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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은 돈을 잘 다룰 줄 모른다고?

여성은 돈을 잘 다룰 줄 모른다고?

‘돈은 여성에겐 사회적 금기’라는 메시지가 내면화되면 자본주의 사회에서 여성의 상대적인 파워를 약화시킨다지금 미국에선 ‘젠더(gender)’에 관한 논의가 뜨겁다. 남성과 여성의 역할, 또 상대 젠더에 대한 서로의 기대가 변하는 시대적인 상황이 자주 거론된다. ‘미국도 이제 여성 대통령을 맞을 준비가 됐는가?’를 두고 논쟁이 벌어지기도 한다. 아울러 직장에서 빈번히 일어나는 성희롱·성추행, 많은 여성이 소프트웨어 프로그래밍 경력이 없는 문제, 남자아이에겐 용감하라고 격려하고 여자아이에겐 완벽을 요구하는 문화 등 미국 사회에서 여성의 진전을 가로막는 요인도 끊임없이 지적된다. 심지어 ‘젠더’를 어떻게 정의할 것인지를 두고도 논란이 많다.

지난 7월 11일 뉴욕 법정에 출두하는 전 할리우드 영화제작자 하비 웨인스타인. 그는 성추행 혐의로 재판을 받고 있다. / 사진:AFP/YONHAP
미국대학여성협회 (AAUW)의 조사에서 미국의 젊은 여성이 학자금 대출 부채에 시달리는 비율이 남성보다 훨씬 높게 나타났다. / 사진:AFP/YONHAP
월스트리트의 상징물인 성난 황소는 금융 산업의 남성성을 노골적으로 드러내는 듯하다. / 사진:REUTERS/YONHAP
‘섹스 앤 더 시티’에서 세라 제시카 파커가 연기한 캐리 브래드쇼(왼쪽에서 두 번째)는 세상사는 다 알면서 돈은 전혀 모르는 인물로 그려진다 / 사진:NEW LINE CINEMA/YONHAP
이런 담론은 궁극적으로 ‘파워(power)’에 관한 문제로 요약된다. 누가 파워를 가졌고, 누가 파워가 없느냐는 문제 말이다. 그러나 이런 논의에서 빠진 것이 하나 있다. 바로 돈이다.

우리는 암묵적으로라도 돈을 이야기하지 않고서는 파워를 논할 수 없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파워와 돈은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다. 돈이 많을수록 파워가 더 강하다. 돈은 개인적인 관계에서 파워를 안겨준다. 선출 공직 입후보자에겐 돈이 선거에서 승리할 확률을 높여줄 수 있는 파워를 가져다준다. 또 돈은 마음에 들지 않는 직장을 쉽게 그만둘 수 있는 파워, 심지어 부하 직원들 앞에서 반쯤 열린 목욕 가운 차림으로 돌아다니고도 오랫동안 아무런 일도 없었다는 듯이 버젓이 활동할 수 있는 파워도 부여한다(미국 CBS 방송의 유명 TV 토크쇼 진행자 겸 앵커였던 찰리 로즈가 수십 년에 걸쳐 그런 행동을 한 의혹으로 결국 해고됐다).

미국 사회는 돈이 남성의 전유물이라는 무언의 메시지를 전한다. 남성과 여성 모두가 어려서부터 그런 메시지를 내면화하면서 여성의 상대적인 파워를 약화시킨다. 애초에 우리(부모·학교·언론 등 모두)가 돈에 관해 우리의 딸과 아들에게 각각 다른 메시지를 보내는 것에서부터 이 문제가 시작된다. 바로 그런 메시지가 앞으로 나아가려는 여성의 발목을 잡지만 남성의 진전은 장려한다.

예를 들어 최근 조사에 따르면 미국의 부모는 딸아이에게 돈을 절약하고 신중하게 사용할 것을 더 많이 가르치지만, 아들에겐 돈을 벌고 부를 쌓는 문제에 관해 더 많이 이야기하는 경향이 있다. 부모는 똑같은 심부름을 시켜도 아들보다 딸에게 더 적은 용돈을 주는 경우가 많다. 특히 십대 자녀에게 그런 대우가 빈번하다고 알려졌다. 게다가 교사는 수학 시험에서 똑같이 문제를 풀어도 남학생보다 여학생에게 더 낮은 점수를 준다(‘설마...’라고 생각하겠지만 실제로 그렇다).

남자아이가 성인이 되면서 돈과 관련해 선호하는 언론은 블룸버그와 폭스 비즈니스다. 그 매체의 소비자는 남성이 압도적으로 많다. 반면 여자아이가 성인이 되면서 보는 여성잡지는 돈 문제에 관해 여성을 폄하한다. 재테크가 ‘어렵다’며 개인 금융에 관한 기사를 읽으려면 ‘안전벨트를 확실히 매라’고 경고한다. 돈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파악하는 기초적인 질문에 답하도록 강요하고, ‘스마트’ 재테크를 얘기하면서 투자 포트폴리오의 다변화보다 ‘라테 커피 안 마시기’를 강조한다.미국의 대중문화는 또 어떤가? 역대 TV 드라마 캐릭터 중에서 세상 물정에 가장 밝은 도시 여성에 속하는 캐리 브래드쇼(‘섹스 앤 더 시티’의 주인공 중 한 명)는 구두를 너무 많이 사는 바람에 아파트 월세도 못 낼 처지에 놓인다. 이 드라마의 수많은 팬이 비난하는 장면에서 그녀는 자신의 구두 중독이 금전적으로 어떤 손해를 끼치는지 셈을 해보려고 애쓴다. 그녀는 성인이 되는 많은 미국 여성이 꿈꾸는 이상적인 인물로 세상사에 관해 모르는 게 없지만 돈만큼은 전혀 모른다.

