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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직연금 시장 장악 나선 금융사들] 수수료 인하, 모바일 플랫폼 강화로 재무장

[퇴직연금 시장 장악 나선 금융사들] 수수료 인하, 모바일 플랫폼 강화로 재무장

은행권, 보험·증권사보다 장악력 커… 전사적 역량 모으기 위한 조직 개편도
190조원. 금융감독원이 집계한, 지난해 말 국내 전체 퇴직연금 적립금 수치다. 2년 전인 2016년(147조원) 대비 43조원이나 증가하면서 어느덧 200조원에 육박했다. ‘꼬박꼬박 냈음에도 훗날 제 몫대로 받을 수 있을지조차 불확실한’ 국민연금만으로는 노후 대비가 어렵다는 인식이 사회적으로 확산되면서 퇴직연금에 돈이 몰린 결과다. 이 추세로 봤을 때 빠른 시일 내에 400조원 규모까지 퇴직연금 시장이 커질 것으로 금융 업계는 예상한다. 금융사들로서도 이처럼 ‘중요한 미래 먹거리’로 자리매김한 퇴직연금의 가입자 확대에 사활을 걸 수밖에 없다.

금융권 한 관계자는 “퇴직연금은 한번 유치하면 최소 10년 이상의 장기간 위탁 운영이 특징”이라며 “적립금 대비 수수료나 보수는 계속 발생하므로 여러모로 매력적”이라고 전했다. 특히 저금리 기조로 일반 예·적금 가입자 확보에 어려움을 겪어왔던 시중은행들은 퇴직연금 시장 공략에 한층 적극적이다. 금감원에 따르면 지난해 국내 퇴직연금 190조원 가운데 약 50.7%인 96조4000억원이 은행권에서 적립됐다. 이어 생명보험사(23.3%), 금융투자사(19.2%), 손해보험사(7.3%) 순이었다. 퇴직연금 상품을 다루는 다른 보험사나 증권사에 견줘도 은행들의 퇴직연금 시장 장악력이 그만큼 크다는 얘기다. 은행권의 퇴직연금 시장 비중은 2010년에도 49.85%로 보험사(36.30%)와 증권사(13.85%) 이상이었다. 전국에서 지점이 많을뿐더러 주거래 기업까지 다수 확보한 은행권 특성상 계속해서 유리한 고지를 점하고 있다.
 은행권에서 퇴직연금 과반수 적립
실제로 지난해 말 적립금 기준 시장점유율 1위는 보험사인 삼성생명(13.0%)이었다. 하지만 은행권에서 신한은행(10.0%)과 KB국민은행(9.0%), IBK기업은행(7.3%), KEB하나은행(6.6%)과 우리은행(6.6%) 등이 삼성생명을 맹추격했다. 신한은행은 2017년 16조3000억원이었던 퇴직연금 적립금 규모를 지난해 19조1000억원으로 키우면서 1위 자리를 지키는 한편 삼성생명을 바짝 추격했다. 같은 기간 하나은행(10조7000억원→12조6000억원)과 우리은행(11조7000억원→12조6000억원) 등도 성장세가 돋보였다. 이들 모두 가입자 유치 전략은 각양각색이다.

우선 파격적인 수수료 인하다. 소액의 수수료에도 적잖은 부담을 느끼는 20~30대 젊은 소비자를 효과적으로 끌어들이기 위해서다. 신한은행은 7월 1일부터 개인형 퇴직연금(IRP)의 수수료를 최대 70% 인하하는 등 퇴직연금 수수료 체계를 전면 개편했다. 1년 단위로 IRP 가입자 계좌에 수익이 발생하지 않으면 해당 연도의 운용·자산관리 수수료를 전액 면제해주기까지 한다. 10년 이상 장기 가입하면 운용·자산관리 수수료를 최대 20%, 일시금이 아닌 연금 방식으로 수령하면 연금 수령 기간 중 운용관리 수수료를 30% 깎아준다. 또 만 34세 이하 가입자는 운용관리 수수료 20% 인하 혜택을 받을 수 있으며, 10년 이상 가입하고 연금으로 수령했을 때 최대 70%의 수수료를 감면받을 수 있다.

