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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인택의 글로벌 인사이트 | 일본 99대 총리 스가 대해부] 아베 아바타일까, 의외의 야심가일까

[채인택의 글로벌 인사이트 | 일본 99대 총리 스가 대해부] 아베 아바타일까, 의외의 야심가일까

표면엔 아베 정책 계승, 배후엔 파벌 합종연횡… 발톱 숨긴 스가의 정체성에 韓·中 촉각
일본 99대 총리가 된 스가 요시히데(앞줄 가운데)가 9월 16일 일본 도쿄에 있는 스가 관저에서 내각 장관들을 이끌고 기념촬영을 준비하고 있다. / 사진:AP=연합뉴스
관방장관 출신의 스가 요시히데(菅義偉·71)가 14일 자민당 총재에 선출된 데 이어 16일 일본 국회에서 제99대 총리로 뽑혔다. 스가는 어떤 정치를 펼칠 것인가.

일본 통산성 관료 출신의 소설가인 사카이야 다이치(堺屋太一)가 쓴 [도요토미 히데나가(豊臣秀長) 어느 보좌관의 생애], 전 미국 국무장관인 콜린 파월의 [리더를 목표로 하는 사람의 마음가짐], 마키아벨리의 [군주론]. 16일 총리에 오른 스가가 밝힌 애독서 세 권이다.

사카이야 소설의 주인공인 도요토미 히데나가는 일본 전국시대를 마치고 통일을 이룬 도요토미 히데요시(豊臣秀吉長)의 동복동생(아버지는 다르고 어머니는 동일)이다. 재정과 행정을 맡아 형이 군사와 정무에만 신경 쓸 수 있도록 도왔다. 그 결과 형이 천하통일을 이뤘을 뿐 아니라 자신도 석고(연간 쌀 생산량) 100만 석에 이르는 거대 영지를 확보해 영화를 누릴 수 있었다. 보좌관의 최고 경지에 오른 것은 물론, 개인적 영화도 상당히 누린 인물이다.

파월은 웨스트포인트를 졸업하고 아프리카계 미국인 최초로 합참의장과 국무장관을 지낸 인물이다. 자신의 배경을 탓하지 않고 묵묵히 앞길을 개척한 인물로 평가 받는다. 그 결과 미국 공화당의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 아래에선 2년간 국가안보보좌관, 공화당의 조지 HW 부시 대통령과 민주당의 빌 클린턴 시절에 걸쳐 4년간 합참의장을 각각 맡았다. 공화당의 조지 W 부시 행정부에선 국무장관으로 4년간 활약했다. 아프리카계 최초라는 수식어와 리더십의 승리라는 평가가 그의 뒤를 따랐다.

마키아벨리의 군주론은 관념적인 이상론보다 실질적인 진리를 이끌어내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근대 정치철학을 제시한 책이다. 새로운 국가를 이루고 정치적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선 비도덕적인 수단도 정당화할 수 있다는 주장도 담고 있어 논란이 되곤 한다.

이 세 권의 책을 보면 스가의 야심과 정치적 지향점을 짐작할 수 있다. 스가가 쓴 저서로는 [정치가의 각오]라는 책이 있다. 앞의 세 권의 애독서와 일맥상통한다. 오로지 정치만 생각하고 살아온 인생임을 짐작할 수 있다. 다른 분야에는 눈을 돌리지 않았다는 이야기다. 전문 분야가 있거나, 본인이 파고드는 분야는 없다는 이야기다.
 나홀로 취미생활, 조용한 성향의 무파벌 정치인
그런 스가는 정치인으로서 무미건조한 편에 속한다. 그는 우선 술을 마시지 않는다. 주량이란 게 있을 수 없다. 요정에서 정치인이나 경제인과 어울려 술을 함께 마시며 서로 결속하고 보스를 받들며 부하를 만드는 일과는 거리가 있다. 일본의 일상적인 정치인과 다른 셈이다. 정말 다른 건지, 그런 기회를 얻지 못했는지, 다른 방식으로 정치적인 목표를 추구했는지는 스가만이 알 것이다. 취미로는 계곡 낚시와 걷기를 들었다. 모두 조용히 혼자서 하는 것들이다. 스가는 총리에 오른 날에도 걷기를 즐겼다. 좋아하는 음식은 팬케이크 등 달콤한 것을 즐긴다고 말했다. 업무로 인한 스트레스를 단 걸로 해소한다는 이야기다.

