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 경제위기 파고 어디까지 덮칠까] 10년 칵테일 파티 끝낸 팬데믹
[코로나19 경제위기 파고 어디까지 덮칠까] 10년 칵테일 파티 끝낸 팬데믹
리먼 이후 부채 급증, 자산가치 버블… 실물경기 위축에 신용 악화 가능성도 “코로나19는 미국을 비롯한 많은 나라의 경제 활동에 피해를 줬다. 최대고용과 물가안정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현재의 기준금리를 유지할 것이다.”
미국 연방준비제도(연준·Fed)는 지난 3월 15일(현지시간) 성명서를 통해 미국 경제가 도전적 시기에 부딪혔다고 진단했다. 그러면서 기준금리를 기존 1.00~1.25%에서 ‘제로금리’(0.00~0.25%) 수준으로 내리는 ‘빅컷’을 단행했다. 3월 3일 기준금리를 0.5%포인트 전격 인하한 데 이어 11일 만의 조치다. 미국 기준금리가 0%(금리 하단 기준)로 하락한 것은 리먼 브러더스 파산으로 글로벌 금융위기가 발생한 2008년 12월 이후 처음이다.
이뿐만 아니다. 연준은 3월 16일부터 국채 보유량을 5000억 달러(약 621조원), 주택저당증권(MBS) 보유량을 2000억 달러(약 248조원) 각각 늘리기 시작했다. 국채와 MBS 보유량을 늘려 기업과 가계에 유동성을 더 공급하겠다는 것이다. 사실상 연준이 또다시 양적완화(QE)에 나섰다는 평가도 나온다. 그만큼 코로나19가 불러온 경제위기를 심각하게 받아들이고 시장 안정화에 나선 것이다.
그러나 시장은 연준의 결정을 비웃기라도 하듯 주식을 팔아댔다.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이후 첫 거래일인 3월 16일 미국 다우존스30 산업평균지수는 패닉셀을 견디지 못하고 2997.10포인트(12.93%) 하락한 2만188.52에 거래를 마쳤다. 1987년 22.6% 낙폭을 기록한 ‘블랙먼데이’ 이후로 최대 낙폭이다. 미국 정책당국이 경제위기를 공식화하고 대책에 나서자 공포심에 내몰린 투자자들이 주식을 무차별적으로 판 것이다.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500)지수도 324.89포인트(13.61%), 나스닥은 970.29포인트(12.32%) 각각 하락했다. 2월 12일 이후 이날까지 다우존스지수는 31.7%, S&P500은 29.4%, 나스닥은 29.1%나 주저앉았다.
아시아·유럽도 코로나19에 허를 찔려 그로기 상태다. 이 기간 일본 닛케이지수 28.5%, 홍콩 항셍지수 17.1%, 독일 DAX30지수 37.8%, 프랑스 CAC40지수 36.5% 하락했다. 각국 정부가 여러 대응책을 내놓고 투자자들의 저가매수 심리가 유입돼 중간에 반등한 경우도 있지만, 주가의 방향을 틀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이처럼 금융시장이 혼란에 빠진 것은 코로나19가 실물경제에 악영향을 줄 거란 판단에서다. 코로나19의 진원지이자 가장 많은 감염자를 낸 중국이 공산품과 중간재 생산에 차질을 빚으며 글로벌 제조업에 타격이 발생할 거란 우려가 생긴다.
중국은 글로벌 제조업의 3분의 1을 차지하고 있는 세계의 공장이다. 이런 중국의 경제활동이 둔화하며 경제성장률이 정체되는 한편 글로벌 공급망이 차질을 빚을 거란 관측이 나온다.
실제 중국 국가통계국에 따르면 중국의 2월 구매자관리지수(PMI)는 35.7로 전월(50.0) 대비 14.3 포인트 급락했다. 사상 최저 수준으로, 생산 및 신규수주·고용 등 주요 PMI 구성항목 지수가 글로벌 금융위기 때보다도 더 크게 떨어졌다. 글로벌 금융위기가 한창이던 2008년 11월 중국의 PMI는 38.8였다.
