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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화하는 뷰티 테크] 오늘 피부가 저기압이군요. 촉촉·화사 파운데이션 만들어 드릴게요

[진화하는 뷰티 테크] 오늘 피부가 저기압이군요. 촉촉·화사 파운데이션 만들어 드릴게요

3월부터 맞춤형 화장품 제도 시행… 조제관리사가 개인 피부에 맞춰 큐레이션
피부 색을 측정해 개인 맞춤형 색을 추천해주는 컬러 팩토리 서비스. / 사진 : 아모레퍼시픽
“요즘 컨디션이 안 좋으신가 봐요? 안색이 창백하고 기미도 부쩍 늘었네요. 피부도 건조하고 푸석푸석해졌어요.”

화장품 매장 직원이 한 여성의 피부를 기기로 측정한 뒤 진단 결과를 들이밀었다. 여성은 고개를 끄덕였다. 매일 아침마다 푸석푸석한 얼굴 탓에 파운데이션도 뜨고 평소 바르던 립스틱도 컬러가 어울리는 것 같지 않아 허둥대던 자신의 모습이 떠올랐다. 직원은 진단 결과를 토대로 여성의 피부에 생기를 불어넣을 마스크팩과 기초 화장품을 만들어주고 립스틱도 골라줬다. 최근 스트레스에 많이 노출된 고객을 위한 맞춤형 화장품이다.

이는 조만간 화장품 매장에서 벌어질 모습이다. 개인의 화장대 풍경도 이렇게 바뀔 날이 멀지 않아 보인다. 화장품 매장이 약국처럼 바뀔 전망이어서다. 의사의 처방에 따라 약사가 환자에게 맞춤형 약을 제공하듯, 개인의 상태에 적합한 맞춤형 화장품을 만들어주거나 골라주는 조제관리사가 등장할 예정이다.
 소비자 선택기회 확대, K뷰티엔 이정표 제시
피부 유형과 상태를 분석해 맞춤형 화장품 성분과 식습관을 추천하는 맞춤 멘토링 서비스. / 사진 : 고운세상코스메틱
맞춤형 화장품 제도가 3월 14일부터 시행된다. 지난해 식품의약품안전처(이하 식약처)의 화장품법 개정으로 개인의 피부 유형과 취향에 맞춰 매장에서 화장품의 내용물이나 원료를 즉석 혼합·소분해 판매할 수 있는 제도다. 식약처는 이를 위해 맞춤형 화장품 판매업자와 조제관리사를 교육하고 조제관리사 자격시험도 실시할 예정이다. 이와 함께 맞춤형 화장품 관련 시설과 관리 기준 등을 담은 시행규칙도 마련 중이다. 또한 비누 분류기준도 공산품에서 화장품으로 바꿨다. 상시 근로자가 2인 이하면서 직접 제조한 화장 비누를 판매만 하는 화장품 책임판매업자도 책임판매관리자 자격을 갖추도록 했다.

맞춤형 화장품 제도 신설로 뷰티 시장의 경쟁 양상이 달라질 전망이다. 먼저 소비자에겐 개인의 피부 특성에 따라 화장품을 맞출 수 있는 기회가 확대됐다. 이를 전담할 조제관리사·판매업자·책임판매관리자에게 자격요건을 갖추도록 해소비자 안정성을 강화한 것이다. 배승희 건국대 KU융합과학기술원 화장품공학과 교수는 “조제관리사 도입은 소비자를 위한 맞춤형 화장품의 위생과 안전을 확보하기 위한 조치이자 화장품 산업의 영역이 확대되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그는 이어 “화장품 관리 주체가 우리나라는 정부인 반면, 외국에선 기업인 경우가 적지 않다”며 “문제 발생 시 규제와 책임 권한을 어디에 두느냐에 따라 화장품 산업의 발전에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친다”고 덧붙였다.

