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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욱 얼어붙은 한·일 관계 어디로] 7월 참의원 선거 앞둔 아베 공세 이어질 듯

[더욱 얼어붙은 한·일 관계 어디로] 7월 참의원 선거 앞둔 아베 공세 이어질 듯

개헌 노리는 아베 보수파 결집 위해 강경 노선… G20 한·일 정상회담 패싱에 관계 더욱 꼬여
문재인 대통령(왼쪽)과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지난해 5월 9일 일본 도쿄 일본경단련회관에서 열린 한·일·중 3국 비즈니스 서밋에 참석해 앉아 있다. / 사진:청와대사진기자단
일본 오사카(大阪)에서 6월 28~29일 주요 20개국·지역(G20) 정상회의가 열리고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가 19개 국가·기구 정상급 인사와 양자 회담을 열었지만 한국은 공식 대상에서 빠졌다. 종군 위안부 문제도 제대로 해결하지 못한 가운데 새롭게 떠오른 징용공 문제로 한·일 관계가 완전 마비상태이기 때문이다. 아울러 지난해 12월과 올해 1월의 한·일 간 해상 갈등이 벌어지고, 한국 정부의 후쿠시마(福島)산 수산물 수입 금지와 관련한 세계무역기구(WTO) 제소에서 일본이 역전패하면서 한·일 관계는 계속 차가워져 갔다. 냉각 과정을 복기하면서 꼬인 한·일 관계를 풀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해본다.

사실 아사히(朝日)신문, 요미우리(讀賣)신문, NHK 방송을 비롯한 현지 언론에 따르면 일본은 올해 축제 분위기다. 지난 2016년 생전 양위 의사를 발표했던 아키히토(明仁) 일왕(일본에선 덴노)이 4월 40일 퇴위하고 5월 1일 장남인 나루히토(德仁)가 즉위했다. 일본에서 200년 만에 이뤄지는 양위이자 30년 만의 즉위다. 헤이세이(平成) 연호도 레이와(令和)로 바뀌었다. 최근 일본을 방문했더니 일본인들끼리 서로 ‘레이와를 축하한다’는 인사를 나누고, 등산을 하면 ‘레이와 첫 등산’이라고 말하는 등 새 시대에 의미를 붙이는 인사가 유행이었다. ‘헤이세이 시대를 전쟁 없이 보냈다’며 축하하거나 감격해하는 노인이나 중장년도 만날 수 있었다. 외국인들도 일본인에게 ‘레이와를 축하한다’라고 인사하는 것이 가벼운 선물을 주고받는 것처럼 하나의 예의로 자리 잡고 있는 것을 목격할 수 있었다.
 오사카 G20 정상회의, 레이와 시대 첫 국제행사
레이와 인사는 일본 군국주의의 어두운 역사와 무관하다. 오히려 2019년 일본인의 정체성과 관련이 있다. 군주를 중심으로 한 나라의 국민임을 느끼며 이를 서로 나누는 분위기일 것이다. 게다가 양위한 아키히토는 전쟁에 반대하는 입장을 간접적으로 표시해왔다. 레이와 인사에는 평화와 선린을 다짐하는 의미도 포함됐을 것으로 보는 이유다. 이런 상황에서 열린 G20 정상회의는 일본이 레이와 시대를 맞아 첫 개최하는 대규모 국제행사였다. G20이라는 행사의 비중도 국제적으로 크다. 일본이 G20에서 의장국을 맡아 정상회담과 특별 각료회의를 주재한 것도 처음이다. 내년에 열릴 도쿄 올림픽과 함께 일본의 새로운 레이와 시대를 여는 상징적인 행사 성격이 강했다. 아베 정권은 G20 정상회의와 특별 각료회의를 해외에 자국을 홍보하고 국내에서 자신의 국제적인 위상을 국민에게 뽐내면서 이미지를 높이는 기회로 적극 활용했다.

오사카 G20 사이트에 따르면 G20 정상회담은 물론 연중 G20 특별 각료회의도 열려 G20 정상회의 개최국인 일본이 주최한다. 우선 G20 정상회의에 앞서 6월 8~9일 후쿠오카현에서 G20 재무장관과 중앙은행 총재 회의가 열렸다. 5월 11~12일에는 니가타현에서 농업장관 회의가, 6월 8~9일엔 이바라키현에서 교역과 디지털 경제 장관 회의가, 6월 16~16엘엔 나가노현에서 나가노현에서는 ‘에너지 전환과 지속가능한 지구환경’ 주제의 관련 장관회의가 각각 열렸다. 올 하반기에도 9월 1~2일 에히메현에서 노동장관 회의가, 10월 19~20일 오카야마에서 보건장관 회의가, 10월 25~26일엔 홋카이도에서 관광장관 회의가. 11월 22~23일엔 아이치현에서 외교장관회의가 각각 열린다.