성인으로서 여성이 투자를 시작할 때는 남성이 압도적으로 많은 투자업체로부터 이런 메시지를 전해 듣는다. “여성은 남성보다 ‘리스크 혐오’가 더 심한 투자자다.” “여성은 남성만큼 투자를 잘하지 못한다(그러나 워릭 경영대학원과 캘리포니아대학 등에서 실시한 여러 연구에 따르면 여성은 개인 투자자나 전문 수준에서 투자 실력이 남성보다 낫다).” “여성은 금융에 관한 더 많은 공부가 필요하다(틀린 말은 아니지만 그런 메시지를 받지 않는 남성도 공부가 더 필요한 건 마찬가지다).”

실제로 금융 산업(월스트리트)은 누가 보더라도 남성 지향적이라는 메시지를 확실하게 전한다. 자산관리사의 84%, 뮤추얼펀드 매니저의 90%가 남성이다. 게다가 월스트리트의 브랜드 상징물이 뭔가? 뒷발로 땅을 긁으며 콧김을 내뿜는 성난 황소 아닌가?

여성은 생애 전체를 통해 이런 메시지를 계속 받는다. “여성은 돈을 잘 다룰 줄 모른다.” “여성은 투자보다 저축하는 것이 정답이다.” “돈은 속성상 남성적이다.” 여성은 끊임없이 들리는 이런 메시지를 내면화하고, 그에 따라 ‘돈에 밝지 못한 것’을 여성적이며, 심지어 매력적인 특성으로 인식하게 된다. 그래서 여성은 자신의 인생에서조차 투자의 책임을 남성에게 넘긴다. 스위스 금융기업 UBS에 따르면 이성 커플 가계에서 남성 파트너가 투자의 주도권을 갖는 경우가 83%다. 그에 비해 여성이 투자의 주도권을 행사하는 가계는 2%에 불과하다.

이런 메시지는 여성의 개인 자산 규모가 작고 여성이 빈곤한 처지가 될 확률이 더 높은 것을 여성이 직면하는 시스템적인 어려움이 아니라 여성 자신의 탓으로 돌리는 효과도 낸다. “여성이 돈을 더 잘 다룬다면…” “여성이 재테크를 좀 더 잘한다면…” “여성이 연봉을 더 높게 받는 방법을 안다면…” “여성이 ‘하루 라테 한 잔 마시기’를 포기한다면…” “여성이 남성과의 ‘자신감 격차’를 줄일 수만 있다면...” 등등 이런 것이 그런 문제의 해결책으로 제시된다.따라서 이런 ‘개인적인 능력으로 포장되는 책임 전가’의 접근법을 적용할 경우 재정적인 측면에서 여성의 발목을 잡는 시스템적 요인은 대수롭지 않은 것으로 치부되기 쉽다. 그런 접근법에선 “미국이 의무적인 출산, 육아 유급 휴가가 없는 세계 유일의 선진국”이라거나, “지난해 조사에서 미국 여성의 81%가 생애의 어느 시점에서 성적으로 괴롭힘을 당했다고 응답했다”거나, “미국대학여성협회(AAUW)의 조사에서 미국의 젊은 여성이 학자금 대출 부채에 시달리는 비율이 남성보다 훨씬 높게 나타났다”는 사실은 거의 언급되지 않는다.

미국 국립은퇴안정연구소(NIRS)는 여성이 은퇴할 때 가진 개인 자산은 남성의 3분의 2에 불과하다고 지적했다(미국 도시연구소에 따르면 백인이 아닌 여성의 경우는 그보다 훨씬 못하다). 그 이유를 따질 때 미국인 대다수는 그것이 여성 자신의 잘못이라고 생각한다. 여성의 개인적인 단점에다 노력 부족이 합쳐진 결과라는 얘기다.

이런 책임 전가와 부정적인 메시지는 아직도 돈이 여성에겐 ‘사회적인 금기’라는 것을 의미한다. 그래서 돈에 밝은 것이 치욕이라는 인식이 강하다. 많은 여성은 친구들에게조차 자신의 연봉 액수를 편하게 이야기할 수 없다. 돈이 너무 적어도 문제지만 너무 많아도 문제가 되기 때문이다. 여성의 연봉이 남성 파트너보다 더 많다면, 그녀는 파트너의 남성성을 무력화한다는 비난을 받기에 십상이다.