한국은행은 보고서 ‘해외경제포커스-글로벌 경제이슈’에서 “서비스 수요가 급감한 가운데 공장가동 중지, 도시봉쇄 등으로 공급 차질이 더해졌다. 이로 인해 중국의 제조업 생산 부진이 심화했다”고 설명했다. 미국·캐나다의 중국 중간재 수입 비중은 각각 15.2%, 17.7%에 달한다. 중국의 생산 부진이 북미를 시작으로 남미, 유럽 등 전 세계로 확산할 수 있다. 또 중국의 소비도 부진해 2월 1~2주 중국 자동차 판매량은 전년 동기 대비 92% 감소했고, 2월 스마트폰 출하량도 55%나 쪼그라들었다.
더불어 코로나19의 확산을 막기 위해 미국과 유럽 등이 국가 봉쇄와 이동 금지를 시행하고 있어 일상적 소비활동이나 관광산업이 마비될 가능성도 제기된다.
스페인의 항공·여행 빅데이터 회사 포워드키에 따르면 올 3~4월 중국발 국제선 예약 항공편 수는 지난해 같은 기간에 비해 55.9% 감소했다. 얀 하치우스 골드만삭스 수석이코노미스트는 “코로나19 불안감으로 관광·엔터테인먼트·요식업 등의 소비 지출이 감소할 것”이라며 “글로벌 서플라이 체인이 중단될 가능성이 크며 미국 경제성장률에 악재로 작용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케네스 로고프 하버드대 교수도 파이낸셜타임스(FT)를 통해 “현시점으로는 90% 이상의 확률로 글로벌 리세션이 진행된 것으로 보인다”고 언급했다. 이런 관측 속에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는 올해 세계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지난해 11월 예상치 2.9%에서 2.4%로 크게 낮췄다.
다만 과거 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SARS·사스)나 신종인플루엔자A(신종플루)·중동호흡기 증후군(메르스) 사태 때와 비교하면 코로나19가 금융시장에 미치는 악영향이 과도한 측면이 있다. 실제 2003년 중국에서 사스가 유행했음에도 나스닥은 1년 동안 44.66%나 올랐다. 코스피도 27.63% 가파르게 상승했다.
국내에서만 감염자 75만9678명, 사망자 263명을 낸 신종플루의 경우도 금융시장에 별다른 영향을 미치지 못했다. 신종플루가 세계적으로 유행한 2009년 3월~2010년 3월 나스닥은 81.27%, 코스피는 66.16% 급등했다.
신종플루가 팬데믹(세계적 대유행)으로 지정되고 당시에도 실물경기에 악영향을 끼칠 거란 우려가 있었지만 큰 폭으로 상승했다. 이는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가 터진 지 얼마 지나지 않은 때라 증시 저점 매수 심리가 폭발하는 등 기저효과가 작용한 영향이 컸다. 미국 등 주요국 중앙은행이 일제히 QE에 나서며 유동성을 지원한 것도 당시 주가 상승의 기폭제 역할을 했다. 메르스는 다른 전염병에 비해 치사율이 압도적으로 높았지만, 금융시장이나 실물경기에 타격을 입힌 흔적은 보이지 않는다.
코로나19가 세계적으로 빠르게 번지고 있지만 현재로써는 신종플루나 사스·메르스보다 전염성·치사율이 더욱 높다고 단정 짓기는 어렵다. 그런데도 세계 금융시장이 떨고 있는 이유는 지난 10년간 칵테일 파티에 취해 있던 글로벌 증시가 코로나19 때문에 정신을 차렸기 때문이다.
글로벌 증시는 저금리 영향으로 실물경기의 펀더멘탈 대비 과열된 상황이었다. 지난 10년간 미국 다우존스지수는 3배, 홍콩 항셍지수는 2배가량 상승했다.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유동성의 힘이 증시를 밀어 올리며 2014년께 전고점을 회복한 뒤 연일 사상 최고치를 경신해왔다. 금융시장의 거품을 제거하고 물가를 안정시켜야 하는 각국 중앙은행들도 경기 활성화에 동원되며 위험자산 투자 열풍을 제어할 장치가 사실상 전무했다.
