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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주의 vs. 자본주의 논쟁 쓸데없다

사회주의 vs. 자본주의 논쟁 쓸데없다

경제 정책 기준으로 볼 때 미국은 사회주의의 이상으로 꼽히는 덴마크 · 스웨덴과 비슷해
ILLUSTRATION BY BRITT SPENCER
체육관에서 함께 운동 교습을 받는 한 여성이 지난주 갑자기 자신은 사회주의자라고 선언했다. 누가 묻지도 않았고, 전혀 뜬금없는 소리였다. 하지만 그 선언은 ‘사회주의 대 자본주의’라는 뜨겁고 날선 공방전을 촉발했다. 열정적인 토론이었지만 뭔가 혼란스럽고 분명치 않았다. 당연한 일이다. 아주 바보 같은 논쟁이었기 때문이다.

나는 지금까지 몇몇 기업체의 임원을 맡으면서 26개국에서 일했다. 그러면서 ‘사회주의’니 ‘자본주의’니 하는 꼬리표가 얼마나 잘못된 것인지 알게 됐다. 모든 현대 국가의 경제는 그 두 가지의 혼합이다. 놀라지 마시라. 사실 미국도 어느 나라 못지않게 사회주의적이다.

워싱턴 D.C.에 본부를 둔 보수 노선의 싱크탱크 헤리티지재단은 지난 25년 동안 매년 경제자유지수(Index of Economic Freedom)를 발표했다. 세계의 모든 나라를 0점부터 100점 사이에서 점수를 매기고 순위를 정한다. 정부의 개입이 전혀 없는 나라, 다시 말해 본질적으로 ‘사회주의에서 가장 멀리 떨어진’ 경제가 100점 만점을 받는다. 2019년 발표된 보고서에 따르면 세계에서 가장 사회주의적인 나라는 북한이다. 북한은 5.9점으로 순위가 바로 위인 나라보다 20점이나 낮다(참고로 올해 한국은 72.3점으로 29위다). 그러나 가장 사회주의적이지 않은 나라, 다시 말해 가장 자유로운 경제는 미국이 아니다. 미국은 1위의 근방에도 가지 않는다.

미국은 77점으로 12위다. 네덜란드와 동점이다. 특히 미국의 점수는 덴마크보다 약간 높고, 스웨덴보다는 약 2점 높을 뿐이다. 그 두 나라는 ‘사회주의’ 건설을 부르짖으며 다음 대선을 위해 민주당 경선에 출사표를 던진 버니 샌더스 상원의원(현재 무소속)이 자신의 사회주의 이상으로 지목한 국가들인데도 말이다.

그처럼 점수 차이가 적다는 사실에 사회주의를 지향하는 미국의 진보주의자들마저 놀랐을 것이다. ‘사회주의자’를 자처하는 알렉산드라 오카시오-코르테스 민주당 하원의원과 함께 엘리베이터를 타는 것만큼이나 스웨덴과 같은 부류의 나라가 되기를 두려워하는 미국의 보수주의자도 상당한 충격을 받았을 것이다.

거의 모든 서방 국가는 65~80점이라는 좁은 범위 안에 들어 있다. 우리가 미국이라는 맥락에서 ‘사회주의 대 자본주의’ 논쟁을 벌일 때 흔히 실내 적정 온도를 두고 싸우는 것처럼 아예 보일러를 뜯어내야 하는지가 아니라 온도조절 장치의 설정 온도를 올릴 것인지 내릴 것인지를 두고 다툰다.