자신의 세대에선 비교적 큰 편인 171㎝의 키에 혈액형은 O형이다. 즐기거나 해본 적이 있는 스포츠는 호세이 대학시절 심신을 단련할 때 했던 공수도를 꼽았다. 특이한 것은 아침과 밤에 윗몸 일으키기를 100회씩 한다는 사실이다. 간단하지만 매일 한다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스가는 파벌정치가 판치는 자민당에서 드물게 무파벌 정치인이다. 보스가 정치자금을 대주고, 정치적 기회와 경력을 만들어주면서 이끌어주는 파벌이 없다는 이야기다. 그럼에도 총리에 올랐다. 그의 삶과 정치적 이력을 보면 그 비결이 드러난다. 그는 1948년 일본 동북지역의 아키타(秋田)현에서 태어났다. 동북 지역은 개발이 덜 된 낙후지역이다.

스가는 1967년 고교 졸업 뒤 도쿄로 옮겨 2년간 종이박스 제조업체에 다니다 1969년 호세이(法政)대 법학부에 들어갔다. 주목할 점은 스가가 대학에 입학하던 시기가 일본에서 폭력적인 학생운동이 절정에 이르렀던 때라는 사실이다. 대학마다 전학공투회의(全学共闘会議·약칭 全共闘) 운동이 활발해 화염병과 각목을 든 학생들이 바리케이트를 치고 점거 농성이 이어졌다. 특히 도쿄대에선 1969년 1월 18일~19일 전공투 학생 2000여 명이 야스다(安田) 강당을 점거하자 경찰이 이를 봉쇄한 사건이 애스다 강당 사건이 발생했다. 진압 과정에서 경찰 710명과 학생 47명이 다치고 457명에 체포됐다. 일본의 폭력 학생 운동의 상징적인 사건이다.

이런 시대에 대학을 다녔지만 학생운동에 휩쓸리지 않고 1973년 대학을 졸업한 스가는 민간기업에 다니다 1975년 호세이대 취업상담실을 통해 자민당 소속 대학 선배 의원의 국회 보좌관으로 일하기 시작했다. 그러다 12년이 지난 1987년 고향도 아닌 수도권 대도시인 요코하마의 시의원에 당선하면서 선출직에 입문했다. 9년간의 시의원 생활 끝에 1996년 처음으로 중의원에 당선했다. 시의원을 지낸 요코하마를 지역구로 했다. 지역구 의원이 은퇴하면서 물러난 자리에 들어갔다. 의원 보좌관 12년, 시의원 9년이라는 인고의 세월을 거쳐 국회에 입성한 것이다.
 ‘레이와 시대’를 연 상징으로 떠오른 개혁주의자
2002년 국토교통성과 2003년 경제산업성의 정무관(정무 차관에 해당)을 거쳐 2005년 총무부대신을 맡았다. 2006년 총무상을 맡아 처음으로 입각했다. 중의원이 된 지 10년 만에 각료를 맡은 것이다. 그에게 기회가 온 것은 2012년 아베 신조(安倍晋三)가 다시 총리가 되면서 관방장관으로 발탁되면서다. 관방장관은 정부대변인과 총리 비서실장을 겸하는 자리다. 총리를 지근에서 모시며 일본의 정치와 정책을 조율하는 자리다. 2016년에는 관방장관 재임일수 1290일을 넘기면서 역대 최장수를 기록했다.

이런 스가를 아베 다음의 총리에 올리는 작업은 이미 2019년 4월 1일에 시작됐다고 볼 수 있다. 바로 그날 일본의 새로운 연호인 ‘레이와(令和)’를 스가 당시 관방장관이 붓글씨로 적힌 패널을 들고 나와 발표했다. 스가는 레이와라는 새로운 시대를 연 상징적인 인물이 됐다. 대중으로부터 ‘레이와 오지상(레이와 아저씨)’으로 불리며 대중에게 친근한 이미지로 떠올랐다.

관방장관으로 코로나 대책, 경제 정책 등 다양한 정부 발표를 담당했기에 스가를 모르는 일본인은 거의 없을 것이다. 하지만 업무 성격상 원칙적인 이야기나 하는 무미건조하고 딱딱한 인물이라는 이미지가 굳어질 수밖에 없었다. 그런 그가 레이와 발표로 대중에 친근한 이미지를 주면서 관심을 받고 인기까지 모으기 시작했다. 미디어에도 ‘의리와 인정이 두터운 정치가’라는 평가가 이어졌다. 그가 총리에 된 뒤 니혼게이자이에는 스가의 비서관으로 7년을 일했다는 가토 간(加藤元) 시나가와 현의원이 “과거 총무상으로 일하다 떠나게 되자 자신의 요코하마 자택을 경비하던 경찰관들을 불러 모아 감사의 회식을 함께했다”며 스가가 의외로 인정이 많은 성격이라고 전했다.