미 세인트루이스 연준(FRED)에 따르면 전 세계 국내총생산(GDP) 대비 유동 부채(M3) 비율은 2015년 56.115로 역대 최고 수준이다. M3는 총유동성을 뜻하며 총통화(M2)에 증권·보험·은행신탁·제2금융권 예금 등을 포함한 가장 넓은 의미의 통화지표다. 이 비율은 2009년 49.38이었다가 2011년 47.06으로 하락한 뒤 가파르게 상승하고 있다. 2013년 이후부터는 매년 2008~09년과 비슷한 속도로 증가하고 있다. 지난 10년은 장기 부채 사이클의 상승 국면이었다. 전체적 신용 증가로 투자가 늘어 증시가 오르고, 주가 상승은 자산효과로 이어져 소비를 진작시키는 선순환이 일어났다. 그러나 코로나19의 확산으로 실물경기 악화를 부를 거란 우려 속에 자산 가치가 떨어지고, 부채상환 요구가 증가하면서 소비가 감소하는 악순환이 나타난다. 이는 금융기관의 부채 축소로 이어지며, 다시 실물 부문을 경색시키는 되먹임 현상으로 이어진다.
이런 상황을 막기 위해 중앙은행은 제로금리 및 채권 직접 매입 등 강경한 정책을 통해 신용경색 확산을 저지하려고 나섰다. 다만 코로나19 사태가 터지기 전부터 사실상 제로금리 수준이 이어져 왔기 때문에 정책의 실효성과 정책 여력이 남았는지는 의문이 든다. 세계 최대 헤지펀드 ‘브리지워터’를 설립한 레이 달리오 최고투자책임자(CIO)는 그의 책 [금융위기 탬플릿]에서 “금리가 0% 수준에 도달하면 금리를 더 내릴 여지가 없어 경제 부양 효과를 기대할 수 없다”며 “채무자들이 부채를 상환해 부채 총량은 줄지만, 소득이 채무 조정보다 빠르게 감소해 채무 부담은 늘어난다. 이 문제가 터지면 자산 강매나 채무 불이행 등의 문제가 발생한다”고 진단했다.
현재 세계적으로 부채 수준이 높은지, 적은지 단정하기는 어렵다. 다만 지난 10년간 세계적으로 부채가 빠르게 늘었고 기업·가계의 부담이 커졌다는 점은 부정할 수 없다. 국제금융협회(IIF)에 따르면 지난해 3분기 세계 GDP 대비 부채비율은 322%로 역대 최고치를 기록했다. 금액으로는 253조 달러(약 31경4226조원)에 달한다. OECD에 따르면 지난해 말 기준 글로벌 비금융 회사들이 발행한 채권 발행액은 13조5000억 달러(약 1경6767조원)으로 2008년 말보다 2배나 늘었다.
파이낸셜타임스는 “코로나19로 공급망에 차질이 생기면 기업들이 경영악화로 부채를 갚기 어려울 수 있으며, 중앙은행들의 금리 인하가 기업들의 채무 확대를 부추겨 상황을 더욱 악화시킬 수도 있다”고 내다봤다. 국제통화기금(IMF)은 최근 세계금융 안정성 보고서에서 2009년 당시 절반 수준의 경기 둔화가 닥칠 경우 19조 달러(약 2경3598조원)에 달하는 기업채무가 상환 불능에 빠지며, 금융 위기의 방아쇠를 당길 수 있다고 경고했다.
부채 부담이 크다는 점은 증시뿐 아니라 다른 투자자산의 가치 하락에서도 엿볼 수 있다. 대표적 안전자산으로, 대개는 증시와 거꾸로 움직이는 금이 대표적이다. 3월 초 트로이온스 당 1700달러를 바라보던 국제 금 시세는 보름 새 1485달러로 폭락했다. 국제원유가격도 실물 경제 부진 우려와 사우디아라비아·러시아 간 갈등 속에 배럴 당 20달러 대로 폭락했다. 실물경기를 선행하는 구리 가격도 지난해 말 t당 6200달러에서 최근 5200달러 선으로 고꾸라졌다. 3월 초 개당 1만 달러에 육박하던 비트코인 가격도 최근 반 토막 난 상황이다. 국내 부동산 시세도 강남3구를 중심으로 7주 연속 하락 중이다. 투자자들 사이에서 그간 가격이 뛰어오른 자산을 매각하고 현금을 확보하자는 심리가 강해진 것이다. 실제 금융시장은 코로나19 사태를 과거 사스·신종플루 같은 전염병보다는 글로벌 금융위기와 같은 신용 부문 위기로 받아들이고 있다. 월가의 ‘공포지수’로 불리는 시카고옵션거래소(CBOE) 변동성지수(VIX)는 3월 16일 82.69를 기록해 역대 최고치를 기록했다. 직전 최고치인 2008년 11월 21일의 80.74를 가볍게 넘어섰다. VIX는 CBOE에 상장된 S&P500 지수 옵션이 앞으로 30일간 어떻게 변할지 변동성 여부를 측정하는 지표다.
