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근영 팝콘 심리학] 윤여정, BTS 그리고 새옹지마
우리가 살아있는 한 엔딩은 없다
2021년 4월 26일, 배우 윤여정씨가 한국영화사상 최초로 아카데미상을 받았다. 미국 영화사에서 제작한 작품이라지만 한국어로 연기한 한국인 배역으로 받은 상이다. 지난해에 이어 한국 영화계의 역사에 길이 남을 사건이었다.
그녀는 수상소감에서 싱글맘으로 자식을 먹여 살리기 위해서 어쩔 수 없이 배우 일을 계속했던 덕분에 여기까지 올 수 있었다고 말했다. 그녀가 이혼하지 않았더라면, 생활고에 시달리지 않았더라면 아카데미상을 받지 못했을까?
그녀는 배우 경력을 시작할 때부터 또래 여배우들과는 다른 캐릭터였다. 영화 경력 역시 김기영이라는 아주 독특하고 뛰어난 감독과 작업을 하면서 두각을 나타냈다. 아마 그 경력이 순탄히 계속되었더라도 지금쯤 상당한 경지에 올라섰으리라. 하지만 결혼과 함께 유명배우에서 무명인으로 바뀐 삶의 경험이나, 이혼과 함께 주연에서 단역에 가까운 조연으로 다시 시작하면서 쌓아올린 폭넓은 연기 경력이 없었다면 지금과 같은 아우라는 없었을지도 모른다.
그녀의 수상 소감을 들으며 이런 상상을 해봤다. 이혼녀라는 이유로 방송출연도 거절당하고, 간신히 출연한 배역으로는 시청자 비선호도 1위에 올랐던 1980년대의 윤여정에게 누군가 ‘당신이 삼십여 년 후에 아카데미상을 받을 것’이라고 말해주면 어떤 대답을 들었을까?
영원한 주류도, 만년 비주류도 없다
말콤 글래드웰의 책 [아웃라이어]는 비주류 대 주류의 구도가 뒤집어진 사례들로 가득하다. 그 중 하나를 보자. 1950년대 미국의 1류 법률 회사들은 북유럽계 백인 가문 출신에 아이비리그 학교를 나와 같은 교회를 다니고 같은 지역에서 여름휴가를 보내는 변호사들만 받아들였다. 그 회사 변호사들이 파티장에서 주로 흰 구두를 신었기 때문에 ‘하얀구두 로펌’이라고 불리기도 했던 이들 회사들은 일도 골라 받았다.
주로 당시 잘나가던 대기업들의 법률적인 문제들이나 세금문제가 그들의 전담 영역이었다. 대마불사의 신화가 유지되던 시절이었다. 대기업들은 여유가 넘쳤고 이런 일은 법정소송까지 갈 필요 없이 회의실에서 신사끼리의 합의로 해결되는 것들이었다.
반면 주로 동유럽 이민자 출신의 유태인 혈통 변호사들은 아무리 능력이 뛰어나도 그런 1급 로펌에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그들은 어쩔 수 없이 비주류 로펌에 들어갔다. 맨해튼에 사무실도 낼 수 없었던 이런 로펌의 업무는 1급 로펌이 기피하던 법정 소송이나 기업 간의 적대적 인수합병 같은 험악한 일들이었다.
그러다 1970년대가 되자 환경이 바뀌었다. 시장은 국제화되었고 신생기업들이 등장하면서 경쟁이 치열해졌다. 기업들 간의 적대적 인수합병과 그 방어는 이제 로펌의 가장 중요한 업무가 되었다. 당연히 그 분야에서 가장 많은 노하우를 축적한 비주류 유태인 로펌들이 주류가 되었다. ‘하얀구두 로펌’들은?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말콤 글래드웰이 이 책의 후속편을 쓴다면 방탄소년단, BTS의 이야기를 넣을지도 모른다. 이름부터 비주류의 냄새가 풍만했던 이 보이그룹의 시작은 아주 작았다. 지명도나 규모에서 1급과는 거리가 멀었던 이들의 소속 회사는 공중파에서 주류 그룹들과의 경쟁에 승산이 없다는 걸 알고 있었다. 이들이 온라인 활동에 주력한 건 어느 정도는 그 때문이었다.