맞춤형 화장품 제도는 우리나라 화장품 산업의 도약을 이끌 국가적 전략이기도 하다. 국내 화장품 업계는 초창기에 외국산 제품이나 모방 제품의 방문판매로 터를 닦았다. 이후 기능성 화장품 시대를 열고 주문자위탁생산(OEM)이나 제조자개발 생산(ODM)을 통해 몸집을 키웠다. 최근엔 한류 열풍에 힘입어 해외에서 K뷰티로 인기를 끌고 있다. 하지만 개인의 상태를 고려하지 않은 천편일률적 대량 생산 방식은 여전하다. 지금까지는 양적인 성장에 주력해 온 것이다.

앞으론 질적 성장을 기대할 수 있게 됐다.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해 6월 경기도 안산에 있는 스마트제조 혁신센터에서 제조업 르네상스 비전 선포식을 갖고 신산업 육성에 대한 강한 의지를 나타냈다. 그 일환으로 선포식 뒤 개인 맞춤형 화장품 생산기기를 둘러보며 개발 기업을 독려했다. 평생교육원에 조제관리사 교육과정을 개설한 노영희 건양대 교수(글로벌의료뷰티학)는 “이번 제도 시행으로 그동안 완제품만 팔던 뷰티 시장에 많은 변화가 예상된다. 원료·생산·유통·판매 업체간 협업이 긴밀해지고 채용시장도 확대될 것”이라며 “전문인력을 기르는데도 탄력을 받게 될 전망”이라고 말했다.