증권시장도 부채 증가로 금융 건전성이 취약해졌다는 우려는 안고 있었다. 뉴욕 증시는 미·중 무역분쟁과 미국 기술 기업의 실적 부진 등의 이슈에 2017년 말과 2018년 말 급락하는 등 예민하게 반응한 바 있다. 글로벌 증시가 지난 10년간 과잉 유동성으로 상승한 영향으로 증시의 하방이 취약했다.
이런 상황은 1987년 월가를 흔든 블랙먼데이와도 비슷하다. 1982년 8월 800대였던 다우존스지수는 서머랠리를 시작해 1987년 여름 2700으로 5년 만에 3배 상승했다. 당시 시장에서는 하락의 불씨만 피어올라도 투자를 거두겠다는 기류가 팽배했다. 때마침 미국의 재정·무역수지 적자 누적 문제가 불거지기 시작했고, 1987년 2월 루브르 합의 이후 수출이 부진할 거란 우려가 제기됐다. 더불어 증시 버블을 우려한 연준이 기준금리 인상에 나설 거란 관측이 나오면서 증시가 일순간에 폭락했다. 블랙먼데이 원인 규명에 나선 브래디 특별조사위원회는 복합적 대내외 변수와 주가 하락 시 주식을 팔도록 설계된 프로그램 매도 물량이 맞물려 증시가 폭락했다고 보고했다.
코로나19가 금융시스템에 파급효과를 미치기 시작하자 미국 정부는 3월 17일 3000억 달러(약 371조원)에 달하는 기업·개인 세금을 90일간 유예하는 한편 현금성 지원에 나서기로 하는 등 적극적 대처에 나서기로 했다. 이경민 대신증권 연구원은 “홍콩·싱가포르·대만·호주·중국에 이어 미국까지 직접 소득지원 정책을 펼치고 있어 수요 충격을 극복하는데 효과가 있을 것”이라며 “재정정책은 글로벌 금융위기 때보다 강하다”고 평가했다.
코로나19가 과거 다른 전염병들과는 달리 실제적 위험으로 다가오는 이유는 중국의 경제적 위상이 달라졌기 때문이기도 하다. 사스 사태 당시 중국 경제가 세계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4.3%에 불과했지만 2018년 15.9%로 커졌다. 이 기간 중국의 해외관광 지출은 154억 달러에서 2765억 달러로 18배 불어났다.
중국은 세계 석유의 13.6%를 사용하는 세계 2위 석유 소비국이기도 하다. 중국은 세계에서 가장 많은 에너지와 자원을 소비해 중간재를 만들어 세계로 공급하는 나라다. 이 때문에 중국의 생산 활동에 차질이 생기면 석유·화학·철강·물류 등 분야 전반에 타격이 불가피하다. 중국 기업의 과잉 투자와 해외 기업 인수·합병(M&A)을 주도한 기업 및 지방정부 부채 문제가 불거지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나온다. 생산 활동 부진으로 중국 기업들의 현금흐름이 부족해지면 신용이 악화할 거란 전망이다. 중국 기업들은 그간 부동산 시장을 통해 자금을 융통해왔는데, 국내적으로 투자·소비 심리가 부진해 투자의 흐림이 끊길 수 있다는 분석도 있다. 그림자금융 등 규모를 측정하기 어려운 비전통적 부채가 급증한 점도 중국 경제에는 부담이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촉발한 자국 우선주의가 전 세계로 퍼진 점도 코로나19 사태를 키우고 해결을 어렵게 하는 측면이 있다. 지난 2년 동안 미·중 무역분쟁, 일본의 수출 규제 등 보호무역주의가 퍼져 세계로 국제공조보다는 각자도생하는 분위기가 더욱 강해졌다.
이런 가운데 전염병 확산은 주요국들이 보호주의를 펼칠 명분을 주고 있다. 미국은 중국에 코로나19에 대한 책임을 묻고 있으며, 중국은 잘못이 없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고, 일본은 모든 것을 비밀에 부치고 고립주의를 고수하고 있다. 최근 독일의 한 의료기업이 코로나19 백신을 개발하자 미국이 독점권을 행사하려 했고, 이를 독일 정부가 저지하는 소동이 벌어지기도 했다. 국가 간 협력이나 리더십이 실종되며 코로나19에 따른 교역 경색이 현실화할 것이란 우려도 깊어지고 있다.