G20 회의장에서 주최국인 일본의 아베 총리와 한국의 문재인 대통령 간 한·일 정상회담이 사전에 조율되지 못한 것은 일본이 축제 분위기에 스스로 찬물을 끼얹는 격이다. 문 대통령은 일본의 잔치인 G20에서 한·일 관계를 개선할 기회를 놓쳤다고 볼 수 있다. 아베 총리는 한·일 관계를 능수능란하게 처리하는 정치력을 국민에게 각인시킬 수 있는 기회를 잃은 셈이다. 아베가 한국을 제외한 19개 국가 정상이나 정상급 인사와 회담을 하면서 한국과는 하지 못하는 것 자체는 한·일 관계에서 두고두고 앙금으로 남을 가능성이 크다.
 한·일 정상회담 불발 두 나라 모두에 손해
하지만 아베로선 G20 기간 중 한·일 정상회담을 못한 것이 정치적으로 그리 손해도 아니다. 득실을 따져보면 내부 정치적으로는 오히려 이득이라고 볼 수 있다. G20 정상회의가 끝난 후인 7월 21일 제25회 참의원 통상선거가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다. 참의원은 양원제를 선택하고 있는 일본의 상원에 해당하며, 3년마다 선거를 치러 임기 6년의 의원 242명을 절반씩 교체한다. 전원을 교체하는 것이 아니어서 총선 대신 통상선거로 부른다.

이 참의원 통상선거는 레이와 시대 첫 선거라는 의미와 함께 아베로선 정치적 명운을 건 선거다. 아베 총리의 숙원인 ‘전쟁할 수 있는 일본’을 만들려면 개헌을 해야 하며, 개헌안을 확정하려면 아베가 이끄는 자민당과 집권 여당이 이번 참의원 선거에서 반드시 이겨야 한다. 일본 현행 헌법은 개헌 요건을 ‘중의원과 참의원 양원에서 국회의원 3분의 2 이상 찬성으로 국회가 헌법 개정을 발의한 후 국민의 승인을 얻어야 한다’라고 포괄적으로 규정한다. 따라서 국회가 개헌을 발의하고, 특별 국민투표 또는 국회가 정한 투표에서 과반수 찬성을 얻으면 개헌이 이뤄진다. 아베 총리에게 문제는 개헌 찬반을 묻는 국민투표를 발의하려면 중의원과 참의원 모두에서 3분의 2 이상의 찬성이 필요하다는 점이다. 그런데 현재 자민당을 비롯한 연립여당은 중의원에선 3분의 2 의석을 확보하고 있지만 참의원에선 아슬아슬하게 의석이 모자란다.

현재 일본 중의원은 465석의 의석 중 자민당 282석, 공명당 29석이다. 두 연립여당을 합치면 311석으로 3분의 2를 넘어서는 66.9%를 차지한다. 하지만 참의원은 242석 가운데 자민당과 ‘국민의 소리’ 연합이 125석, 공명당이 25석으로 62%를 차지해 3분의 2에 미치지 못한다. 국민의 소리는 2017년 10월 결성됐다가 2018년 10월 해산한 정당으로 해산 전 결성됐던 연립의 이름에만 명칭이 남아있다. 따라서 자민당이 이번 참의원 선거에서 과반수 의석을 차지해야 개헌안을 국민투표에 부칠 수 있다. 이에 따라 7월 28일 참의원 선거는 아베 정권과 일본 평화헌법에 운명의 날이 될 수밖에 없다. ‘전쟁할 수 있는 일본’으로 가는 길을 여느냐, 마느냐를 사실상 결정하기 때문이다.