그들은 데뷔하기도 전인 2011년부터 트위터와 블로그를 시작했고 이후에 유투브와 브이라이브 등의 동영상 채널도 열었다. 당시 이들은 연예인이나 유명인이 아니라 평범한 소셜 네트워크 이용자들에 가까웠다. ‘흙수저 아이돌’이라는 별명처럼, 이들은 자기 손으로 직접 네트워크에 들어섰고, 수년간 자기 목소리로 그곳을 채워왔다. 공중파를 비롯한 대중 매체는 종종 이들의 존재를 잊은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그동안 온라인에서는 전 세계에서 팬이 생겨났다.
이미 유명해진 아이돌 그룹이 아니라 정말로 평범하고 소탈한 남자 아이들의 모습으로 소통하던 이들의 모습이 그처럼 평범하고 주목받지 못하던 청소년들의 마음을 움직였던 것이다. 그들에게 BTS의 역사는 자신들의 성장사였다. 지금 현재 이들만큼 오랫동안 변함없이 많은 팬들과의 온라인 소통을 계속해 온 그룹은 없다. 그 팬들에게 BTS는 온라인에서 자기들과 함께 태어나 자신들과 함께 성장한 형제나 자매 같은 존재다. 그들의 강력한 충성심이 지금의 BTS의 바탕에 깔려있다.
예전에 대학에서 강의를 하다보면 또래보다 어른스럽던 친구들이 한 둘씩은 있었다. 그들의 개인사는 대개는 기구했다. 부모가 이혼했거나, 나름 유복하던 집안이 몰락했거나, 혹은 둘 다 인 경우도 있었다. 그들에게는 힘든 고난이었다. 하지만 어쨌든 그들은 그 시기를 겪어냈다. 적어도 수업 시간에 동료 학생들 앞에서 자기 이야기를 차분하게 발표할 수 있을 정도로 그 시절의 자신과 거리를 둘 수는 있었으니까.
단 한 학기동안 만났던 그들의 미래가 어땠을지는 모른다. 모두가 잘 지내지는 못할 거다. 누군가의 삶은 더 어두워졌을 수도 있다. 하지만 적어도 내가 발표를 듣던 시점을 기준으로 판단하자면, 역경은 그들에게 성숙 효과를 부여했다. 다른 대학생들이 부모와 심리적으로 분리되지 못한 상태에 머물러 있는 동안, 그들은 이미 한 개인으로서 자신의 삶을 준비하고 있었다.
삶의 결말은 아무도 모른다
인간의 적응능력은 자신과 세상을 어떻게 이해하느냐에 따라 엄청나게 커질 수도 있고 한없이 나약해질 수도 있다. 언론에서 어떤 사건을 대하는 표현들에서 종종 ‘돌이킬 수 없다’는 태도를 발견하곤 한다. 학교 폭력도 ‘치유 할 수 없는’ 상처고, 각종 범죄의 피해 역시 ‘씻을 수 없는’ 오명이거나 ‘회복할 수 없는’ 무엇으로 묘사된다. 그 기사만 보자면 이미 피해자들의 삶은 끝난 것 같다. 물론 많은 사건들이 깊은 상흔을 남긴다. 하지만 어떤 상처는 그 자체의 고통보다는 그것을 대하는 주변 사람들의 태도로 인해 더 강력한 독성이 발휘된다. 반면에 보도되던 시점에서 뛰어난 성취를 이룬 사람들은 마치 인생의 해피엔딩을 맞이한 것처럼 묘사된다. 그들이 앞으로 겪을 온갖 우여곡절은 마치 존재하지 않을 것처럼.
우리 삶에 해피 엔딩은 없다. 모두의 삶이 비극이라는 얘기는 아니다. 우리가 살아있는 한 엔딩도 없기 때문이다. 가끔은 좋은 일이 나쁜 결과를 가져오거나 당장은 나쁜 일이 장기적으로는 좋은 결과로 이어지기도 한다. 인생의 오묘한 점이다. 그래서 나는 어떤 일이 있더라도 삶은 계속되어야 한다고 믿는다. 아무도 그 결말을 모르기 때문이다.
※ 필자는 심리학 박사이자 한국청소년정책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이다. 연세대에서 발달심리학으로 석사를, 온라인게임 유저 한·일 비교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시험인간], [심리학오디세이], [팝콘심리학], [무심한 고양이와 소심한 심리학자] 등을 썼고 [심리원리], [시간의 심리학], [인간 그 속기 쉬운 동물] 등을 번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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