이는 중장기적으로 교역보다는 자국에서 제품을 생산, 소비하는 경향을 강화하는 한편 미국과 중국의 디커플링으로 이어질 수 있다. 1929년 대공황 당시 미국이 수입품에 고율 관세를 매기는 ‘스무트-홀리법’을 내놓는 등 각국이 자국 우선주의를 내세운 결과 경제 불황의 골은 더욱 깊게 파였다.
주드 블란쳇 워싱턴전략·국제연구센터(CSIS) 중국연구소 의장은 뉴욕타임스(NYT)를 통해 “(미·중) 상호 관계의 신뢰 수준은 이제 분화하고 있다”며 “양국의 불신과 불일치 수준을 고려하면 글로벌 전염병처럼 안보에 근본적 영향을 미치는 문제를 함께 극복하기 매우 어려울 것”이라고 내다봤다.
- 김유경 기자 neo3@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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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연방준비제도(연준·Fed)는 지난 3월 15일(현지시간) 성명서를 통해 미국 경제가 도전적 시기에 부딪혔다고 진단했다. 그러면서 기준금리를 기존 1.00~1.25%에서 ‘제로금리’(0.00~0.25%) 수준으로 내리는 ‘빅컷’을 단행했다. 3월 3일 기준금리를 0.5%포인트 전격 인하한 데 이어 11일 만의 조치다. 미국 기준금리가 0%(금리 하단 기준)로 하락한 것은 리먼 브러더스 파산으로 글로벌 금융위기가 발생한 2008년 12월 이후 처음이다.
이뿐만 아니다. 연준은 3월 16일부터 국채 보유량을 5000억 달러(약 621조원), 주택저당증권(MBS) 보유량을 2000억 달러(약 248조원) 각각 늘리기 시작했다. 국채와 MBS 보유량을 늘려 기업과 가계에 유동성을 더 공급하겠다는 것이다. 사실상 연준이 또다시 양적완화(QE)에 나섰다는 평가도 나온다. 그만큼 코로나19가 불러온 경제위기를 심각하게 받아들이고 시장 안정화에 나선 것이다.
그러나 시장은 연준의 결정을 비웃기라도 하듯 주식을 팔아댔다.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이후 첫 거래일인 3월 16일 미국 다우존스30 산업평균지수는 패닉셀을 견디지 못하고 2997.10포인트(12.93%) 하락한 2만188.52에 거래를 마쳤다. 1987년 22.6% 낙폭을 기록한 ‘블랙먼데이’ 이후로 최대 낙폭이다. 미국 정책당국이 경제위기를 공식화하고 대책에 나서자 공포심에 내몰린 투자자들이 주식을 무차별적으로 판 것이다.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500)지수도 324.89포인트(13.61%), 나스닥은 970.29포인트(12.32%) 각각 하락했다. 2월 12일 이후 이날까지 다우존스지수는 31.7%, S&P500은 29.4%, 나스닥은 29.1%나 주저앉았다.
아시아·유럽도 코로나19에 허를 찔려 그로기 상태다. 이 기간 일본 닛케이지수 28.5%, 홍콩 항셍지수 17.1%, 독일 DAX30지수 37.8%, 프랑스 CAC40지수 36.5% 하락했다. 각국 정부가 여러 대응책을 내놓고 투자자들의 저가매수 심리가 유입돼 중간에 반등한 경우도 있지만, 주가의 방향을 틀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중국 생산 차질, 글로벌 제조업 부진 우려
중국은 글로벌 제조업의 3분의 1을 차지하고 있는 세계의 공장이다. 이런 중국의 경제활동이 둔화하며 경제성장률이 정체되는 한편 글로벌 공급망이 차질을 빚을 거란 관측이 나온다.
실제 중국 국가통계국에 따르면 중국의 2월 구매자관리지수(PMI)는 35.7로 전월(50.0) 대비 14.3 포인트 급락했다. 사상 최저 수준으로, 생산 및 신규수주·고용 등 주요 PMI 구성항목 지수가 글로벌 금융위기 때보다도 더 크게 떨어졌다. 글로벌 금융위기가 한창이던 2008년 11월 중국의 PMI는 38.8였다.