일본 내부 정치상황은 사실 아베에게 유리했다. 올해는 ‘정치적 결전의 해’로 불릴 만큼 선거가 줄이어 있다. 이미 지난 4월 통일지방선거를 치렀다. 눈여겨볼 점은 이 선거의 전반부와 후반부 결과가 달랐다는 점이다. 일본은 1947년부터 일정 시기에 임기가 만료되는 도도부현(都道府縣: 광역지방자치단체)과 시정촌(市町村: 기초지방자치단체)을 비롯한 지방공공단체(지방자치단체) 단체장과 지방의회 의원 선거 일자를 전국적으로 통일해 4년에 한 차례씩 실시하는 ‘통일지방선거’ 제도를 실시한다. 올해 통일지방선거는 전반 4월 7일, 후반 4월 21일로 지역별로 나뉘어져 실시됐다. 2000년부터는 국회의원 보궐 선거도 같은 시기에 하는데, 올해엔 후반 투개표일인 21일 중의원 오키나와 제3구와 오사카 제12구의 보궐선거를 열었다.

전반부에선 아베의 자민당이 승리를 거뒀지만, 후반부 선거에선 보궐선거 2곳 모두에서 패배했다. 4월 12일 한국의 후쿠시마산 수산물 수입 금지조치와 관련한 세계무역기구(WTO) 상소심에서 한국이 승소하면서 일본의 분위기가 바뀐 것이 큰 영향을 끼쳤다는 평이다. 2018년 2월 22일 1심 판결을 뒤집은 이 상소심 판결로 아베와 집권 자민당은 국정수행 능력이 의심 받으면서 인기가 떨어졌다. 물론 오사카 지역이 전통적인 야당 강세 지역이긴 하지만, 자민당은 2010년 이후 보궐선거에 유독 강한 면모를 보였으니 만큼 WTO 판결을 패인으로 주장하고 싶을 것이다. 보궐 선거에서 쓴맛을 본 아베 총리로서는 한국에 계속 강경 조치를 취하거나 무시하면서 지지층을 집결할 필요를 더욱 느꼈을 가능성이 크다.

사실 한·일 관계는 WTO 판결이 나오기 전부터 오랫동안 삐걱거린 데다 시도때도 없이 악재가 튀어나왔다. 그래도 한·일 관계가 급속히 냉각된 변곡점은 지난해 10월 한국 대법원의 징용공 판결로 봐야 할 것이다. 대법원은 지난해 10월 30일 일제 강제징용 피해자의 손해배상 소송에서 일본 기업이 피해자들에게 배상해야 한다고 판결했다.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이날 일제 강제징용 피해자 4명이 과거 일제 강점기에 징용공에게 일을 시켰던 일본 제철회사의 후신인 일본제철(옛 신일본 제철)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청구 소송 재상고심에서 피해자들에게 각각 1억원을 배상하도록 했던 원심 판결을 확정했다. 2014년 피해자 4명이 일본제철을 상대로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제기한 지 13년 8개월 만의 최종 판결이다.

재판의 배경이 된 일제하 조선노동자의 일본 노동과 징용에 대해 잠시 알아보자. 일본은 1939년 국민징용령을 제정해 일본인에게 1945년 8월 태평양 전쟁이 끝날 때까지 적용했다. 조선인에게는 1944년 9월부터 1945년 8월 정전까지 전쟁이 끝날 때까지 11개월간 적용했으며, 조선인 징용노동자를 일본에 파견한 것은 1945년 3월까지 7개월 동안으로 알려졌다. 이번 대법원 판결도 이렇게 서술한다. “일본은 전쟁을 치르면서 군수물자 생산을 위한 노동력이 부족하게 되자 이를 해결하기 위하여 1938년 4월 1일 ‘국가총동원법’을 제정·공포하고, 1942년 ‘조선인 내지(일본) 이입 알선 요강’을 제정·실시하여 한반도 각 지역에서 관(官) 알선을 통하여 인력을 모집하였으며, 1944년 10월경부터는 ‘국민징용령’에 의하여 일반 한국인에 대한 징용을 실시하였다.” 1942년 이후 조선인 노동자들이 알선에 의해 자의로 일본에 가서 일한 것과, 1944년 10월 이후 국민징용령에 의해 일제가 조선인을 징용한 것을 구분한 셈이다.