경쟁국인 일본은 고기능 화장품을 앞세워 질주하고 있다. 지난 1월 20일 일본 지바현에서 열린 화장품종합무역전시회 ‘코스메 위크’에서 유기농·친환경 원료와, 줄기세포·생명과학을 응용한 기능성 화장품으로 무장한 J뷰티를 강조했다. 기술력과 인지도가 낮았던 중국은 그동안 축적한 기술력에 중의 약 성분을 입힌 토종 브랜드가 성장하면서 외국 브랜드를 밀어내고 있다. 소득 수준 상승으로 고품질 수요가 늘고, 오프라인보다 저렴한 온라인 유통망이 확대되면서 중국 화장품 시장이 72조원 규모로 성장했다. 김상진 대전보건대 교수(화장품과학)는 “큰 폭으로 성장해 온 K뷰티 산업이 최근 일본과 중국 사이에서 답보를 거듭하는 상황에서 맞춤형 화장품 제도 시행은 중요한 이정표가 될 것”이라고 분석했다. 그는 “사람의 피부 온도는 신체 온도와 다르고, 또 피부 부위마다 다르다. 피부의 색·체질·상태 등도 사람마다 제각각”이라며 “개인의 신체·유전자 정보와 정보통신(IT) 등 첨단 기술이 융합되는 미래에는 화장품은 하이테크 산업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국내 기업도 맞춤형 화장품 시대에 발맞춰 새로운 상품과 서비스를 내놓고 있다. 고운세상코스메틱의 닥터지는 일대일 스킨멘토링·성분분석으로 피부 고민별 맞춤 멘토링 서비스를 시작했다. 지성·건성으로만 분류하던 피부 유형을 16가지로 세분화한 바우만 피부타입 테스트로 화장품 성분은 물론 식습관까지 맞춤형으로 안내한다. 올리브영은 유·수분 함량과 모공·주름·피부색 등을 분석하는 피부 측정 서비스를 지난해 도입한 데 이어, 올해부터 모든 직원에게 배포한 태블릿PC와 자체 개발한 앱을 활용해 피부 진단에서 제품 추천까지 고객 맞춤형 디지털 문진 서비스를 시행하고 있다. 애경산업 플로우는 라이프스타일에 맞춰 화장품을 골라주는 온라인 큐레이션 서비스를 내놨다. 자주 바뀌는 민감성 피부 상태에 맞춰 매번 배합을 달리한 소용량 맞춤형 화장품을 2주 간격으로 보내주는 정기구독 서비스다.
 디지털과 융합한 뷰티 기술 약진
미국 소비자가전쇼(CES) 2020에서 선보인 3D프린팅 맞춤 마스크팩 서비스의 얼굴 계측 장면 / 사진 : 아모레퍼시픽
지난달 7일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소비자가전쇼(CES) 2020에선 맞춤형 화장품 기술 경연이 펼쳐졌다. 아모레퍼시픽은 사람마다 다른 얼굴 크기와 피부에 맞춰 마스크팩을 즉석으로 만드는 3D프린팅 맞춤 마스크팩을 전시했다. 박원석 아모레퍼시픽 기술연구원 기반혁신연구소장은 “개인에게 맞는 제품을 찾으려고 여러 제품을 써보는 시행착오가 크게 단축될 것”이라며 “IT업계와의 융합이 활발해져 기존 제조·서비스 방식에 다양한 변화가 기대된다”고 말했다. 룰루랩의 루미니는 거울을 보면 내장된 인공지능이 피부를 분석해 알맞은 미용 제품을 골라주는 기술로 눈길을 끌었다. 릴리커버는 다중센서 카메라 렌즈와 10만개 데이터가 탑재된 인공지능형 피부 진단기를 선보였다. 이 진단 결과를 적용해 맞춤형 화장품을 즉석 제조·판매하는 자판기도 내놓을 예정이다. 로레알은 대기 질과 개인 피부상태 등을 진단해 맞춤형 스킨로션·파운데이션·립스틱 등을 만들어주는 인공지능형 맞춤 화장품기기를 내놨다. 하루 분량을 캡슐로 제공해 매일매일 피부 상태에 따라 화장품을 바꿔 쓸 수 있다. 화장품 산업이 Personal(개인화)·Digital(디지털화)·Premium(고급화)로 진화하고 있는 것이다. 업계의 경쟁양상도 달라질 전망이다. LG경제연구원의 고은지 연구원은 “대기업이 시도하기 어려운 새로운 컨셉트의 사업 모델을 앞세운 중소 기업의 활약이 기대된다”며 “기획에서 생산·판매까지 모두 총괄하던 형태에서 벗어나 개발과 생산은 외부에 맡기고 유통·마케팅을 기반으로 진출하려는 신생 기업의 약진이 두드러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불명확한 책임소재·관리기준 보완은 숙제
하지만 맞춤형 화장품 제도의 시행을 앞두고 일각에선 우려의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우선 알레르기·염증 등의 문제가 발생할 경우 책임 소재가 불분명하다는 점이다. 생산과정의 원료 취급, 유통과정의 관리 소홀, 조제과정의 혼합 오류 중에서 원인이 어디에 있는지 가려내기 어렵다는 것이다. 조제관리사의 소속·근로관계 등에 따라 보상이나 책임을 묻기 어려울 수도 있다. 또 다른 문제는 조제 기준이 명확하지 않다는 점이다. 개인 취향에 맞춰 서로 다른 성분을 섞다 보니 점도가 하락하거나 특정 향이나 성분이 과도하게 들어갈 수 있다는 것이다. 조제에 쓰일 원료를 매장에 비치할 때 보관·위생·사용 등의 관리기준도 아직은 부실하다. 조제관리사 국가자격시험이 실기 평가 없이 필기로만 치러지는 점도 문제로 꼽힌다.

식약처는 이를 예방하기 위해 혼합·사용을 금지한 원료 목록 작성, 사전에 안전성 검증, 원료 보관기준 수립, 조제관리사와 판매·제조업자가 상호 계약한 지침대로 조제 판매 등을 담은 규정을 마련할 방침이다. 김 교수는 “이럴 경우 조제하는 입장에선 여러 제조사와 일일이 협약을 맺어야 하고, 제조사 입장에선 자사 제품이 경쟁사 제품과 혼합되는 것을 원치 않을 것”이라며 “이런 불편을 피하자고 특정 제조사 상품만 사용하게 되면 맞춤형 화장품 제도의 도입 취지가 무색해질 수 있다”고 말했다. 3월부터 시행에 들어가지만 ‘트러블’이 일어날 가능성도 높다는 지적이다.

- 박정식 기자 park.jeongsi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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