한국은행은 보고서 ‘해외경제포커스-글로벌 경제이슈’에서 “서비스 수요가 급감한 가운데 공장가동 중지, 도시봉쇄 등으로 공급 차질이 더해졌다. 이로 인해 중국의 제조업 생산 부진이 심화했다”고 설명했다. 미국·캐나다의 중국 중간재 수입 비중은 각각 15.2%, 17.7%에 달한다. 중국의 생산 부진이 북미를 시작으로 남미, 유럽 등 전 세계로 확산할 수 있다. 또 중국의 소비도 부진해 2월 1~2주 중국 자동차 판매량은 전년 동기 대비 92% 감소했고, 2월 스마트폰 출하량도 55%나 쪼그라들었다.
더불어 코로나19의 확산을 막기 위해 미국과 유럽 등이 국가 봉쇄와 이동 금지를 시행하고 있어 일상적 소비활동이나 관광산업이 마비될 가능성도 제기된다.
스페인의 항공·여행 빅데이터 회사 포워드키에 따르면 올 3~4월 중국발 국제선 예약 항공편 수는 지난해 같은 기간에 비해 55.9% 감소했다. 얀 하치우스 골드만삭스 수석이코노미스트는 “코로나19 불안감으로 관광·엔터테인먼트·요식업 등의 소비 지출이 감소할 것”이라며 “글로벌 서플라이 체인이 중단될 가능성이 크며 미국 경제성장률에 악재로 작용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케네스 로고프 하버드대 교수도 파이낸셜타임스(FT)를 통해 “현시점으로는 90% 이상의 확률로 글로벌 리세션이 진행된 것으로 보인다”고 언급했다. 이런 관측 속에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는 올해 세계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지난해 11월 예상치 2.9%에서 2.4%로 크게 낮췄다.
다만 과거 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SARS·사스)나 신종인플루엔자A(신종플루)·중동호흡기 증후군(메르스) 사태 때와 비교하면 코로나19가 금융시장에 미치는 악영향이 과도한 측면이 있다. 실제 2003년 중국에서 사스가 유행했음에도 나스닥은 1년 동안 44.66%나 올랐다. 코스피도 27.63% 가파르게 상승했다.
국내에서만 감염자 75만9678명, 사망자 263명을 낸 신종플루의 경우도 금융시장에 별다른 영향을 미치지 못했다. 신종플루가 세계적으로 유행한 2009년 3월~2010년 3월 나스닥은 81.27%, 코스피는 66.16% 급등했다.
신종플루가 팬데믹(세계적 대유행)으로 지정되고 당시에도 실물경기에 악영향을 끼칠 거란 우려가 있었지만 큰 폭으로 상승했다. 이는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가 터진 지 얼마 지나지 않은 때라 증시 저점 매수 심리가 폭발하는 등 기저효과가 작용한 영향이 컸다. 미국 등 주요국 중앙은행이 일제히 QE에 나서며 유동성을 지원한 것도 당시 주가 상승의 기폭제 역할을 했다. 메르스는 다른 전염병에 비해 치사율이 압도적으로 높았지만, 금융시장이나 실물경기에 타격을 입힌 흔적은 보이지 않는다.
코로나19가 세계적으로 빠르게 번지고 있지만 현재로써는 신종플루나 사스·메르스보다 전염성·치사율이 더욱 높다고 단정 짓기는 어렵다. 그런데도 세계 금융시장이 떨고 있는 이유는 지난 10년간 칵테일 파티에 취해 있던 글로벌 증시가 코로나19 때문에 정신을 차렸기 때문이다.
글로벌 증시는 저금리 영향으로 실물경기의 펀더멘탈 대비 과열된 상황이었다. 지난 10년간 미국 다우존스지수는 3배, 홍콩 항셍지수는 2배가량 상승했다.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유동성의 힘이 증시를 밀어 올리며 2014년께 전고점을 회복한 뒤 연일 사상 최고치를 경신해왔다. 금융시장의 거품을 제거하고 물가를 안정시켜야 하는 각국 중앙은행들도 경기 활성화에 동원되며 위험자산 투자 열풍을 제어할 장치가 사실상 전무했다.