판결문에 따르면 원고 모두가 국민징용령 이전인 1941~43년 일본에 건너가서 노동을 시작했다. 일하던 중 나중에 징용되거나 징집됐다. 원고 중 두 사람은 1943년 9월경 광고를 보고 응모해 오사카 제철소에서 훈련공으로 하루 8시간 3교대로 일했다. 회사는 낭비의 우려가 있다며 임금의 대부분을 이들 명의의 계좌에 넣고 통장과 도장을 기숙사 사감에게 보관하게 했다. 1944년 2월부터는 이들을 강제로 징용하고 그 뒤로는 아무런 임금도 지급하지 않았다. 이들은 1945년 6월 함경북도 청진에서 건설 중이던 제철소로 이동해 하루 12시간씩 일하다 그해 8월 공장이 소련군의 공격으로 파괴되자 서울로 도망했다가 해방을 맞았다. 또 다른 원고는 1941년 대전시장의 추천으로 보국대에 동원돼 가마이시 제철소에서 일하다 1944년 징병돼 고베에서 미군포로 감시원으로 일하다 전쟁이 끝나면서 귀국했다. 이 원고는 임금을 저금해 준다는 말만 듣고 지급받지는 못했다. 또 다른 원고는 1943년 1월경 군산에서 지시를 받고 모집돼 야하타 제철소에서 일했다. 임금을 지급받지 못하다 종전이 되자 회사의 지시를 받고 귀국했다.

대법원은 이들을 고용했던 일본 제철회사의 후신인 일본제철(옛 신일본제철)에게 배상을 지시했지만, 일본 정부는 1965년 한일청구권협정으로 관련 배상을 이미 했다고 주장하며 판결을 인정하지 않았다. 그래도 사실 그때까지만 해도 아베 총리와 일본 정부 관계자들은 한국 정부에 한국 대법원의 징용공 판결에는 ‘적절한 조치’를 주문하면서 해결책을 찾거나 한국 정부의 행동을 기대하거나 기다리는 분위기였다. 하지만 그 직후 벌어졌던 해상 분쟁은 한·일 관계를 급랭시켰다. 일본은 지난해 12월 21일 “한국 해군의 광개토대왕함이 일본 해상자위대 제4항공군 소속 P-1 초계기에 화기관제 레이더를 쐈다”고 주장하며 지루한 설전과 진실공방을 이어갔다. 한국 해군은 “동해에서 표류 중인 북한 어선을 구출하기 위한 인도주의적 작전을 펼치는 한국 군함에 일본 초계기가 저공으로 접근하며 위협했다”라고 화상 증거까지 제시했지만 일본은 고집을 꺾지 않았다. 그런 상황에서 올해 1월 23일엔 한국·중국·일본의 비행정보구역에 겹치는 이어도 인근 해상에서 일본 해상자위대의 초계기가 거리 약 540m, 고도 약 60~70m로 한국 해군의 대조영함에 저고도로 접근해 위협 비행했다. 한국 국방부가 사진 증거까지 제시하며 항의했지만 일본 방위성은 “그런 적 없다”고 잡아뗐다.
 대법원 징용공 판결, 일 초계기 위협 등 갈등 잇따라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가 지난 2월 13일 중의원 예산위원회에서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일왕의 사죄가 필요하다고 한 문희상 국회의장의 발언에 대해 비판하고 있다. / 사진:NHK 영상 캡쳐
이런 상황에서 문희상 국회의장이 2월 8일 보도된 미국 블룸버그 통신 인터뷰에서 “한·일 관계는 일왕이 사과하면 된다”라고 발언한 것이 공개되면서 한·일 관계는 아예 경색 국면으로 치달았다. 문 의장은 ‘역사 문제를 포함한 여러 문제로 악화하고 있는 한·일 관계를 개선하기 위해서는 무엇이 필요한가’라는 질문에 “(일본)총리의 한마디가 있으면 좋다. 나는 퇴위를 앞둔 일왕이 발언하는 것도 바람직하다고 생각한다. 전쟁 범죄 주범의 아들이 노인의 손을 잡고 ‘정말 미안했다’고 한마디 말하면 모두 해결될 것”이라고 답했다. 일본 NHK방송은 이와 관련해 “이번 발언에 대해 한국 언론에서는 2012년 당시 이명박 대통령이 ‘일왕이 한국을 방문한다면 한국의 독립운동 희생자에게 사과해야 한다’라고 발언해 일본 측의 강한 반발을 부른 데 이어 또 다시 일본의 국민감정을 자극하는 것이라고 우려하는 보도가 나오고 있다”라고 전했다. 문 의장은 6선 의원으로 문재인 정부의 출범 직후 일본에 대통령 특사로 파견됐을 정도로 일본과 가까운 정치인으로 통해왔다. 그런 점에서 문 의장의 발언은 일본에 더욱 충격으로 받아들였을 것이다.

