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이버 노사는 왜 틀어졌나?] 고속성장의 묵은 불씨가 도화선
[네이버 노사는 왜 틀어졌나?] 고속성장의 묵은 불씨가 도화선
만성적 야근·특근, 성과 압박, 부담 가중… 피로감 쌓인 직원들 단체행동으로 개선 요구 국내 포털 1위 기업 네이버가 노조 문제로 신음하고 있다. 설립 1년째를 맞은 민주노총 화학섬유식품산업노조 네이버지회 ‘공동성명’(이하 네이버 노조)이 연일 사측을 압박하며 공세를 이어가고 있어서다. 4월 24일 포털 업계에 따르면 네이버 노조는 이날 근무시간 중인 오후 4시에 최신 영화 [어벤저스: 엔드게임]을 단체관람하면서 쟁의활동을 이어갔다. 245석의 영화 관람관을 통째로 대여해 노조원들이 객석을 가득 채웠다. 이들은 본사인 네이버 외에도 자회사인 ‘네이버비즈니스플랫폼(NBP)’과 손자회사인 ‘컴파트너스’에 소속됐다. 노조 관계자는 “법적 휴게시간인 점심시간을 활용하는 것보다 좀 더 강력한 방법을 고민했다”며 단체행동의 수위를 더 높일 수 있음을 암시했다.
네이버 노조는 올 들어 이미 수차례 쟁의활동으로 사측과 대립했다. 2월 20일부터 네 차례 점심·퇴근시간을 이용해 쟁의를 단행했다. 경기도 분당의 네이버 ‘그린 팩토리’ 사옥엔 사측을 규탄하는 내용의 현수막 등이 크게 걸려 있어 출퇴근하는 임직원이나 인근 주민들의 시선을 집중시키고 있다. 오세윤 네이버 노조 지회장은 지난 2월 11일 기자회견에서 “가장 원하는 건 수평적인 소통 문화를 복원하는 일”이라며 쟁의활동의 명분을 밝혔다. 앞서 네이버 노사는 지난해 내내 단체교섭을 벌였다가 결렬된 이후 올 초 고용노동부 중앙노동위원회를 통해 두 차례 노동쟁의 조정 절차를 밟았지만 사측이 협정근로자를 지정해야 한다고 거부, 최종 결렬됐다. 이에 노조는 사측 압박을 위한 단체행동에 나서기로 했다. 노조가 원하는 ‘수평적인 소통 문화 복원’엔 보다 구체적인 내용이 포함돼 있다. 임금 인상 요구는 아니다. 우선 네이버 전 직원의 인센티브와 연봉 책정 기준 및 통계를 공개하고, 그간 적절히 보장받지 못했던 휴식권(휴식할 권리)을 보장해달라는 것이다. ▶리프레시 휴가 유급 15일(휴가비는 없이 입사 후 첫 2년, 이후는 3년마다 지급) ▶남성 출산휴가 유급 10일 ▶전 직원을 대상으로 한 인센티브의 객관적 근거 설명회 마련 등이 그것이다. 이들은 창업주이자 사실상 총수인 이해진 네이버 글로벌투자책임자(GIO)를 상대로도 “직원들과 제대로 소통하지 않고 있다”며 책임론을 제기하고 있다. 오세윤 지회장은 “이전처럼 ‘내가 결정했으니 너희는 따르라’는 태도를 버리고 모든 구성원을 진정한 대화의 상대로 존중해줄 것”을 요구했다.
또 노조는 자회사와 손자회사 구성원들의 노동에 대해서도 정당하게 대우하고 네이버 본사가 이를 책임져야 한다고 요구하고 있다. 네이버 노조는 사측이 대화에 응한다는 전제 하에, 파업으로까지 사태를 악화시키는 것을 고려하고 있진 않다는 입장이지만 현재로선 장담할 수 없다. 사측이 노사 갈등 장기화를 우려하면서도 “먼저 협정근로자를 지정해야 한다는 당초 입장엔 변함이 없다”며 맞서고 있어서다. 협정근로자란 노조원 중 쟁의활동에 참가할 수 없는 근로자를 단체협약으로 정한 범위다. 24시간 인력 활용이 필수적인 포털 서비스 특성상 노조 쟁의가 기업과 이용자, 광고주들의 큰 피해로 이어질 수 있는 만큼 안전장치로서 협정근로자를 둬야 한다는 것이다. 이에 노조는 “자체 집계 결과 회사 요구대로 협정근로자를 지정하면 노조원의 80%가 여기에 포함돼 문제 해결을 제대로 요구할 수 없게 된다”는 입장이다.