하나은행도 최근 만 19~33세 가입자에 대한 IRP 수수료를 70% 인하했다. 이미 적용 중인 장기 가입자 할인율(가입 후 2년차 10%, 3년차 12%, 4년차 이후 15% 감면)까지 고려하면 해당 연령 가입자의 경우 최대 85%의 수수료 할인을 받을 수 있다. 후발주자인 NH농협은행 역시 7월 15일부터 각종 퇴직연금 수수료를 인하한다. 유치원과 어린이집, 사회복지기관과 사회적 기업 등의 법인 고객을 대상으로 확정급여형(DB) 및 확정기여형(DC) 퇴직연금 수수료를 최대 50% 내리기로 했다. 농협은행은 경쟁사들처럼 젊은층을 대상으로 IRP 수수료를 낮추는 방안도 검토 중이다. 젊은 IRP 가입자일수록 장기 고객으로 묶어둘 수 있는 확률이 높아, 은행들로서는 수수료를 깎아주더라도 이들을 더 많이 유치한다는 전략이다. 국내 전체 IRP 적립금은 지난해 말 19조2000억원으로 전체 퇴직연금 적립금의 10% 수준에 그쳤지만, 규모는 전년 대비 25.6%(약 3조9000억원) 증가했다.

다음으로 비대면 창구인 모바일 플랫폼 강화다. 이 또한 스마트폰 활용에 익숙한 젊은층을 겨냥한 전략이다. 하나은행은 6월 17일 통합 모바일 애플리케이션 ‘하나원큐’ 내에 퇴직연금 관리 전용 플랫폼인 ‘하나연금통합포털’을 선보였다. 별도 인증 절차를 안 거쳐도 24시간 이용할 수 있다. 제휴사인 삼성자산운용에서 제공하는 연금펀드 관련 상품 정보, 리서치 및 자산시장 전망, 펀드 뉴스, 경제 트렌드 등의 자료를 손쉽게 접할 수 있다. 국세청 홈택스, 한국주택금융공사의 주택연금 웹페이지, 금감원 금융소비자정보포털(‘파인’) 등과 연결해 은퇴 설계 관련 다양한 정보를 확인할 수도 있다.

국민은행은 인공지능(AI)을 활용해 가입자 맞춤형 포트폴리오와 사후관리 서비스를 제공하는 로보어드바이저 ‘케이봇쌤’으로 연금까지 관리해주고 있다. 모기업인 KB금융지주 주도로 그룹 통합 퇴직연금 플랫폼도 구축할 예정이다. 앞서 KB금융은 사내 자산관리(WM) 부문 안에 국민은행 외에도 KB증권과 KB손해보험 등 퇴직연금 사업을 하는 3개사의 연금 사업 총괄 컨트롤타워인 연금본부와 연금기획부를 신설하는 조직 개편을 5월 말 단행했다. 그룹 전체 퇴직연금 사업을 보다 효과적으로 진행하면서 가입자의 수익률과 사후관리 등에 대한 만족도를 높이기 위해서다. 퇴직연금 사업 강화에 초점을 둔 이런 조직 개편 또한 금융권 트렌드로 부상했다. 신한금융 지주도 그룹 내 4개사에서 개별 운영하던 퇴직연금 사업을 통합한 매트릭스 조직을 6월 공식적으로 도입했다.
 수익률 제고, 리스크 관리 과제 해결해야
다만 이들 앞에는 퇴직연금 수익률 제고라는 거대한 과제가 놓여 있다. 금감원에 따르면 지난해 국내 퇴직연금의 평균 수익률은 1.01%로, 최근 5년간 평균 수익률인 1.88%에도 크게 못 미쳤다. 전국은행연합회에 따르면 은행 6곳(신한·국민·우리·하나·농협·기업은행)의 지난 1분기 기준 연간 평균 수익률은 DC가 1.41%, IRP가 1.02%로 가입자 입장에서는 수수료를 떼고 나면 사실상 마이너스 수준이었다는 얘기다. 올해부터 10~30인의 소규모 사업장, 2022년부터는 10인 미만 사업장도 퇴직연금 의무 가입 대상이 되면서 시장은 한층 커질 전망이지만, 수익률 제고 없이는 가입자들의 불만 목소리도 비례해서 높아질 수밖에 없다.

중요한 과제는 하나 더 있다. 송민규 한국금융연구원 연구위원은 “기본적으로 퇴직연금 수익률이 지금보다 제고돼야 한다는 관점엔 이견이 없지만, 이에 치중하다가 수반될 수 있는 위험성에 대해서도 다각도로 (금융사들이) 연구해서 함께 제시해줘야 할 때”라고 지적했다. 양적으로 급격히 성장한 시장의 이면에서 이 같은 질적 성장 노력을 이어가야 한다는 지적이다.

- 이창균 기자 smile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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