그래서 여성이든 남성이든 그런 상황에선 자신의 소득에 관해 거짓말할 가능성이 더 크다(미국 통계국 조사에 따르면 남성은 연봉을 부풀리고 여성은 실제보다 더 적게 이야기한다). 또 그래서 전미경제연구소에 따르면 결혼이 파경에 이를 가능성이 더 크다. 그 결과 지난해 투자은행 메릴린치의 조사 결과가 말해주듯이 여성은 거의 모든 문제, 심지어 자기 죽음에 관해서도 서슴없이 이야기하지만 돈에 관해서는 입을 닫는 경향을 보인다.

여성에겐 돈과 저돌적인 협상이 지뢰밭과 같다는 인식이 내면화된다면 여성은 자신의 연봉 인상을 위해 효과적으로 협상하기가 매우 어렵다. 따라서 젠더에 따른 소득 차이는 좀처럼 좁혀지지 않는다. 미국 여성정책연구소(IWPR)의 데이터에 따르면, 현 추세가 계속될 경우 여성의 임금이 남성과 동일해지려면 앞으로 40년은 더 기다려야 한다(더구나 흑인 여성의 경우 100년, 히스패닉 여성의 경우 105년이 더 걸릴 것으로 추정된다).그런 상황이 미국 사회와 경제에 끼치는 손실도 막대하다. 성추행 의혹으로 몰락한 할리우드 제작자 하비 웨인스타인 같은 성적인 포식자가 자신보다 돈이 훨씬 적은 여성을 노린 것은 사실 그리 놀라운 일이 아니다. 찰리 로즈나 레슬리 문베스 CBS 전 CEO(그 역시 성추문으로 해고됐다)가 여성 직원들을 성추행했다는 의혹을 받는 것도 그 여성들이 돈과 파워가 없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좀 더 큰 그림을 보자. 자녀를 둔 여성이 자신이 받는 급여로는 보모를 고용할 수 없어서 직장을 그만두고, 유망한 사업 아이디어를 가진 여성이 투자를 유치할 수 없어서 창업을 못하며(벤처 투자계에선 여성 CEO가 전체 투자 규모의 2%를 유치한다), 남편보다 오래 사는 여성이 생활비가 부족해 공적 자금에 의존한다면 미국 경제는 상당한 타격을 받을 수밖에 없다.

전통적으로 여성의 정치자금 기부가 미미하다는 사실도 미국 사회 전체에 드러나지 않게 영향을 미치면서 정치판을 바꿔놓았다[그러나 정치자금 감시 전문 비영리기관인 ‘책임정치센터(CRP)’에 따르면 지난 2년 동안 여성의 정치자금 기부가 크게 늘어 이런 추세에 변화가 생기는 조짐을 보인다].

그렇다면 해결책은 무엇일까? 특효약은 없다. 그러나 우리가 취할 수 있는 조치는 분명히 있다. 가정에서 돈에 관해 아들과 딸에게 똑같은 방식으로 이야기하고 조언할 수 있다. 또 어머니는 딸에게 가계 자금을 관리하고 효과적으로 투자하는 모범을 보일 수 있다. 나는 딸과 아들 둘 모두에게 돈에 관한 이야기를 아주 많이 했다. ‘급진적인 투명성’이라고 불러도 좋을 정도다. 내가 직장에서 어떻게 승진하고 어떻게 좌천했는지, 또 그것이 한 가족으로서 우리에게 무엇을 의미하는지도 세세히 말했다. 또 직장을 잃었을 때, 연봉이 인상됐을 때, 창업했을 때 내가 노력하는 모습을 아이들에게 있는 그대로 보여줬다.

학교에선 개인 금융을 가르칠 수 있다(인생에선 재테크가 삼각함수보다 훨씬 더 유용하다). 직장에선 성별이나 인종에 기초한 급여 격차에 관해 좀 더 투명할 것을 요구할 수 있다. 또 우리의 가치와 일치하고, 구시대적 경영 방식을 지양하는 회사, 우리의 딸과 아들이 채용됐으면 하고 바라는 기업을 찾는다면 그 회사의 상품을 사거나 그 기업에 투자할 수 있다. 아울러 업계는 부모에게 의무적인 유급 출산, 육아 휴가를 제공할 수 있다.

물론 돈이 전부는 아니다. 그러나 중요하다. 자본주의 사회에선 돈이 파워의 원천이기 때문이다. 부모가 딸에게 여성은 돈 문제를 잘 다룰 수 없다고 가르치고 아들에게 돈을 둘러싼 스트레스를 전담하도록 강요하면 우리는 무의식중에 우리 자녀에게 해를 끼친다. 언론도 그 점을 명심할 필요가 있다.

따라서 우리 딸이 자신의 인생을 후회 없이 살 수 있도록 하려면 여성도 얼마든지 돈을 잘 다룰 수 있다고 올바로 가르치는 것이 핵심이라는 사실을 인정하고, 또 실천에 옮겨야 한다.

- 샐리 크로체크



※ [필자는 메릴린치 자산운용과 시티그룹 산하 스미스 바니의 CEO를 지냈고, 현재는 혁신적인 여성 전용 디지털 투자 플랫폼 ‘엘레베스트(Ellevest)’의 공동창업자이자 CEO다. 이 글의 내용은 필자의 개인 견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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