장기화 조짐이 보이는 네이버의 이 같은 노사 갈등에 대해 관련 업계와 전문가들은 ‘터질 일이 터진 것’으로 보고 있다. 국내 정보통신기술(ICT) 산업이 비약적으로 발전하는 과정에서 누적된 근로자들의 불만과, 이를 자의 반 타의 반으로 외면했던 기업들의 관례가 도화선으로 작용했다는 해석이다. 지금까지 포털·게임 등 ICT 업종에선 핵심 인력인 개발자들의 일상적인 야근·특근과 열악한 근로환경 문제가 좀체 개선되지 않아 내부에서 불만의 목소리가 높았다. 특히 야근과 특근에 대한 수당을 미리 임금에 포함하는 ‘포괄임금제’가 관례적으로 업계 전반에 퍼져 있어 개선이 요구됐다.
노조 설립과 단체행동이 보편화한 자동차·조선·철강 같은 중후장대 업종에 비해, 상대적으로 역사가 짧고 노조가 없어 불이익을 본다는 내부 인식이 쌓인 것도 영향을 미쳤다. 네이버가 ICT 업계에서 사실상 최초로 노조를 만든 데 이어, 넥슨·스마일게이트·카카오 등 다른 ICT 기업에서도 최근 잇따라 노조가 설립돼 노사 간 긴장감이 감돌게 된 배경이다. 이 가운데 네이버 노사는 포괄임금제 폐지엔 합의했지만 네이버 노조 측에선 보다 근본적인 근로문화 개선 필요성이 남아있음을 지적하고 있다. 예컨대 인센티브와 연봉 책정 기준을 사측이 투명하게 공개하지 않아 직원들 간 과도한 경쟁과 긴장이 유발되고, 휴식권 보장이 안 돼 이런 분위기에서 계속 벗어날 수 없다는 것이다. 개발자뿐만 아니라 다른 직군 인력들도 ‘오랜 고통’에 시달려왔다며 사측이 헤아려줄 것을 호소하고 있다.
ICT 업계 관계자는 “네이버는 지난 수년 간 모바일 메신저 ‘라인’을 앞세워 글로벌 기업으로 급성장했고 국내에서도 사세가 급속도로 확장됐다”며 “이 과정에서 성과에 대한 조직 내 압박이 한층 심해지고, 근로문화 개선보다는 업무 부담 가중으로 분위기가 쏠리다 보니 구성원 피로감이 극대화한 것”으로 해석했다. 최배근 건국대 경제학과 교수도 “네이버가 ICT 업계 특유의 장시간 노동 관행 문제에서 자유롭지 못했음이 나타난 사례”며 “과거 벤처기업에서 지금은 연매출 5조원 규모의 대기업으로 성장하면서 초기의 수평적인 소통 문화가 사라지고 수직·권위적 문화로 바뀌면서 노조가 자연스럽게 등장하게 된 것”으로 분석했다. 네이버는 2015년 연매출 3조원대에 진입한 데 이어 2016년 4조원대, 지난해 5조원대에 오를 만큼 가파른 외형 성장을 거듭 중이다. 최근에 노조가 출범한 다른 ICT 기업들도 짧은 기간 급성장해 근로문화를 제대로 개선할 시간적 여유를 갖지 못했다는 공통점을 지녔다. 결국 네이버 노사갈등은 어느 한 기업만의 문제라기보다, 국내 ICT 산업 전반의 ‘성장통’을 상징하는 문제로 볼 수 있다는 얘기다. 이 때문에 전문가들은 네이버 노조의 활발한 쟁의 활동이 ICT 업계 전반의 근로문화 개선 신호탄으로 작용할 수 있을지 주목하고 있다. “역사가 짧은 국내 ICT 산업에선 과거 오너와 경영진뿐 아니라 일반 직원들 사이에서도 밤을 지새워가며 일하는 게 미덕처럼 여겨졌다. 증시 상장으로 ‘대박’을 내면 보상받는다는 분위기가 지배적이었기 때문이다. 이때만 해도 내부 구성원들은 노조의 필요성을 못 느꼈다. 그러나 지금은 이들 기업에서 이미 대기업으로 성장한 이후 입사한 근로자 수가 훨씬 많다. 이들은 초창기 멤버들과는 회사와 일을 대하는 관점이 근본적으로 다를 수밖에 없다. 여느 기업과 같은 노동자의 처지여서다. 이젠 회사 성장보다 근로문화 개선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업계 전체를 뒤흔들고 있다.” 최배근 교수의 진단이다.
