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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경제의 심장’ 울산을 가다] 굴뚝 산업 넘어 ‘친환경 발전 생태계’로 전환

[‘한국 경제의 심장’ 울산을 가다] 굴뚝 산업 넘어 ‘친환경 발전 생태계’로 전환

석유·화학 세계적 부진 속 체질 개선 필요 커져… 수소·해상풍력 등 친환경 에너지로 재도약 추진
울산광역시는 석유·화학 중심의 산업 구조를 수소 등 미래 에너지 분야로 다변화할 계획이다. 사진은 SK이노베이션의 울산 CLX 모습이다.
울산은 한국 제조업의 성지다. 한국의 석유·화학·자동차·조선 등 제조업 분야를 세계적 반열에 올려놓으며, 막대한 부가가치와 일자리를 창출했다. 수출 최전선에서 글로벌 기업들과 경쟁하며 ‘태화강의 기적’을 이루었다.

그러나 달이 차면 기울 듯 울산의 영광도 영원하지는 못하다. 세계적인 전기자동차 열풍과 소재 재활용 여파에 울산의 주력 산업인 석유·화학이 주춤하고, 자동차·조선 산업도 2000년대 호황을 끝으로 제자리를 맴돌고 있다. 변화의 때가 도래한 셈이다.

이에 울산광역시는 정부의 뉴딜정책에 발맞춰 ‘9개 성장다리’라는 정책을 세우고 산업 체질개선, 스마트시티에 걸맞은 인프라 구축 등 재도약을 추진하고 있다. 이를 통해 지속가능한 경제 생태계를 가꾸고 디지털 경제로 전환한다는 계획이다.
 글로벌 경제 변화 한가운데 선 울산 경제
울산은 장면 내각 시절이던 1962년 정부가 특정공업지구로 지정해 토지수용과 기간산업 건설에 나서며 한국 최대의 공업도시로 성장했다. 울산광역시 남구에는 울산석유화학공단, 울주군에는 온산석유화학공단, 북구에는 자동차산업단지, 동구에는 조선소 등이 위치하는 등 도시 전체가 거대한 공업도시로 탈바꿈했다.

SK이노베이션·현대중공업·현대자동차·현대제철·에스오일·삼성SDI·효성·LG화학·롯데케미칼·한화솔루션·이수화학 등 내로라하는 국내 석유·화학·철강·자동차·조선 대기업들이 밀집해있다. 화학 기업만도 200여 개 달한다. 바스프·에보닉·윌로펌프·솔베이·NOV와 같은 다국적 기업들도 울산에 공장을 두고 있다.

큰 부가가치를 만드는 기업들이 밀집해 있어 지역내총생산(GRDP)는 2019년 74조9297억원(시장가격 명목 기준)으로 광역시 중에서 부산·인천에 이어 세 번째로 크다. 1인 당 GRDP로는 6535만원(2018년 기준)으로 전국 시도 가운데 1위며, 세계에서 1인당 국민소득이 8번째로 높은 덴마크(5만9822달러)와 비슷하다.

대부분 공장이 24시간 운영되고 근로자들이 교대 근무하기 때문에 밤이 없는 도시로도 유명하며 지역 내 네트워크도 공고하다. 2차 산업이 부흥한 영향으로 지난 20년 새 도매·소매·운송·건설·정보통신 등 3차 산업도 크게 성장했고, 종사자 수도 불어나며 균형 있는 성장을 일구었다. 통계청에 따르면 울산시 인구는 광역시로 승격된 1997년 100만9652명에서 2020년 11월 113만7345명으로 12.64% 늘었다. GRDP는 1998년 26조6630억원에서 21년 새 281% 증가했다.

그러나 영원히 좋은 것은 없다. 울산 경제는 2017년 GRDP 75조7500억원으로 정점을 기록한 뒤 정체되는 양상이다. 울산의 핵심 산업인 석유·화학·조선·자동차 산업의 세계적 부진으로 덩달아 피해를 보고 있다.

딜로이트의 석유 산업 전망에 따르면 2021년 석유 수요는 크게 반등할 전망이지만,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이전 수준으로는 회복되기 어려워 보인다. 세계적으로 자동차 동력원이 전기로 전환하는 가운데, 석유 수요가 좀처럼 반등하지 못하고 있다.

세계적인 친환경 에너지 사용 기류 속에 유가도 좀처럼 오르지 않고 있다. 이에 미국의 석유·가스 회사들은 2020년 정규직 직원의 14%를 해고한 상태다. 이는 증시에서도 잘 나타난다. 2019년 12월 상장한 세계 최대 석유 회사 아람코의 주가는 지난해 9월 21일 36.95리얄로 고점을 기록한 뒤 완만하게 하락하고 있다. 2020년 1월 6일 주당 27.15유로였던 로얄더치쉘 주가는 코로나19 사태로 급락한 뒤 반등하지 못하며 12월 24일 14.48유로를 기록하고 있다. 브리티시페트로놈(BP) 역시 같은 기간 504.1페니에서 263페니로 떨어져 부진한 상태다.