헤리티지재단의 경제자유지수는 12가지 항목을 측정한다. 그중 미국이 대다수 비슷한 국가보다 눈에 띄게 ‘더 자유로운’ 유일한 항목이 세금 부담 문제다. 물론 일각에선 한계세율(초과 수익에서 세금이 차지하는 비율)을 기초로 사회주의를 정의한다. 세계적인 보안 소프트웨어 개발자이자 모험 기업가, CEO에다 살인 용의자이기도 한 존 매카피는 최근 뉴스위크와 가진 인터뷰에서 세금을 ‘노예제’에 비교했다. 매카피가 노예제를 공부하지 않은 게 분명하다. 하지만 그는 세금이 개인 자유의 침해라는 뜻으로 그렇게 말한 듯하다. 그렇다면 교통신호, 자동차의 안전벨트, 음주운전 금지법도 개인의 자유를 침해한다고 말할 수 있을까? 한 세기 전 미국 연방대법원의 올리버 웬델 홈스 대법관이 말했듯이 “세금은 우리가 문명사회를 살아가기 위해 지불해야 하는 대가”다. 미국인은 대다수 선진국보다 세금을 약간 적게 낸다.
지난해 11월 쿠바 아바나에서 피델 카스트로의 서거 2주기를 기념하는 대학생들. 헤리티지재단의 경제자유지수에서 쿠바는 180개국 중 178위였다. / 사진:EPA/YONHAP
미국이 어떤 다른 나라만큼이나 사회주의적이라고 해서 미국에 변화가 필요 없다는 뜻은 아니다. 미국은 변화가 반드시 필요하다. 미국은 사회안전망 측면에서 일부 국가와 비교할 때 상당히 뒤진다. 내가 직접 경험했다. 나는 조지아주 웨이크로스의 저소득층 주택단지에서 빈곤선 아래서 성장했다. 가난은 견디기 힘들고 혐오스러울 수 있다. 가난하다는 것은 단지 돈 없이 지낸다는 게 아니라 끊임없는 두려움 속에서 살아간다는 뜻이다. 가난한 사람은 경제적인 혈우병 환자다. 지혈이 되지 않아 피부에 상처가 약간이라도 생기면 치명적일 수 있다. 부유층이나 중산층도 잘못하면 그런 어려움을 겪을 수 있다고 생각하지만 실제는 그렇지 않다.

하지만 시스템 전체를 제거하지 않고도 많은 변화를 이룰 수 있다. 또 어느 쪽도 변화를 두려워해선 안 된다. 재앙을 일으키지 않고 부유층의 세율을 올리거나 국민건강보험을 도입할 수 있다. 만약 우리의 계산이 틀린다면 어떻게 될까? 언론에 나와 떠드는 전문가들은 우리가 진전의 길에서 약간만 벗어나도 가드레일을 치고 나가 경제적인 절벽 아래로 떨어질 것이라고 겁준다. 하지만 그건 실제로는 중앙선을 약간 넘어 가다가 운전대를 살짝 당겨 원래 차선으로 되돌아가는 것과 같다.

현대의 경제는 늘 새로운 상황에 적응해 나간다. 미세 조정이 계속된다는 뜻이다. 뉴질랜드를 보라. 뉴질랜드는 1970년대엔 사회주의 국가였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서 국내총생산(GDP) 대비 정부 지출의 비율이 과도하게 높아지면서 경제성장이 멈췄다. 이때 등장한 인물이 로저 더글라스다. 그는 1984년 재무부 장관으로 취임한 후 국영기업의 민영화, 보호무역 철폐, 규제 완화 등 경제 자유화를 주도하며 뉴질랜드 경제를 벼랑 끝에서 구해냈다. 나는 뉴질랜드에서 6년 지내면서 기업들이 사회주의에서 시장 기반의 경제로 전환하는 일을 도왔다. 그 다음 10년 뉴질랜드 정부의 지출이 GDP 대비 크게 줄면서 경제가 다시 성장하기 시작했다. 그 이래 뉴질랜드 경제는 정상적인 상승과 하락을 거듭하고 있다.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서방 국가들은 허용되는 최대한도까지 사회주의를 지향하는 경향이 있는 것 같다. 그러다가 비용이 과다해지면 다시 제자리로 돌린다. 그건 전혀 큰일나는 문제가 아니다. 헤리티지재단의 경제자유지수 점수가 미국보다 높은 나라가 어디일지 추측해보라. 그렇다. 뉴질랜드다. 뉴질랜드는 세계에서 3번째로 자유로운 경제를 가졌다.

미국의 기존 경제 시스템을 내다버리고 사회주의를 도입하라고 제안하는 건 터무니없다. 사회주의는 북한·쿠바·베네수엘라 같은 나라에서 실패했고, 또 계속 실패하고 있지 않는가? 그렇다고 현 시스템의 어떤 미세 조정도 반이상향적인 사회주의를 가져온다고 두려워하는 것도 마찬가지로 어리석다.

그 대신 진정한 문제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 예를 들면 우리가 낸 세금이 어디에 사용되는지 같은 문제다. 우리는 논쟁을 다른 식으로 펼칠 필요가 있다. 약칭을 사용하는 것은 논의를 좀 더 효율적이고 생산적으로 하기 위해서다. 그러나 이 경우의 약칭인 ‘사회주의 대 자본주의’는 논의의 생산성 향상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

- 샘 힐



※ [필자는 크래프트 푸즈의 국제전략 담당 이사, DMB&B(현재의 퍼블리시스)의 전략 담당 이사 겸 부회장, 경영 컨설팅업체 부즈 앨런 앤 해밀턴의 파트너를 지냈고 지금은 저술가로 활동한다. 이 글의 내용은 필자의 개인 견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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