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int

‘미술의 궁전’이 들려주는 이야기

‘미술의 궁전’이 들려주는 이야기

스미소니언 박물관 프리어 갤러리의 ‘피코크 룸’ 오리지널 디자인으로 복원·공개… 19세기 심미주의의 대표작
휘슬러는 방 중앙에 싸울 태세를 하는 공작새 두 마리를 그려 넣었다 / 사진:FREER GALLERY OF ART
미국 워싱턴 D.C. 스미소니언 박물관 프리어 갤러리의 피코크 룸이 100여 년 만에 처음으로 원래의 모습을 선보인다. 갤러리 측은 최근 이 방을 꾸민 19세기 미국 미술가 제임스 맥닐 휘슬러의 원래 의도대로 복원을 마쳤다. 휘슬러가 장식한 인테리어 중 유일하게 현존하는 이 방은 원래 영국 선박 재벌 프레드릭 리랜드의 런던 저택 내 식당이었다.

휘슬러의 첫 번째 주요 후원자였던 리랜드는 켄징턴의 자택을 “자신의 문화적 지위에 걸맞은 미술의 궁전으로 만들고 싶어 했다”고 큐레이터 리 글레이저는 말했다. 리랜드는 당초 이 방의 장식을 건축가 토머스 제킬에게 맡겼지만 병으로 중도 하차했다. 그러자 그 집의 다른 구역을 맡아서 작업하던 휘슬러가 그 일을 마무리하겠다고 자원했다. 휘슬러는 리랜드에게 이 일을 자신에게 온전히 맡겨달라고 요청한 뒤 그 방을 처음부터 다시 디자인했다.

“휘슬러는 리랜드에게 편지를 보내 ‘내가 당신의 식당을 탈바꿈시키고 있다’면서 ‘깜짝 놀랄 아름다움을 선사하겠다’고 말했다”고 글레이저는 전했다. “하지만 휘슬러는 자신이 그 방을 어떻게 바꾸고 있는지 정확히 말하지 않았다. 또 일이 마무리되면 기자들을 불러 방을 공개할 계획이라는 말도 하지 않았다.”휘슬러는 리랜드의 소장품인 17세기 중국 청조 강희제 시대의 청화백자 도자기들을 전시하기 위해 벽과 천장을 감청색과 금색으로 칠했다. 공작의 깃털과 흡사한 복잡한 무늬도 넣었다. 그는 제킬이 골라놓은 6세기 가죽 벽걸이도 칠했다. 벽난로 위에 걸 자신의 그림 ‘도자기 나라에서 온 공주’(1864)와 색상이 잘 어울리도록 하기 위해서다.

피코크 룸의 동쪽과 북쪽 벽에 전시된 17세기 중국 청조 강희제 시대의 청화백자 도자기 / 사진:FREER GALLERY OF ART
1877년 리랜드가 런던으로 돌아왔을 때 그는 바뀐 식당 디자인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게다가 자신의 집이 언론에 공개된 것도 탐탁지 않았다. 휘슬러가 내민 거액의 청구서 또한 그의 심기를 불편하게 만들었다. “두 사람은 흥정 끝에 휘슬러가 당초 청구한 금액의 절반만 지불한다는 데 합의했다”고 글레이저는 말했다. “하지만 둘의 관계는 돌이킬 수 없을 정도로 손상됐다.”

리랜드는 휘슬러에게 식당 작업을 마무리하도록 허락했지만 불만에 찬 휘슬러는 방 중앙에 자신의 심기를 드러내는 새로운 그림을 그려 넣었다. 몸을 잔뜩 부풀린 공작새 두 마리가 싸울 태세를 취하고 있는 그림이다. 휘슬러와 리랜드를 묘사한 것이다. 휘슬러는 이 그림에 ‘예술과 돈: 또는, 이 방의 스토리(Art and Money: or, The Story of the Room)’라는 제목을 붙였다.

당시 휘슬러는 리랜드에게 이렇게 말한 것으로 전해진다. “난 당신을 유명하게 만들었소. 내 작품은 당신이 이 세상에서 잊혀진 뒤에도 살아남을 것이오. 하지만 먼 훗날 당신이 이 피코크 룸의 소유주였던 것으로 기억될 수는 있소.” 글레이저는 “휘슬러가 그 후로 그 방을 다시 보진 못했지만 그 방엔 리랜드의 마음에 들었던 부분도 있었던 듯하다”고 글레이저는 말했다. “리랜드는 런던에서 가장 부유한 사람 중 한 명이었다. 하려고만 들었다면 얼마든지 방을 다시 꾸밀 수 있었을 텐데 그렇게 하지 않았다.”1860~70년대는 영국에서 심미주의가 번성했던 시기다. 예술에 깊은 사회적·정치적 의미를 담기보다는 ‘예술을 위한 예술’을 추구하는 경향이다. 피코크 룸은 심미주의의 가장 유명한 예라고 할 수 있다. “휘슬러는 자신이 창조한 이 세계를 사람들이 몰입적으로 체험할 수 있기를 바랐다”고 글레이저는 말했다. “그는 미술이 액자의 틀 안에만 국한돼서는 안 되며 방 전체로 확장돼야 한다고 생각했다.”