석유로부터 파생되는 화학 산업 역시 비슷하다. 환경오염을 유발하는 플라스틱 폐기물에 대한 우려가 증가하는 가운데 소재 재활용과 대체품 수요가 커지고 있고, 완제품 생산업체들의 제품 난도 역시 높아지고 있다.

딜로이트는 보고서에서 “화학제품 소비자들은 지속가능한 성장과 순환성을 중시하고 있으며, 탄소발자국(생산·소비 과정에서 발생하는 탄소량)에 기반을 두고 제품의 우선순위를 정한다”며 “화학회사는 탈 탄소 기술을 가속하고, 기존 자산을 재검토할 수 있다. 잠재적으로 획기적인 녹색 기술을 상업적 규모로 도입하기 위해 고급 재활용에 투자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2020년 18% 감소한 자동차 산업은 2021년 15% 증가할 전망이나, 생산라인 효율화와 전기차 판매량 증가 등의 구조적 변화를 맞았다. 특히 글로벌 자동차 회사들의 주력 수출 시장이던 중국이 자국 회사들을 육성하며 중국으로의 수출이 크게 둔화할 전망이다.

영국 이코노미스트 인텔리전스유닛의 산업 담당 안나 니콜라스 이사는 “글로벌 자동차 제조사들은 광범위한 비용 절감 프로그램을 추진하면서 성장 동력을 찾아야 한다”며 “미·중 갈등은 앞으로도 계속될 전망이라 제3 국가들은 두 국가 중 하나를 선택하게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제조업 생태계 전환’으로 울산 경제에 활력
글로벌 산업 환경이 중후장대(重厚長大) 산업에 불리하게 돌아가는 가운데 국내 기업은 물론 지방자치단체들도 생존 대책이 필요해졌다. 실제 울산 경제는 석유·화학 분야에 앞서 구조조정이 시작된 조선업의 업황 부진으로 정체기에 접어들었다.

울산의 경제활동별 부가가치를 보면 ‘기계 운송장비 및 기타 제품 제조업’은 1998년 16조7598억원(기초가격 명목 기준)에서 꾸준히 오르다가 2012년 70조1544억원을 정점으로 하락, 2018년 56조121억원으로 떨어졌다. 2009년과 비슷한 수준이다.

한국 경제 전체에서 울산이 차지하는 비중도 2011년 4.92%를 고점으로 내리막을 타기 시작해 2019년에는 3.89%로 1%포인트 가량 쪼그라들었다. 울산이 광역시로 승격된 1998년 이후 가장 낮은 수준이다. 인구 역시 2015년 117만3534명을 기록한 뒤로 매년 1만명씩 감소하고 있다.

국내 최대 석유·화학회사인 SK이노베이션이 2차전지 기업으로, 국내 최대 완성차 회사인 현대자동차가 수소전지 자동차로 변신에 나서듯 울산도 정책과 산업 인프라의 변신을 꾀해야 할 때다.

울산은 민선 7기 송철호 시장이 당선된 2018년부터 제조업 생태계 전환을 추진하고 있다. 미래 산업 변화에 대비해 ‘9개 성장다리(9 BRIDGES)’라는 산업 체질 개선 및 인프라 구축 목표를 세웠다. 최초 7개 성장다리로 시작했으나 울산경제자유구역, 반구대 암각화 보전 등 과제를 추가했다.

울산광역시의 최역점 사업은 에너지 분야의 생태계 전환이다. 울산은 현재 석유·화학 산업을 지탱하는 한편, 수소경제의 산업 생태계를 추진하고 있다. 2030년까지 수소경제를 선도하는 글로벌 도시로 도약하고, 수소전기차 50만대 생산기반을 구축할 계획이다.

수소는 석유 등 화석 연료의 화합물 형태로 포함돼 있어 세계적 석유·화학단지를 가진 울산이 추진하기 좋은 분야다. 현재 국내에서 생산되는 수소의 절반에 달하는 82만 톤 가량을 울산 지역에서 생산하고 있다. 울산은 이미 대규모 석유·화학설비가 가동하고 있어 부생 수소를 쉽게 얻을 수 있고, 수소 배관망·수소 전기차 및 충전소 보급 등 다양한 사업 영역을 추진하기에 인프라가 잘 구축돼 있다.