미 세인트루이스 연준(FRED)에 따르면 전 세계 국내총생산(GDP) 대비 유동 부채(M3) 비율은 2015년 56.115로 역대 최고 수준이다. M3는 총유동성을 뜻하며 총통화(M2)에 증권·보험·은행신탁·제2금융권 예금 등을 포함한 가장 넓은 의미의 통화지표다. 이 비율은 2009년 49.38이었다가 2011년 47.06으로 하락한 뒤 가파르게 상승하고 있다. 2013년 이후부터는 매년 2008~09년과 비슷한 속도로 증가하고 있다.
“제로금리가 부채부담 더 키울 수도”
이런 상황을 막기 위해 중앙은행은 제로금리 및 채권 직접 매입 등 강경한 정책을 통해 신용경색 확산을 저지하려고 나섰다. 다만 코로나19 사태가 터지기 전부터 사실상 제로금리 수준이 이어져 왔기 때문에 정책의 실효성과 정책 여력이 남았는지는 의문이 든다. 세계 최대 헤지펀드 ‘브리지워터’를 설립한 레이 달리오 최고투자책임자(CIO)는 그의 책 [금융위기 탬플릿]에서 “금리가 0% 수준에 도달하면 금리를 더 내릴 여지가 없어 경제 부양 효과를 기대할 수 없다”며 “채무자들이 부채를 상환해 부채 총량은 줄지만, 소득이 채무 조정보다 빠르게 감소해 채무 부담은 늘어난다. 이 문제가 터지면 자산 강매나 채무 불이행 등의 문제가 발생한다”고 진단했다.
현재 세계적으로 부채 수준이 높은지, 적은지 단정하기는 어렵다. 다만 지난 10년간 세계적으로 부채가 빠르게 늘었고 기업·가계의 부담이 커졌다는 점은 부정할 수 없다. 국제금융협회(IIF)에 따르면 지난해 3분기 세계 GDP 대비 부채비율은 322%로 역대 최고치를 기록했다. 금액으로는 253조 달러(약 31경4226조원)에 달한다. OECD에 따르면 지난해 말 기준 글로벌 비금융 회사들이 발행한 채권 발행액은 13조5000억 달러(약 1경6767조원)으로 2008년 말보다 2배나 늘었다.
파이낸셜타임스는 “코로나19로 공급망에 차질이 생기면 기업들이 경영악화로 부채를 갚기 어려울 수 있으며, 중앙은행들의 금리 인하가 기업들의 채무 확대를 부추겨 상황을 더욱 악화시킬 수도 있다”고 내다봤다. 국제통화기금(IMF)은 최근 세계금융 안정성 보고서에서 2009년 당시 절반 수준의 경기 둔화가 닥칠 경우 19조 달러(약 2경3598조원)에 달하는 기업채무가 상환 불능에 빠지며, 금융 위기의 방아쇠를 당길 수 있다고 경고했다.
부채 부담이 크다는 점은 증시뿐 아니라 다른 투자자산의 가치 하락에서도 엿볼 수 있다. 대표적 안전자산으로, 대개는 증시와 거꾸로 움직이는 금이 대표적이다. 3월 초 트로이온스 당 1700달러를 바라보던 국제 금 시세는 보름 새 1485달러로 폭락했다. 국제원유가격도 실물 경제 부진 우려와 사우디아라비아·러시아 간 갈등 속에 배럴 당 20달러 대로 폭락했다. 실물경기를 선행하는 구리 가격도 지난해 말 t당 6200달러에서 최근 5200달러 선으로 고꾸라졌다. 3월 초 개당 1만 달러에 육박하던 비트코인 가격도 최근 반 토막 난 상황이다. 국내 부동산 시세도 강남3구를 중심으로 7주 연속 하락 중이다. 투자자들 사이에서 그간 가격이 뛰어오른 자산을 매각하고 현금을 확보하자는 심리가 강해진 것이다.
‘공포지수’ 2008년 금융위기 때보다 높아
증권시장도 부채 증가로 금융 건전성이 취약해졌다는 우려는 안고 있었다. 뉴욕 증시는 미·중 무역분쟁과 미국 기술 기업의 실적 부진 등의 이슈에 2017년 말과 2018년 말 급락하는 등 예민하게 반응한 바 있다. 글로벌 증시가 지난 10년간 과잉 유동성으로 상승한 영향으로 증시의 하방이 취약했다.
