리를 물려주고 싶어했다. 그러나 전문경영인들의 반대로 실현되지 못했다. 마츠시타 마사유키는 결국 CEO에 오르지 않고 주로 대외 업무를 담당하는 부회장에 취임했다. CEO 자리를 둘러싸고 창업자 일가와 전문경영인 간에 펼쳐진 싸움은 결국 전문경영인의 승리로 끝났다.

파나소닉이 ‘CEO에는 최적의 인물을 임명해야 한다’는 경영 원칙을 관철할 수 있었던 배경에는 창업자 마쓰시타 고노스케의 기업 철학이 깔려있다. 그는 숫하게 “기업은 공공재”라고 주장했다. 기업의 사회적 의미를 일찌감치 인식하고 기업은 주주뿐만 아니라 경영자와 임직원, 소비자, 거래처의 것이기도 하다는 공적인 의미를 강조했다. 손자로의 경영 세습과 관련해 회사 안팎에서 어떤 언급도 않았다.

1986년부터 1993년까지 파나소닉 사장을 역임한 타니이아키오(谷井昭雄)는 “사장 재임 중 경영 보고를 위해 마쓰시타 고노스케와 단 둘이 여러 번 만나 얘기했지만, 자기 손자를 CEO에 앉혀 달라는 요구는 물론이거니와 손자가 일을 제대로 하고 있는지 등 신변에 대해 질문하고 답한 일은 단 한번도 없었다”고 말했다. 창업자가 현재 CEO에게 손자에 대한 질문을 하는 것이 큰 압력이 될 수 있단 것을 이해했기 때문에 일절 언급하지 않았던 것이다. 물론 마쓰시타 고노스케도 손자에 대한 애정이 깊었을 것이다. 언젠가 파나소닉의 CEO가 되는 개인적 바람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 이상으로 파나소닉이 공공재로 발전하고 사회에 도움이 되기를 바랐다. 오너 일가의 경영 세습보다는 기업 발전을 우선에 둔 처사다.

일본에는 중소·영세·개인 등 총 100만개 이상의 회사가 있으며, 대부분은 오너경영을 하고 있다. 그러나 대기업 중에 오너가 직접 회사를 운영하는 일은 극히 적다. CEO 자리를 세습하는 경우도 거의 없다. 일본에도 오너 일가가 기업을 지배하던 시절이 있었다. 미쓰비시·미쓰이·스미토모 등 재벌도 처음에는 오너 일가가 경영하는 기업이었다. 하지만 미쓰이는 ‘재벌 비판’ 테러로 CEO가 암살된 일을 계기로 경영과 소유의 분리를 선언했다. 또 전후 미국이 일본의 재벌을 해체하면서 미쓰비시·스미토모 등 재벌 오너들은 경영에서 물러났다. 그 이후 일본에는 재벌도, 오너경영도 사라지게 됐다.

다른 대기업들은 어떨까. 도요타자동차의 도요다 아키오(豊田章男) 사장은 도요타자동차의 전신부터 따지면 4대째 경영을 이어오고 있다. 일본 상장 대기업 중에서는 보기 드문 예다. 그렇지만 도요타자동차를 세습 경영으로 분류하기는 어렵다. 도요타자동차의 역대 CEO 중에 기업 지분을 보유하지 않은 전문경영자가 압도적으로 많아서다. 그렇다면 도요타자동차의 지분을 0.1% 밖에 갖고 있지 않은 도요타 아키오는 어떻게 사장이 됐을까. 그는 창업가 출신으로 입사 이후 줄곧 언론의 주목을 받아왔다. 과·차·부장 시절에는 어느 부서에서 어떤 업무를 맡고 있는지 널리 알려지기도 했다. 그간 사내에서 치열하게 능력 검증을 받아왔다.

도요타자동차 전 사장의 말을 들어보자. “도요타자동차 사장에 도요타 일가가 앉으면 편리한 점이 많다. 해외 자동차 업체나 국내 부품 판매 회사 중에도 오너경영이 많다. 아버지·할아버지 시대 때부터 거래해온 회사도 적지 않아 관계 강화에 도움이 된다. 그러나 이는 어디까지나 본인에 능력이 있을 때 얘기다. 경영 세습이 전제된 것은 아니다.” 그 차원에서 도요타 아키오는 ‘시험’에 합격했다. 실제 자동차 레이싱 대회에 출전할 정도의 자동차 마니아로, CEO로 취임한 후로 최고 이익을 경신하는 등 경영자로서 좋은 실적을 올리고 있다. 혼다의 경우는 처음부터 자녀를 회사에 입사 시키지 않으며, 소니는 창업자의 자녀가 소니에 입사했지만 경영의 중책을 맡은 적이 없다. 소프트뱅크의 손정의 회장이 자신의 자녀를 후계자로 삼겠다는 이야기는 들어본 적 없다.

오너경영은 힘이 있다. 오너가 3세는 어릴 때부터 경영자로서 할아버지·아버지의 모습을 보고 자랐기 때문에 훌륭한 경영자로 성장 가능성은 충분히 있다. 주식을 상장하지 않고 오너가 기업을 오롯이 소유하고 있는 경우는 ‘경영 세습’의 비판이 맞지 않을 것이다. 문제는 ‘오너’라고 불리지만 실제로는 보유한 주식도 거의 없고, 경영자로서 ‘검증’도 되지 않은 사람들이 억지로 ‘세습’을 이어가는 경우다. 파나소닉은 2018년에 창업 100주년을 맞았다. 여러 불화와 갈등을 넘어 전문경영인이 경영하는 기업으로서 장수기업 반열에 들어서려고 하고 있다. 창업자 마쓰시타 고노스케는 지금까지도 일본에서 가장 존경 받는 경영자다. 이번에 조용히 퇴임한 마쓰시타 마사유키도 오사카 지역의 경제계와 사회 활동을 통해 호평을 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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