이미 울산에서 만들어진 수소의 80% 이상은 석유·화학 공정에 다시 투입돼 석유화학 제품 생산에 활용되고 있고, 나머지 10~15% 정도는 정제해 반도체 공장 및 소비 업체에 판매하고 있다. 이런 가운데 울산은 석유·화학단지에서 생산하는 부생 수소를 활용한 연료전지 발전 시스템 구축과 수소·연료전지 연구, 수소 품질 시험 사업화가 가능한 친환경 전지 융합 실증화 단지 구축 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국제표준화기구(ISO)의 수소 품질 기준에 맞출 수 있는 분석 장비와 수소의 품질을 분석하고 표준화하는 한편, 수소 생산 유통업체에 기술 지원을 제공한다. 부생 수소를 실증화 단지에 공급하는 수소 배관 등 인프라는 2017년에 구축을 마쳤다.
 정부 그린뉴딜과 보조, 글로벌 수소 패권 겨냥
문재인 대통령이 정의선 현대자동차 회장과 함께 친환경 미래차의 현장인 현대차 울산공장을 방문, 현대모비스의 M.비전S 미래형 자동차를 시승하고 있다. / 사진:청와대사진기자단
이런 인프라 사업을 기반에 두고 수소를 사용한 교통수단 확충 및 수소를 통한 전기 생산 등 ‘수소 에너지 사회’를 지향한다. 실제 현대자동차 울산공장에서는 2013년 세계 최초로 수소 전기차 상용 모델 투싼ix 수소차를 개발해 상용화했다. 이를 바탕으로 울산광역시는 2016년 12월 환경부, 현대자동차, 울산지역 택시회사 등이 함께 국내 최초로 울산 지역에서 수소 연료 전지 택시 시범 운행을 하기도 했다.

정부도 2020년 그린뉴딜 정책의 하나로 ‘수소경제 활성화 로드맵’을 밝혀 정책의 합을 맞추는 모습이다. 울산광역시는 자동차·조선·석유화학과 더불어 수소를 지역 성장 산업으로 육성할 계획이다.

울산광역시는 더불어 부유식 해상풍력 발전도 도입해 2025년까지 동해정 인근에 1GW 규모의 부유식 해상풍력발전단지를 조성한다. 기술개발·제작생산·운영보수·인력양성 등 부유식 해상풍력의 모든 주기를 아우르는 연관시설 집적화로 비용을 감소시키고 기술을 한 단계 높일 방침이다. 쉘처럼 부유식 해상풍력과 그린수소를 연계하는 구상을 통해 에너지 미래 역사를 쓰는 청사진도 염두에 두고 있다.

울산광역시는 6GW급 해상풍력발전단지를 조성하면 430만 가구에 필요한 전력 공급이 가능해지고, 100개 이상의 관련 기업을 유치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지역에 현대중공업 등 세계 최고 수준의 기계·설비 기업을 안고 있어 시너지 효과를 낼 것으로 보고 있다.

또 울산을 동북아 오일·가스 허브로 육성할 계획이다. 미·중 패권전쟁이 첨예해지는 가운데 에너지 주도권을 둘러싼 주요국 간에 경쟁이 치열하다. 이에 에너지 거점 전략은 외교·안보적으로도 유의미하다.

울산광역시는 2030년까지 울산항 68만4000㎡ 부지에 원유와 액화천연가스(LNG) 저장시설을 구축해 에너지 허브로서 입지를 다질 계획이다. 정부의 신북방정책과 연계해 ‘동북아 에너지거래 시장(RUS-SAN 마켓)’도 개설한다. 동북아 오일허브 사업에 LNG를 추가해 2020년 3월 북항 항만공사를 시작으로, 2024년 4월 상업운영을 목표로 잡고 있다.

세계적으로 탈원전 조류 속에 커질 것으로 예상하는 원전 해체산업에서도 시장을 선점할 계획이며, 이를 위해 산·학·연 협력을 강화하고 국산화 기술을 추진 중이다. 이와 함께 경제자유구역 중심으로 신재생에너지·정보통신기술·바이오 등 혁신기업 유치에도 나선다. 수소그린모빌리티·게놈서비스산업·강소연구개발·이산화탄소자원화 등과 관련해 규제자유특별구역을 만들고, 에너지산업융복합단지도 설치한다.
 인프라 증설 및 문화관광 경쟁력 강화도
울산광역시는 한국 제조업의 심장에서 스마트시티로서 도약하기 위해 도시환경 개선과 인프라 확충에도 나선다. 먼저 도로 및 철도망을 증설한다. 외곽순환도로를 건설해 울산으로의 접근성을 높이는 한편, 동해남부선 복선전철·트램·울산권광역철도를 놓아 사통팔달 물류망을 뚫는다는 계획이다.

시민들의 건강 증진을 위해 2025년 시민 모두를 위한 산재전문 공공병원의 문을 열고, 지역 의과대학 정원 증원, 게놈바이오메디컬 산업도 육성한다. 자연환경 개선에도 힘을 쏟아 태화강을 2호 국가정원으로 지정하는 한편 40㎞ 길이의 대나무 숲도 조성한다. 반구대암각화 세계유산 등재도 추진하고, 깨끗하고 안전한 먹는 물 확보도 추진한다.

과거 굴뚝 산업 도시라는 이미지를 벗고 문화관광도시로 재도약하겠다는 것이다. 울산광역시는 이들 사업을 추진하기 위해 2021년 3조3820억원의 예산을 끌어들이며 2년 연속 3조원대 중앙정부 예산을 확보했다.

송철호 울산광역시장은 “자동차·조선·석유화학·비철금속 등 울산의 4대 주력 산업에 수소 경제 생태계와 원유·LNG 등 에너지 산업을 추가하고 있다”며 “급변하는 에너지·제조 산업 변화에 맞춰 체질 개선을 꾀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 울산=김유경 기자 neo3@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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