이런 상황은 1987년 월가를 흔든 블랙먼데이와도 비슷하다. 1982년 8월 800대였던 다우존스지수는 서머랠리를 시작해 1987년 여름 2700으로 5년 만에 3배 상승했다. 당시 시장에서는 하락의 불씨만 피어올라도 투자를 거두겠다는 기류가 팽배했다. 때마침 미국의 재정·무역수지 적자 누적 문제가 불거지기 시작했고, 1987년 2월 루브르 합의 이후 수출이 부진할 거란 우려가 제기됐다. 더불어 증시 버블을 우려한 연준이 기준금리 인상에 나설 거란 관측이 나오면서 증시가 일순간에 폭락했다. 블랙먼데이 원인 규명에 나선 브래디 특별조사위원회는 복합적 대내외 변수와 주가 하락 시 주식을 팔도록 설계된 프로그램 매도 물량이 맞물려 증시가 폭락했다고 보고했다.
코로나19가 금융시스템에 파급효과를 미치기 시작하자 미국 정부는 3월 17일 3000억 달러(약 371조원)에 달하는 기업·개인 세금을 90일간 유예하는 한편 현금성 지원에 나서기로 하는 등 적극적 대처에 나서기로 했다. 이경민 대신증권 연구원은 “홍콩·싱가포르·대만·호주·중국에 이어 미국까지 직접 소득지원 정책을 펼치고 있어 수요 충격을 극복하는데 효과가 있을 것”이라며 “재정정책은 글로벌 금융위기 때보다 강하다”고 평가했다.
코로나19가 과거 다른 전염병들과는 달리 실제적 위험으로 다가오는 이유는 중국의 경제적 위상이 달라졌기 때문이기도 하다. 사스 사태 당시 중국 경제가 세계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4.3%에 불과했지만 2018년 15.9%로 커졌다. 이 기간 중국의 해외관광 지출은 154억 달러에서 2765억 달러로 18배 불어났다.
중국은 세계 석유의 13.6%를 사용하는 세계 2위 석유 소비국이기도 하다. 중국은 세계에서 가장 많은 에너지와 자원을 소비해 중간재를 만들어 세계로 공급하는 나라다. 이 때문에 중국의 생산 활동에 차질이 생기면 석유·화학·철강·물류 등 분야 전반에 타격이 불가피하다. 중국 기업의 과잉 투자와 해외 기업 인수·합병(M&A)을 주도한 기업 및 지방정부 부채 문제가 불거지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나온다.
미·중 갈등과 자국 우선주의는 회복 걸림돌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촉발한 자국 우선주의가 전 세계로 퍼진 점도 코로나19 사태를 키우고 해결을 어렵게 하는 측면이 있다. 지난 2년 동안 미·중 무역분쟁, 일본의 수출 규제 등 보호무역주의가 퍼져 세계로 국제공조보다는 각자도생하는 분위기가 더욱 강해졌다.
이런 가운데 전염병 확산은 주요국들이 보호주의를 펼칠 명분을 주고 있다. 미국은 중국에 코로나19에 대한 책임을 묻고 있으며, 중국은 잘못이 없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고, 일본은 모든 것을 비밀에 부치고 고립주의를 고수하고 있다. 최근 독일의 한 의료기업이 코로나19 백신을 개발하자 미국이 독점권을 행사하려 했고, 이를 독일 정부가 저지하는 소동이 벌어지기도 했다. 국가 간 협력이나 리더십이 실종되며 코로나19에 따른 교역 경색이 현실화할 것이란 우려도 깊어지고 있다.
이는 중장기적으로 교역보다는 자국에서 제품을 생산, 소비하는 경향을 강화하는 한편 미국과 중국의 디커플링으로 이어질 수 있다. 1929년 대공황 당시 미국이 수입품에 고율 관세를 매기는 ‘스무트-홀리법’을 내놓는 등 각국이 자국 우선주의를 내세운 결과 경제 불황의 골은 더욱 깊게 파였다.
주드 블란쳇 워싱턴전략·국제연구센터(CSIS) 중국연구소 의장은 뉴욕타임스(NYT)를 통해 “(미·중) 상호 관계의 신뢰 수준은 이제 분화하고 있다”며 “양국의 불신과 불일치 수준을 고려하면 글로벌 전염병처럼 안보에 근본적 영향을 미치는 문제를 함께 극복하기 매우 어려울 것”이라고 내다봤다.
- 김유경 기자 neo3@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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