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는 물보다 ‘확실히’ 진하다
피는 물보다 ‘확실히’ 진하다
북한-일본 사이의 전쟁이라는 극단적인 가정 아래 일본보다 북한 돕겠다는 한국인 훨씬 많아 최근 한국인을 대상으로 한 여론조사에서 만약 북한과 일본 사이에서 전쟁이 발발하면 일본보다 북한을 도와야 한다고 응답한 비율이 훨씬 더 높게 나왔다. 이 여론조사 결과는 지난 11월 6일 서울에서 열린 통일연구원의 11차 연례 평화포럼의 일환으로 공개됐다. 이 조사를 한 이상신 통일연구원 연구위원은 동북아 역학에서 중대한 시점인 지금 한국인의 견해를 확인한 결과 북한과 일본 사이에서 전쟁이 일어날 경우 한국과 같은 미국 동맹인 일본보다 오랫동안 대치해온 북한을 도울 생각이 더 많다는 사실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뉴스위크가 입수한 조사 결과에 따르면 북한과 일본 간에 전쟁이 발발한다는 다소 극단적인 가정 상황에서 북한을 도와야 한다는 응답은 45.5%로 일본을 돕겠다는 응답(15.1%)보다 훨씬 많았다. 잘 모르겠다는 답변도 39.4%에 이르렀다. 지지 정답별 차이도 크지 않았다. 자유한국당 지지층 내에서 일본을 도와야 한다는 의견이 19.1%로 다소 많긴 했지만 북한을 편든 응답(43.3%)에는 크게 못 미쳤다. 이 연구위원은 뉴스위크에 “남북한 관계에서 나타나는 추세를 고려하면 이런 결과는 놀랍지 않다”고 말했다.
지난 70년 동안 남북한은 주로 적대적으로 대치했지만 20세기 상반기 대부분에 걸쳐 한반도 전체가 일본에 점령당했다. 제2차 세계대전에서 연합군이 승리하고 냉전의 적대국인 미국과 소련이 함께 한반도에 진주하면서 이념 선에 따라 남북한이 분단됐다.
그 후 1950년에 발발한 한국전쟁은 3년 뒤 휴전으로 막을 내리긴 했지만 아직 종전 선언이나 평화협정이 체결되지 않아 엄밀히 말해 전쟁이 완전히 끝나지 않았다. 21세기 들어 남북한 사이의 간극을 메우려는 시도가 여러 차례 있었지만 큰 변화는 없었다. 그러다가 북한의 3세대 지도자인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새로운 관계 모색에 적극적인 반응을 보이면서 남북한 관계는 역사적인 전환기를 맞았다.
특히 한국의 문재인 대통령이 남북 관계 개선에 열정을 보인다. 그에 따라 김 위원장과 문 대통령은 3차례 정상회담을 가지면서 남북한 정상회담의 기록을 세웠다. 아울러 김 위원장은 현직 미국 대통령을 만난 첫 북한 지도자이기도 하다. 그는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과 3차례 마주 앉았다. 마지막 만남은 지난 6월 30일 이뤄졌다. 트럼프 대통령이 한국을 방문해 서울에서 문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한 뒤, 판문점을 찾아 ‘깜짝’ 남·북·미 3자 정상 회동을 가졌다. 북한 정권의 인권 침해와 독재 의혹이 지속되면서 비난이 쏟아지지만, 김 위원장은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도 만나는 등 역내 중심인물로 자리매김했다.
사실 남북한은 문화와 역사를 공유하며, 더구나 일본이라는 옛 숙적과 관련된 문제에선 이념과 정치적인 큰 차이도 문제 되지 않는다. 이 연구위원은 뉴스위크에 “우리는 북한을 가족 중 골칫덩어리나 말썽꾼처럼 생각한다”고 말했다. “우리는 북한을 미워하고 경멸하지만 다른 한편으로 북한이 전쟁에서 다른 나라에 패하는 것은 원치 않는다. 마찬가지로 독도를 두고 남한이 일본과 영유권을 다툴 때는 언제나 북한이 남한 편을 든다.”
독도는 현재 한국이 실효 지배하지만 일본은 그 섬이 자국 영토라고 주장하며 다케시마로 부른다. 독도가 위치한 바다도 남북한은 동해라고 부르지만 일본은 일본해로 부른다. 독도 문제는 현재 벌어지는 한일 갈등의 전면에 등장했다. 제2차 세계대전 중 일제 강제징용과 관련한 배상 판결이 현재 갈등의 단초가 됐다. 일제강점기 당시 한국인 강제 징용 피해자들이 일본 기업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 소송에 대해 대법원이 1인당 1억원씩을 배상하라고 확정한 판결이다. 일본은 그동안 1965년 체결된 한일 청구권협정으로 강제징용 피해에 대해 개인에게 배상할 의무가 없다고 주장해 왔으나 대법원은 지난해 10월 30일 이 협정은 정치적인 해석이며 개인의 청구권에 적용될 수 없다고 최종 판단했다.
