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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아오지 않는 한국 기업] 첩첩산중 규제에 높은 법인세까지

[돌아오지 않는 한국 기업] 첩첩산중 규제에 높은 법인세까지

미국은 리쇼어링으로 실업률 하락 등 효과… 트럼프 행정부 규제 철폐와 기업 지원 주효
사진:© gettyimagesbank
886개 vs 10개. 미국 비영리단체 리쇼어링이니셔티브와 한국 산업통상자원부가 각각 집계한, 미국과 한국의 지난해 유턴(U-Turn) 기업 숫자 차이다. 유턴 기업은 인건비 절감 등의 이점 확보를 이유로 해외로 이전했다가 자국으로 다시 돌아오는 기업을 가리킨다(보통 제조업에 속한 경우가 많다). 지난해 886곳의 미국 기업이 자국으로 복귀할 동안 한국에선 10개 기업만이 국내로 돌아왔다. 연도별로 보면 한국은 2014년 22곳, 2016년 12곳 등으로 기업의 유턴 사례 자체가 거의 없었다. 심지어 2015년과 2017년엔 각각 4곳에 불과했다. 반면 미국은 2014년 340곳에서 2016년 267곳으로 줄었다가 2017년(624곳)부터 유턴 사례가 급증했다. 양국 경제 규모와 기업 숫자에 애초 차이가 난다는 점을 고려해도 한국은 감소세, 미국은 급증세다. 미국의 유턴 기업 수는 2010년만 해도 95개에 불과했다.

이 같은 지표가 유의미한 이유는 많은 기업이 유턴할수록 국내에서 일자리 창출→소비 활성화, 그리고 투자 유치→제조업 강화라는 선순환 구조가 이어질 개연성이 커서다. 내로라하는 선진국을 비롯한 세계 각국이 세제 감면 등 파격적 정책을 앞세우면서까지 해외 기업을 자국에 유치하고자 애쓰는 이유도 그래서다. 이른바 ‘소득주도성장’ 기조를 유지 중인, 최근 들어서는 극일(克日)까지 강조하고 나선 문재인 정부로서도 유턴 기업은 많을수록 좋다. 실제로 지난해 미국은 평균 3%대 실업률로 2000년 이후 18년 만에 가장 낮은 수치를 기록하는 등, 중국과의 무역 분쟁 장기화 같은 대형 악재에도 탄탄한 국가 경제를 과시했다. 2017년 미국 제조업에선 14만9269명이 신규 고용됐는데 그중 약 55%가 유턴 기업 일자리 창출에서 비롯된 것으로 집계됐다.
 미국, 규제 하나 신설하면 기존 규제 둘 없애
미국에서 유턴 기업이 최근 2년 사이 급증한 것은 2017년 출범한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가 리쇼어링(해외로 나갔던 자국 기업을 각종 세제 혜택과 규제 완화 등을 통해 되돌아오게 만드는 정책)을 그만큼 적극적으로 추진해서다. 사업가 출신인 트럼프 대통령은 리쇼어링이 자국 제조업 부흥의 중요한 열쇠 중 하나라고 봤다. 이에 트럼프 행정부는 출범 직후인 2017년부터 자국 내 기업들에 힘을 실어주고 국외에서의 유턴도 장려하기 위한 규제 완화에 힘썼다. 규제 하나를 새로 추가하면 기존 규제 둘을 폐지하는 ‘원 인, 투 아웃(One In, Two Out)’ 규제 개혁을 시행했다.

그러면서 연구개발(R&D) 세액 공제, 해외 수익금 송금세율 인하(35%→10%)를 단행한 한편 법인세 최고세율을 기존 35%에서 21%로 크게 낮췄다. 미국의 유턴 기업은 그 규모와 무관하게 공장 이전에 든 모든 비용을 세액 공제(20%) 받을 수 있다. 해리 모저 리쇼어링이니셔티브 회장은 이에 대해 “법인세 감면 등 규제 완화가 주효했으며, 계속된 중국 내 인건비 상승과 지식재산권 침해 등이 (기업 유턴 증가에) 영향을 미쳤다”고 최근 전국경제인연합회 서면 인터뷰에서 분석했다. 모저 회장은 “기업들이 총 소유비용(TCO)을 분석해 해외 생산에서 드는 유지비와 운송비 등의 숨은 비용을 찾아냈고, 더 이상 해외 생산이 비용 절감에 도움이 안 된다고도 인식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덧붙였다. 리쇼어링에 적극적인 나라는 미국만이 아니다. 독일은 미국만큼 파격적인 규제 완화까지는 아니지만 규제 하나를 추가하면 하나를 없애는 ‘원 인, 원 아웃(One In, One Out)’ 제도를 시행 중이며 법인세율을 기존 26.4%에서 15.8%로 낮춘 상태다. 독일 기업인 아디다스가 23년 만에 해외에서 유턴해 2016년부터 다시 자국 내에서 신발을 생산하는 계기가 됐다. 일본도 해외로 떠났던 기업을 복귀시키기 위한 유인책 마련에 힘쓰고 있다. 예컨대 국가전략특구를 지정해 신산업 분야 규제를 완화하고 법인세율을 기존 30%에서 23.4%로 낮췄다. 이에 소니와 파나소닉 같은 대기업들이 중국에 있던 공장을 일본으로 옮겼고, 혼다자동차도 베트남 등지의 생산라인 일부를 자국으로 이전시켰다.