문제는 이들 노조가 현재까지 유리해 보이는 명분 싸움에서 얼마나 ‘적정선’을 잘 지키며 기업 측을 설득할 수 있느냐다. 자칫 무리한 파업, 혹은 불법성 여부를 따져볼 수 있는 돌발 행위 등으로 상황이 잘못 전개되는 경우 국내 경제와 동종 업계에도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 이 경우 순식간에 여론이 나빠지면서 역풍을 맞을 가능성도 있다. 이에 대해 익명을 원한 네이버 노조원은 “사회적으로 여론이 안 좋은, 중후장대 업종의 노사 분규와는 처한 상황이나 배경부터가 매우 다르다”며 “네이버 본사뿐 아니라 근로 여건이 열악한 계열사의 근로문화 상향 평준화를 이루고, ICT 업계 전반의 새로운 기준을 제시하기 위한 노력임을 (노조원) 모두가 인식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이코노미스트(https://economist.co.kr) '내일을 위한 경제뉴스 이코노미스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네이버 노조는 올 들어 이미 수차례 쟁의활동으로 사측과 대립했다. 2월 20일부터 네 차례 점심·퇴근시간을 이용해 쟁의를 단행했다. 경기도 분당의 네이버 ‘그린 팩토리’ 사옥엔 사측을 규탄하는 내용의 현수막 등이 크게 걸려 있어 출퇴근하는 임직원이나 인근 주민들의 시선을 집중시키고 있다. 오세윤 네이버 노조 지회장은 지난 2월 11일 기자회견에서 “가장 원하는 건 수평적인 소통 문화를 복원하는 일”이라며 쟁의활동의 명분을 밝혔다. 앞서 네이버 노사는 지난해 내내 단체교섭을 벌였다가 결렬된 이후 올 초 고용노동부 중앙노동위원회를 통해 두 차례 노동쟁의 조정 절차를 밟았지만 사측이 협정근로자를 지정해야 한다고 거부, 최종 결렬됐다. 이에 노조는 사측 압박을 위한 단체행동에 나서기로 했다.
근무시간 중 쟁의활동으로 대응 수위 높여
또 노조는 자회사와 손자회사 구성원들의 노동에 대해서도 정당하게 대우하고 네이버 본사가 이를 책임져야 한다고 요구하고 있다. 네이버 노조는 사측이 대화에 응한다는 전제 하에, 파업으로까지 사태를 악화시키는 것을 고려하고 있진 않다는 입장이지만 현재로선 장담할 수 없다. 사측이 노사 갈등 장기화를 우려하면서도 “먼저 협정근로자를 지정해야 한다는 당초 입장엔 변함이 없다”며 맞서고 있어서다. 협정근로자란 노조원 중 쟁의활동에 참가할 수 없는 근로자를 단체협약으로 정한 범위다. 24시간 인력 활용이 필수적인 포털 서비스 특성상 노조 쟁의가 기업과 이용자, 광고주들의 큰 피해로 이어질 수 있는 만큼 안전장치로서 협정근로자를 둬야 한다는 것이다. 이에 노조는 “자체 집계 결과 회사 요구대로 협정근로자를 지정하면 노조원의 80%가 여기에 포함돼 문제 해결을 제대로 요구할 수 없게 된다”는 입장이다.
장기화 조짐이 보이는 네이버의 이 같은 노사 갈등에 대해 관련 업계와 전문가들은 ‘터질 일이 터진 것’으로 보고 있다. 국내 정보통신기술(ICT) 산업이 비약적으로 발전하는 과정에서 누적된 근로자들의 불만과, 이를 자의 반 타의 반으로 외면했던 기업들의 관례가 도화선으로 작용했다는 해석이다. 지금까지 포털·게임 등 ICT 업종에선 핵심 인력인 개발자들의 일상적인 야근·특근과 열악한 근로환경 문제가 좀체 개선되지 않아 내부에서 불만의 목소리가 높았다. 특히 야근과 특근에 대한 수당을 미리 임금에 포함하는 ‘포괄임금제’가 관례적으로 업계 전반에 퍼져 있어 개선이 요구됐다.