스가는 지난해 5월 11일에는 미국 워싱턴DC를 방문해 마크 펜스 부통령과 회담했다. 관방장관이라는 직책은 총리가 해외에 나가면 도쿄를 지켜야 하는 자리다. 해외 출장이나 외교 업무의 기회가 제한될 수밖에 없다. 그런 스가에게 아베 총리가 해외 경험을 쌓을 기회를 준 것으로 볼 수 있다.
 미국엔 절친, 한·중엔 관망 이어나갈 아베 계승자
아베 신조 총리가 5월 4일 도쿄 아베 사무실에서 열린 기자 회견에서 스가 요시히데 당시 내각 장관 앞에서 손짓을 하고 있다. / 사진:AP=연합뉴스
스가는 자민당 내에서 개혁주의자로 통한다. 경제 분야에서는 규제개혁을, 지역문제에선 구조개혁을 통해 낙후 지역 개발을 각각 강조해왔다. 스가 내각이 경제우선 정권이 될 가능성이 큰 이유다. 아사히 신문은 스가 총리가 지방 구조개혁을 강력하게 추진할 것으로 전망했다. 낙후된 지방에 활력을 불어넣는 것은 일본의 오랜 숙제였다. 특히 코로나19가 확산하면서 수도권 인구집중 해소는 생존과제가 되고 있다. 아사히는 “도쿄는 영국 런던처럼 한 나라 전체 인구의 30%가 몰려있어 코로나19의 확산에 취약성을 보여왔다”며 스가 총리의 지방 활성화가 해결책이라고 지적했다.

스가는 자민당 내에선 무파벌이지만, 의외로 인맥이 탄탄하다. 니혼게이자이에 따르면 스가는 아베 총리의 임기와 똑같은 7년 8개월 동안 관방장관을 맡으면서 아침·점심·저녁의 대부분을 사람을 만나는 데 썼다. 저녁 자리에 2차례씩 가는 일도 드물지 않았다고 한다. 이를 통해 구조개혁파를 중심으로 경제계 인맥을 형성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일본 경제의 구조개혁을 주장하는 인물들이 스가 주변에 포진하고 있다는 이야기다. 스가가 젊은 의원 시절 ‘정치적 사부’로 모셨던 가지야마 세이로쿠(梶山静六) 의원은 스가에게 “관료들은 자신의 주장을 잘 포장하는 설명의 천재이기 때문에 반드시 다양한 사람을 만나 여러 가지 이야기를 들어봐야 한다”고 강조했다. 정치권, 관료, 경제계 인사를 두루 만나야 전체를 보고 큰 그림을 그릴 수 있다는 이야기다.

아베 총리가 간판으로 내세웠던 외국인 관광 진흥 정책도 사실은 스가가 만나던 인맥으로부터 아이디어를 얻은 것으로 전해진다. 그는 2016년에 ‘2020년 2000만명의 외국인 방문’으로 잡았던 목표를 4000만명으로 늘렸다. 아베 정권발족 당시 연 100억엔이던 관광 분야 예산을 700억엔으로 증액했다. 대담하고 집요한 정책 추진력이 아닐 수 없다. 총리 스가가 앞으로 경제개혁과 정책주진을 어떻게 할 것인지를 짐작할 수 있는 대목이다.

스가는 경제자문회의의 의견을 받아들여 최저임금을 올려 중소기업을 재편하는 작업에도 나설 것으로 보인다. 한계 상황에 이른 일부 업종을 자연스럽게 정리할 수 있도록 하는 정책이다. 이와 함께 산업경젱력을 높일 기술 개발과 중소기업으로의 확산에도 무게를 두고 있다. 이처럼 스가는 외부 인맥의 조언을 통해 규제 개혁에 대한 의지와 신념을 더욱 굳히면서 정책 아이디어를 얻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스가는 외교와 관련해서는 정상회담에 무게를 두는 편이다. 한국과 중국과의 조기 정상회담에 나설 수도 있는 관측이 나오는 이유다. 하지만 관방장관 시절 한국의 징용 피해자 판결과 관련해 강경한 입장을 자주 발표한 터여서 이 문제의 해결을 정상회담의 전제조건으로 삼을 가능성이 커 보인다. 미중 격돌과 관련해 스가는 미국의 추진하는 대중국 포위망 구성에 대해 신중한 입장을 보이고 있다. 미국과는 관계를 돈독하게 유지하면서 중국과도 실리를 추구하겠다는 것이다. 하지만 갈수록 격화하는 미·중 대결 구도 속에서 스가의 고민은 더욱 깊어질 수밖에 없을 것이다. 아베의 정책을 이어나가겠다고 밝힌 만큼 당분간 한·일과 중·일 관계에선 관망 자세를 취할 가능성이 커 보인다.