휘슬러는 벽난로 위에 자신이 그린 ‘도자기 나라에서 온 공주’(1864)를 걸어놓았고(왼쪽 사진 가운데), 창의 덧문에는 금박 입힌 공작새들을 그려 넣었다. / 사진:WIKIPEDIA.ORG, FREER GALLERY OF ART
휘슬러의 철학에는 상업적인 측면도 있었다. 당시 돈을 많이 벌던 중산층 후원자들이 그에게 집의 실내장식을 맡기고 싶어 했다. 하지만 유감스럽게도 리랜드와 사이가 틀어지면서 휘슬러는 수집가들의 눈 밖에 났고 몇 년 동안 경제적 어려움과 조롱을 견뎌야 했다. 하지만 그런 어려운 시기가 그를 수채화가로 거듭나게 했다. “휘슬러는 현대 세계에서 예술과 돈은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라는 것을 잘 알았다”고 글레이저는 말했다. “그리고 그는 미술 작품의 가격을 결정하는 가장 큰 권한은 미술가에게 주어져야 한다고 믿었다.”

1892년 리랜드가 사망한 뒤 그의 가족은 피코크 룸을 찰스 랭 프리어에게 매각했다. 프리어는 그 방을 해체해서 미국 디트로이트에 있는 자신의 저택으로 옮겨 설치했다. 프리어가 세상을 떠난 뒤 그 방은 1923년 문을 연 프리어 갤러리에 상설 전시작으로 설치됐다. 하지만 1800년대 이후 이 방이 오리지널 디자인으로 선보이기는 이번이 처음이다. 프리어가 이 방을 사들였을 때 그곳에 전시됐던 도자기들은 모두 경매로 팔린 뒤였다. 원래 모습대로 복원작업을 끝내고 지난 5월 다시 공개된 ‘피코크 룸 인 블루 앤 화이트(The Peacock Room in Blue and White)’는 “미술가와 장식가로서 휘슬러의 마음을 확실히 이해할 수 있게 해준다”고 글레이저는 말했다.원래의 모습과 최대한 흡사한 방을 만들기 위해 글레이저 팀은 1892년 찍은 리랜드의 저택 식당 사진을 면밀히 관찰했다. 리랜드가 사들였던 것과 비슷한 강희제 시대의 도자기들을 동쪽과 북쪽 벽에 전시했다. 제킬이 디자인한 금박 입힌 호두나무 격자세공 틀을 이용했다. 서쪽과 남쪽 벽을 마저 채우기 위해 프리어 갤러리는 95점의 새로운 도자기를 원래 도자기와 같은 중국 전통 양식으로 주문·제작했다.

피코크 룸은 박물관 개장 시간에는 늘 들어가 볼 수 있지만 창의 덧문은 매월 셋째 주 목요일에만 열린다. 덧문을 열면 안쪽에 그려진 금박 입힌 공작새들은 안 보이지만 자연광이 들어와 붓질의 질감과 다채로운 색조의 조화 등 휘슬러 디자인의 더 섬세한 디테일을 감상할 수 있다. “덧문을 열면 박물관의 한 공간이 아니라 실제로 리랜드가 살았던 집의 식당에서와 비슷한 체험을 할 수 있어 더 실감 나고 역동적이다”고 글레이저는 말했다. “리랜드의 시대에는 덧문을 밤에만 닫았기 때문에 그 안쪽에 그려진 금박 입힌 공작새들은 그때만 볼 수 있었다.”

- 대니얼 에이버리 뉴스위크 기자

ⓒ이코노미스트(https://economist.co.kr) '내일을 위한 경제뉴스 이코노미스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많이 본 뉴스

1“이번엔 진짜다”…24년 만에 예금자보호 1억원 상향 가닥

2로앤굿, 국내 최초 소송금융 세미나 ‘엘피나’ 성료

3카드사들, 후불 기후동행카드 사전 신청받는다…사용은 30일부터

4카카오페이증권, 간편하고 편리한 연금 관리 솔루션 출시

5한화투자증권, ‘증권업 최초’ 공공 마이데이터 활용 서비스 출시

6메리츠證 Super365, 국내·미국 주식 거래수수료 완전 무료화

7케이뱅크, 경남 지역 소상공인 금융 지원 나서

8"'시세차익 실현되면 폭락 가능성도"...비트코인, 10만달러 앞두고 '멈칫'

9주총 시즌 97.2% 상장사, 열흘 동안 밀집…“참석·의견 내기 어려워”

실시간 뉴스

1“이번엔 진짜다”…24년 만에 예금자보호 1억원 상향 가닥

2로앤굿, 국내 최초 소송금융 세미나 ‘엘피나’ 성료

3카드사들, 후불 기후동행카드 사전 신청받는다…사용은 30일부터

4카카오페이증권, 간편하고 편리한 연금 관리 솔루션 출시

5한화투자증권, ‘증권업 최초’ 공공 마이데이터 활용 서비스 출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