노조 설립과 단체행동이 보편화한 자동차·조선·철강 같은 중후장대 업종에 비해, 상대적으로 역사가 짧고 노조가 없어 불이익을 본다는 내부 인식이 쌓인 것도 영향을 미쳤다. 네이버가 ICT 업계에서 사실상 최초로 노조를 만든 데 이어, 넥슨·스마일게이트·카카오 등 다른 ICT 기업에서도 최근 잇따라 노조가 설립돼 노사 간 긴장감이 감돌게 된 배경이다. 이 가운데 네이버 노사는 포괄임금제 폐지엔 합의했지만 네이버 노조 측에선 보다 근본적인 근로문화 개선 필요성이 남아있음을 지적하고 있다. 예컨대 인센티브와 연봉 책정 기준을 사측이 투명하게 공개하지 않아 직원들 간 과도한 경쟁과 긴장이 유발되고, 휴식권 보장이 안 돼 이런 분위기에서 계속 벗어날 수 없다는 것이다. 개발자뿐만 아니라 다른 직군 인력들도 ‘오랜 고통’에 시달려왔다며 사측이 헤아려줄 것을 호소하고 있다.
ICT 업계 관계자는 “네이버는 지난 수년 간 모바일 메신저 ‘라인’을 앞세워 글로벌 기업으로 급성장했고 국내에서도 사세가 급속도로 확장됐다”며 “이 과정에서 성과에 대한 조직 내 압박이 한층 심해지고, 근로문화 개선보다는 업무 부담 가중으로 분위기가 쏠리다 보니 구성원 피로감이 극대화한 것”으로 해석했다. 최배근 건국대 경제학과 교수도 “네이버가 ICT 업계 특유의 장시간 노동 관행 문제에서 자유롭지 못했음이 나타난 사례”며 “과거 벤처기업에서 지금은 연매출 5조원 규모의 대기업으로 성장하면서 초기의 수평적인 소통 문화가 사라지고 수직·권위적 문화로 바뀌면서 노조가 자연스럽게 등장하게 된 것”으로 분석했다. 네이버는 2015년 연매출 3조원대에 진입한 데 이어 2016년 4조원대, 지난해 5조원대에 오를 만큼 가파른 외형 성장을 거듭 중이다. 최근에 노조가 출범한 다른 ICT 기업들도 짧은 기간 급성장해 근로문화를 제대로 개선할 시간적 여유를 갖지 못했다는 공통점을 지녔다.
국내 ICT 산업 전반의 성장통
문제는 이들 노조가 현재까지 유리해 보이는 명분 싸움에서 얼마나 ‘적정선’을 잘 지키며 기업 측을 설득할 수 있느냐다. 자칫 무리한 파업, 혹은 불법성 여부를 따져볼 수 있는 돌발 행위 등으로 상황이 잘못 전개되는 경우 국내 경제와 동종 업계에도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 이 경우 순식간에 여론이 나빠지면서 역풍을 맞을 가능성도 있다. 이에 대해 익명을 원한 네이버 노조원은 “사회적으로 여론이 안 좋은, 중후장대 업종의 노사 분규와는 처한 상황이나 배경부터가 매우 다르다”며 “네이버 본사뿐 아니라 근로 여건이 열악한 계열사의 근로문화 상향 평준화를 이루고, ICT 업계 전반의 새로운 기준을 제시하기 위한 노력임을 (노조원) 모두가 인식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이코노미스트(https://economist.co.kr) '내일을 위한 경제뉴스 이코노미스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많이 본 뉴스
1이재명 “‘국장’ 떠나는 현실...PER 개선하면 ‘코스피 4000’ 무난”
2롯데바이오로직스 설립 2년 만 수장 교체…신임 대표는 아직
3상법 개정 되지 않는다면 “국장 탈출·내수 침체 악순환 반복될 것”
4열매컴퍼니, 미술품 최초 투자계약증권 합산발행
5‘펫보험 1위’ 메리츠화재, 네이버·카카오페이 비교·추천 서비스 동시 입점
6네이버페이, ‘펫보험 비교·추천’ 오픈…5개 보험사와 제휴
7카카오페이, ‘펫보험 비교’에 업계 1위 메리츠화재 입점
8'19세' 보아, 청담동 빌딩 차익만 71억.. '재테크의 별' 떴다
9삼쩜삼 “2019년 종부세 과다 납부분 환급 신청 기한 얼마 안 남았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