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만 TEU' 눈 앞에 둔 HMM, 앞 길은 ‘미궁’
'해운재건 계획' 이후 비전 제시 없어… “민영화 골든타임”
국내 유일의 원양컨테이너선사인 HMM은 최근 ‘분기 영업이익 1조 돌파’라는 기록적인 1분기 실적을 공시했다. ‘골칫거리’로 전락했던 해운업의 화려한 부활이다. 정부의 해운재건 5개년 계획에 발맞춰 100만TEU(1TEU는 20ft짜리 컨테이너 1개)를 목표로 몸집을 키운 게 적중했다.
축배를 들어야 할 시기지만 HMM은 마냥 웃을 수 없다. 그간 HMM의 육성 방향이었던 해운재건 5개년 계획이 마침표를 향하고 있기 때문이다. ‘선복량 100만TEU’라는 목표를 안고 달렸던 HMM은 새로운 목표를 마련해야 하지만 아직까지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결국 업계에선 ‘주인이 나타나야 할 때’라는 인식이 확산되는 중이다.
“선복량 더 늘려야” vs “위기 대비해야”
HMM에 따르면 올해 1분기 말 기준 이 회사가 보유한 선대 규모는 67대, 73만4609TEU다. 올해 예정된 1만6000TEU급 8대 인도가 완료되면 83만TEU 수준이 된다. 여기에 최근 발주를 준비중인 1만3000TEU급 선박 12척을 더하면 100만TEU의 선복량을 확보하게 된다. 해운재건 5개년 계획에서 계획했던 선복량 목표치를 달성하는 셈이다.
100만 TEU를 코 앞에 둔 HMM에 대해 해운업계에선 다양한 의견을 내놓는다. 호황을 맞은 가운데 선복량을 더 늘려야 한다는 의견과 그렇지 않다는 의견이 맞부딪힌다. 물론 글로벌 선박 부족 사태가 이어지고 해상 고운임 시대가 장기간 이어진다면, HMM은 선복량을 더 늘리는 것이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최근 글로벌 선사들이 선복량을 다시 경쟁적으로 늘리고 있다. 정부의 해운재건 5개년 계획을 이끌었던 김영춘 전 해양수산부 장관은 자신의 SNS에 “문제는 이런 호황이 장기 지속되지 않을거란 것”이라며 “해외의 시장분석기관들에 따르면 올해 컨테이너선 신조발주가 급속히 확대되고 있으며 10년래 최대의 발주가 이뤄질 것이라 예측한다”고 강조했다.
실제 글로벌 해운분석기관 알파라이너에 따르면 글로벌 상위 선사들은 다시금 신조 선박 발주 경쟁을 펼치고 있다. 글로벌 2위 선사인 MSC는 66만 TEU에 달하는 선박 인도를 기다리고 있다. MSC의 발주량만 하더라도 HMM의 총 선복량과 비슷한 수준이다.
MSC가 글로벌 1위 선사인 머스크와 조직한 해운동맹 ‘2M’은 2010년대 대규모 발주로 해운업계 치킨게임을 조장한 주체다.MSC 뿐만 아니다. 글로벌 3위 선사인 중국 코스코(COSCO)는 27만6000TEU를, 4위 CMA CGM은 35만4000TEU 규모의 신규 선박을 발주해놓은 상태다. 5위 하팍로이드(14만TEU), 6위 ONE(26만TEU)도 적지 않은 신규선박을 발주했다.
김 전 장관은 “HMM이나 정부가 현재의 호실적에 취해 무분별하게 선복량을 늘리려해서는 안된다”며 “곧 도래할 치킨게임에 대비해 한국 선사들은 고비용 임차 용선과 노후 자사선들을 교체하는 투자에 국한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해운업계의 컨테이너선 늘리기 기조는 조선업계에서도 감지된다. 영국의 조선해운 전문기관인 클락슨은 2023~2031년 컨테이너선은 매년 250~300척이 발주될 것으로 최근 전망했다. 이는 매년 2020년 발주량(105척) 대비 2~3배 증가한 수치다.