한국의 경우 내수시장 규모가 이들 선진국보다 작고 수출 의존도 역시 그만큼 높아, 해외로 나갔던 기업이 돌아오기 더 쉽지 않은 측면도 있다. 그렇다 해도 지금껏 선진국 대비 각종 까다로운 규제가 여전해 리쇼어링 추진에 걸림돌로 지적됐다. 예컨대 한국 기업이 유턴하려면 2년 이상 해외 사업장을 유지하는 등의 요건을 충족해야 하며, 일자리 창출에 더 많이 기여할 수 있는 대기업은 공장 이전 시 중소·중견기업과 달리 정부 보조금을 전혀 받을 수 없다. 유턴 사업장이 향하는 지역에 따라서도 보조금 지원 비율이 상이해 기업 입장에서는 별 이점이 없는 지역으로 가야 보조금을 받을 수 있는 경우가 많다. 이에 반해 법인세율은 문재인 정부 들어 기존 22%에서 25%로 높아졌다.

이러다 보니 기업들도 유턴에 시큰둥하다. 한국경제연구원이 지난해 11월 해외 사업장을 가진 기업 150곳을 대상으로 설문조사한 결과 96%의 기업이 “유턴 계획이 없다”고 응답했다. 이들은 국내 유턴을 고려하지 않는 이유로 해외 시장 확대의 필요성(77.1%)과 함께 국내 고임금에 대한 부담감(16.7%), 국내 노동시장 경직성에 대한 우려(4.2%) 등을 꼽았다. 유턴 기업이 늘기 위해서는 ▶노동시장 유연성 제고(29.4%) ▶규제 완화(27.8%) ▶비용 지원 추가 확대(14.7%) ▶법인세 감면 기간 확대(14.2%) ▶수도권 유턴 기업에도 인센티브 허용(7.2%) 등 노력이 필요하다고 봤다.
 유턴 기업 종합 관리 시스템 구축 필요
보다 과감한 리쇼어링 추진 필요성이 대두되면서 최근 정치권에서도 규제 완화를 시도 중이다. 정부가 지난해 유턴 기업 종합 지원 대책을 발표하면서 기대감도 고조된 바 있다. 이를 현실화하기 위한 유턴기업지원법 개정안이 9월 25일 국회 산자위에서 의결됐다. 이 개정안은 ▶유턴 기업에 대한 토지·공장 임대자금 지원 ▶유턴 기업의 국·공유지 임대료 감면 ▶유턴 기업 지원 업종의 확대(제조업뿐 아니라 지식서비스업과 정보통신업도 포함) 등을 골자로 해 유턴 기업 증가에 긍정적 영향을 미칠 것으로 기대된다.

선진국과 달리 한국엔 없는, 유턴 기업을 종합적으로 관리할 컨트롤타워나 시스템 구축도 시급하다는 지적이다. 익명을 원한 국내 한 기업 관계자는 “해외에선 리쇼어링에 힘쓸 뿐 아니라 정부마다 법인세 인하와 특구 지정 등으로 다른 나라 기업을 하나라도 더 유치하려 애쓰고 있다”며 “많은 한국 기업이 그 혜택을 누리면서 해외에 사업장을 두고 있는데, 여전히 기업 환경이 좋지 않은 한국으로 돌아올 필요성을 덜 느끼는 게 사실”이라고 말했다. 엄치성 전경련 국제협력실장은 “규제 완화와 노동시장 유연화 같은 근본적인 체질 개선이 선행돼야 리쇼어링 성과가 나타나기 시작할 것”으로 내다봤다. 모저 회장은 “유턴 실적에 대한 투명하고 신뢰도 높은 데이터베이스 관리, 국내 기업의 해외 공장 문제점 조사·기록, 숙련된 제조 노동인력 관리 등을 체계화하는 것부터 추진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 이창균 기자 smile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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