이와 관련한 갈등이 깊어지면서 일본은 한국을 상대로 수출제한 조치를 했고, 한국은 일본과 체결한 한일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지소미아)을 종료하겠다고 경고했다. 그러는 사이에 중국 군용기 2대와 러시아 군용기 3대가 한국방공식별구역(KADIZ)에 진입하고 이 중 러시아 조기경보통제기가 독도 영공을 7분간 침범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그러자 한국과 일본은 동시에 전투기를 긴급출격시켰다. 한국과 일본 모두 그런 침범에 대응할 독자적인 권리를 주장했다.
아베 신조 총리가 이끄는 일본 정부가 미국과 한국의 북한 관계에 신경을 곤두세우는 상황에서 한 일본 외무성 관리는 최근 뉴스위크에 “일본과 한국의 관계 정상화 이래 지금이 양국 관계에서 최악의 시기”라고 말했다. 지난 10월 조선중앙통신 보도에 따르면 북한 외무성 대변인은 북일 관계도 “최악의 단계”에 이르렀다고 경고했다. 김 위원장과 아베 총리는 아직 직접 만나지 않았다.
한편 북한은 한미 합동 군사훈련을 구실로 몇 달 전 미사일 테스트를 다시 시작했고, 비핵화·평화 협상도 결렬됐다(그러나 그런 좌절에도 물밑 대화는 지속하고 있다). 한미 양국은 북한의 미사일 테스트와 관련해 소극적인 반응을 보이지만, 일본은 북한의 도발을 강하게 비난했다. 일부 미사일이 일본 쪽 해상으로 발사됐기 때문이다.
북한은 한국에 미국·일본을 멀리하라고 계속 촉구했다. 통일 문제를 외세의 개입 없이 ‘우리 민족끼리’ 해결해야 한다는 생각이다. 문 대통령과 아베 총리는 양국 관계 개선을 위한 노력으로 지난 11월 4일 동남아시아국가연합(아세안) 정상회의 참석차 방문한 태국 방콕에서 잠시 만나 환담했다. 물론 그 만남으로 양국 관계에 달라진 점은 전혀 없다. 그러나 북한은 일본의 군비 증강을 제국주의 과거로 돌아가려는 행태라고 지적하며 남한과 일본 사이를 떼어놓으려 한다.
- 톰 오코너 뉴스위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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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위크가 입수한 조사 결과에 따르면 북한과 일본 간에 전쟁이 발발한다는 다소 극단적인 가정 상황에서 북한을 도와야 한다는 응답은 45.5%로 일본을 돕겠다는 응답(15.1%)보다 훨씬 많았다. 잘 모르겠다는 답변도 39.4%에 이르렀다. 지지 정답별 차이도 크지 않았다. 자유한국당 지지층 내에서 일본을 도와야 한다는 의견이 19.1%로 다소 많긴 했지만 북한을 편든 응답(43.3%)에는 크게 못 미쳤다. 이 연구위원은 뉴스위크에 “남북한 관계에서 나타나는 추세를 고려하면 이런 결과는 놀랍지 않다”고 말했다.
지난 70년 동안 남북한은 주로 적대적으로 대치했지만 20세기 상반기 대부분에 걸쳐 한반도 전체가 일본에 점령당했다. 제2차 세계대전에서 연합군이 승리하고 냉전의 적대국인 미국과 소련이 함께 한반도에 진주하면서 이념 선에 따라 남북한이 분단됐다.
그 후 1950년에 발발한 한국전쟁은 3년 뒤 휴전으로 막을 내리긴 했지만 아직 종전 선언이나 평화협정이 체결되지 않아 엄밀히 말해 전쟁이 완전히 끝나지 않았다. 21세기 들어 남북한 사이의 간극을 메우려는 시도가 여러 차례 있었지만 큰 변화는 없었다. 그러다가 북한의 3세대 지도자인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새로운 관계 모색에 적극적인 반응을 보이면서 남북한 관계는 역사적인 전환기를 맞았다.