문제는 자민당 특유의 파벌주의라는 한계다. 스가가 파벌주의라는 자민당의 한계를 뛰어넘을 수 있을 가능성은 낮아 보인다. 스가는 자신의 정치적인 배경이나 세력이 없으며, 그도 역시 파벌간의 담합에 의해 총리에 올랐기 때문이다. 자민당은 전통적으로 파벌 간의 합종연횡으로 총리를 만들어왔다.
 도움 준 파벌에게 보은한 스가 내각 각료 인사
9월 14일의 자민당 총재 선거에서 98명이 소속된 호소다파, 55명으로 이뤄진 아소파, 54명으로 구성된 다케시다파, 47명이 포함된 니카이파, 11명의 이시하라파가 스가를 지원했다. 스가는 어디에도 소속되지 않은 무파벌이다. 스가는 이들 다섯 파벌의 지원으로 총리에 오른 세이다. 스가와 함께 자민당 총재 선거에 나왔던 기시다 후미오(岸田文雄)는 47명이 따르는 기사다파의 수장이다. 아베의 정적으로 이번에 출마했던 이시바 시게루(石破茂)는 19명으로 이뤄진 이시바파의 보스다. 7년 8개월간 관방장관으로 운명을 같이 했던 아베는 가장 인원이 많은 호소다파에 속한다. 아베는 정적인 이시바가 자민당 총재와 초리에 오르는 것을 막기 위해 과거 자신이 총리가 되는 것을 지원했던 파벌간 합종연횡을 뒤에서 조종했을 가능성이 크다. 아베의 이시바에 대한 거부감이 상당하기 때문이다.

자민당에서 파벌간 권력 나눠먹기는 당 4역 인사에서 드러난다. 당 4역은 니카이 도시히로(二階俊博·81) 간사장, 사토 쓰토무(佐藤勉·68) 총무회장, 시모무라 하쿠분(下村博文·66) 정무조사회장(정조회장·정책위원장에 해당), 야마구치 다이메이(山口泰明·71) 선거대책위원장으로 결정됐다. 니카이 간사장과 야마구치 선거대책위원장은 유임이고 나머지는 신임이다. 하지만 인물만 바뀌었지 소속 파벌은 그대로다. 니카이 간사장은 47명이 소속한 니카이파의 수장이며, 사토 총무회장은 54명을 거느린 아소파의 회원이다. 시모무라 정조회장은 98명이 속한 최대 파벌인 호소다파 소속이다. 야마구치 선대본부장은 54명이 속한 다케시다파다. 당 4역을 배출한 4개 파벌과 함께 11명이 소속한 군소 파벌인 이시하라파도 있다. 이 파벌 소속의 모리야마 히로시(森山裕)는 국회대책위원장이다. 이들 다섯 파벌이 힘을 합쳐 자민당 총재 선거에서 스가를 밀었다. 자민당 당 4역 인사는 이에 따른 철저히 보은 인사, 또는 권력 분할 인사인 셈이다. 자민당 총재인 스가가 실시한 당 인사라기보다 파벌이 세력에 따라 사람을 앉힌 인사나 다름없다. 스가는 파벌에 빚이 많다.

파벌 분배는 스가 내각의 각료 인사에서도 드러난다. 각료의 파벌별 분포를 보면 호소다파 5명, 아소파 3명, 다케시타·니카이파 각 2명, 이시하라파 1명 및 무파벌 3명이다. 이들은 모두 스가를 지지한 그룹이다. 스가와 경쟁했던 기시다 후미오 전 정조회장의 기시다파에서 2명, 이시바 시게루 전 간사장의 이시바파에서도 1명을 각각 기용했다. 자민당과 연립정권을 이루는 공명당은 기존대로 한 자리(국토교통상)가 배정됐다. 경쟁 파벌과 연립정당에도 배정한 게 당직 배분과 다르다.

주목되는 것은 스가 내각에서 스가의 색채를 보기가 힘들다는 사실이다. 아베 내각에 몸담았던 각료 중 8명이 원래 자리를 그대로 지켰고, 3명은 다른 자리를 갈아탔다. 20명으로 이뤄진 내각에서 11명의 아베 내각 사람이 그대로 자리를 지킨 셈이다. 스가 정권이 ‘아베 시즌2’라는 소리를 듣고. 스가 총리가 ‘아베의 아바타’라는 비판을 받을 수 있는 근거다. 이렇게 시작한 스가 요시히데 총리의 정권이 앞으로 어떤 정치와 정책을 펼칠 것인가. 파벌과 아베의 색채를 차례로 들어내고 의외로 자신만의 정치를 하려면 넘어야 할 산이 한 둘이 아니다. 스가 시대 스가의 정치를 볼 수 있을 것인가.



※ 필자는 현재 중앙일보 국제전문기자다. 논설위원·국제부장 등을 역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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