이에 반해 고운임 현상이 장기화 할 것이라고 보는 시각도 있다. 조성대 한국무역협회 국제무역통상연구원 연구위원은 최근 보고서에서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세계 경제가 뉴노멀에 진입하면서 해운업 경기는 상당기간 부진했고, 글로벌 선사들은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한 경기예측 모델을 도입하며 보수적인 경영전략을 취해왔다”며 “한번 상승한 운임은 쉽게 하락하지 않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물론 치킨게임으로 운임이 떨어지는 것과 선복량 증대의 필요성이 반비례하는 것은 아니다. 해운업계에선 운임상승과는 관계없이 HMM의 선복량 증대가 필요하다는 주장을 내놓는다. 한국해운협회는 해운 운임이 바닥을 쳤던 2018년부터 HMM이 200만TEU까지 선복량을 늘려야 한다고 지속 강조해왔다. 대형선을 위주로 포트폴리오를 구성하고 규모의 경제를 이뤄야 글로벌 치킨 게임에서 살아남을 수 있다는 게 그 근거였다.
실제 지난해 4월부터 12척의 2만4000TEU급 초대형 선박을 인도받은 HMM의 운송 효율은 급격히 좋아졌다. 올해 1분기 HMM은 94만TEU를 수송하며 매출원가로 1조3293억원을 들였다. 단순 계산으로 1TEU를 나르는 데 약 141만원이 들었다는 계산이 나온다. 이는 전년 동기(139만원)와 비교해 소폭 증가한 수치이지만, 같은 기간 유가 상승을 고려하면 효율성이 크게 증가했음을 나타낸다.
그럼에도 일부 전문가들은 선복량 확대보다 ‘체질 개선’에 주력해야 할 시기라고 조언한다. 구교훈 한국국제물류사협회장은 “현재의 물동량 증가와 운임 상승 흐름이 계속될지 알 수 없다”며 “장기적 차원의 수익 구조를 찾아나가야 한다”고 말했다.
해운업계 한 관계자는 “HMM은 과거 컨테이너와 벌크의 비중이 많게는 5:5까지 갔었던 회사인데, 현재는 완전히 컨테이너 일변도”라며 “외항 컨테이너선 사업의 업황이 좋지 않을 때 벌크선 사업이 받쳐 줄 수 있는 사업구조를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방향성은 결국 ‘주인 찾기’에 달려
문제는 HMM이 ‘주인 없는 회사’라는 점에 있다. 해운 재건 5개년 계획 아래서 스케일업을 추진해 흑자 전환에 성공했지만, 앞으로의 큰 그림을 가지고 장기적인 투자를 집행할 ‘주인’이 나타나지 않는다면 미래를 장담하긴 어렵다.
익명을 요구한 해운업계 관계자는 “한진해운 파산 후 국적선사가 사라질 수 있다는 위기감 속에서 HMM의 선복량 늘리기에 공감대가 형성됐지만, 이제 이 회사가 연간 수조원의 영업이익을 내는 상황에서 산은과 정부가 얼마나 더 많은 역할을 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라며 “결국 방향성의 기로에 놓인 지금이 민영화의 적기”라고 말했다.
산업은행의 민영화 계획은 아직 나타나지 않는 가운데, 금융 및 해운업계에선 산은이 내달 만기를 맞는 HMM의 전환사채(CB)를 어떻게 처리할지에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산은이 CB를 주식으로 전환하면 2조원이 넘는 평가차익을 얻게 된다. CB의 전환가액이 5000원에 불과한데, 현재 HMM의 주가는 4만6050원(20일 종가 기준)에 달하기 때문이다. 문제는 전환을 할 경우 산은의 지분이 과도하게 커진다는 점이다. 현행 은행법(제37조)상 산은은 기업의 지분 15% 이상을 소유할 수 없다. 이 이상을 보유하려면 자회사로 편입 해야한다.
때문에 시장에선 산은이 조만간 HMM의 지분 일부를 매각하거나, 전환사채를 매각하는 등의 움직임을 보일 것으로 본다. 이를 시장에 내놓기는 오버행 이슈 등의 부담이 따른다. 결국 산은의 CB 처리가 민영화와 이어질 것이란 게 시장의 시선이다.
최윤신 기자 choi.yoonsh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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