특히 한국의 문재인 대통령이 남북 관계 개선에 열정을 보인다. 그에 따라 김 위원장과 문 대통령은 3차례 정상회담을 가지면서 남북한 정상회담의 기록을 세웠다. 아울러 김 위원장은 현직 미국 대통령을 만난 첫 북한 지도자이기도 하다. 그는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과 3차례 마주 앉았다. 마지막 만남은 지난 6월 30일 이뤄졌다. 트럼프 대통령이 한국을 방문해 서울에서 문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한 뒤, 판문점을 찾아 ‘깜짝’ 남·북·미 3자 정상 회동을 가졌다. 북한 정권의 인권 침해와 독재 의혹이 지속되면서 비난이 쏟아지지만, 김 위원장은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도 만나는 등 역내 중심인물로 자리매김했다.
사실 남북한은 문화와 역사를 공유하며, 더구나 일본이라는 옛 숙적과 관련된 문제에선 이념과 정치적인 큰 차이도 문제 되지 않는다. 이 연구위원은 뉴스위크에 “우리는 북한을 가족 중 골칫덩어리나 말썽꾼처럼 생각한다”고 말했다. “우리는 북한을 미워하고 경멸하지만 다른 한편으로 북한이 전쟁에서 다른 나라에 패하는 것은 원치 않는다. 마찬가지로 독도를 두고 남한이 일본과 영유권을 다툴 때는 언제나 북한이 남한 편을 든다.”
독도는 현재 한국이 실효 지배하지만 일본은 그 섬이 자국 영토라고 주장하며 다케시마로 부른다. 독도가 위치한 바다도 남북한은 동해라고 부르지만 일본은 일본해로 부른다. 독도 문제는 현재 벌어지는 한일 갈등의 전면에 등장했다. 제2차 세계대전 중 일제 강제징용과 관련한 배상 판결이 현재 갈등의 단초가 됐다. 일제강점기 당시 한국인 강제 징용 피해자들이 일본 기업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 소송에 대해 대법원이 1인당 1억원씩을 배상하라고 확정한 판결이다. 일본은 그동안 1965년 체결된 한일 청구권협정으로 강제징용 피해에 대해 개인에게 배상할 의무가 없다고 주장해 왔으나 대법원은 지난해 10월 30일 이 협정은 정치적인 해석이며 개인의 청구권에 적용될 수 없다고 최종 판단했다.
이와 관련한 갈등이 깊어지면서 일본은 한국을 상대로 수출제한 조치를 했고, 한국은 일본과 체결한 한일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지소미아)을 종료하겠다고 경고했다. 그러는 사이에 중국 군용기 2대와 러시아 군용기 3대가 한국방공식별구역(KADIZ)에 진입하고 이 중 러시아 조기경보통제기가 독도 영공을 7분간 침범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그러자 한국과 일본은 동시에 전투기를 긴급출격시켰다. 한국과 일본 모두 그런 침범에 대응할 독자적인 권리를 주장했다.
아베 신조 총리가 이끄는 일본 정부가 미국과 한국의 북한 관계에 신경을 곤두세우는 상황에서 한 일본 외무성 관리는 최근 뉴스위크에 “일본과 한국의 관계 정상화 이래 지금이 양국 관계에서 최악의 시기”라고 말했다. 지난 10월 조선중앙통신 보도에 따르면 북한 외무성 대변인은 북일 관계도 “최악의 단계”에 이르렀다고 경고했다. 김 위원장과 아베 총리는 아직 직접 만나지 않았다.
한편 북한은 한미 합동 군사훈련을 구실로 몇 달 전 미사일 테스트를 다시 시작했고, 비핵화·평화 협상도 결렬됐다(그러나 그런 좌절에도 물밑 대화는 지속하고 있다). 한미 양국은 북한의 미사일 테스트와 관련해 소극적인 반응을 보이지만, 일본은 북한의 도발을 강하게 비난했다. 일부 미사일이 일본 쪽 해상으로 발사됐기 때문이다.
북한은 한국에 미국·일본을 멀리하라고 계속 촉구했다. 통일 문제를 외세의 개입 없이 ‘우리 민족끼리’ 해결해야 한다는 생각이다. 문 대통령과 아베 총리는 양국 관계 개선을 위한 노력으로 지난 11월 4일 동남아시아국가연합(아세안) 정상회의 참석차 방문한 태국 방콕에서 잠시 만나 환담했다. 물론 그 만남으로 양국 관계에 달라진 점은 전혀 없다. 그러나 북한은 일본의 군비 증강을 제국주의 과거로 돌아가려는 행태라고 지적하며 남한과 일본 사이를 떼어놓으려 한다.
- 톰 오코너 뉴스위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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