일본 당국은 이전과는 비교도 안 될 정도로 거칠게 나왔다. 아베 총리는 물론 정부 관계자가 총출동해 문 의장과 한국 정부에 전방위로 항의하고 압박하는 것은 물론 사과까지 요구했다. 징용공 판결에서 ‘적절한 조치’를 요구한 것이 냉전이라면, 문 의장 발언에 대해선 열전으로 응답했다. 2월 12일 아베 총리가 직접 나섰다. 아베는 이날 중의원 예산위원회에서 야당 의원이 문 의장 발언에 대한 의견을 묻자 “정말로 놀랐으며 너무나 부적절한 발언으로 극히 유감”이라며 “한국에 외교 경로를 통해 엄중히 항의했고, 사죄와 철회를 요구했다”고 말했다. 야당 의원이 이어 “과거엔 한국을 ‘기본적인 가치관을 공유하는 가장 중요한 이웃’이라고 했는데 지금도 같은 생각이냐”라고 묻자 즉답을 피하며 “‘구 조선반도 노동자 문제(징용 문제)’는 양국 관계의 기초를 부정하는 것으로, 적절한 조치를 한국이 취하도록 기대한다”라고 말했다.

스가 요시히데(菅義偉) 관방장관도 이날 기자회견에서“(인터뷰가 공개된) 2월 8일엔 가나스기 겐지(金杉憲治) 일본 외무성 아시아대양주국장이 김경한 주일한국대사관 정무 공사를 초치해 문 의장 발언에 항의했으며 다음날에는 서울에서 나가미네 야스마사(長嶺安政) 주한일본대사가 조현 외교부 1차관에게 항의했다”고 밝혔다. 도쿄와 서울 양쪽에서 한·일 외교 루트를 통해 문 의장의 발언 철회는 물론 사과 요구까지 하고 나섰다. 이날 스가 장관은 “(문 의장의 발언에 대해) 높은 레벨을 포함한 외교 루트를 통해 ‘매우 부적절한 내용이 포함돼 있어 지극히 유감’이라는 취지로 엄하고 강력하게 항의했다”라고 말했다. 외교적 발언을 해야 하는 입장인 고노 다로(河野太郞) 외상도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고 무례하다”고 말했다. 일본은 문 의장 발언에 그야말로 총력전을 펼치며 거칠게 항의한 셈이다.
 문희상 의장의 ‘일왕 사과’ 발언 후 한·일 관계 급랭
국방부는 지난 1월 4일 한·일 간 레이더 갈등과 관련해 일본 해상 초계기(P-1)의 위협적인 비행 모습을 담은 반박 영상을 공개했다. 사진은 광개토대왕함이 표류중인 조난 선박에 대해 인도주의적 구조작전을 하는 가운데 일본 초계기(노란 원)가 저고도로 진입하는 모습. / 사진:국방부 영상 캡쳐
교과서, 독도, 동해 명칭, 종군위안부, 징용공 등 다양한 한·일 갈등 속에서도 일본이 외교적으로 이렇게까지 즉각적으로, 험악하게 반발한 적은 드물다. 문 의장이 일본에선 민감할 수밖에 없는 사안을 건드리면서 축제 분위기의 일본에 찬물을 끼얹었다고 일본이 판단한 것으로 볼 수 있다. 가장 예민한 부분까지 건드린 상황에서 한·일 관계가 냉각을 넘어 경색으로 갈 수밖에 없었다. 이런 상황에서 오사카 G20 정상회담에서 한·일 정상회담을 기대한 것 자체가 무리였다. 일본에서 한국에 대한 강경 자세는 아베가 전력을 쏟는 7월 28일 참의원 선거에 오히려 도움이 될 수 있다. 아베는 한국에 대한 강성 이미지를 지속하면서 보수 지지파의 결집을 노리고 일본 자위대를 정식 군대로 만드는 개헌을 위한 명분을 착착 쌓아가고 있다. G20 정상회의까지 계속된 한·일 냉전이 어디까지 갈 것인지 우려할 수밖에 없다. 이를 계기로 양측이 해법을 찾고, 악화한 한·일 관계가 바닥을 치고 다시 회복하기를 기대할 뿐이다.



※ 필자는 현재 중앙일보 국제전문기자다. 논설위원·국제부장 등을 역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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